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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하비 전체글ll조회 889l 4

 

 

 

 

 

애인
w. Harvey

 

 

 

 


 

 

창구에서 도서를 대출해 주는 손을 보며 웃어버렸다. 분주하게 움직이는데도 전혀 익숙해 보이지 않는 서툰 행동 때문이였다. 그러다 문득 나의 눈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따분한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던 눈동자가 나로 인해 금새 반가움으로 변한 걸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그에게 그런 존재이구나, 싶어서. 그의 앞에 책을 쭈욱 내밀었다. 그러자 회원증 주세요, 라며 장난기가 스며있는 말투로 내게 말한다. 뭐 그 것 쯤은 지갑에 있다는 시늉으로 지갑을 꺼내는 내 손을 빤히 바라본다. 귀엽게시리. 손이 민망해질 정도로 강렬한 눈빛에 피식 웃음이 나는 걸 억지로 꾹 참았다. 회원증을 받아 든 그가 소리 없이 히죽거린다.

 

 

 

 


"고등학교 때 찍은 사진이래두."

 

 

 

 


몇 번이고 일러 줘도 늘 저런식으로 내 사진을 비웃곤 한다. 비웃는다기 보단 그냥 재밌어하는 쪽이 더 가까우려나?

 

 

 


"도서 반납일은 앞에 적혀 있구요, 연체하시면 안되요."

"알고 있네요"

"아참 그리고 또 한가지!"

"뭐?"

"너무 예뻐요 오늘."

 

 

 


코를 찡그리며 웃는다. 그의 버릇이다.

 

 

 


남들보다 1년 늦은 군 생활일뿐더러 게다가 공익근무요원인 그는 시립도서관 대출창구에서 근무하고 있다. 올해로 22살. 잠깐 거슬러 올라가자면 내겐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야만 가능했던 22살. 나와 그의 차이는 10년. 아마 정신연령에 있어선 그 보다 더한 차이가 있을지도.

 

 

 


"또 올게."

 

 

 


나의 말에 그는 또 한 번 코를 찡그리며 웃었다.

 

 

 

 

 

새해가 밝은지 이제 갓 한 달이 지났다. 내 나이는 서른 둘. 생기 넘쳤던 이십대는 내게 사랑하기에도 벅찬 시간들이였다. 뭣도 아닌 사랑에 목을 메달고, 울고 불고. 불변의 진리를 바꾸려 아등바등. 흐르는 시간을 잡지도 못할 거면서 시간이 흐름에 한탄하고. 시시콜콜 친구들과 수다의 주제는 연애가 주를 이뤘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그를 보면서 더욱 생생하게 그려지는 이십대는 후회 반, 아쉬움 반. 그 뿐이다. 딱히 좋았던 것도 없었고, 딱히 나쁜 것도 아니였다.

 

 

 


"피아니스트 정수연씨 인터뷰 니네 아내가 먼저 딴 거 알아?"

 

 

 

아무튼 그 여자, 낮게 중얼거렸다. 형석선배가 분발 좀 해 보지? 라는 제안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제 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기분이 드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저런 식의 노골적인 눈빛은 기분이 나쁘다. 잔뜩 열이 받은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데스크에 앉아 편집하다 만 기사를 눈으로 훑었다. 피아니스트 정수연의 기사는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였기에 기자들 사이에선 늘 흥분되는 먹이감이였다. 근데 그것을 그녀가 먼저 따 냈다니. 여자의 능력에 추월당하면 남자는 이런 기분인 걸까?

 

 

 


"정말 남자들은 질색이에요."

"왜 또."

"어제 소개팅 말이에요. 얼굴은 반반한게 딱 내 스타일이였는데 성격이 멍멍이에요 멍멍이."

 

 

 


우리 사무실 내에 가장 나이가 어린 여 직원인 효정씨는 자유분방한데에다가 언제나 당당하고 솔직하고 털털하고, 요즘 여자들과는 다른 우먼파워를 가지고 있는 여자인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쉽게 만나지 못하는 성격탓에 늘 소개팅을 일상처럼 달고 사는 여자다. 어제 소개팅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내게 털어 놓으며 울상을 짓던 효정씬 역시 남자는 모두 깡통이에요, 라고 쏘아내듯 말하더니 결국은 또 약속되어 있는 소개팅에 나가기 위해 옷을 챙긴다. 혀 끝을 찼지만 그런 그녀를 욕할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다.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기에, 타인이 개입될 이유가 없기 때문에.

 

 

 

 

 

 

 

 


+

 

 

 


"용케도 기사를 따 냈더군."

"당연한 걸 뭘 그래요, 어서 와서 밥 먹어요."

 

 

 


눈꼬리가 휘어질 정도로 힘껏 웃는 내 아내는 식탁으로 나를 인도했다. 떠 밀리듯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김치찌개가 아직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다.

 

 

 


"어때요? 오늘 입맛이 좀 이상해서 간이 맞으려나 모르겠네."

"괜찮아."

 

 

 


괜찮다는 나의 말에 다행이에요, 라며 다시 베실 웃으며 밥을 떠 먹는 아내의 얼굴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곤 도서창구에 앉아 대출해 주는 그를 떠 올렸다. 누가 더 매력이 있는지에 대한 비교가 가능하지 않을 만큼 두 사람은 묘하게 다른다. 아니, 아주 다른 걸까? 밥을 떠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내게 좀 팍팍 먹으라며 나를 재촉한다. 그 재촉에 나도 모르게 무의식 적으로 수저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진기씨."

"응?"

"나 말이에요."

"응"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이 허공에서 멈춰졌다. 눈도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내게 말하는 아내의 표정엔 미안함이라곤 전혀 없는 말끔한 표정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나는 순간 또 한번 도서창구의 그를 떠 올렸다.

 

 

 


"그렇지만 당신과는 헤어지고 싶지 않아."

"무슨 말이야?"

"그냥 그렇다구요."

 

 

 


그 말을 끝으로 무언 속에 식사가 끝났다. 내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몸을 소파로 옮겼을 때 그제서야 아내가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싱크대로 돌아섰다. 그녀의 뒷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허리가 언제 저렇게 잘록해졌지? 아직 아기를 갖지 않은 몸이라 아내의 몸은 훌륭했다. 저 몸을 안고, 쓰다듬고, 그녀의 긴 생머리를 어루만지고 귓 볼에 사랑을 속삭였던 어제의 나를 떠 올렸다.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던 행동 하나하나가, 갑자기 사치라고 느껴졌다. 사랑이라는 명목아래에 의무적으로 그녀를 사랑했던 내가, 혹시나 존재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내게 지쳐 그녀는 다른 사랑으로 나의 사랑을 조금씩 벗겨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이상하게도 오히려 내 쪽에서 더욱 자책을 하고 있다. 왜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정은아. 평소에 너, 나를 뭐라고 부르더라?"

"갑자기 그건 왜요?"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아내에게 내가 물었다. 나는 내 아내를 남에게 소개할 때엔 아내, 혹은 집 사람. 등으로 소개를 하고 아내를 직접 부를 때엔 이름을 부르곤 한다.

 

 

 


"진기씨. 라고 하죠."

 

 

 


그녀도 나의 이름을 부른다. 왠지 모르게 그게 좋았다. 여보나 당신 등의 호칭으로 서로를 포장하기 보단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고 사랑하고. 그런게 부부 사이에 있어서 최고의 효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멍청한 질문을 해 놓고 괜히 머쓱해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을 때 아내가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2년 동안 진기씨랑 살면서 늘 행복했어요. 그리고 행복해요. 또 앞으로도 쭈욱."

"그 말 참 이상하네. 행복했었으면 과거고, 행복하면 현재고. 행복할 것 같은 건 미래인데. 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함께 말하는 거야?"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들이 튀어나와 아내의 얼굴에 꽂아버리고 말았다. 조금 울상을 짓던 아내는 내 허리를 감싸 안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기분에 정신이 몽롱했다. 우린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올게. 먼저 자."

 

 

 


무겁지도 않은 그녀의 머리가 이상하게 버거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아내의 시선은 애써 외면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찬 공기가 뺨을 스쳤다. 휴우. 그제서야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목적지가 어디인 줄 잘 아는 사람처럼 발 걸음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의식과 무의식이 뒤 섞여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발이 묶인 사람처럼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술을 조금도 마시지 않았는데..또 한 번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걸어 온 곳은 익숙한 동네였다.

 

 

 


"어?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내 모습을 발견한 그는 동그랗게 변한 눈동자를 깜박이며 나를 보며 웃는다.

 

 

 


"표정이 왜 그래?"

 

 

 


10살이나 어린 주제에 녀석은 대담한 반말을 내게 구사한다. 그 것이 한 번도 거북했던 적은 없다. 오히려 귀여운 게 문제다. 터덜터덜 소파까지 걸어가 픽 주저앉았다. 차가운 곳에 있다 따뜻한 곳에 들어오니 몸이 노곤해지기 시작해 금방이라도 잠이 올 것만 같았다.

 

 

 


"졸려? 아내랑 싸웠지?! 그래서 온 거구나?!"

 

 

 


부엌에서 쥬스를 잔에 부으며 잔뜩 상기 된 얼굴로 내게 묻던 그는 고소하다는 표정을 용케도 짓고 있다. 그 모습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났다. 내 앞으로 쥬스 잔을 내밀며 또 다시 묻는다. 아내랑 싸웠냐고.

 

 

 


"종현아."

"응?"

"내가 여기에 올 때마다 너는 무슨 생각해?"

"내가 보고싶어서 왔을거라고."

"확신해?"

"응."

"그러면서도 넌 내게 아내와 싸워서 왔냐고 물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냥 웃는다. 코를 찡그리고.

 

 

 


"난 직설적으로 이야기 못하는 남자니까. 원래 남자는 다 그런거야."

"뭐? 남자? 아직 22살밖에 안된 꼬맹이 주제에."

"이진기."

"응?"

"자고 가라."

 

 

 

또 웃는다. 저 웃음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 걸까?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저렇게 웃었을거다 녀석은.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놓고 그의 웃음을 마음껏 감상했다. 부엌으로 걸어가던 종현은 찬장에서 와인을 꺼내 온다.

 

 

 


"그래 역시 연인들에겐 오렌지 쥬스는 좀 아니야 그치?"

 

 

 


긍정의 의미로 위 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또 웃는다. 으이구 그 웃음!

 

 

 


"자고 갈꺼지?"

 

 

 


다시 한 번 되 묻길래 묻는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바로 가까이에 그의 얼굴이 있는 기분이 좋아 코와 코를 맞대고 한참동안 멈춰있었다. 그러자 그의 손이 내 목을 감싸고 그의 입술이 깊숙이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약속도 하지 않은 서로의 몸짓이 약속이나 한 듯 딱딱 들어맞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서로를 받아드렸다. 녀석을 만난지 갓 6개월. 위험한 도발을 평탄하게 해 온 시간이 대단하리 만큼 우리의 연애는 비밀스러운 것. 누구에게도 노출 되지 않아 '우리' 라는 단어가 굉장히 허락될 수 있는 연애.


비스듬히 누워 계속해서 입을 맞추었다. 보일러가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바닥과 그의 체온이 엉켜 등 뒤로 땀이 찼다. 그러다 옆에 놓여있던 와인 잔이 쓰러지면서 바닥을 적셨다.

 

 

 

 

 

 

 


+

 

 

 

그의 손이 오늘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책 하나를 골라 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첫 장을 넘겼다. 간혹 우리의 눈과 눈이 마주친다. 그럴 때 마다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보며 웃었다. 마지막 장을 갓 넘기려고 하는 내 손 위로 그의 손이 포개어진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햄버거 먹자!"

 

 

 


젊음이 좋긴 좋지. 새삼스럽게 흘러간 청춘에 대한 한탄이 마음속에 줄을 이었다. 햄버거가 먹고 싶은 나이는 이미 지난지 오래인데, 그는 햄버거를 먹자며 내 손을 잡아 당긴다. 싫어하는 기색 없이 근처 햄버거 가게에 마주 앉았다. 나는 새우버거, 그는 치킨버거. 그나마 새우버거라면 거북하지 않게 맛있는 척까지 해 주며 먹어 줄 자신이 있었기에 택한 최선의 선택이였다. '척' 까지 하지 않아도 오랜만에 먹는 햄버거는 맛이 나쁘지 않았다. 한 입 베어 물고 빵빵한 볼을 가라앉히기 위해 열심히 턱을 움직였다. 그러다 딸랑이는 종소리에 가게 문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익숙한 모습에 갑자기 사례에 들려버리고 말았다. 괜찮냐며 콜라를 권하는 그도 뿌리치고 계속해서 기침을 해댔다. 그리고 익숙한 그녀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녀의 옆의 남자와도.

 


아내가 말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람, 임에 틀림이 없어 보이는 남자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멋진 수트차림이였다. 당황한 내가 아내의 눈을 피했다. 아내 또한 내 눈빛을 피하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주문대로 걸어갔다.

 

 

 


"왜 그래?"

"어?..아니야."

 

 

 


나보다 2살 어린 그녀는 아직도 햄버거가게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젊은 사람이였구나..괜히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이였다. 남은 햄버거를 무턱대고 입 속에 구겨 넣었다. 그러자 종현이 직접 내 입술에 빨대를 물려 콜라를 먹게한다. 빨대를 쭈욱 빨아당기면서 슬금 아내를 바라보았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거리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던 종현이가 내 왼 쪽 손을 꼬옥 잡는다.

 

 

 


"아까 햄버거가게에 들어 온 그 여자말인데."

"어?"

"왠 수트 차림인 남자랑 손 잡고 들어 온."

"어"

"참 이쁜 여자였어. 굉장히."

"그래?"

"그 여자 본 거 아니야? 아주 넋이 나가서 쳐다보던데."

"내..가?"

"응"

"아냐."

 

 

 

 

부정하는 건 좋은데 고개까지 굳이 저을 필요가 있었을까, 내 과한 행동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얼굴이 화끈거려 칼 같이 차가운 바람이 무디게 느껴진다.

 

 

 


"결혼은 하면 어때?"

".."

"이진기?"

"어..어?"

"결혼이라는 거 어떤 느낌인지 아주 모르겠어서."

"결혼?"

"두 사람이 평생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사는 것. 22년 동안 내게 사랑은 영원 불변이였던 적이 없는데, 당신은 어때?"

"음...영원하지 않지 사랑은."

"너무 확신하는 거 아니야?"

"그런가?"

 

 

 


약속한 듯 서로를 마주보며 웃어버렸다. 어느덧 해가 어둠에게 자리를 양보했고, 어둠이 깊게 자리잡은 하늘 아래를 나란히 걷고 있다 우린.

 

 

 


"헤어지기 싫다. 그치 이진기?"

"까분다 또."

"어흐 내가 11년만 딱 일찍 태어났어두."

"까불어 쓰읍"

"이런 아가씨 뭐가 좋다고."

"됐어, 그만 가."

"집 앞까지 데려다 줄게."

"됐다니까."

"화났어?"

"아니"

"그럼 가자 집 앞까지. 집 쳐 들어가는 일 없으니까 걱정은 붙들어 메셔."

 

 

 


장난스러운 말투에 조금 꽁 했던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못 이기는 척 종현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익숙한 동네가 등장하고 어느덧 나와 내 아내의 보금자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점 걷는 보폭이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 아쉬움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종현이는. 그가 나보다 정말 1년만 먼저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던 일이다. 대문 앞에 발을 멈춰선 채 서로 마주보았다. 눈빛에도 아쉬움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다. 종현이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가볍게 흐트러 놓았다. 헤어지기 싫다고 장난스럽게 우는 상을 짓는 녀석을 올려다 보며 피식거렸다. 꼭 실성한 사람마냥.

 

 

 


"진기씨?"

 

 

 


웃고 있던 입술이 한 순간에 굳어버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2년간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아 온 아내의 목소리. 종현의 얼굴엔 의아함이 가득차 있었다.

 

 

 


"늦었네"

"누구에요 진기씨?"

"안녕하세요. 김종현이라고해요."

"아..안녕하세요. 아는 동생이야?"

"아뇨,"

"응, 아는 동생이야."

 

 

 


종현의 말을 막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끔찍하다. 분명 제가 이진기의 연하 애인이에요, 라고 싱글벙글 이야기 했을 게 뻔했다. 맙소사.

 

 

 


"종현아, 늦었다. 돌아가. 연락할게."

 

 

 


우물쭈물 입술을 삐죽거리던 종현은 가볍게 내 아내에게 목례를 하고 뒤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그의 등을 계속 바라보며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아내 몰래.

 

 

 


"그 사람 이름이 뭐야?"

 

 

 


침묵이 가라앉은 거실의 공기를 바꾸기 위해 내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시선은 텔레비전에 고정시킨 채로. 아내가 코트를 벗으며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옷이라도 벗고 보라고 잔소리를 할 기세였지만 포기한 듯 했다.

 

 

 


"김수인이요."

"아..같은 김씨로군."

 

 

 


나도 모르게 아저씨 같은 말투가 튀어나왔다. 젠장.

 

 

 


"오늘이 마지막이였어요. 그 사람이랑 헤어졌거든요."

"왜?"

"원래 사랑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니까요."

 

 

 


종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은 영원불변의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변하는 거라고. 어쩌며 아내와 나 사이의 사랑은 이미 변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죄책감을 묻지 않는 건 나 또한 아내가 모르게 사랑은 누군가와 속삭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든 것이 내 잘못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이상해졌다. 그리고 종현에게 미안해졌다. 감히 내가 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건가 싶어서.

 

 

 


"정은아. 너와 내 사랑도 변하겠지?"

"물론."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똑부러진 아내의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미 그랬을지도 몰라요. 진기씨, 하지만 우린 결혼했잖아. 난 진기씨 사랑해요. 단지 그 것이 처음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우린 서로를 얼마든지 사랑해 줄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해요."

 

 

 


또 다시 확신하는 아내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

 

 

 

 

"미안해 거짓말해서. 너 속여서."

 

 

 


퇴근하는 종현일 붙잡고 공원에 앉혀놓고 고해성사 아닌 고해성사를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바람에 시려운 손과 손을 꼬옥 움켜쥐고. 미동없이 앉아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종현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여자가 당신 아내인거? 아님, 당신아내가 다른 남자가 있어서 싸웠다는 거?"

"...."

"뭐가 문제야. 우린 사랑하잖아."

"종현아."

"사랑해 나는 이진기를. 근데 자신이 없어."

"..."

"단 한 번도 내가 이진기를 가져야겠다는 확신 같은 건 없었지만, 행복했고, 사랑했어. 그리고 또 사랑할지는 앞으로는 확신하지 못해. 난 너무 불같은 사람인가봐. 그치? 아직 나이도 어리고."

 

 

 


나이가 어리다는 걸 순순히 인정하는 종현이의 모습은 낯설어보였다. 왠지 모르게 내가 굉장한 어른이 되어있는 것만 같은 느낌. 먼저 한 발 물러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종현이 때문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니, 이건 가슴이 아프다고 표현해야 하는 걸까. 도무지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감정들이 복잡하게 내 머릿속을 조여왔다.

 

 

 


"우린 헤어지겠지?"

"..."

 

 

 


대꾸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우주의 진리를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듯 다가오는 이별의 기운을 감히 거부해 낼 힘이 내겐 없었다. 그저 받아드림. 여기서 사랑은 또 한 번 내게 나약함을 선물한다.

 


종현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손을 건냈다.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걸었다. 공원 입구가 나 올 때 까지 서로 아무런 말 없이 길을 걸었다. 6개월 간 지겹도록 함께 걸었던 곳은 이제 추억이 될테지. 그렇게 생각하자 또 웃음이 나온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의 헤어짐의 마지막은 울음이 아닌 웃음이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잘 가."

"응."

"이진기."

"응."

"22살의 김종현을 기억해줘. 10년이 지나 당신 나이가 될 때까지 나도 32살의 이진기를 기억할테니까."

"응"

"고마워."

 

 

 

 


그렇게 서로의 등을 보지 않은 채 반대편으로 돌아서 걸었다. 6개월의 시간이 수채화처럼 머릿속에 가득하게 그려졌다. 어느 훌륭한 화가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이였다. 나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가 32살이 되는 10년 후에도.

 

 

 

 

 

 

 

 

 

 

 

 

 

 
에이미야마다 소설을 읽고 써본....

글잡은 오랜만이네요

 

인스티즈에서 쓰는 닉네임을 필명으로 쓸수가 없어서 어쩔수없이 필명은 한글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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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겁나 내용 진짜 좋아요ㅠㅠㅠㅠㅠㅠ
12년 전
하비
감사합니다ㅠㅠ
12년 전
독자2
우와~ 좋다ㅠㅠㅠㅠㅠㅠㅠ 내용대박ㅠㅠㅠㅠㅠ
12년 전
하비
감사합니다ㅠㅠ 글 쓴지 얼마 안되서 뒷페이지로 슉슉 넘어가버리길래 걱정했는데 ㅎㅎ
12년 전
독자3
뒷페이지로 넘기다가 으아니 현유라니!! 하며 들어왔졍ㅋㅋㅋㅋ 내용 겁나 좋아여 !!!!!!!
12년 전
하비
으앜ㅋㅋㅋㅋㅋ 닉네임도 한글이라서 글 써놓고도 텄구나... 싶었는데 다행이에요 ㅋㅋㅋ
12년 전
독자4
작가님 글은 처음 읽는데 장난아니에요ㅠㅠ흡입력이 쩌네여... 신작알림신청 하구 갈게요
11년 전
하비
어이쿠 감사합니다ㅠㅠ 글잡에는 잘 안올리는데 제대로 해야겟네요! ㅎㅎㅎ
11년 전
독자5
신알신 하고가여...딴말 필요없고 스릉흡느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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