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방 환자들 다 빠져나갔을 때, 나한테 보고해."
"예."
세 달 전부터 세훈은 모든 것의 순차적인 계획을 밟아갔다. 그것은 아주 치밀하고 엄밀했다. 요즘 종인이가 너무 까분단말이야, 세훈이 혼잣말을 하며 어젯밤에 밧줄로 꼭꼭 묶인 채 자신의 밑에서 꺽꺽대며 울던 종인의 얼굴이 떠올라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마침내 특실 801호와 803호가 비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남은 것은 아주 간단하고도 까다로웠다. 유약한 그녀를 제거해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예상외로 방법은 아주 쉬웠다. 그저 돈이면 무릎을 꿇으며 설설 기는 녀석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병원 측도 마찬가지었다. 돈몇푼을 쥐어주고, 내일 새벽 802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다들 침묵을 지켜달라, 그리 말하자 예쁘장한 간호사들 몇몇과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세훈의 말에 곧바로 수긍했다. 드디어 때가 온것이었다. 종인이, 완전한 세훈의 것이 되는 날이. 그렇게 고대했던 순간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일을 치루기 전, 잠깐 종인을 보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세훈의 발걸음은 아주 가벼웠다. 문득, 3년 전 제 아비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머금은 채 넋이나간 종인의 표정이 생각나 세훈은 큭큭대며 웃었다.
"종인아, 나왔어."
세훈이 신발을 벗고 곧장 안방에 들어섰을 때에는 곤히 잠든 종인이 그를 반겼다. 세훈이 조심스레 침대 맡으로 가서 널브러진 이불을 종인에게 덮어주고는 종인의 볼언저리를 쓰다듬었다.
'종인아, 아직 너한테 못한 말들이 많아. 네 그 잘난 아비도 내가 죽였거든? 키킼, 바보.
네 모든걸 가져야 하는 사람은 나니깐, 저딴 주름지고 늙은 여자는 사라져야 돼. 너도 이해해줄거지? 종인아?'
미처 내뱉지 못한 말들을 세훈은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갑작스레 돌아가신 종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뇌사, 그리고 이 집에 들어오게된 종인. 어쩌면 종인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10달을 그녀의 양분을 빨아먹다가 마침내 세상밖의 빛을 보았을 때부터 이미 세훈의 소유였을지 모른다. 더욱이 세훈에게 종인은 그득하게 들어차버려 뽑아낼 수 없었다. 둘 사이는 도저히 이승에서는 끊어지지 않을 일 같았다.
"내가 엄마가 없는 것처럼 너도 없어야 공평한게 아니겠어? 종인아? 자고있어, 금방 올게."
세훈이 나즈막이 말하고는 그의 손목시계를 풀어 탁상위에 올려놓았다. 조용한 내부는 일정한 시침소리만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세훈이 방을 빠져나왔다.
새벽녘의 도로는 낮과는 달리 침묵을 이어갔다. 차가 막히는 일이 없었으며, 병원에는 다른 때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부하직원이 차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직접 문을 열고는 병원으로 직행했다. 약간은 다급하고 들떠보이기까지 했다. 세훈이 함께 들어가려던 부하직원에게 괜찮다며 손짓을 하고는 두터운 신문지에 쌓인 칼이 들어있는 서류가방을 챙겨들고 병실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가는 걸음이 점점 병실과 가까워질 때마다 그는 자신의 뒤로 남은 길가에 잔뜩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살육을 앞두고 있는 세훈의 모습은 소풍을 준비하는 어린아이같이 밝고 초롱초롱했다. 끝끝내 병실 문 앞에 다다른 세훈이 문을 활짝 열었다.
"오랜만이에요,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