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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4년 전 (2019/7/18) 게시물이에요

나의 옆집 소녀 6,7 | 인스티즈

열두 시 삼십 분.
약속 시각에 맞춰 집을 나갔다.
평상으로 걸어가니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현지의 모습이 보인다.

"헙."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식 같은 감탄이 흘러 나왔다.
현지는 평소와 다르게 청순하고 여성적으로 꾸며 입었다.
무릎까지 보이는 청색 치마와 연한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고,
노란색 크로스백을 허리에 걸치듯 손에 쥔채 흰색 캔버스화를 동동 굴리며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벌써 나와 있었네?"

나는 긴장하지 않은 행색으로 현지에게 인사를 건넸다.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

'네가 빨리 나온 것뿐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현지는 평상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공중에서 멋지게 펼쳤다.
30cm 정도의 작은 지팡이가 트랜스포머처럼 기다랗게 변신을 했다.

"가자."

현지는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앞장서서 걸어간다.
나는 현지의 뒤를 잇따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걸어갔다.

"옆에 좀 붙어서 오지?"

"어..?, 어."

의도치 않게 현지 옆에 바짝 붙어서 걷게 되었다.

"피시방 어딨어?"

뭐야. 너 알고 앞장서서 간 거 아니었어? 속마음의 형태가 입으로 튀어 나올 뻔했다.
나는 주위를 빠르게 탐색했다. 그러던 중 맞은편 횡단보도 옆에 작은 피시방 간판이 보였다.

"횡단보도 앞에 있어."

횡단보도라는 말에 현지는 내 오른쪽 팔을 붙잡았다.
안내견이 된 기분이랄까. 하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현지를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태도가 불쾌했다.
할 수만 있다면 현지의 귀를 막아주고 싶었다.

피시방에 도착한 뒤 현지를 피시방 구석 자리에 앉혔다.
카운터 알바 형에게 비회원 카드 두 개를 받은 뒤 캔 음료수 두 개를 사서 자리로 돌아갔다.
현지는 어찌어찌 컴퓨터를 켜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료수 마셔."

"네가 산 거야? 잘 마실게."

나는 현지의 컴퓨터를 로그인해 주고 내 컴퓨터를 마저 로그인했다.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캄캄하다.

"나는 서든어택 할 건데. 너는 뭐 할 거야?"

서든어택? 실화인가. 눈도 보이지 않으면서 FPS게임을 한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같이하자."

어린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부모님의 심정이 이런 감정일까.
나는 꽤 오랜 시간 현지의 눈이 되어 아바타 게임을 했다.

"현지야!! 옆!! 옆!! 갈겨!!"

"옆? 옆?! 쐈어! 쐈어!"

"오!! 죽었어! 죽었어!"

"적팀 죽었어?!!"

"아니. 현지 네가 죽었어."

현지와 나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빠져들었다.
요금을 결제하기 위해 게임을 끄고 시간을 확인했을 때, 다섯 시 오십 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피시방을 나와서 현지와 목적지 없이 거리를 걸어 다녔다.
한참 게임 이야기를 하면서 걷던 중 현지가 갑작스레 멈춰 섰다.

"피자 냄새."

"피자?"

오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 번도 피자를 먹어 본 경험이 없다.

"피자 한 판 먹고 가자!"

현지는 내 소매를 붙잡고 피자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순간,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 지난날의 기억이 나를 공격한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현지의 손을 뿌리쳤다.

"싫어."

현지는 놀란 기색을 띠며 나를 달래보려 한다.

"미안해. 그럼 다른 거 먹을까?"

나는 현지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듣고 도망치듯 도보를 걸어갔다.
쉽게 말해 현지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나 다름없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았지만, 감정이 먼저 앞선 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한참 동안 앞을 걸어가던 중 뒤에서 알 수 없는 호통이 들렸다.

"야!! 눈을 어디에 뜨고 다니는 거야?! 뭐야. 봉사야?! 눈이 안 보이면 집에 찌그러져 있던가!!"

나는 다급하게 뒤를 돌아봤다.
현지가 바닥에 주저앉아 지팡이를 찾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현지의 앞으로 다가가 떨어진 지팡이를 손에 쥐여주며 일으켜 세운다.

"감사합니다."

"미안해."

"집에 간 거 아니었어?"

"미안해."

눈앞에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려진다. 눈물이 흐르는 건가?
그것보다 현지의 무릎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린다.
나는 현지를 상가 건물 계단 앞에 앉혀 두고 근처 약국에서 연고와 밴드를 샀다.
상처 난 현지의 무릎을 보니 더 큰 죄책감이 몰려왔다.

"미안해."

"뭐가?"

"말도 없이 가버린 거."

그녀의 무릎에 흐르는 피를 물티슈로 닦아 낸 뒤 면봉에 연고를 묻혀서 발랐다.
현지는 아픈 기색 없이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다.

"미안하면 내 부탁 하나 더 들어줄래?"

"뭔데?"

"별거 아니야."









나의 옆집 소녀 6,7 | 인스티즈

이후 현지와 함께 시장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껏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을 때, 저녁 아홉 시 삼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엄마가 퇴근 하고 집으로 온 시각을 훌쩍 지나친 뒤였다.

"현지야, 이제 집에 가자."

현지는 걸음을 멈추고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자정까지만 나랑 같이 있어 줄래?"

자정이면 열두 시? 나에게는 서투른 일탈이었다.

"너무 늦지 않아?"

"아까 부탁 들어주기로 했잖아. 자정까지만 있어 줘."

"너희 엄마가 걱정하지 않으실까?"

"괜찮아. 어차피 신경 안 쓰셔."

나는 현지의 바람대로 집 근처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심장이 거대한 망치로 박음질을 당하는 듯한 진동이 울려왔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 하려던 찰나 통신사 로고가 보이면서 휴대폰이 꺼졌다.

"현지야, 휴대폰 있어?"

"아니."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했을 때가 열 시 십분. 엄마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마음 한편이 불편했지만, 현지와 같은 공간에 있어선지 불편한 감정은 금세 잊혀졌다.
그리고 불확실한 용기와 자신감이 나를 뒤 덮었다.

"현지야."

"왜?"

"너를 좋ㅇ..."

"하지 마."

현지의 차가운 얼굴과 말투가 내 심장을 잠깐 얼렸다.
말로만 듣던 입구컷이 이런 것일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잘렸다.
현지는 지팡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좋아한다는 말 같은 거 하지 마. 네가 나를 단 한 번이라도 불쌍하게 본 적이 있다면 하지 마.
네가 나한테 거짓말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고백 같은 거 하지 마."

현지의 말이 옳다. 나는 현지를 평범하게 좋아해서 고백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일순간 느껴진 연민같은 감정과 분위기에 휩싸여 복권을 긁으려 했던 것이다.

"현지야!!!! 현지야!!! 어딨어!!!"

공원 아래쪽에서 현지의 이름을 애타고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현지의 엄마인가? 그런데 엄마라고 하기에는 확연히 젊은 여성이다.
그리고 여성의 옆에는 우리 엄마도 같이 있었다.
나와 현지를 발견한 엄마와 여성은 헐레벌떡 뛰어왔다.

"현지야!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데!!"

현지를 품에 꼭 안고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는 여성과
그 옆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우리 엄마. 마치 온탕과 냉탕 같다.
현지는 말없이 여성의 손에 이끌려 공원을 내려갔다.
나는 벤치에 홀로 앉아 손톱을 어루만지며 엄마의 시선을 회피했다.
엄마는 망부석 같은 내 팔을 있는 힘껏 붙잡으며 소리쳤다.

"왜!! 안 하던 짓을 하는 건데?! 엄마가 너 때문에 얼마나 속이 탔는지 알기나 해?!!"

너 때문에. 너 때문에. 가슴속의 상처가 욱신거린다.
나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나지막이 말했다.

"어차피 엄마는 내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잖아."

짜악-!

왼쪽 뺨에서 느껴지는 쓰라린 통증. 엄마의 손바닥이 일순간 내 뺨을 후려쳤다.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고통의 눈물? 아니. 마음속에 쌓인 울분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셨으니까!! 엄마도 내가 원망스럽잖아!! 나도 다 알아! 나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신 거..
다 안다고..!"

엄마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 보는 엄마의 눈물이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잖아..."

다리에 힘이 풀린 걸까. 엄마는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울기 시작한다.
나에 대한 원망 때문에? 아니면 아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아니...야."

엄마의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말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아..니야. 너를 원망해서 그런 게 아니야.."

나를 원망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내 기억 속 엄마의 얼굴은 아직도 생생하다.

"거짓말 하지마... 내가 병원에서 깨어난 날 엄마가 나한테 말했잖아. 너 때문이라고.."

"아니야. 너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에.. 엄마 때문이야.."

눈물로 범벅이 된 엄마의 얼굴과 나를 쳐다보며 흐느끼는 장면이 내 머릿속을 다시 한번 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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