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하나 없는 비좁은 길거리는 큼지막한 텐트들로 꽉 차 있었다. 이제는 고통의 소리도 내지 못할 지경이 된 사람들은 그저 말없이 눈을 감으며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 하나 예고 같은 것 따위를 하는 것도 없었다. 식량을 보급받기 위해 줄을 서다 픽 쓰러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저의 정인과 대화 없이 지그시 눈을 맞추다 스르륵 눈을 감으며 죽음을 알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주변에 상가 하나 없고 악취가 나는 길거리는 텐트만으로 가득해 전쟁으로 더욱더 삭막해져 가고 있었다. 소음이라곤 식량을 지원할 때에 들리는 덤프트럭 굴러가는 소리와 나무와 돌로 불을 지피는 소리뿐이었다.
“…엄마.”
앳된 목소리, 실로 오랜만에 들려오는 텐트 사람의 음성은 오랫동안 꺼내지 못한 탓에 쩍쩍 갈라지고 있었으나 그 속에는 소년의 조곤조곤함과 생기가 잔뜩 갖춰져 있어 듣기 좋게 귓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의 목소리를 들은 이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지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소년은 답답했다. 소년도 알고 있었다. 보급되는 식량이라곤 길거리에 무성한 풀로 만든 듯한 아무 맛 안 나는 나물과 보리밥 조금이 전부인 이곳이 매우 어렵고,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이 상황이 끝날 상황을 막연하게 기대하면서도,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사는 것이라는 마인드로 다들 몸만 살아있는 좀비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소년은 답답했다. 차라리 이럴 바엔, 군대를 지원해서 전쟁에 참여해 조금이라도 사람의 내음과 시끄러움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렵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소년의 아비는 전쟁에 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방법조차 없었다. 어미는 여전히 하루하루 병에 찌들어가고 있었다. 이내 소년은 정리할 것도 없는 모양새라고는 하지만, 소매를 걷어보기도 하고 먼지로 뒤덮인 배 부분을 탁탁 털며 옷매무새를 정리하고선 텐트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 오랜만에 햇빛을 정면으로 받는구나. 소년은 찌뿌둥한 몸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고요한 길거리는 녹색 텐트로 뒤덮여 미동도 않고 있었다. 참새 지저귀는 소리마저 들려오지 않았다. 소년은 입술을 삐죽이며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습기로 축축해진 벽에 등을 대고 있는 앳된 사람의 인영이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어?”
“……….”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는 소년의 음성에 묵묵히 부동자세를 유지하던 앳된 소년이 소년을 향해 찬찬히 고개를 돌렸다. 소년의 날카로운 얼굴선이 소년을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
“…나 말고 답답한 애가 또 있었나 보네.”
“……….”
“이름이 뭐야?”
…도경수. 소년의 고운 자태를 눈에 담던 소년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
경수와 소년은 가까워졌다. 상황을 보아하니 텐트로 가득한 빈민촌 중 어린 소년들은 저들 말곤 없는 것 같았다. 소년은 경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꼬박꼬박 성을 붙여가며 부르곤 했었다. 경수는 가끔 소년에게 물었다. 넌 왜 날 경수라고 부르지 않아? 그러면 소년은 그저 웃음으로 넘기곤 했다. 경수는 소년의 이름을 몰랐다. 듣지 못했다. 그러나 묻지도 않았다. 그저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소년이 저에게 대답을 원하거나 물을 때만 입을 열곤 했었다. 비록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거나 소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빈민촌에서 사람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소년은 경수의 손길을 좋아했다. 가끔 경수가 소년의 삐죽삐죽 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줄 때면, 입을 꾹 다물고선 손길을 조용히 느끼곤 했다. 경수의 부드러운 움직임이 소년의 얼굴에도 전해지는 듯했다. 경수가 손을 떼면 소년은 아쉬운 눈치로 툴툴거리며 경수에게 말했다. 너한테 쓰다듬 받는 거 좋아. 애완견 된 기분도 조금 들긴 하지만. 가끔 나오는 소년의 소년다움에 경수는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또다시 경수의 손길을 받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소년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작게 입을 열었다.
“네 이야기 듣고 싶어.”
“…어?”
“도경수 이야기, 듣고 싶다고.”
도경수에 대한 이야기. 경수와 눈을 맞추며 낮은 음성을 내뱉던 소년은 가늘게 눈을 접으며 미소를 지었다. 경수의 얼굴이 점차 발갛게 물들어갔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뜨거운 공기마저도 시원하게 느껴지는, 그런 감정. 그날 경수는 신이 나 빈민촌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시에서 살다 왔다,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가 있다, 외동이다, 제일 잘 만드는 음식은 스파게티이다 등등,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소년과 경수는 조금씩, 서로에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금일 여덟 시부로 만 15세 이상부터 만 40세 이하의 모든 남성은 예비군 대대로 편재되어……….”
아침부터 시끄럽게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랜만에 깊게 잠에 취해 있던 경수는 소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탈탈탈 거리를 느리게 누비는 트럭은 쩌렁쩌렁 울리는 마이크를 통해 예비군에 관한 얘기를 내보내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경수는 언젠가 민간인들도 전쟁터로 내보내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범위가 자신에게 해당하는 범위일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놀란 눈치로 입을 쩍 벌리고 있던 경수가 저에게 느껴지는 손길에 몸을 돌렸다.
“…기,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치지 말고, 밥 맛없다고 구, 굶지도 말고……”
…죽지도 말고. 오랜만에 듣는 물기 가득한 어미의 음성에 순식간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모자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경수의 파리하게 떨리는 동그란 어깨가 축축이 젖어가고 있었다.
“도경수.”
발간 눈가를 그대로 둔 채 텐트 밖으로 나오니 진작에 경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모양새의 소년이 우뚝 서 있었다. 꽤나 말끔해진 소년의 말쑥한 모습에 경수가 씨익 웃었다. 어차피 가면 또 더러워질 텐데 뭐하러 이렇게 힘줬어. 경수의 웃음기 섞인 말에 소년이 슬핏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까, 깨끗한 모습 보여 주려고.”
“……….”
소년의 말이 저를 향한 말인 것을 다른 말 없이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경수는 말없이 소년과 가만히 눈을 맞췄다. 소년의 천진한 미소에는 왠지 모를 서운함과 씁쓸함이 담겨 있는 듯했다. 경수가 말없이 소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소년이 활짝 입꼬리를 올리며 머리를 살짝 굽혔다. 소년의 머리를 찬찬히 매만지는 경수의 손길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둘은 그저 말없이 감정을 주고받고 있었다.
끊임없이 지속될 것 같던 경수의 움직임은 멀리서 들려오는 군용 트럭 소리에 따라 슬며시 사그라져갔다. 경수의 눈빛을 느낀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소년이 느릿느릿 눈을 끔뻑이며 경수를 쳐다봤다. 군용 트럭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옴짝달싹 움직이는 경수의 입술에 백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나중에 꼭 다시 보는 거야.”
“……….”
“…그땐, 그때는 내가……”
예비군 대대 분들은 이리로 모여 주십시오! 소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쩌렁쩌렁 울리는 군인의 목소리에 소년의 말이 끊겨버렸다. 경수의 표정에는 당혹감과 불안함이 가득 뒤섞여 있었다. 순간 눈물을 터뜨리려 하는 경수의 몸짓에 백현이 경수의 작은 몸집을 꽉 끌어안았다. 경수의 몸에 점점 힘이 빠질수록 소년은 더욱더 경수의 몸을 꽈악 힘을 주어 껴안았다. 덜덜 떨리는 경수의 몸집을 따듯한 손으로 쓸어 주던 소년이 경수의 귓가에 물기 어린, 그러나 굳건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작게 속삭였다.
“…변백현이야.”
“…아, 백, 변백……”
“나중에 만나면, 꼭.”
불러줘. 마지막 말을 애써 삼킨 소년이 제 품에 안겨 있던 경수의 몸을 찬찬히 떼었다. 어느새 경수의 눈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경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소년이 경수의 손목을 움켜쥐고선 제 머리를 쓰다듬도록 유도시켰다. 이내 또다시 재촉하듯 들려오는 군인의 목소리에 소년이 완전히 경수에게서 떨어졌다. 경수는 여전히 소년을 울먹이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씨익 웃던 소년이 경수에게 입 모양으로 속삭이며 경수에게 등을 돌렸다.
‘꼭 다 시 만 나 경 수 야’
아ㅡ 소년의 입 모양에 소년의 마지막이 될 모습은 쳐다보지도 못한 채 힘없이 주저앉았다. 경수는 끅끅대는 울음소리를 억지로 억눌러가며 구슬피 울었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도, 소년이 그리울 것 같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소년이 저를 ‘경수’라고 불러준 것을 입 모양으로 들을 수밖에 없어서였다.
어느새 길게 지속되던 전쟁은 한 해를 넘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