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게이들 00
세훈X종대
종인X민석
"죽일거야. 이번엔 진짜 죽여버릴거야."
옆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말에 괜히 긴장한 민석이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어떻게 죽여야 잘죽였다고 온 동네에 소문이 날까."
이어지는 종대의 질문아닌 질문에 민석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지금 이대로 김종대가 자신의 핸드폰을 던져 두발로 으깨버린다 해도 말려볼 시도조차 못해볼 것 같았다. 벌써 이게 몇번째인가. 그동안 수없이도 같은 행동들이 반복됬던 터라 이제 익숙할 법도 하건만, 민석은 이번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다. 제 옆에 종대를 살짝 곁눈질로 훑어봤을 뿐인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번엔 진짜다. 진짜. 아마 더이상 종대에게서 관용과 자비를 구할 수 없을 꺼라 판단한 민석이 이미 눈이 돌아간 종대의 눈치를 보다 몸을 사린다.
"시발 그래서 거기가 어디 바다라고? 해운대? 부산? "
"나..난 잘 몰라..그..종인이가...부산이라고...근데..그냥...우연히..세훈이를 닮은 사람이 아닐까...?"
"지랄하지마 민석아. 세상에 오세훈같은 걸레는 하나뿐이야."
대답과 동시에 올라가는 종대의 입꼬리가 그렇게 소름끼칠 수가 없다. 당황한 민석의 입이 떡하니 벌어진다. 계속 세훈을 싸고돌다간 이대로 자신이 먼저 죽게생겼다.
미치겠다. 아무말도 못하겠어.무서워. 민석은 차라리 조용히 입다물고 가만히 잠을 청하기로 한다. 달리는 기차 밖으로 보이는 밤바다는 꽤 잔잔했다.
도대체 왜 이런 어마무시한 일이 벌어진걸까. 무엇이 종대를 저렇게 격분하도록 만든건가. 우습게도 이 모든 상황은 불과 20분전에 일어난 민석과 종인의 연락에서 비롯되었다. 상황을 되돌아보자면 하필 20분전 오랜만에 민석의 집에 방문한 종대와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며 티비를 보고있을때 현재 민석과 열렬히 밀고 당기기를 하느라 바쁜 연하남 종인에게서 지금 바다에 놀러왔다는 내용의 카톡이 왔다. 아무 생각 없이 종인이 보낸 사진을 열어본 민석은 순간 사진속 종인의 구릿빛 상체에 정신이 팔려 주위를 좀 더 살펴보기도 전에 종대에게 자신과 요즘 썸타는 친구라며 수줍은 미소와 함께 핸드폰을 건냈고 그것이 사건의 불씨가 되었다.
"나 요즘 만난다는 동생이 얘야. 잘생겼지? ”
"그러네. 진짜 잘생...어?...."
뜬금없이 티비를 보다말고 발그래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이대는 민석의 행동에 얼떨결에 사진을 확인한 종대가 순순히 민석의 말에 긍정하다 무언가를 발견한듯 눈을 찌푸렸다
"야..민석아..근데 이거.. 이거 뒤에 오세훈 아니냐?"
"뭐? 세훈이? 무슨 소리야. 줘봐"
아니 내 미래의 남자친구 후보 좀 어떤가 봐달랬더니 얘는 왜 여기서 지 애인을 찾고있냐. 종대에게서 원하는 답을 듣지못해 실망한 민석이 다시 핸드폰을 가져가 확인했다. 에이 설마 오세훈이 거기에 왜 있겠어. 김종대가 요즘 오세훈과 자주 못만나더니 너무 보고싶어서 헛것을 봤을꺼라 장담한 민석이 잠시 멈칫했다. 뭐야 이거. 정말 종대의 말대로 사진속 종인의 뒤에서 국적을 알수없는 금발의 여자와 진한 키스를 나누고있는 남자는 소름끼치도록 오세훈을 닮아 있었다. 이게..말이 돼? 종인이랑 같이 간건가? 원래 둘이 아는사이였나? 그러나 이제껏 민석이 소개받은 종인의 친구들중 세훈의 이름은 들어본적도 없었다. 말도 안돼. 정말 말도 안되게 세훈을 닮았다. 심지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세훈의 머리색 까지도. 민석의 얼떨떨한 표정에 종대가 다시 핸드폰을 낚아챘다.
“미친 시발 이게 장난하나. 딱 봐도 이거 오세훈이잖아.
여기 어디야 당장 가야겠어. 오늘 진짜 잡아서 땅에 파묻어버려야지. 이 개새끼“
종대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잠시만 기다려보라는 민석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건지 무작정 보이는 신발에 발을 구겨넣기 바쁘다. 오른쪽 발에는 급하게 신어 터질것같은 민석의 운동화, 남은 한짝은 민석의 여동생이 아끼던 빛이나는 은색 스트랩 하이힐. 여성용 샌들이라 12센치의 굽이 있었고 엄지와 새끼발가락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작았지만 종대에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종대의 머릿속엔 오로지 빨리 오세훈의 외도현장을 두 눈으로 봐야겠다는 집념 뿐이었다. 심지어 오른쪽 왼쪽 바꿔서 신었다. 가만히 종대의 두발을 내려다보던 민석이 한숨을 쉬었다. 니네 연애는 뭐가 이렇게 힘드냐. 결국 그렇게 먼저 나가버린 종대를 뒤따르기 위해 짐을 챙기던 민석이 다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종대가 나가다말고 무언가를 급히 찾고있다. 뭐해 뭐 찾아? 민석의 물음에 마치 한마리의 하이에나 같이 찬장을 뒤지던 종대가 대답했다.
"민석아 혹시 니네집에 공구없냐? 막 망치나 스패너 같은거. 더 큰거 있으면 좋고"
놀란 민석이 들고있던 짐을 다 떨어뜨렸다. 김종대가 무기를 찾는걸 보니 어쩌면 오늘 오세훈이 죽을 수도 있겠다. 어디서 발견한건지 이제 삽까지 건드는 종대를 보고 민석이 빠르게 세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살고싶다면 피하렴 세훈아. 제발 받아. 미리 알려야 모두가 살 수 있을꺼라 판단한 결과였으나 애석하게도 세훈은 전화를 받지않았다. 결국 그렇게 민석은 미칠대로 미친 종대와 함께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단 20분만에. 그리고 여전히 세훈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겨우 사진 한장으로 애인을 찾아 오밤중에 부산까지 찾아가는일이 정상적인가?
물론 결혼 후 의심스러운 남편의 불륜현장을 잡기위해 눈을 번뜩이는 유부녀에게는 가능한 일이 되겠지만 젊은 게이커플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된다.
그러나 스스로도 쿨게이라 자칭하는 김종대가 이렇게까지 발악하는건 모두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로써 현재 김종대와 4년째 연애를 이어나가고 있는 2살 연하인 오세훈의 13번째 외도가 들통났기 때문이다.
이게 과연 게이로서 정상적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설령 자신이 오세훈의 바가지만 긁어대는 조강지처로 남게 된다 해도 이 못된 버릇을 고쳐놔야만 했다.
12번째 외도를 발견했을 땐 김종대가 조용히 야구배트를 들었었다. 그리고 지금 김종대는 조용히 삽을 챙기고 있다.
이 모든걸 실시간으로 지켜봐온 민석은 자신의 애타는 심정을 모르는 세훈이 야속하기만 하다. 빠른 연락 바랍니다. 종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문자라도 넣어본다.
경찰에 미리 신고라도 해둘까. 아 미친 듯이 손이 떨린다. 민석에겐 엄마가 너무도 그리운 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