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l조회 2053l 8

[인피니트/현성] 하얀 거짓말 12 | 인스티즈

아파서 실신한 우현어빠라도 멋있을 것 같아♡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쓰러지는 것은 거절한다.

 

 

 

 

 

 

 

 

 

 

 

 

(이제 주저리 쓰는 것도 한계;;;;;;;;;;;;;;;;;;;;;이 고자같은 뇌자식의 한계인가 봅니다)

 

 

 

 

 

 

 

 

 

 

 

BGM : 이진욱 -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하얀 거짓말

W. Irara

 

 

 

 

 

 

 

 

 

 

 

* * *

 

 

 

 

 

“…나더러 어쩌라고.”

 

 

 

 

 

 

눈을 감고 있는 우현을 보며 명수는 착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어두운 병실 안에는 명수와 우현만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숨이 막히는 순간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우현이 조금 원망스러운 명수였다. 남우현, 당신은 어쩌자고 이지경이 되도록 몸을 혹사시킨 거야. 조용히 내뱉어지는 명수의 목소리가 병실에 조용히 울렸다. 두 사람이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힘들어하는 본인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인간으로써의 도리는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로 인해 엉킨 실타래는 제 손으로 풀어주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한 달음에 우현에게 달려왔지만 저를 맞이하는 우현의 지금 모습은 그다지 반갑지 못했다. 창백한 안색과 핏기 없는 입술이 과연 그가 살아있기는 한 건지조차 의심이 들게 만들었다. 이봐, 남우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우현은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방안을 찾아주겠다고, 그렇게 약속을 했다. 결국에는 해 버렸다. 씻는 사이 울었던 건지, 불그스름한 눈을 비비며 나오던 너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호텔방을 나오며 확신을 내려줘 버렸다. 과연 내가 잘 한 짓이었을지, 집에 돌아와 한참 동안을 고뇌했다. 내 옆으로 다가온 성열이는 나를 가만히 끌어안았었다. ‘뭐가 그렇게 힘이 들어?’ 나를 다독이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는 성열이의 행동에 왜 나는 너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걸까. 나는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너와 그의 사랑을 틀어 버린 내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성열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거친 파도 같았던 마음에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

 

그 누구에게 털어 놓지도 못할 고민이었다. 끝이 없는 한숨만 내쉬다가 결국엔 남우현을 찾았다. 그게 최선의 선택이자 최후의 방법인 것 같아서. 내가 직접적으로 나서서 나와 너의 사이를 부정해야만 그가 우리 사이의 이미 끝나버린 관계를 인정 할 것 같았으니까. 망설임 끝에 찾아온 그는 내가 결코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악하고 지독해져버린. 그런 그를 상상했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반칙 아니던가. 이런 식으로 사람 마음을 짓눌러 버리면, 어떡하라고.

 

 

 

 

 

 

“내 말이 들려?”

“……….”

“이건 반칙 아닌가.”

“……….”

“좀 너무하네, 남우현.”

 

 

 

 

 

 

대답을 할 수 없는 상대를 두고 나 혼자 말을 떠들어 대는 건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짓 일수도 있었다. 그에게 제대로 된 정신이 붙어 있다는 보장을 할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가 내 말을 듣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으니까. 조심조심 손을 뻗어 헐렁한 환의를 몇 번 잡아 당겼다. 여전히 미동도 없는 그를 앞에 두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에게 늘어놓을 여러 이야기들이 목에 걸려 내뱉어 지지 않았다. ‘김성규와 나는 당신이 오해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준비했던 말들이 혀끝에서 맴돌았다. 내 목소리가 들리면 손가락이라도 움직여 보지 그래?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하고 괜스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그가 반응하도록 자극했다.

 

명수는 고개를 들어 링거를 올려다보았다. 천천히 떨어지는 방울이 짐짓 열 번 정도 떨어 졌을 때에,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잖아, 남우현.’ 덤덤하게.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로, 누워있는 우현을 불렀다.

 

 

 

 

 

 

“내가 김성규랑 약속을 했어.”

“……….”

“이 약속은 전적으로 당신과 김성규에게만 좋은 약속이야.”

“……….”

“물론 나도 약속을 지키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당신들이 더 좋을 거야.”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내뱉은 명수는 숨을 크게 쉬었다. 너무 평온한 얼굴의 우현을 보면서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인 명수는 답답하게 목을 조르고 있는 넥타이를 잡아 당겼다. 조금 느슨해진 넥타이를 이리저리 돌린 그는 눈을 감은 우현을 내려다보았다.

 

남우현 네 모습이 내가 상상했던 모습이면 더 좋았을 텐데. 잘하는 큰소리를 쳐서라도, 그렇게 강압적으로라도 너한테 부탁 같은 부탁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김성규, 다시 만나보라고. 그렇게 모질게만 굴지 말라고. 윽박이라도 질러 보았을 텐데. 힘없이 누워있는 당신의 모습이 영 어색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를 않았다. 당신이 이렇게 누워 있는 모습을 김성규가 알게 된다면 아마 놀라서 펄쩍 뛰겠지. 그전에 눈물부터 흘릴까.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휩쓸리는 내 이성을 붙잡지 못했다. 침대에 팔꿈치를 올리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 괴롭다, 남우현.’ 못쓰게 갈라진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되기를 원한 게 아니었어. 아니 사실, 원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냥 김성규를 곁에 두고 싶은 욕심, 그게 다였어. 애초에 녀석에게 접근 했던 이유가 그거였으니까. 내 명예와 명성. 녀석으로 인해 더 높은 곳에 서고 싶었던 욕심, 그게 다였어.”

“……….”

“단지 방법이 틀렸을 뿐이지만.”

“……….”

“녀석의 사랑을 이용한 건 정말 큰 죄야. 그건 내 죄고, 녀석은 나에게 잘 못 걸린 죄 밖에 없어.”

“……….”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네가 녀석을 미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야. 녀석이 나를 사랑했던 거. 집착 같은 사랑으로 나를 사랑했던 거. 그건 다 내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였으니까. 그 울타리가 허물어진 지금, 김성규는 남우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

“나를 사랑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봐라, 남우현.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들어 올린 명수는 우현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연거푸 한숨을 내쉰 명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깨어나면 단축 번호 1번으로 전화 해.」 메시지를 적어 놓고 잠금 버튼을 눌렀다. 그대로 침대 옆 서랍 위로 올려놓은 명수는 넥타이를 바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성규 네가 어디에서 어떻게 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뒤에 있는 팬 사인회 일정으로 인해 만날 일이 있으니 그전에 어떻게든 방안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느 때 보다 진심을 담아 남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바랐다. 죽은 듯 누워있는 그의 얼굴위로 자꾸 너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욱 미안함이 커지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결코 너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빨리 자리 털고 일어나라.”

“……….”

“…연락 기다릴게.”

 

 

 

 

 

 

의자를 정리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 발밑에서 들리는 구두 굽 소리에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지금이라도 남우현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 때문이었다. 넓은 1인 병실은 내가 몇 걸은 걷지 않았는데 벌써 끝이 나 있었다. 내 앞에 바로 보이는 문을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 차가운 금속의 기운이 정신을 들게 할 때, 어렴풋이 들렸던 숨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변함없이 눈을 감은 남우현을 보고 기대했던 것을 포기 한 채 문을 열었다. 그 순간만큼은 김성규와 같은 마음으로 절실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던 명수는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적막과 어둠이 함께 흘러내리는 병실 안에는 우현 홀로 남아있었다. 병실 문을 닫으며 흘끔 병실 안을 바라본 명수는 여전히 누워있는 우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일종의 체념이었다. 탁―하고 닫히는 병실 문. 조금의 빛조차도 스며들지 않을 때에…

 

 

 

 

 

 

“……….”

 

 

 

 

 

 

우현의 눈가로 잠깐 흘러내렸던 눈물은 어둠에 묻혀 빛나지 못했다.

 

 

 

 

 

 

 

 

 

 

 

 

 

 

 

 

* * *

 

 

 

 

 

연락이 없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불안해해야 하나. 아직 오지 않은 형의 전화에 집안을 이리저리 맴돌았다. 부산에서 올라와 서울에 도착하니 역시 내가 가야 할 곳은 우리의 집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러보았지만 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크게 자랐던 기대가 반으로 접히고 나 스스로 도어락 잠금을 풀고 집안에 들어왔을 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집의 모습에 왜 감동을 받았던 걸까.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몇 시간을 목 놓아 울었던 것 같다.

 

집에 들어와 너 없이 지낸 지도 벌써 삼일이 지나가 있었다. 조금 정신을 다잡고 나서는 동우 형에게 연락을 넣어 서울로 돌아왔음을 알렸다. 너저분했던 생각은 잘 정리했냐는 동우 형의 말에 웃는 얼굴로 ‘네’하고 대답했지만 결과가 어떻냐는 물음에는 그저 웃음으로 대답을 했을 뿐이었다. 아직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주말에 있는 팬 사인회 일정을 다시 한 번 상기 시켜준 동우 형은 밥 잘 챙겨먹으라는 걱정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이불 속에 파묻혀 너에게 안겨있는 듯 한 환상을 느꼈다. 너의 향기에 갇혀 너와 함께 있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곳이, 정말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침대에서 내려와 집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변한 건 없는지. 네 위로 내가 머물렀던 흔적, 향기. 혹시 그것마저 네가 다 지워버리지는 않았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몇 걸음 걸어 거실을 둘러보고 눈에 띄게 변한 것 없는 모습에 걸음을 떼었다. 늘 활동하던 공간인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낯설고 몰라보게 넓은 느낌이었다. 사막 같은 공간을 걸었다. 그러다 부엌 옆에 딸린 오래도록 쓰지 않은 방 문 앞에서 가만히 멈춰 섰다. 왜인지 열어보고 싶은 기분.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아 돌리고, 힘주어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우현아! 이거 봐!’

‘예쁘네.’

‘나 이거 살래. 방에 놓고 싶어.’

‘그래, 그러자. 피아노 위에 두면 예쁘겠다.’

 

 

 

 

 

 

방 한구석에 박힌 검은 피아노, 그 위에 얹어진 큰 스노우 볼. 이건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 샀던 물건이었다. 태엽을 감으면 끊임없이 반복되던 오르골 소리와 볼 안을 자유롭게 유영하던 작은 눈송이들. 그저 내가 갖고 싶어서 샀던 물건인데, 네가 이사를 하면서도 버리지 않고 챙겨 왔다는 사실에 왈칵 눈물부터 차올랐다. 고개를 돌려 방을 쭉 둘러보았다. 스노우 볼 외에도 우리의 추억이 묻어있는 물건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우리가 함께 모으던 만화책부터 시작해서 함께 찍은 사진을 넣어 두었던 액자까지. 먼지가 내려앉은 액자를 들어 올려 천천히 유리 위의 티끌을 닦아 내었다. 그러자 온전히 드러나는 너와 나의 앳된 얼굴.

 

 

 

 

 

 

“이게 벌써, 오년 전인가.”

 

 

 

 

 

 

너무 어리고 서로가 소중했던 그때에 우리 둘의 모습이 참 봄 같아서, 흐르는 눈물 속에서 나는 살포시 웃었다. 함께 야구를 보러 가기위해 맞춰 입은 유니폼도, 펜스를 넘어 우리 쪽으로 날아오는 야구공을 나에게 주겠다며 네가 필사적으로 몸을 던져 잡아낸 사인볼도. 모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네가 이곳에서 나를 그리워하며 우리의 추억을 매만지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것이 정리가 되어 있었다. 손을 뻗어 눈앞에 보이는 꽃다발을 집어 들었다. 이미 말라 비틀어져버린 꽃잎이었지만, 모양은 예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게, 그거구나.”

 

 

‘데뷔 축하해, 우현아. 넌 역시 될 줄 알았어.’

 

 

 

 

 

 

너의 성공적인 데뷔 후에 내가 너에게 건넸던 꽃다발. 너는 그걸 버리지도 않고 잘 말려서 이렇게 간직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네 생각하면서 노래 불러.’ 언젠가 말했던 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너는 정말 그럴 것 같았으니까. 그 말이 절대 빈말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괜히 감동이 밀려와 꽃다발을 가슴에 품고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추억을 절대 버리지 않는 네 앞에서 한없이 작아 보이는 내 초라한 사랑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피아노의 맞은편에 놓여있는 책상. 낡은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튼튼해 보이는 책상이었다. 의자를 꺼내어 그 위로 앉았다. 조금 삐걱거리기는 했지만 흔들거리지는 않았다. 너와 나의 사진이 걸린 액자가 책상 위쪽에 놓여있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가. 너는 이렇게 나를 그리워했나? 미루어 짐작으로 네가 취했을 법한 포즈를 취해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의 배경은 하나같이 모두 다른 곳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곳을 함께 여행했구나. 많은 시간, 많은 추억을 함께 공유했구나, 하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액자를 내려놓고 책상 서랍을 열었다. 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쪽지들.

 

 

 

 

 

 

「오늘은 아침 굶지 마! 먼저 나갈게.」

「너무 곤히 자서 안 깨우고 나가. 무대 봤어. 멋지더라!」

「힘들어 보인다. 어디 아프거나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하기! 알지?」

 

 

 

 

 

 

너의 데뷔 이후, 자주 마주칠 일이 없어진 우리가 주고받았던 쪽지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당연 네가 썼던 쪽지들 보다는 내가 너에게 남겨놓은 쪽지가 대부분이었다. 오래되어 색이 바래버린 종이들도 있었다. 어떻게 이런 걸 다 모았을까 싶은 마음에 하나 둘씩 쪽지 내용을 읽어보았다. 하나같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챙기고, 걱정하는 내용들이었다. 전후 상황을 알지 못하고 쪽지의 내용만 읽어도 충분히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사소한 것들까지 너는 보물 취급을 해가면서 나를 사랑해주었구나. 그동안 너에게 모질게 굴었던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해도 네 사랑은 감히 넘볼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아무리 깎아내려보려 흠을 찾아봐도 네사랑은 조금의 흠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네 가슴에 남겼던 상처와 희망고문조차 너는 사랑으로 보듬어 안고 있었다. 나 모르게 너 혼자 아픈 가슴을 끌어안고 있었을 것을 떠올리니 미안한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전부터 나를 가슴에 담았던 너에게 이렇게 또 한 번 고마움을 느꼈다. 너의 사랑은 살짝만 보아도 참 단단하고 굵었다.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 사랑을 그렇게 모질게 베어내려 하다니, 나에게 얼마나 실망하고 마음을 거두어 냈으면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까. 갑자기 단호하던 네 모습이 떠올라 입안이 씁쓸해졌다.

 

어떤 식으로든 너를 다시 붙잡을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너무 뒤늦게 깨달아 버린 마음이지만 틀림없는 사랑이고 또 너 하나밖에 남지 않은 마음이라서. 네가 그래도 조금은 좋게 봐주지는 않을까 미련한 희망이 남아서였다. 한쪽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이미 멈춰버린 지 오래되어 보이는 시계는 의미 없이 매달려 있기만 했다. 혹시 너에게 내가 그것 같은 존재는 아닐까. 의미 없이 매달려만 있는 시간의 조각 같은 것.

 

 

 

 

 

 

“후우….”

 

 

 

 

 

 

착잡해진 마음에 점점 메말라갔다. 혼자 남아있다는 기분은 오만가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행여 너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나. 너무 뜬금없이 나를 내치려 했던 너라서 배제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내가 너에게 남긴 상처를 모두 끌어 안아줄 사람이 나타난 건가. 불안한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삐삐삐―

 

갑작스럽게 거실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에 놀라 방에서 뛰쳐나왔다. 혹시 너인가? 온통 네 생각뿐이었다. 한달음에 뛰어 나와 현관 앞에 섰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

“…누구….”

“…그쪽이 김성규씨구나.”

 

 

 

 

 

 

보자마자 내 이름을 말하는 낯선 이의 등장에 경계를 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곧 자기를 소개해오는 상대방을 보며 조금은 경계를 늦추었다. 그는 자신을 ‘이호원’이라고 소개하고 ‘남우현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덧붙였다. 내가 달고 있던 가장 친한 친구라는 타이틀을 그에게 넘겨주었다는 생각에 약간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나에게 손을 내밀기에 마주잡고 살짝 흔들었다. 저는 김성규에요― 내 소개를 하기가 무섭게 그는 말했다. 우현이한테 많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아하니 친한 친구라고 했던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어쩐 일이냐는 내 물음에 도리어 황당하다는 표정을 한 그는 나에게 되물었다. 그런 성규씨는 여기에 어쩐 일이세요? 내가 이곳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그의 물음에 말문이 막혀 버렸던 걸까. ‘떠나셨다고 들었는데요.’ 전보다 조금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현이가 제 얘기, 많이 했었나요?”

“만나면 만날 때 마다 했죠.”

“어떻던가요?”

“…네?”

“우현이 입에서 나오는 제 이야기가.”

“……….”

 

 

 

 

 

 

말을 아끼는 그의 행동은 무엇을 뜻했을까.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단단한 그 시선에 힘없이 눈을 맞추었다. 안 좋던가요? 딱히 답을 원하고 던진 물음은 아니었다. 어떤 대답을 듣던지 간에, 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고서는 믿고 싶지 않았으니까. 침체된 내 눈동자를 읽었던 걸까. 그는 현관에서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눈동자를 굴렸다. 답을 피하는 듯싶더니 멈춰 서서는 대답했다.

 

 

 

 

 

 

“많이 아파하고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

“성규씨를 만나기 전에도, 또 만나면서도. 늘 조마조마해 하더군요.”

“우현이가… 불안해했어요?”

“그야 당연하죠. 우현이가 성규씨를 볼 때면 늘 성규씨는 김명수라는 사람과 함께 있었으니까.”

“……….”

“우현이에게 성규씨와 김명수씨는 어쩌면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걸로 자리 잡혔을 지도 모릅니다. 밤에 잠도 잘 못잘 때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드레스 룸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참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정신을 찾아야 했다. 어쩌면 내가 상상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너에게 짐 같은 존재는 아닌지 문득 걱정이 들었다. 결코 곁에 두어 행복할 수 없는 존재라면. 내가 있는 것만으로 힘겨워하고 편해질 수가 없는 거면. 혹시 내가 생각을 잘못 하고 있지는 않은 걸까, 손을 들어 입에 넣고 잘근잘근 손톱을 깨물었다. 드레스 룸에서 한참 무언가를 뒤적거리던 그는 쇼핑백에 너의 옷을 담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의 행동은 꼭 너의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혹시 우현이 어디 있는 줄 아시나요? 다급하게 그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내 표정이 꽤나 급한 얼굴일거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내 얼굴을 그는 아무 표정 없이 마주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아직은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현이가 준비가 안 되었거든요. 때가되면, 우현이가 먼저 연락을 할 겁니다. 녀석은 붙였던 정을 쉽게 떼어버릴 만큼, 모진 사람이 아니라는 거. 성규씨가 더 잘 아시잖아요.”

“……….”

“가보겠습니다.”

 

 

 

 

 

 

신을 신고 문고리를 잡는 그를 다시 붙잡았다. 잠깐만요! 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그에게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뛰어가 한 쪽에 놓여있는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급하게 휘갈겨 쓴 글씨가 영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언제 떠나버릴지 모르는 그라서 서둘러 쪽지를 전했다. 반으로 접힌 메모지를 받아든 그는 멀뚱히 나를 바라보았다. 우현이한테 좀 전해주세요. 꼭 이요. 내가 전한 쪽지를 받아든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큰 소리를 내며 닫힌 문. 그 앞에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있었다.

 

 

 

 

 

 

“…제발.”

 

 

 

 

 

 

…나에게 기회를 한번만 더 줘.

 

 

 

 

 

 

 

 

 

 

 

 

 

 

* * *

 

 

 

 

 

우현은 손에 들려있는 작은 쪽지를 내려다보았다. 「보고 싶어.」 노란 메모지에 급하게 날려 쓴 글씨와 자신이 누구라고 딱히 표시해두지 않은 쪽지였지만, 이 쪽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너무 낯이 익은 메모지와 시기적절한 타이밍. ‘너 주라더라―’하는 호원의 말에 ‘누가?’ 하고 되물었지만 그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현은 쪽지를 내려다보다 주먹을 꾹 쥐었다. 바스락하는 소리와 함께 손 안에서 구겨진 쪽지를 주머니로 넣었다. 뭔가 하나, 마음을 접은 것 같은 표정의 우현은 눈앞의 높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명수의 핸드폰이 진동을 내며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어 확인하니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7층으로 올라와.」

 

 

 

 

 

 

김명수에게서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자칫하면 이 건물 안에서 너를 마주칠 수도 있었다. 핼쑥해진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은데. 괜히 턱 부근을 쓰다듬었다. 너를 마주치게 되면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가 걱정이었다.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무관심한 얼굴로 지나쳐야 하는 건가. 단 한 번도 너를 무관심으로 대해 본 적이 없어서 영 어색할 텐데,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너의 귀로 내가 쓰러졌었다는 말을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요구에 회사 쪽에서도 몇몇 기사들을 막아 놓은 상태였다. 네가 없어 무너지고 힘겨워 하는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너무 이기적인 욕심이었지만 그만큼이나 나를 다잡아 놓은 상태이긴 했다. 네가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 사랑의 결말이었기에, 그렇게 해 주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이렇게 김명수의 부름에 달려온 것이기도 하고.

 

우현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코끝에서 전해지는 낯선 공기에 표정을 굳힌 우현은 로비를 저벅거리며 지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명수가 말해주었던 층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며 쓰고 왔던 모자를 더 깊게 눌러 쓴 우현은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이렇게 수척해진 얼굴로 명수를 만나기가 죽기보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마음이 급한 만큼 이번 한 번만은 제 모든 것을 굽히기로 했다. 성규를 잘 부탁한다는 저의 말에 행여 명수가 거절이라도 하면 무릎이라도 꿇을 생각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도착을 알리는 맑은 소리를 들은 우현은 심호흡을 크게 했다. 이렇게 결국에는 성규를 보내는 거구나― 싶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복도 끝 쪽에 서있던 검은 그림자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남우현, 이쪽이야. 곧이어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그가 김명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서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내가 옆에 서자 김명수는 우리의 앞에 있던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눈앞에 나타난 넓은 연습실. 내가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것과 엇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조금 더 가로가 긴 연습실이었다. 연습실 중앙에는 런웨이를 흉내 내어 놓은 것 같은 단상이 있었다. 내 앞으로 먼저 걸어가 가볍게 단상을 밟고 오르는 그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기가 어디야? 날이 선 내 물음에 그는 몸을 돌려 나와 마주보고 섰다.

 

 

 

 

 

 

“여기는 성규랑 내가 연습하는 곳.”

“……….”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곳.”

“…왜 하필 여기에서 하는데? 다른 곳도 많잖아.”

“안으로 들어가지.”

 

 

 

 

 

 

내 물음은 무시한 채 앞장서서 연습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 하는 수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했던 것처럼 단상을 밟고 올라 연습실을 가로질렀다. 무대와는 사뭇 다른 느낌에 네가 어떤 기분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지 조금은 감이 왔다. 그가 안내하는 대로 발을 놓았더니 작은 방이 나타났다. 소파 두 개와 테이블 하나. 소박하게 잠시 잠깐, 연습을 쉴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둔 방 같았다.

 

방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소파에 내려앉는 그를 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뭐해? 앉아. 반대편 소파를 가리키는 그의 손짓에 말없이 걸어가 소파로 앉았다.

 

 

 

 

 

 

“왜 불렀어.”

“몸은 좀 어때? 병원 찾아 갔었는데.”

“김명수씨가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긴 하지.”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건강을 묻는 그의 능글맞은 말투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병원에 왔었다면 내 상태가 어떤지 잘 알겠네. 할 말이 뭔데? 빨리 하고 끝내지. 테이블 위로 그의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직까지도 그는 굉장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내 앞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늑장을 부리기에 화난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잠깐 급한 연락이었다며 손을 들어 미안하다 말하는 그의 말에 알아도 속아주는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내가 김성규랑 엄청나게 큰 약속을 했어.”

“……….”

“무슨 약속인지 궁금하지 않아?”

“…별로.”

“아니면 그때 병원에서 듣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고.”

“……….”

 

 

 

 

 

 

그의 살짝 떠보는 말에 흠칫 놀란 내 얼굴을 그에게 들키고야 말았다. 들은 것 같네. 다시 긴말은 안 해도 되겠군, 그럼. 묘하게 변하는 내 표정을 읽은 건지 웃는 얼굴로 그는 기지개를 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나에게 어떤 말을 하려하는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입을 열어볼까― 그런 생각도 했다. 조금 참고 기다려 그의 말을 먼저 들어야 하는지, 내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하는지의 기로에 놓였다. 조용히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조금 틈을 보이는 찰나에 입을 떼었다. 성규를 부탁해. 조용하던 사이에 갑작스럽게 내뱉은 말이라 그런지, 그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그런 부탁은 들어주고 싶지 않은데. 예상했던 반응대로 퉁명스러운 반응이었다. 다짐했던 것처럼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싶었다. 제발 네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도 너를 사랑해주길. 그거 하나 바라고 너를 보내는 거니까.

 

조용히 명수의 눈을 응시하는 우현의 모습에 명수는 코웃음을 쳤다. 왜 네 애인을 나한테 부탁해? 건방진 명수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릴 법도 했지만, 우현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정중하게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만큼,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런 우현을 명수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피하고 싶을 뿐. 뭔가를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듯 보이는 우현의 행동에 명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지금 뭔가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어.”

“그런 거, 안 해.”

“아니, 지금 하고 있어.”

“……….”

“내가 너를 부른 이유가 그거야.”

 

 

 

 

 

 

너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그도 나에게 말했다.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맞추었다. 오해 같은 거, 안한다니까. 낮은 내 목소리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지금 오해를 안 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해란 말이지. 소파에 기대어 놓았던 몸을 일으켜 상체를 조금 숙인 그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부담스러운 그의 행동에 고개를 살짝 뒤로 뺐다. 그러자 그는 무대 위에서 지을 법한 근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그런 행동들이 너를 묶어두는 건가. 이 와중에도 떠오르는 네 얼굴에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떴다.

 

우현의 처진 눈동자를 보며 명수는 잔뜩 비꼬았던 표정을 풀었다. 유하게 풀리는 명수의 얼굴에 살짝 놀란 우현이었다. 그에게 이런 순한 얼굴이 있을 줄은 몰랐다는 것처럼, 신기한 물건마냥 명수를 바라보았다. 피곤한 듯, 눈을 비비는 그의 손을 보다 우현은 입을 떼었다. 당신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낮게 떨어지는 목소리에 명수는 입술을 길게 내밀었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네가 또 오해라고 안할지, 그게 고민이네.

 

‘아무 말로나 시작해봐.’ 색안경 없이 들어주겠다는 내 말에 그는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입을 오물거리며 해야 할 말들과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걸러내고 긴 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우선은 미안해― 처음 내뱉는 말 치고는 꽤 의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시 되묻는 내 음성에 그는 ‘미안하다고―’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사과해도 용서가 안 될 거고, 아무리 변명해도 믿지 않겠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해야지. 미안해. 나 때문에 너랑 성규사이 틀어진 거, 부정은 못한다.”

“갑자기 왜 이래.”

“네가 김성규 다시 보면 좋겠어.”

“…무슨 소리야.”

“너랑 성규 나 때문에 끝나는 꼴 보기 싫다고.”

 

 

 

 

 

 

그쪽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은데. 도를 넘어서는 그의 참견이었다. 그와 너의 사랑에 내가 끼어든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을 느끼는 지금에 그의 청원 같은 건 듣고 싶지도 않았다. 매서워진 내 눈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어떤 이유에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왠지 겁이 났기 때문에.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랫입술을 꾹 깨물기만 했다. 그는 내 앞에서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색안경 없이 들어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힘이 없는 그의 목소리에 어깨에 주었던 힘을 뺐다. 조금 풀어진 내 분위기에 그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 자연스럽게 들어 올려진 내 고개. 형광등 불빛을 받아 잘 보이지 않는 그의 표정에 눈을 깜박였다. 그는 나와 내 등 뒤의 문을 번갈아 살폈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오해가 어떤 오해인 줄 알고 있어. 그게 나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그래서 김성규를 나한테 떠미는 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어. 네 마음이 틀렸다고는 말 못해. 네 마음이 어떤지 내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굉장히 좋지 않다는 것쯤은 눈치로 알 수 있으니까. 네가 김성규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있는 지도 알고, 나를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증오하고 미워한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오해는 오해야. 김성규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김성규는, 널 사랑해.

 

단호한 그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장담해? 억눌린 내 목소리에 그는 시간을 조금 끌었다. 주머니에 넣은 손이 움직이자 그의 바지주머니 안에서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테이블 위로 던져진 두 개의 반지.

 

 

 

 

 

 

“…이거.”

“이때부터 김성규는 이미 나에게서 떠났어.”

“……….”

 

 

 

 

 

 

네가 그에게 받았다고 자랑하던 반지였다.

 

없어졌다 했더니 돌려줬었던 건가. 처량하게 던져진 반지를 보고 있는데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버린 머릿속에 울던 너의 얼굴만 떠올랐다. 나에게 상처만 준다던 너의 슬픈 목소리가 귓가에서 자꾸 들리는 것 같았다. 가슴에 끌어안았던 너의 몸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그게 괴로웠다. 어떻게 해도 너를 잊기란 불가능 하니까. 마음을 다잡아도 자꾸 나를 흔드는 너의 잔상들과 기억들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가슴을 두드려야 했다. 내 앞의 그 또한 나를 흔들어 놓고 있었다. ‘김성규는, 널 사랑해.’ 그가 말했던 단단한 말이 내 가슴에 와 박혔다. 나를 붙잡으며 울던 너, 내게 안겨 울던 너. 악착같이 나에게 거지같던 상황을 설명 하려 했던 너. 모든 것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해, 정말 내 마음이 오해일까.

 

 

 

 

 

 

“설명이 더 필요해?”

“……….”

“그 날. 아니 그 전날, 정말 심오하게 생각했어. 내가 왜 김성규를 자꾸 곁에 두려하는 지. 왜 자꾸 욕심내는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왜 손안에 두고 싶어 했는지를. 고민하고 고민하다 보니까 나온 결론이 나도 모르게 녀석을 사랑하고 있었나―하는 의심 밖에 없었어. 녀석으로 인해 좋은 자리에 앉으려던 내 욕심 때문에 녀석을 구속 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변하더라. 잘 웃는 녀석이 좋았던 것 같아. 본 것도 못 본 척 눈감아 버리고 들은 것도 못 들은 척 귀 막아 버리는 녀석이. 한결 같이 내 좋은 점 나쁜 점 모두 다 사랑해주는 녀석이, 그냥 익숙해졌던 것 같아.”

“……….”

“…그래서 소중함을 잃었던 거겠지. 녀석이 소중했다는 걸 잊고 너무 아프게 한 거야. 나에게서 상처받은 마음을 너에게 가서 달랬을 때. 너를 만나고 돌아오면 늘 밝아져 있던 얼굴에 대체 녀석에게 너는 어떤 존재인지가 궁금하기도 했어. 어쩌면 나도 모르게 너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던 건지. 웃기겠지만 이렇게 솔직해지지 않으면 네가 아무 말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이러는 거야. 이건 틀림없는 내 진심이고.”

 

 

 

 

 

 

반박할 수도 없는 차분한 목소리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선택한 ‘진심’이라는 단어가 꽤 솔직해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 아니었다. 다만 만약 내가 오해를 하고 있었다고 해도 왜 그가 이렇게까지 우리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지가 의문이 들어서였다. 혹시 모르는 어떤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섣불리 그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그의 말만 듣는다면 그는 온전히 김성규를 품에서 보낸 사람처럼 굴었다. 의구심이 가득한 내 눈이 그에게 전해졌는지,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난 마음 다 털어 냈어. 더 이상 김성규도 너도 괴롭히고 싶은 생각 같은 거 없어.

 

일어서있던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창가에 가서 섰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두리번거리던 눈이 어느 것 하나에 멈춰서고 조금 있다가는 시선을 나에게로 돌렸다. 김성규 사랑하지? 물음에 들어있던 네 이름, 그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웃는 얼굴로 ‘그 마음을 져버리지 마.’ 하고 말했다.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김명수씨가 왜 이렇게 절박한데?”

 

 

 

 

 

 

내 물음에 그는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말했잖아, 약속했다고.’ 다정한 것처럼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내 진심을 의심하지는 마. 정말 두 사람 잘 됐으면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내가 미안한 것도 있고. 나를 곧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적에게 받는 응원이 생각 했던 것 보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참견 말라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서로 말이 없었다. 할 말이 끝난 건가 싶어서 일어서려던 순간이었다. 그럼 난 일어날게― 하고 말하던 찰나, 내 등 뒤에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형―하고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미친 듯이 낯이 익어서, 나는 빠르게 소파위로 다시 앉아야 했다. 그는 내 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성규야, 왔어? 일부러 나에게 내 뒤의 존재를 각인 시켜주려는 건지, 그는 너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연락이 왔어?’ 간절하게 묻는 너의 물음에 나를 내려다보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아직.’하고 답했다. 그러자 힘이 없어진 목소리로 그랬구나― 하는 너. 갑자기 연락해서 놀랐어, 형. 점점 나에게 가까워지는 목소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깊게 눌러 썼다.

 

 

 

 

 

 

“누구셔?”

“내 손님.”

“…아, 내가 타이밍 잘못 맞춰서 들어왔구나.”

 

 

 

 

 

 

내 바로 뒤에 서있는 듯, 밖에서 몰고 온 차가운 기운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이야기 나눠, 연락 오면 바로 전화 해주고. 나가려는 듯 인사를 건네는 너를 그가 붙잡았다. 성규야― 그의 목소리에 너는 ‘응?’하고 답했다.

 

 

 

 

 

 

“남우현 사랑하는 거, 확실하지?”

“…그건 왜?”

“그냥.”

“물을 걸 물어. 당연한 걸 물어서 뭐해.”

 

 

 

 

 

 

짜증이 난 듯,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답하는 너의 목소리가 내 귀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가 상상이 되었다. 고개를 숙인 채 너의 얼굴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너를 끌어안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주먹을 말아 쥐며 내 감성을 억눌렀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뜨고 있던 눈까지 꾹 감았다. 검게 변한 시야 때문에 너의 목소리가 더 완곡하게 들렸다. 남우현 만나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은데? 다른 물음을 묻는 그의 목소리에 너는 뜸을 들였다.

 

내가 곤란한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네가 조금 더 머물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라서, 네가 조금 더 말을 끌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입을 여려는 듯,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마저 익숙했다. 모든 익숙한 네가 내 뒤에 서서, 나를 말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어.”

“그게 끝이야?”

“가장 쉬운 말인데, 단 한 번도 제대로 해줬던 적이 없는 것 같아서.”

“……….”

 

 

 

 

 

 

나를 보고 싶어 했다는 너의 말 한마디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숨을 참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볼품없이 보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으니까 진짜 힘들다. 이젠 나 밉다고, 나 보면서 꺼지라고 말해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나, 우현이가 느꼈던 마음을 모두 다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사랑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사랑 하는 거. 이거 진짜 힘들다, 형. 한숨에 섞여 흩어 진 너의 목소리에 입을 틀어막았다. 그럼 나는 가 볼게. 연락 오면 꼭 나한테 전화해주는 거 잊지 마. 마지막까지 당부를 한 네가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그는 내 앞으로 내려앉았다.

 

 

 

 

 

 

“정말 오해가 아니야?”

“……….”

“확실하게 너는 오해 하고 있었다고, 내가 그랬잖아.”

“……….”

“마음 돌려. 김성규는 여전히 너 사랑해.”

 

 

 

 

 

 

마음 되찾고 건강까지 되찾으면, 집으로 들어가. 김성규 너희 집에 있어. 그의 앞에서 내가 눈물을 흘리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적이 없는 상황이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내 앞으로 하얀 쪽지를 내려놓은 그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지만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하얀 종이를 들어 올렸다. 곱게 네 번 접힌 종이를 펼쳐 보고는 손바닥 위로 얼굴을 묻었다.

 

 

 

 

 

 

「보고 싶어, 우현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너의 글씨.

 

손에 들린 종이가 눈물에 젖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완결까지 들고 올게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1
빨리와요ㅠㅠㅠㅠ 기다릴께요ㅠㅠㅠㅠ
11년 전
독자2
라라에요!!!그대 빨리와요ㅠㅠㅠ 현성 행쇼를 빨리보고싶네요ㅠㅠㅠ 핳 그대 금손 진짜스릉해요♥
11년 전
독자3
ㅠㅠㅠㅠ드디어 ㅜㅜㅜ
11년 전
독자4
빨리오셔야되요ㅠ
11년 전
독자5
샐러드에요!!뭡니까 이폭풍업뎃은!!!!!!!!ㅜㅜㅜㅜ명수야ㅜㅜㅜ ㅜㅜㅜ잘못을뉘우치고 도와줄줄이야ㅜㅜㅜㅇ멋진녀석!!!! 이제 현성행쇼만남았네요! 우현이 빨리성규한테로 달려가!!!!!!!!!!! 다음편이 완결이라니 아쉬워요ㅜㅜㅜ
11년 전
독자6
오일이에요...!!헐 드디어 헐 나 진짜 완전 진짜 울뻔햇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7
구름이에요..... 이번에 주르륵 올려주신 글 다 읽었는데 어쩜... ㅜ.ㅜ 감동입니다. 다음편이 끝이라니 아쉽기도 하지만, 기다리고 있을게요, 감사해요!!!!
11년 전
독자8
엉엉엉어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라라그대 이렇게 날 또 울려써ㅠㅠㅠㅠㅠㅠㅠ오마이갓 오늘이 완결이라니ㅠㅠㅠㅠㅠㅠ기다리고있을게요! - 마르
11년 전
독자9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성이에요 ㅠㅠ 안돼 완결이라니 ㅠㅠ 보고싶지만 보고 싶지않은 이 불편한 진실 ㅠㅠ 안끝났으면 좋겠다 ㅠㅠ 아 제발 우현아 빨리 성규에게로 달려가!!!롸잇놔우!!!!!!!!
11년 전
독자10
헐 ㅠㅠㅜ린입니다작가님....한번에편올리신거에요!?!!!!!!!!!!!ㅠ대박다써놓거여도하나하나올리기힘든데...완전사랑함
첫편부터보느라...
지금6시20분....
좀있다완결보기위해..좀자야겠음ㅠ
고생하셨어요작가님!사랑함돠!!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기타 지나가던게이54 지나가던게이 05.09 22:43
엑소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433 조각만 05.09 22:39
기타 뀨!!왔어139 작작좀박아 05.09 22:11
기타 사귀는남자가있는데(77ㅔ이주의)37 뀨ㅇ.ㅇ 05.09 21:59
기타 [육십사] 잏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미쳤쪟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24 요긴오디 05.09 21:40
블락비 [블락비/피코] 부산로맨스 0011 05.09 20:33
기타 지나가던게이88 지나가던게이 05.09 20:33
인피니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30 받을수 배풀진 05.09 19:47
기타 [리바엘런] 부끙9 2minutes 05.09 19:25
기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42 8년째연애중 05.09 19:02
기타 [육십삼] 나 내일 병원 또강!20 요긴오디 05.09 18:39
기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10 작작좀박아 05.09 18:33
인피니트 [현성] 6년 연애의 결과12 05.09 18:00
엑소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47 츄잉 05.09 16:50
엑소 [EXO/오백/찬종] 입장정리 上6 05.09 12:55
하이라이트 [윤두준/양요섭] 무더위 041 05.09 10:47
하이라이트 [윤두준/양요섭] 무더위 03 05.09 10:46
하이라이트 [윤두준/양요섭] 무더위 02 05.09 10:43
하이라이트 [윤두준/양요섭] 무더위 01 05.09 10:37
JYJ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7 05.09 05:50
엑소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9 05.09 02:47
기타 영어캠프때 실화12 05.08 19:27
엑소 [루세/루한X세훈] 낙화(落花)6 워 더 05.09 01:59
기타 승무원 준비하는 커플(동성주의)44459 beyond 05.09 01:52
엑소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36 냉동만두 05.09 00:14
엑소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74 보오노 05.09 00:04
기타 농구부형아랑 행쇼중 (동성주의)27 버저비터 05.09 00:03
전체 인기글 l 안내
6/21 16:28 ~ 6/21 16:30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팬픽 인기글 l 안내
1/1 8:58 ~ 1/1 9:00 기준
1 ~ 1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