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아저씨 저 학생인데..!"
"뭐여 학생이었어? 그럼 말을 해야지, 쯥."
세훈은 잔돈을 무사히 거슬러 받았다. 왠지 모를 민망함에 서둘러 맨 뒷자리로 갔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지옥버스는 아니었다. 그러고 가만히 앉아있다가, 세훈은 문득 자신의 대책 없는 행동이 웃겼다. 카카오톡을 켜보니 왠일인지 제일 먼저 일어난 변백현이 한껏 똥을 싸지르고 있었다.
변백현
야 오전 8:30 2
변백현
일어나니깐 오전 8:31 2
변백현
집에 아무도 음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전 8:31 2
변백현
아쌐ㅋㅋ울집 올사람 오전 8:31 2
변백현
ㅎ 먹을거 들고오면 쌍수들고 환ㄴ녕함 오전 8:32 2
2 오전 8:34 야 나 밖인데
2 오전 8:35 보통 국수집 언제 염?
변백현
ㅁㄹ 오전 8:36 2
하여간 도움이 안되는 놈이다. 세훈은 벨을 눌렀다. 풀쩍 내려가니 하필 웅덩이가 있었다. 아 씨발, 간만에 캔버스 신었는데.. 대충 툭툭 턴 다음에 국수집을 몰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국수 집 치고 모던한 건물이 '우리 집 맛집이에요' 라고 말하는 그 위용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 OO동의 '도도한 국수집'은 정말이지 인기가 남달랐다. 너무 일찍 간게 아닐까 고민 했는데도 이미 손님들이 하나 둘 포장해서 나가고 있었다.
세훈은 지갑을 내려다 봤다. 돈은 있지만 국수가 땡기진 않았다. 그래서 벽에 바짝 붙어 염탐을 했다. 요리조리 계산대를 살펴보는데 순간 세훈은 좆이 확 식음과 동시에 역시, 하고는 알 수 없는 긴장이 풀림을 느꼈다.
"안녕히 가세요."
역시 오크였다. 나보다 못생겼고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25은 되보였다. 스무살은 개뿔.. 오려던 손님도 쟤땜에 다 나갈 것 같았다. 세훈은 미간을 좁히며 씨팔..피씨방이나 갈까, 하고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렇게 한 두 어 걸음 나갔을때 문득 자신이 아침도 못 먹고 온 것이 기억나 다시 돌렸다. 그래 국수만 먹고 그냥 꺼지자. 세훈은 최대한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나 지금 빡쳤음. 버스비 아까움.' 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는 것 처럼.
"어서오세요."
"…"
세훈은 인사를 씹고는 2인용 식탁에 앉아 여기 국수 하나요, 하고 퉁명스럽게 말한 후 핸드폰을 했다. 에라이 씨벌. 한창 투덜거리고 있는데 또 한번 출입문의 종달새가 지저귀었다. 조건반사인 것 처럼 세훈은 들어 오는 사람을 확인 했는데, 키는 저보다 훨 작은데 꽤나 덤덤해보이는 인상, 일반인 치고는 수려한 얼굴인 남자가 들어왔다. 들어오면서 자신이 아까 무시했던 그 알바에게 눈이 반달이 되도록 홱 접혀 웃으면서 '형, 제가 할게요!' 라고 말하는 것 이 아닌가.
세훈은 약간 놀랬지만 계속 그 둘을 지켜봤다. 계산대에 있던 그 오크는 '야 빨랑빨랑 안 오냐' 하더니 앞치마를 벗어서 그 반달이에게 던져줬다. 그 작은 사람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헤 거리면서 탁한색의 붉은앞치마를 둘렀다. 그러고는 들어오는 사람에게 아까와 같은 웃음으로 어서오세요, 하면서 인사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 인사에 환하게 화답해 주었는데, 이는 그 전 알바와 너무 비교되던 모양이었다.
"국수 나왔습니다."
금방이라도 풀려버릴듯하지만 서로를 꽉 매고있는 국수의 흰 면발을 내려다보던 세훈은 몰래 인스타그램을 켜서 찰칵. 하고 찍고는 아무것도 안 한 양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 -세훈은 이래뵈도 인스타광이었다.- 우물거리다가 역시 맛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비 낭비해가며 먹을 만 했다. 그릇을 거의 바닥까지 비운 세훈은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짭짤한 국물 맛이 좋았다. 그 ‘낯선 상대’ 는 나에게 빅엿을 주었지만 국수는 훌륭했다.
문학 시간에 배운 백석 시인의 국수가 생각났다. 한 소절 멋드러지게 읊고 싶었지만 생각 나지 않았다. 1초만에 포기한 세훈은 지갑을 열고 계산대로 향했다. 룰루랄라.
"사천 오백원 입니다."
"여기요."
"만원 받았습니다."
"…저, 근데 여기서 알바하세요?"
"네?"
크고 휘둥그레한 눈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았다는 모양 이었다. 세훈은 머쓱해져서 아, 아니. 그냥 어려보이시길래. 학생인가 하고.. 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알바생은 픽 웃으면서 말했다.
"고딩은 아니고 대학생이에요."
"아…"
"삼촌 일 도와준다고. 근데 이거 꽤 시급이 좋거든요."
"…"
"여기 잔돈이요."
약간 살이 오른 두 뺨이 실룩거렸다. 세훈은 잔돈을 멍 하니 받았는데, 내 앞의 이 남자가 새벽의 낯선상대 였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훨씬 정말 그 이상을 넘어서 귀엽고 귀엽고 귀여웠다. 게다가 잘생겼어. 존나 인정 할 수 없지만 잘생겼다. 애꿎은 남자를 욕했던게 괜히 미안했다. 낯선상대는 앞의 손님이 도통 나갈 기미가 안보이자 갸웃 했다.
"왜 그러세요?"
"어…. 어… 저 잠깐 얘기 할수 있을까여…"
"네? 지금 계산대 봐야해서 안되는데.. 무슨 일로?"
"아니, 아니… 말이 헛나왔네여. 많이 파세여."
세훈은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 꽁무니가 당황 한 것 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알바생은 다시 핸드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종이니
[경수야, 언제 갈까]
-[오지마. 사람 많음.]
[왜 왜 왜 왜 왜]
-[사람 많다구]
[나 5분 뒤 도착]
-[ㄲㅈ]
말로는 꺼지라고 했지만 경수는 마냥 즐거웠다. 자신보다 두 살 어린 종인이 저보고 경수야, 하는 모양새도 귀엽고 설렜다. 근데 중요한건 삼촌이 너 싫어해…종인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경수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에 힘을 줬다. 저 주방장에서 삼촌이 무어라 소리치는게 들렸다. 경수는 오늘 만큼은 알바를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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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뿡뿡이다! 똥을 싸지르는 재주를 가졌어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