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죽여야 하고 하나는 살려야 하는 거 보고 싶다. 여주 기타누락자다, 도깨비에서 나오는 그 기타누락자. 여기서 말하는 기타누락자는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은 사람이다. 죽었어야 할 운명인데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 그게 여주란 말이다. 처음은 어미의 뱃속에서였다. 변변치 못한 살림에 이제는 입이 두 개로 늘었던 어미는 먹고 자는 시간을 줄여 제 뱃속에 아이를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시장 바닥 지나갈 적마다 이 어미가 안쓰러워 과일 팔던 아지매가 검붉게 변해서 주물러질 거 같은 딸기라도 손에 쥐어주면서 그거 먹고 살았다. '나는 먹기 싫어도 뱃속에 내 새끼는 먹어야 건강하니, 이거라도 안 먹으면 내일 일도 못 나가니' 갖은 핑계를 대가면서도 먹었다. 남들 다 잘 시간에도 어미는 일했다. 뱃속에 애 있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나 건강하다, 돈 필요하다' 해가면서 일을 구했다.
그렇게 일하다가 참 인생도 박복하지, 그 옛날 언젠가 자기가 한번쯤은 잘 살아봤을 적 아버지가 샀던 차, 그 차에 치어 죽어버렸다. 그래서 누구도 원망 못하고 눈 감아버렸지.'내가 그 사람을 덜 사랑했으면, 어린 날 한번쯤 지나가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면, 제 아비가 그렇게 말렸을 때 그 말 듣고 참았으면' 한탄도 잠깐이었다.어미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 선택 했을 사람이었다. 너무 사랑했으니까. 이 사람 아니면 안됐고, 그 사람 없었으면 이 애도 없었다. 애 생각할 때 번쩍 눈 떠졌다. 피로 엉겨 붙은 눈 억지로 뜨면서 ‘살려주세요.’ 한마디 했다. 나 혼자 죽는 건 인생이 그렇고 운명이 그런가보다, 하고 받아들이는데 이건 안됐다. 내 배 안에 있는 내 새끼 어쩔꼬. 그래서 죽을등 살등 일단 불렀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때가 새벽 3시였다. 뺑소니차는 이미 바닥에 침 한번 뱉고 도망간 지 오래였다.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어미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하필 그때가 겨울이었지. 여주 그 조그마한 심장박동 점점 떨어지더니 이젠 느껴지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거두절미하고 그때 나타난 게 제노였다. 천러, 재민까지. 개눈깔 셋이서 살리는 입장이라니 좀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맞았다. 여주 살리러 왔다. 쟤네가 보기에도 어미의 일생은 너무 안쓰러웠다, 는 솔직히 너무 주인공 버프고 아주 오래전에 여주네 외할아버지 건으로 얘네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나이에 맞게 호상에 가깝게 돌아가셨다. 그거 데리러 온 저승차사 때려눕히고 살려버렸다지.근데 알고 보니 살아야할 사람은 옆집 순이 할머니였다. 번지수 잘못 알아서 호상에 갈 분 다시 살려놔서 그날 저승계 아주 발칵 뒤집어질 뻔 했다.잘릴 뻔 한 거 시말서 쓰고 며칠 근신처분 받고 오랜만에 일하러 나온 거다. 사실 여주는 어미랑 같이 죽어야 할 아이였다.여주 인생 보니 살아서 커도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을 거 같고 금방 또 만날 거 같아서 지나가려다가 우연히 여주 어미 기억 속에 외할아버지 본 거였다. 재민이 제노 보면서 '그 양반 딸내미인가본데.' 아, 그때 그 외할아버지 살려놨는데 얼마 안 있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호상으로 돌아가실 거 고통스럽게 돌아가셔서 미안하던 차에 어미는 살아봤자 가망 없고, 미약하게나마 살아있는 이 애라도 살리고 가야 속이 좀 풀릴 거 같아서 결국 천러가 아이 살린다. 얘네 가고 좀 있다가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결국 어미는 죽고 아이는 산다.
그 시각 어미랑 여주도 없고 제노네도 간 그 자리에 동혁네 도착한다. 분명 여기서 어미 한명과 아이 한명 있다고 처리하라 했다.인시(새벽 3시와 5시 사이)에 작업 있다는 말에 오랜만에 빨리 좀 움직였더니 아직 아이랑 어미는 안 온 건지 아니면 없어진 건지, 안 보인다. 그래서 기다렸다. 묘시(새벽 5시에서 7시 사이)까지. 그 사이에 동혁 화났다. 아주 매우 많이. 마크는 '오우 야, 상부에서 제대로 명령한 거 맞아? 약간 우리 물 먹은 거 아니야?' 이러면서 동혁 속 부글부글 끓는 것도 모르고 조잘조잘 거린다. 그 옆에서 런쥔은 핸드폰 게임했다. 그 묘시 사이에 상부는 빡친 동혁네도 모르고 네오병원으로 다른 팀 보냈다. 그리고 어미는 진짜로 보내지고 아이만 남았다. 동혁 다녀와서 상부한테 화도 못 내고 도리어 혼났다, 보내놨더니 빈손으로 돌아와서. 후에 보니 그 팀에 있던 어미랑 자신네 있던 어미 명부가 같았다. 그런데 쟤네 명부에는 아이 이름은 없었다. 그리고 알았지, 누가 아이를 살렸다고. 그때부터 기타누락자 신세가 되었다 그 아이는.
본래 아홉수라는 게 있다. 나이 끝에 아홉이 붙어있는 해는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여주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홉 살 때 알았다. 여주 아홉 살 때 여주가 살던 보육원 원장님이 돌아가셨다. 평소에도 모든 아이들을 사랑하고 여주도 아껴주시던 원장님이셔서 엄마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이 구 년이었다.사람을 잃는다는 걸 그 어린애가 얼마나 잘 느낄는지 하겠지만 여주는 자신을 받치던 세계를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눈 뜨고 만지고 말하면서 제일 먼저 보고 듣고 만졌던 것이 모두 원장님이었다. 그 뒤에 들어온 원장은 최악이었다. 툭하면 아이들을 때리고 보육원을 내세워서 돈을 얻고 그 돈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웠다.버려지고 이용당한 여주는 그렇게 첫 번째 아홉수를 살았다. 열 살이 되던 해 아직 여주는 보육원에 있었다.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이 행복하게 입양되는 모습을 보면서 여주는 점차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새로운 입양자를 만나게 되었다. 아홉수가 지나니 언제 그런 고통이 있었냐는 듯이 인생이 피는 듯 싶었다. 좋은 부모 만나 이런 게 정말 사랑받는 삶이구나, 하면서 또 아홉 해를 살았다. 그렇게 여주가 열아홉이 되던 해에 중년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다. 나이 마흔에 생긴 아이에 부모는 물고 빨고 다했다. 갓난아기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이해하나, 여주는 그해에 열아홉이었고 부모가 필요할 때였다. 한창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자신보다 더 부모가 필요한 제 동생 덕분에 여주는 다시 찬밥신세가 되었다. 두 번째 아홉수가 시작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