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주라..."
차마 뒤돌아볼 수도 없었다. 가까이서 네 모습 한번만 더 보게 되면 지금 내가 가진 짐들을 전부 놓아버리고 너에게 가버릴까봐서 뒤돌아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왜 난 네가 날 돌려놓기를 바라고 있을까_
"전화 끝났어 차로 가ㅈ....어...?"
"아..가요!!!!!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요.."
"아니....아....그러지 뭐"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리는 말해. 내 사랑하나로 내 가족을, 아빠를, 엄마를, 또 다시 그 끔찍한 시간으로 보내버릴 수는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난 지금 또 다시 너를 놓아버린다.
-
"나가기 싫은데..."
"뭐?야!!우리 거의 4개월만이다!!!안나와 진짜?야 내가 매일 너 보는 것도 아니고 너무한거.."
"..알았어. 플립박스 2시 좀 있다 봐."
요새는 뜻하지 않게 외출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집 밖으로만 나가면 꼭 기성용과의 추억이 피어올랐다.
한참을 집 안에만 있으면 다 지워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아니었다. 더 오랫동안 틀어박히면 박힐수록 더 강렬하게 만개해버리는 너와 나의,
이제는 나만의 기억으로 간직해야하는 외롭게 된 그리움이 더 애절해져버려서.....그래서 아예 마주하려하지 않았는데, 오늘도 난 미더운 손길로 문을 밀고 있다.
며칠을 간격으로 두고 나와 본 바깥은 싱그러웠다. 그 간격의 틈에서 아파하며 헤매인 나와는 다르게 너무도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빛나서, 싱그러워서 그런걸꺼다... 또 문득
네 생각에 저릿하게 마음이 아파온 건, 약속장소에서 얼마 멀지도 않은 거리인데도, 너와의 기억이 묻어있지도 않은 거리인데도 니 얼굴, 니 표정, 니 말투, 니 품
다 생각나서...이러면 안되는 건데도 자꾸만 생각나서 힘이 빠진다...
"요샌, 살만해?"
"..뭐 똑같지"
"....힘들어 많이? 혹시라도 그 새끼가 너 힘들게 하면!!"
"그런거 아니야..그냥...그냥 좀..후..아니야"
"혹시 아직도 못 잊은..그런거 아니지 너?"
"미영아...아닌거 잘 알잖아 그 애 얘긴 하지 말자 제발_"
"..알았어 기지배야 - 영화 시간 다 됐다 가자"
그래도 다행이었다. 미영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기성용 생각이 조금이라도 소리죽어있었으니까 더 이상 막연한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아주 조금 행복할 수 있었다.
"여기서 헤어지기 아쉽잖아 우리 술 쪼-끔만 하다 가자 어?"
"..아니 나 집에 가봐야 되는데..."
"현건이는 유모가 맡아줄거고 응? 따악 한 잔만!!오늘 보면 너 자주 볼 수도 없는데....응?"
"..그럼 따악- 한 잔만.."
결국은 섣불리 판단해버리고 말았다. '한 잔만'이라는 단어가 힘든 나에겐 어떤 영향을 가지는 지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한껏 다 털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영아..난...나는....싫어...지금이 너무 싫어..."
"....불쌍한 기지배..."
"흐....못 잊겠어...내 잘못인데 하나도 못 잊겠어....미쳤나봐...어떡해...으으..."
"....어...잠시만, 어, 얘 집에 가기 전까지만 응.빨리_"
"흐으....내가 잘못했어...너무 싫어...집에 돌아가기 싫어....싫어..."
"...어쩌다가 정말 000..."
꿈을 꿨다. 아파하는 나와 그 앞의 기성용, 그리고 바라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 그러니까 이건 꿈이다.
내 눈물을 닦아주는 기성용도, 애틋하게 날 바라보는 기성용도 모두 나에겐 허가되지 않은 범죄다. 이건 정말로, 꿈이어야만 한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아빠는 내가 뭘..흐...아파 너무 아파...으.."
"...내가..다 안다고 했잖아.."
"보고싶어...보고싶다....보고싶어...."
"이제 겨우 찾았는데 왜 돌아오지도 못하게 된건데..."
"성용아....흐으...으...미영아....나 좀 살려줘 제발....으...흐...."
"제발.....돌아와라...제발....아직도 기다리니까 제발..."
"흐으...으..."
"....집에...가자...데려다줄께..."
기성용, 술잔, 기성용, 술잔, 박미영, 기성용, 술잔, 박미영, 박미영, 박미영, 박미영...박미영이 이렇게 든든했었나...
기지배야 니 등이 너무 기성용같아서..... 오랜만이라서 눈물나
...나 어떡하지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