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글‘형’ 이라는 호칭은 오묘한 느낌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호칭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그 놈을 만나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형’ 이라는 호칭에 대해서 생각이란 것을 해보게 되었다. 분명히 처음 그 놈이 나를 ‘형’ 이라고 불렀을 때는 별 다른 느낌 조차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깍듯하게 존댓말을 써가면서 말을 했었거든. 형, 안녕하세요. 형, 밥은 먹었어요? 형, 뭐해요? 등등. 그 놈은 ‘요’ 자를 단 한 번도 뺴먹지 않았던 녀석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놈과 내가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을 즈음, 나는 뭔가 틀어졌음을 느꼈다. ‘요’ 는 온데 간데 없고, 가끔은 ‘형’ 이라는 호칭도 빼먹기 일쑤였다. 이런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웃기고, 굳이 짚고 넘어가기도 뭐해서 가만히 있는 건데. 그 놈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얼마 전, 나는 그 놈과의 짧은 통화가 있었다. 물론 전화는 그 놈이 먼저 했다. 문제는 그게 새벽이었다는 거지. 내가 한참 자고 있을 때, 내 달콤한 잠을 깨웠다는 소리다.
“형, 뭐해.”
“미쳤냐.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지금? 2시 3분이지.”
“이이, 모지리 새끼. 내가 진짜로 시간을 몰라서 물어봤겠냐? 새벽에 뭔 전화질이야. 잠이나 자라.”
“야, 끊지 마.”
야? 야아? 지금 야라고 했냐? 놈의 입에서 또 반말이 등장하셨다. 그래도 일단 참는 수밖에. 참자, 변백현. 내가 형이니까 참자.
“넌 잠도 없냐? 어? 너 지금 이러는 거 민폐야, 민폐.”
“민폐남이나 돼 볼까?”
“답 없는 놈.”
“니가 답 좀 찾아줘.”
반말의 두 번째 등장. 그런데 반말로도 모자라서 말장난이라니.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참아온 게 너무 많았던 것인지 나는 결국 놈에게 윽박지르고야 말았다. 야, 인마. 너 계속 나한테 말 놓는 것 같다? 적어도 형이라고는 해야지. 왜 계속 형 소리를 빼먹냐? 아니, 솔직히 니가 형 소리를 자꾸 안 하니까 이제는 반말도 기분 나쁘다. 나니까 이렇게 받아주는 거야. 너 어디가서 이렇게 행동하면 싸맞어. 알간? 쉴 틈도 없이 쏟아낸 말을 끝내고는 놈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수화기 너머로는 끅끅, 꺽꺽 녀석의 웃음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새벽에 사람 열받게 만드네.
“지금도 너 형이 말하고 있는데 웃고 있잖아. 어? 너 진짜 그거…….”
“형.”
순간 나는 꿀먹은 벙어리 마냥 굳고 말았다. 이 새끼 정색한 거 맞지? 낮게 깔리는 녀석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속되게 말하자면 그래, 나는 놈에게 쫄았다.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꼴에 키 조금 더 크다고 나를 내려다보던 녀석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에이, 재수없는 놈.
“그게 그렇게 서러웠어?”
“그래, 이 새끼야.”
“미안해.”
갑작스런 사과였다. 아니, 난 사과를 바란 건 아닌데. 버벅거리는 내 목소리 끝이 미묘하게 떨려왔다. 정말이지 동생한테 잡혀사는 기분이다. 정녕 나는 녀석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일까? 형 체면이 완전 구겨지네.
“앞으로는 형이라고 꼬박꼬박 부를게. 근데 존댓말은 싫어.”
“이유 좀 묻자.”
“존댓말을 쓰면 서로가 너무 멀어보이는 것 같아. 형이랑 나랑은 먼 사이도 아닌데.”
이유가 생각보다 귀여웠다. 뭐야, 단지 그거 때문이야?
“나 또 말할 거 있는데.”
“뭔데.”
“김태형이라고 부르지 좀 마. 정 없어 보이잖아. 태형아, 태형아. 이렇게 부르면 좀 좋나.”
“태형아.”
또 대답이 없다. 아마도 내가 단번에 불러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모양이지. 괜한 장난기가 발동하여 ‘태형아’ 라고 놈의 이름을 한 10번은 더 불러줬을 때 즈음, 그 놈은 “아, 진짜.” 들릴듯 말듯 작게 중얼거렸다.
“잠깐 거리를 좀 둬야겠다.”
“뭐?”
“지금은 먼 사이하자. 아니, 해요.”
“이해를 못하겠네.”
“내일은 더 가까워져요, 우리.”
“…….”
“형.”
‘형’ 이라는 호칭은 오묘한 느낌이 있다.
내가 드디어 미쳤는지 이제는 다른 사람이 ‘형’ 이라고 부를 때도 괜스레 놈의 얼굴과 목소리가 겹쳐 떠오를 것만 같았다. 미친놈...! 정신 차려. 너는 지금 3살이나 어린, 새파랗게 어린 놈한테 당하고 있는 거라고.
“잘자요.”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도대체 그 짧은 통화가 뭐라고, 도대체 놈의 목소리가 뭐라고, 도대체 ‘형’ 이라는 호칭이 뭐라고 나의 잠은 다 달아나버린 것일까. 놈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미련한 나를? 아니명 ‘형’ 이라는 호칭을? 나도 모르겠다. 다 모르겠다. 이불을 뻥뻥 차내다가 한기가 느껴져 다시 끌어올려 덮었다. 턱 밑까지 덮힌 이불의 포근함에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귓가에 자꾸만 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너, 진짜 뭐야. 뭐냐고.
‘형’
결국 나는 잠들지 못했다.
| 주저리 |
오늘 뷔백이 터진 기념으로 처음으로 글을 싸질러 본다. 자급자족을 위하여ㅠㅠ (글도 짧은데 구독료 따위ㅇㅅaㅇ...) 퓨전이라 말머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공이 태형이니까 방탄으로. 여러분 뷔백 미세요. 뷔백 믿고 천국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