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적은 일어났다, 다만 - 차학연(3)
왜 느끼지 못했을까, 내 왼손에 어색하게 올려져 있었던 손이 택운이의 굳어버린 오른손이었다는걸,
내 피를 닦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던 손이 너의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이었다는걸,
나 차학연은 지독하게 멍청하고 지독하게 못났다.
그렇게 도망을 치고나서 한시간을 찬바람을 쐬며 옥상위에 쭈그려 앉아있으니, 곧 재환이가 옥상으로 나와 나를 불렀다.
"형ㅡ"
애써 발랄한 목소리로 부르는 재환이에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내옆으로 다가와 나를 일으켜 세우는게 아닌가.
"형 이러면 저 진짜 화내요?"
"..조금만..내버려둬.."
"..형,"
"..."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다시 숙이자 재환이는 아마 처음으로 내게 심각한 표정으로 화를 냈다.
굳이 언성을 높인것도 아니고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차분했지만 뭔가 압도당하는것만 같은 분위기에 움찔했다.
"택운이 형 생각은 안해요?"
"...!"
망치에 머리를 한대 맞은듯 띵ㅡ 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당장 힘든건 택운이 형이에요, 그래도 형 쓰러진거 걱정하면서 눈뜨자마자 형찾았어요. 근데
형은 비겁하게 도망을 갔네요. 제가 택운이형이었으면 형이 너무너무 미웠을거에요."
못났다. 못난 차학연. 어쩜 넌 너보다 어린 동생만도 못하니, 저말을 듣고 수없이 자책을 했다.
충격에 휩싸여 재환이를 쳐다보다 고개를 떨구고 떨리는 손을 올려 내 뺨을 가차없이 내리쳤다.
짝ㅡ 짜악ㅡ
당황했는지 뺨을 내리치는 내 두 팔목을 붙잡은 재환이가 다급하게 소리친다.
"형! 그만해요!!"
"흐...난..자격도없어..내가, 무슨 낯으로..무슨낯으로!! 택운이를 봐..어떻게 애들을 보겠어..이런게 무슨 리더야..
재환아...나...다 놓고싶었다..? 다, 다 놓아버리고 싶었어 흐... 진짜, 너무 잔인하다.."
결국 주저앉아버린 나의 부어오른 뺨을 가만 쓸어주다 제 품에 안아준다. 유난히도 넓게 느껴지는 품이었다.
굳이 위로의 말을 하지 않는 재환이의 품에서 한참 눈물을 쏟아내다 울음을 그치고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괜찮아요?"
"가자."
"네?"
"택운이한테, 애들한테 가자."
굳게 마음을 먹고 말했다. 내 진심이 통한듯 옅은 미소를 띈 재환이와 함께 택운이가 있을 병실로 돌아갔다.
내게 베를린장벽처럼 느껴졌던 병실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그 안엔 나를 기다리던 아이들과 나를 보며 웃어주는 택운이가 있었다.
밉지도 않을까, 이렇게도 바보같이 착한 아이들에게 나는 무슨짓을 한걸까.
이런 아이들을 놓을 생각을 했다. 나란 사람은.
ㅡ곰곰히 생각해봤어.
너희에게 내가 어떤존재인지.
그리고 나에게 너희가 어떤존재인지.
결국 답은 하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