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 오래된 연인 침실의 풍경은 어지럽고 더러웠다. 녹조가 낀 것 마냥 푸른 빛이 돌았다. 창밖에서부터 빛이 미약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태형은 머쓱한 얼굴을 하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구겨진 하얀 시트가 태형의 아래에 깔려 신음하는 듯했다. 노랗게 얼룩진 베개가 머리맡에 하나, 발치에 하나 놓여 있었다. 명수는 그것들을 찬찬히 훑었다. "좀 더럽죠?" "상관없어." "집에 잘 안 들어와서 그래요." 태형은 손을 뻗어 명수의 근처에 있는 잡다한 것들을 밀어냈다. 좀 앉아요. 태형이 동그랗게 만들어 준 자리에 명수는 별 말 없이 앉았다. 녹색 풍경이 이번엔 푸른 색이 됐다. 현관문을 파란 페인트로 칠한 탓에 집이 온통 파래 보였다. 태형의 손목에선 향수 냄새가 났다. 명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요새 뭐하고 사는데?" "그냥 이것저것. 형 생각도 가끔 하고." "밥은 먹고 다녀?" "그냥 뭐……." 태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태형이 몸을 한 번 들썩하자 침대가 삐걱 하는 소리를 냈다. 침대 시트에선 눅눅하고 퀴퀴한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파란 빛이 명수의 눈을 파고들었다. 명수는 어림짐작으로 태형이 굶고 다니리라 하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가 끼니를 챙겨 주지 않으면 태형은 대부분 굶는다는 것을 명수는 잘 알고 있었다. "밥 먹고 다녀." "알았어요. 형은 뭐하고 지냈는데?" "그냥 여행 좀 하고, 마음 정리 좀 했지." "그렇구나……." 둘 사이에 정적이 일었다. 이쪽에서 쏟아진 빛과 저쪽에서 비친 빛이 겹쳐 청록색이 일었다. 명수는 그것을 빤히 쳐다봤다. 일렁이던 빛이 마침내 태형의 얼굴 가장자리에 닿았다. 왜요? 명수는 희끄무레한 태형의 얼굴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여러 번 탈색해 색이 옅은 머리카락 끝도 매만졌다. "오랜만에 보니까 새삼 잘생겼죠?" "어." "아 진짜?" "어. 근데 말랐어. 못생겼어." 모순이네. 태형은 중얼거리며 명수의 뺨에 짧게 입 맞췄다. 누군가와 혀를 섞고 몸을 섞는 게 일상이 돼 버린 태형과는 달리 남의 입술이 닿은 지 몇 달은 된 명수는 뻣뻣하게 몸을 굳혔다. 쪽쪽 민망한 소리를 내며 입술을 여러 번 부딪힌 태형이 방긋 웃었다. "근데 형도 살 좀 빠졌어요. 그래도 예쁘다." "시끄러워." 민망함에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푸른 빛이 조금 옮겨가 태형의 머리에 앉았다. 태형은 손을 뻗어 명수의 까만 머리를 꾹 눌렀다. 꼬질한 방 안이 온통 민망해질 시점이었다. 명수가 먼저 가방을 꾹 쥐었다. 빛이 태형의 왼쪽 머리 끝에서 오른쪽 머리 끝으로 옮겨 왔다. "나 갈게. 약속 있어." "아, 그래요? 괜히 오자고 했다. 그치?" "아냐,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좋았어." "조심해서 가요, 못 나가니까." 알았어, 잘 있어. 청록색 빛이 태형의 얼굴을 지나고 명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올 때 코를 자극했던 퀴퀴한 내가 확 끼쳤다. 가방을 꽉 쥔 탓에 명수의 손마디가 붉게 올라왔다. 밥 잘 챙겨 먹어 태형아. 명수는 그렇게 말하고 태형을 잠깐 쳐다봤다. 어두컴컴한 방에 태형이 혼자 덩그러니 앉아 손을 휘휘 흔들었다. 태형의 손 끝에서 손 끝으로 자꾸만 청록빛이 옮겨갔다. 튕기듯 움직였다. 명수는 문을 소리없이 닫고 눈을 꾹 내리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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