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전부 맞췄어. 네가 알려줘서 그래. 나 원래 이런 건 잘 못 외우는데 네가 말해준 거라 기억했어. 내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던 네가, 내 팔다리를 조금씩 조절해주던 네가, 내가 틀릴 때마다 해맑게 웃어버리던 네가 자꾸만 떠올라서……. 이러면서 말해봤자 우스울 뿐이겠지만 사실 요즈음 난 네가 그렇게 막 미친 듯이 좋지는 않아. 다만, 좋아해. 진짜 좋아해.
네가 한 말은 내 귓가에 늘 울리고 있어. 네가 지은 표정은 이상하게 오래 남아있어. 너와 문자 하고 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계속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해. 너는 내가 문자를 보내고 그 답장을 기대해버리고 마는 하나뿐인 사람이야. 네가 내게 쓰는 사소한 네 말투 하나하나를 기억해. 네 말투를 보면 기분이 좋아. 너는 종종 바보 같은 애교를 부리면서 문자를 써. ~무어야, ~했어 등의 평서체가 다정한 너야. 너는 "~하는 거야" 따위의 말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 내 이름을 다정스레 부르는 게 잘 어울리는 너야. 아무래도 나는 네가 좋아. 종종 너무 바른 너라서, 너를 좋아하는 나의 모자람을 느껴 아득할 때가 있어. 사실 전부 아무래도 좋은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나는, 너를.
나와 함께 있어줘. 이 겨울을, 다가오는 봄을, 내리쬐는 햇살을, 수평선에 깔리는 어스름을, 은하수 별빛을, 내게로 밀려오는 많은 것들을 나와 함께 나줘. 같이 있어줘.
그래.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위로할 수 없겠지만 부디 여기에 있어. 멀어지지 말아줘.
"차학연."
"……."
"차학연……."
학연은 아무런 말도 없이 택운을 바라봤다. 정택운은 제멋대로다. 늘 이런 식이었다. 학연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뱉었다. 병나발이라도 분 건지 같이 쓰는 방에는 술병만 나뒹군다. 제멋대로 혼자 취해버리곤 혼자 떠든다. 학연이 들어오자마자 주절주절 제 마음대로 떠들던 정택운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히 고꾸라져있다. 정택운의 멱이라도 잡고 싶었던 학연이었으나 그는 결국 한숨을 푹 쉬곤 정택운을 잡아 일으켜 침대에 눕혔을 뿐이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차학연은 리더다. 제멋대로인 메인보컬과는 다르게 내일의 일정을 계산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학연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택운은 끌어 덮어준 이불을 차버린다. 허, 학연이 짧게 웃는다.
정택운은 이 정도로 제멋대로인 놈이 아니었는데……. 최소한 술에 취해 고백해버릴만큼 막나가는 놈은 아니었다.
***
정택운이 수마에서 벗어난 건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창밖이 검었다. 혼자 쓰지 않는 방에 정택운은 혼자였다. 아닌 것을 알지만 혹여나 하는 마음에 차학연의 침대 이불을 손으로 더듬었다. 아무도 없었다. 머리가 아팠다. 전날 과음 탓임을 스스로도 알았기에 정택운은 속이 쓰렸다. 속이 쓰린 것이 숙취 탓인지 심리적 이유 탓인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방은 깨끗했다. 자신이 어제 무슨 일을 벌였는지. 꼭 꿈인 것 같았다. 기억은 생생한데 남아있는 건 없었다. 유일한 증거라면 휴지통 옆 구석에 숨겨놓듯 정리해둔 술병 몇. 택운은 학연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학연이 외박을 할 이유는 없었다. 혹여 잠시 일어나 화장실에 간 것은 아닐까 싶었다. 택운은 애써 손끝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무시했다. 새우등을 하곤 앉아서 방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째각, 째각, 시계 초침 소리만 울렸다.
먼동이 트니 별빛이 사그라든다. 아침이었다.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택운은 몸을 일으켰다. 때마침 거실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저 말고 누구 빨리 일어날 만한 사람이 있었던가? 택운은 아무런 생각 없이 문고리를 돌려 거실로 향했다. 숙취로 속이 아팠고 하도 가만히 앉아 있었던 탓인지 목과 등이 뻐근했다. 그리고 택운은 약간 말문이 막혔다. 동생들의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다름아닌 차학연이었다. 차학연 역시 택운을 보고 놀란다. 택운은 아무렇지 않게 학연을 바라보려 애썼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흉내를 낸다.
"너는 왜 거기서 나와?"
"어? 어, 그게……."
"새벽에 들어오는데 나 자서 깰까 봐 못 들어오고 그런 거야?"
차학연의 표정에 곤란함이 묻어난다. 택운은 입을 다문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정택운은 거짓말을 영 잘하지 못한다.
"택운아,"
자신을 부르는 학연이 평소와 달라 보였기에 택운은 서글픈 기분이 되었다.
"기억 다 나면서 그러진 마. 너 거짓말 진짜 못 한다."
"미안해."
택운은 자신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을 먼저 스스로 내뱉었다. 평소와 비슷한 모양새로 웃어 보이던 학연은 금세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어 택운을 바라봤다. 겨울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학연이 입을 열었다. 결국 학연은 택운이 가장 듣기 싫어하던 말을 한다. 택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했다. 학연은 한참을 고민하다 머쓱히 웃는 것으로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다. 택운은 무덤덤했다. 어쩌면 그것은 평소와 같았다. 무뚝뚝하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정택운에게 언제나 장난스레 부딪히던 것이 차학연이었다. 평소와 같을 수 없던 건 차학연이었다. 정택운은 이게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속이 쓰라린 것도 자신이고 절망스러운 것도 자신인데 너는 어째서 그렇게 처연한 표정을 하고 나를 보고 있을까.
***
사랑받고싶어.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사랑받지 못할 거 같아. 나를 사랑해줘.
***
가볍게 토막으로 쓴 글입니다 연재할ㄹ지는~~~ 글쎄요....ㅎㅎㅎㅎㅎ 고3에 치여살다보니 엄청 오랜만에 인티 와보네요 ㅠㅜㅜㅜ
그냥 사랑에 빠진 정택운이 쓰고싶어서 건드렸는데 하ㅏ하 즐거운 솔크 여파일까요 이꼴이네요....... 다들 즐거운 성탄절이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