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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a.k.a발챙이)ll조회 238l
이 글은 5년 전 (2018/12/14) 게시물이에요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 인스티즈


이기철, 청산행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며칠째 청산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인가(人家)를 내려다보고

쓰다 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남방(南方)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 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야성(野性)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길을 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져 두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들

서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 숨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 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의 양식으로 피어오르고

생목(生木) 울타리엔 들거미줄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실로 이 세상을 앓아 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 인스티즈


안오일, 꽃사주

 

 

 

증심사 오르는 참꽃 길

마악 한 쌍의 나비

자리를 털고 내려간다

 

사주, 기일, 궁합 펼쳐놓고

오르고 내리는

생의 갈피 엿보고 있던 한 노인

활짝 핀 참꽃 보며

회한의 가락으로 중얼거린다

 

내년에도 다시 필 저 꽃만큼

더 좋은 사주가 어딨을꼬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 인스티즈


이은봉, 삼베빛 저녁볕

 

 

 

삼베빛 저녁볕, 자꾸만 뒷덜미 잡아당긴다

어지럽다 아랫도리 갑자기 후들거린다

종아리에 힘 모으고 겨우겨우 버티고 선 채

흐르는 강물, 물끄러미 바라본다

산언덕을 덮고 있는 조팝꽃처럼

마음 몽롱해진다 낡은 철다리조차

꽃무더기 함부로 토해 놓는 곳

간이매점 대나무 평상 위 털썩 주저앉는다

싸구려 비스킷 조각조각 떼어먹으며

따스한 캔 커피 질금질금 잘라 마신다

초록 잎새들, 팔랑대는 저 아기 손바닥들

바람 데려와 코끝 문질러댄다

쿨룩쿨룩, 삼베빛 저녁볕 잔기침하는 사이

강마을 가득 들뜬 발자국들 일어선다

싸하게 몸 흔들며 피어오르는 철쭉꽃들

벌써 물속의 제 그림자 까맣게 지우고 있다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 인스티즈


이경, 머리에 새를 얹은 나무

 

 

 

표적이 되고 싶은 거야

서릿발 묻은 갈퀴로 불현듯 하강하는 새의

번 내리꽂히는 단호한 부리

검고 광활하게 빛나는 눈

새가 물어 오는 높고 차가운 자유

그쪽에서 시위를 맞추어 활을 당기는 일은 자주 오지 않아

그건 순전히 오랜 지혜의 선택이야

내겐 새를 불러들이거나 잡아 둘 손이 없어

언제 푸드덕 꿈을 깨고 날아오를지 그걸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

품고 있으면서 갖지 않는 것

보지 않으면서 잊지 않는 것

새의 사생활을 살짝 가려 주는 거

저녁 무렵 먼 벌판 쪽으로 날아간 새가

마른 풀줄기를 물고 돌아와 집을 지을 때까지

천 개의 팔을 올리고 이렇게 서 있을밖에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 인스티즈


문충성, 허공

 

 

 

원래 하늘은 비어 있습니까

누가 처음 하늘을 '허공(虛空)'이라 불렀습니까

그 허공을 찾아 얼만 많은 사람들이 길 떠났습니까

그러나 허공은 비어 있어 끝내 찾지 못했습니까

비어 있는 것들은 그러므로 찾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비어 있는 하늘은 비어 있는 대로 그냥 있습니까

허공을 찾는 이들

길에서 저물어

빈 길 되듯

 

그러나 한 번도 허공을 찾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까

비행기나 만들어 띄우며

아스팔트 신작로나 만들며

 

30년 동안 줄곧 나는 허공을 찾았습니까

나는 허공을 찾지 못합니까

아아, 허공 하나가

눈으로 들어와

가슴 속에

한 가득 허공을 만듭니까

만듭니까 허공이

새로운 허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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