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참을 소리 없이 끅끅 울어대다가 잠을 청했다. 꿈 속의 너는 작은 케이크 상자를 들고 건너편에 서 있었다. 꿈 속의 나는 그런 너에게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그 순간 확 끼쳐오는 소름에 그대로 경직될 수 밖에 없었다. 데자뷰. 꿈 속의 이 장면을 내 기억속의 그것과 엮어놓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재생되는 기억과 그 둘 사이 도로에 선 채로, 저 멀리서 달려오는 트럭을 마주한다. 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점점 가까워 오는 라이트의 불빛이 내 목이라도 조르는 듯이 자꾸만 호흡이 버거워지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부터 해맑게 웃으며 달려오는 한빈이가 보인다. 오지마라. 제발 그냥 그대로 있어줬으면. 지금이라도 멈춰야… 내가 빌고 빌었음에도 너는 기어이 달려왔고, 나를 마주하던 트럭은 나를 지나쳐 한빈이와 마주했다. 한빈이는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가 추락했다. 멍하니 그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장면이 흩어지더니 다시 보이는 건너편에선 처음과 같은 한빈이가 있었다. 그렇게 몇번이고 반복되는 너의 비상과 추락을 흐린 눈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너의 날개가 꺾이는 그 순간, 순간들이 나의 시선을 타고 알알이 박혀들어와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3.날개> 사실은 무서웠다. 깨어날 줄을 모르는 꿈의 향연과, 그 꿈 안에서마저 나를 괴롭히는 너의 잔상이 언제쯤이면 사라질까. 이대로 멈추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준회가 깨워주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언제까지고 그 횡단보도 위에 서 있었을 것이다. -……으… -00아! 작게 앓는 소리를 내자 곧바로 느껴지는 따뜻한 손의 온기. 목소리도, 손도 준회이다.
-야 너…! 내가 진짜… 떨군 고개가 떨린다. 아무래도 우는 모양이다. -…야, 왜 울고 그… 와락 안겨오는 준회가 몇일 사이에 많이 야위었다는 게 느껴져 한숨이 났다. -근데… 여기 병원이야? 나 왜 여기 있어? 내가 잠시 둘러본 주위가 병원이 맞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여는 준회이다. -네가… 자면서 숨을 안 쉬길래, 놀라서 달려왔다. 왜. -아… 그래? 많이 무거웠지… 미안. 요즘 살이 좀 쪄서. 찔 살이라고는 없었다. 무엇을 먹지도 않았으니. 오히려 빠졌으면 더 빠졌겠다. 그저 내가 안쓰러울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기계적인 농담을 하는 것 뿐이었다.
-웃기지 마. 이젠 너한테 뭐 먹이기도 겁난다. 준회의 말로 다시 무거워지는 공기가 머쓱한 나머지 입을 열었다. -우리 나가자. -뭐? 야, 너 몸도 안 좋아…! -아, 왜! 여기 답답하단 말야. 응? -밖에 추워. 병원복이 얼마나 얇은데… 가뜩이나 몸도 약해진 상황에서. 말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저도 나가고 싶겠지. 요 몇일동안은 내 옆에만 붙어 있었으니. -그래? 그럼 넌 여기 있어. 난 나가서 산책하고 오게! 딱히 밖에 나가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병원 안에 꼼짝않고 있기는 더욱 싫어 준회가 잡기 전 쏜살같이 병실을 나왔다.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준회의 목소리가 들렸고, 병원 안에서 뜀박질을 하는 게 마치 우리 셋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찰나에 준회가 팔을 뻗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감기 걸린다니까… 틱틱대면서도 제 외투를 벗어 내 어깨에 걸쳐준다. 찬찬히 옷을 여며주는 손길에 기분이 묘해졌다. 한빈이도 그 날, 이렇게 옷 여며줬었는데.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해져 눈을 감고 옷에 얼굴을 묻었다. -추우면 말 해. 바로 들어오게. -알겠어, 알겠어. 아- 공기 좋다! 얼렁뚱땅 대답을 하곤 문이 열리자마자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병원 내의 벤치로 향했다. -…좋긴 좋네. -거 봐. 그럴 줄 알았다니까?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다 포장마차 하나를 발견했다. -어, 준회야! 우리 저기 가자! -어디? 내 시선을 따라가던 준회가 놀라 내게 물었다. -먹어도 괜찮겠어? -한동안 안 먹었더니 완전 배고파. 가자! 준회와 있으면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는 기분이다.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한빈이가 고파 그와의 추억을 찾으러 포장마차로 향하는 것이니. -아줌마, 여기 떡볶이 2인분이요! 주문을 받으시던 아주머니가 떡볶이를 담으러 돌아서자마자 한빈이가 물어왔다. -2인분으로 충분해? -아니, 당연히 모자르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나를 보던 한빈이는 알 수가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왜 2인분밖에 안 시켜? -먹고 다른거 더 시켜야지!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장난스레 한숨을 쉬는 연기를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치, 너도 많이 먹으면서… 떡볶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를 감탄사까지 내뱉으며 바라보고 있다가 포크를 들어 먹기 시작했다. -…? 왜 안 먹어? -그걸 몰라서 물어? 나완 달리 들지도 않는 포크에 이유를 물으니 돌아온 건 황당한 대답 뿐. 왜 안 먹는 건지 모르겠는데…
-먹어줘야지, 여친아. 당연한 거 아님? 저 혼자 토라져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는 모습이 마냥 귀여워 찍어두었던 떡을 먹여주자 곧장 싱글벙글한 얼굴을 한다. -이런 애 같은 걸 남친이라고… -좋으면서. -그래. 좋다, 좋아. 웃으며 볼을 꼬집어주자 어, 이건 내가 해야하는데! 라며 똑같이 내 볼을 꼬집는다. 환하게 웃는 한빈이가 다른 사람들에겐 아닐지라도 내 눈에는 천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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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내렸습니다. 포인트 얻을려고 글쓰는 것 도 아닌데 높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한빈이에게 안좋은 일이 있는데 이런 우울돋는 글을 쓰게 되어 유감이지만,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뭐든지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아이라 많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또한 한빈이의 일이니까요. 부디 혼자 끙끙 앓지 않길 바라, 한빈아. 하트. 앞으로의 전개는 사실 쓰면서도 잘 모르겠어여...ㅎ 많이많이 추측해주세요 신알신 해주신분들 감사드리고 암호닉 신청해주신 정주행 님 감사드립니다! 암호닉은 언제나 받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글에 신청해 주시면 제가 편해여...ㅎ 어디든 달려도 괜찮습니다. 못난 글 봐주시는데 바랄게 뭐가 더 있을까요..
암호닉
정주행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