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강당에서 다같이 교장의 훈화 말씀을 한창 듣고 있을때였다.
"시발년아."
우리학교 일진이 내게 시비를 붙어왔다.
그 일진의 교복에는 어울리지 않게 정갈한 글씨로 '최은정'이라고 새겨져있었다.
틴트가 흡착된 입술을 타고 차마 입에 담기 조차 역겨운 말들을 내게 뱉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아까 자신을 치고 사과를 하지 않고 갔다는 것.
겉으로 포장된 이유는 일진여자아이가 싸움이의 주된 원인 중 하나였다.
솔직히 그냥 그 아이는 날 싫어했다.
이유는 나도 잘 몰랐다.
"야 이 씨발년봐-내가 부르는데 무시한다-"
그 일진은 바로 내 뒤에 앉아 내 머리카락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빙빙꼬아
같이 몰려다니는 패거리 여자애들에게 마치 내가 조롱거리라도 되는듯 마구잡이로 희롱했다.
두려움이 몸이 떨렸지만 애써 무덤덤한 척 했다.
"너희 조용히해."
"어 변백현 니가 얘한테 왜 신경쓰는건데?"
"음악듣는데 시끄럽다고,니 목소리."
변백현의 강압적인 목소리에 일진 최은정은 순식간에 기가 눌렸는지
나만 쏘아보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처음엔 집중하던 반의 몇몇 모범생들도 교장의 말에 지루함을 느껴 하품을 할때쯤
최은정이 다시 내게 시비를 걸었다. 내 뒷자석에 앉은 그 애는 발을 내 머리위에 올려놓고 내 머리를 꾹꾹 건드렸다.
그 애의 실내화가 내 머리를 건들었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서웠고 전교생이 다있는 교장 훈화시간에 이런 일로 주목 받기 조차 싫었다.
"저...은정아 다리 내릴래?"
"싫은데요-"
다가와서 어렵사리 말을 붙인 담임의 주의는 물거품이 된채, 다시 낄낄 거리며 자신의 발로 내 머리칼을 마구 건드렸다.
내 자리 바로 옆에서 엠피쓰리를 만지작거리던 변백현이 나즈막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최은정,다리내려."
변백현의 말에 담임과 최은정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으나 최은정의 발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담임이 결국 폭발했다.
"너 또 교무실 가고 싶어?!!부모님 몇일전에 왔다가셨잖아!!!"
"안 가고 싶은데요."
담임의 목소리가 강당전체에 물을 끼얹었고 최은정의 시건방진 대답이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결국 변백현이 자신의 엠피쓰리를 던지며 일어섰을때 이 사태가 쉽게 짐작 되지 않을꺼라고 예상했다.
"여기서 나가,아니면 그 다리 아래로 내리던지."
"변백현-너 이딴 애 좋아했냐?진짜 웃기다."
"나 여자애한테 손 안대거든-최은정,똑바로 생각해라."
"같이 나갈까 그럼?오랜만에 우리 둘만의 데이트?"
"...분지르기 전에 내려."
최은정은 변백현의 말을 장난으로 여겼지만 변백현의 그런 최은정을 상대해 줄만한 성숙한 인간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전교생이 보고있었다.
학교에서 모든 선생들을 골때리게 만드는 최은정과 조용하지만 주먹 좀 쓴다는 변백현의 싸움이었다.
최은정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변백현의 뺨을 빠르게 쳐내려고 했을때
변백현이 먼저 최은정의 왼손을 비틀었다. 아주 가볍게.
변백현은 한시라도 빨리 이 시답지 않은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얼굴을 했다.
최은정은 비틀린 왼 손으로 악을 쓰다가 다시 변백현에게 주먹을 날렸을때 담임이 그 둘을 말리러
둘에게 다가왔다. 변백현이 그 주먹을 살짝 피하며 뒤로 물러섰을때였다.
최은정은 담임의 뺨을 주먹으로 쳐낸것이다.
변백현은 놀라기보단 인상을 쓰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미친새끼가..."
"아...씨발,이젠 나도 몰라.꼴리는 대로 하라고."
학생이 선생을 구타당하는 것은 정말 뉴스에만 나오던 일이었는데.
게다가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선생을.
변백현은 뒤늦게 최은정에게 뛰어 들었지만 최은정은 발로 선생을 구타시키고 있었다.
사정이 달라졌다.
변백현이 최은정에게 더도 말고 주먹한대를 날렸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변백현과 최은정은 교무실에 불려갔고 담임은 구급차에 서둘러 실려갔다.
서로 한 순간에 돌아버린 모양이었다.
***
변백현은 그날 하루종일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야자를 마치고 교과서를 정리하고 있을때즈음
변백현은 교실뒤에서 나를 조용히 불렀다.
"야 너 잠깐만 나와봐."
"나?"
이제 변백현에게 난 양아치에게 뒷통수나 건들리는 찌질이로 인식되겠지.
변백현은 복도에서서 창문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잘 됐어,그 새끼는 아마 학교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 같아."
"..그게 왜 잘된건데?"
"너 많이 괴롭혔잖아 그거 보기 싫었어."
"....."
"하여튼 지저분한 쓰레기가 버려져서 다행이야."
변백현의 옅은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최은정이 날 괴롭히는 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변백현이 원래 이렇게 눈치가 빨랐나.
"그래서 말인데-"
"나랑 점심 같이 먹자."
"....."
"최은정이 일진무리한테 내 뒷담 엄청 깠어.나 이제 왕따야."
"......"
"그니깐 나랑 밥 같이먹자."
장난스러운 얼굴로 웃어보이며 말했다.
그는 모범생이 아니었다.
그의 구제불능은 나를 웃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