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1: 장군, 왜적이 물 한 지게를 보내왔습니다
병사2: 우리가 물이 떨어진 것을 알고 조롱하며 포위를 풀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항복할 수밖에 없을 지경입니다
권율: 지금 당장 쌀을 모두 가져와 성 가장자리에서 말 등 위에 쏟아부어라!
긴 지구전 끝에 병사들이 먹을 쌀과 물도 부족해진 상황에서
권율은 왜 이런 황당한 명령을 내렸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쌀로 말 등을 씻기자 왜적은 포위망을 풀고 퇴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조선군은 기마병 1000여 명을 풀어 적의 퇴로를 기습해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며 승전을 거머쥐었습니다
쌀로 말을 씻기는 이 거짓말 같은 작전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12월 독산성 전투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어떻게 적장을 속일 수 있었을까?
말 등 위로 쏟아지는 것이 물인지, 쌀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는 것은 좀 억지스럽기까지 합니다
이 속임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산성의 지형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선 독산성禿山城은 높이 208미터의 나지막한 산 위에 위치한 돌로 된 성입니다 산은 높지 않지만, 오산과 수원, 화성에 걸쳐 펼쳐진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어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요충지에 위치하지요 게다가 산 위에 성을 축조하고 군사를 주둔시킬수 있을 정도로 꼭대기가 평평한 구조였기 때문에 가능한 작전이었습니다
독산성
이런 조건으로 독산성은 평야 한가운데에 위치한 산 위 평탄면에 축조하여 군사를 주둔시킬 수 있고 적을 감시하기 좋았습니다 반면 적들의 입장에서는 안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쌀로 말을 씻겨도 물로 씻기는 것처럼 속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권율 장군은 독산성의 특징을 정확하게 알고 유리한 지형을 이용해 적을 속일 수 있다는 확신으로 세마대 작전을 펼쳤겠지요
권율 장군은 독산성에서 고스란히 보존한 병력으로 직후인 1593년 2월 12일 행주산성에서도 큰 승리를 거두며 일본군의 진로를 막고 한양 수복의 기틀을 다졌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선조는 이 승전을 기념하여 ‘말을 씻기던 곳’이라는 의미의 세마대洗馬臺를 설치했습니다 현재는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복원해놓은 상태이지요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전철역 중 하나인 세마역의 이름도 이 독산성 전투에서 유래한 것이랍니다
당대 최고의 명장 신립은 왜 패배했을까?
반면 신립은 권율과 달리 지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뼈아픈 패배를 경험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정은 일본군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신립을 내세웠습니다 당시 신립은 여진족 이탕개의 침입을 물리친 영웅이었습니다 여진족의 훈련된 기마병을 조선의 기마병으로 맞서 번번이 제압해낸 조선 최고의 명장이었죠
임진왜란 초기 상주에서 이일이 패배하자 조선의 방어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이제 신립은 김여물, 이종장 등과 함께 조령 정찰에 나섰습니다 조령은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이 한양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최단 거리의 고개이기 때문입니다 또 소백산맥 남쪽의 상주와 북쪽의 충주를 연결하는 요충지이기도 했지요 김여물은 ‘적군에 비해 우리의 병력이 적으니 정면 전투를 피하고 기슭에 숨어 일제히 활을 쏘아 물리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하지만 신립은 ‘지역이 험준하여 기마병을 활용할 수 없고 우리 군사의 훈련이 부족하니 들판에서 배수의 진을 쳐야 도망치지 않고 싸울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충주 탄금대의 위치
결국 신립의 군대는 조령의 방어선을 포기하고 충주성을 건너 탄금대彈琴臺에 진을 쳤습니다 그러나 탄금대 주변의 평야는 논밭이 많아 말을 달리기에 곤란했고, 설상가상으로 며칠 전 비까지 온 탓에 습지에 발이 푹푹 빠졌습니다 신립은 병사들에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을 독려하였으나, 포위해 들어오는 일본군 사이에서 기동성이 사라진 기마병단은 도리가 없었습니다 우리 군은 패배했고 신립은 탄금대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지요
1592년 4월 28일 신립의 탄금대 전투가 패배가 가져온 결과는 선조의 피난이었습니다 일본군이 며칠만에 한양을 손쉽게 접수하여 한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신립은 기마병의 특성은 자신했지만 전장에서 지형에 대한 통찰은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신립은 승리의 경험이 있는 기마병이 있었지만 지리적 특성을 잘못 해석하여 패배한 것입니다
반대로 권율은 궁지에 몰린 상황을 지리적 특성으로 해결해 결과를 뒤집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