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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에 구입한 풍경2

- 지진

 

 

 

 

-

 

 

 

 

나는 닫힌 화장실 문에서 시선을 뗐다.(내가 이렇게 구는게 바보같다는 걸 지금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하고 곧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안녕."
"그래,안녕."

 

 

 

안녕이라니, 태민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속에서 무언가 울컥했다. 하지만 태민이는 원래 그런 애다. 달라진 건 없다. 넌 아직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고, 다만 돈 많고 잘생긴 아저씨를 공유하는 것 뿐이다.


 

 

 

"비 많이 와, 그치?"
"...그러네."


 

 

 

 

 

 

태민이는 계속해서 이상한 얘기만 늘어놓았다. 날씨 얘기, 하지도 않던 여자 연예인 얘기, 자기 집 고양이 얘기 같은. 정작 우리가 해야할 얘기는 따로 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더이상 내게 해줄 쓸데 없는 얘기들도 동이 났는지 잠깐 침묵하다가, 말을 잇는다.

 

 

 

 

 

"지금 만나."
"그러자, 제발. 지금 시계탑으로 와"

 

 

 

 

 


나는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고개를 쳐들어 친구를 만나면 해야 하는 행동들과 말들을 생각했다. 웃긴게, 그러다 보니 내가 태민이를 만나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걔랑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웃고 떠들고 했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에서 여자들이 남자의 불륜상대에게 하는 온갖 가학적인 행동들을 떠올리는게 더 쉬웠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 항상 그런 여자들은 악역이였다. 정작 불륜상대는 남자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불쌍한 여자일 뿐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려있는 후드티를, 입고 있던 티 위로 대충 겹쳐입었다. 현관 앞에서 신발을 구겨 신는데 화장실 문이 열렸다. 최민호가 젖은 머리 위로 수건을 걸친 채 밖으로 나왔다. 곧게 뻗은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디가"
"이태민 만나러."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최민호는 빠르게 걸어와서 내 손목을 낚아챘다. 미쳤어? 최민호는 미간 사이를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대답이 없자 재차 물었다. 또 대답이 없자 다시 한번 물었다. 역시나 대답이 없자 최민호는 내 뺨을 갈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었을 때, 나는 최민호로부터 뒤돌아서 대답했다.

 

 

 

 

 

"....안 때릴게, 안 욕하고, 안 화내고, 상처 안 줄게."
"..."
"난 정말 안 그럴게."

 

 

 

 

 


뒤에서 툭, 하고 수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대로 문고리를 잡아돌리고 집을 나섰다. 최민호는 나를 잡지 않았다.

 

 

 

 


아,우산. 하고 말을 내뱉었을 땐 이미 문이 닫힌 후였다. 최민호를 다시 볼 용기가 없어서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 나는 아파트를 벗어나자마자 젖어들었다. 약속장소로 걸음을 내딛을수록 나는 젖어갔고 ,약속장소인 시계탑 앞에서 태민이와 마주쳤을 때, 더는 젖을 곳이 없었다. 태민이는 검은 색 우산을 쓰고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잘 아는 표정이였다. 최민호랑 태민이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거다. 나이가 많든 적든, 여자든 남자든 지들 마음대로 다 되니까 발 아래에 두고 깔본다는 말이다. 그리고 한심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둘이 짓는 표정. 지금 이 표정.

 


갑자기 엿같은 기분이 치밀어 나는 태민이에게 달려들었다. 태민의 손에 들려있는 우산을 집어던지고, 멱살을 잡아 시계탑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주먹을 쳐들어 태민의 얼굴을 계속해서 내리쳤다. 쓰러진 태민이에게 발길질을 하고 그 위로 올라타 욕을 했다.

 

 

 

 

 

"개새끼, 넌 진짜 개새끼야! 시발새끼! 좆같은 새끼!"

 

 

 

 

 


퍼붓는 비를 맞으면서 욕 한번에, 주먹한번 그렇게 멈추지 않고 때렸다. 태민이는 말 없이 맞았다. 신음 한 번 없이.

 

 

 

 

 


"너가 나한테 진짜.... 씨발년, 왜 넌데? 응? 왜 너야? 왜 너냐니까!! 씨발"

 

 

 

 

 


나는 태민의 멱살을 흔들었다. 그리고 태민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비가 피범벅된 태민의 얼굴을 씻어내렸다. 태민이는 숨을 고르다가 내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파."

 

 

 

 


나도 아파. 나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헥헥대며 말했다. 태민이는 눈을 감고 얼굴이 씻기도록 내버려 뒀다. 비가 좀더 얼굴을 적실 수 있도록.

 

 

 

 

 

"아니,아프냐구."

 

 

 

 


나는 친구의 말에 더 많은 눈물을 쏟았다. 안 때린다고 했지만 미친 듯이 팼고, 안 욕한다고 했지만 내가 아는 욕을 다 퍼부어줬고, 안 화낸다고 했지만 내 평생 가장 많은 화를 냈다. 하지만 때리고 욕하고 화내도, 상처를 줄 수 없었다. 안 상처준다는 말은 지켰다.그래도.

최민호는 최민호고 태민인 태민이였다. 내게 있어 그 둘은 완전히 달랐다. 한 명은 내 애인이였고, 한 명은 내 애인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최민호의 애인은 김종현이었다. 최민호에게는 애인과 사랑하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었다. 최민호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김종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일어나."
"어?"
"우리 집에 가자."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옷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그리고 못 알아 듣는 척을 하는 태민이에게 한 번 더 말했다. 우리 집에 가자고. 솔직히 나도 무슨 정신으로 말한 건지 모르겠다. 아니, 내가 이렇게 네 이태민을 두들겨 패놓았어 민호야. 이렇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 상처에 연연하지 않는 태민이를 보니 이상하기도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태민이에게 더 연연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태민이와 우리 집(최민호가 이를 갈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태민이는 내가 집어던진 우산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바보같이 내게로 건넸다. 내가 받지 않고 멍하니 있자 태민이는 나를 한 번 쓱 훑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우산을 바닥으로 팽겨치고 가자. 라는 짧은 말과 함께 그리고 나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도어락을 열었다. 비밀번호는 유치했던 우리를 놀리기라도 한다는 듯이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잠금이 풀리는 소리는 경쾌했으나 집 안에 들어서자 있는 남자의 표정은 경쾌하지 못했다.

 

 

 

 

 

"민호야, 나 왔어."

 

 

 

 

 

최민호는 못됐다. 지 애인을 먼저 봐야지 당연한 듯이 내 뒤로 따라들어오는 태민이에게만 눈길을 준다. 게다가 최민호의 큰 눈은 내가 만든 태민이의 몰골을 보자 조금 더 커졌다. 놀래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막상 저러니 마음이 쓰리다. 속상하다. 김종현은 불쌍하다. 지 애인에게 눈길 한 번 못 받다니. 그런데 이제 슬슬 나한테 따질 때가 되었는데도 최민호는 나에게도 태민이에게도 다가가지 않는다.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최민호는 먹이를 헤치우기 전의 하이에나같은 느낌으로 서있다. 찐한 연애시절에는 최민호가 저러고 있으면 나는 겁만 엄청 집어먹고 최민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러나 지금 나는 연애하고 있지 않다. 나의 애인 최민호는 연애중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괜히 심술이 났다.

 

 

 

 

 


"무슨 말이라도 해 봐."
"그래요, 형."

 

 

 

 

 


나도, 최민호도 생각지 못했던 태민이의 돌발 발언에 태민이를 제외한 모두가 당황했다. 사실 태민이의 반항적인 말투는 나에게는 반가웠다. 그러나 최민호에게는 정말 돌발적인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태민이의 돌발 행동, 아니 내가 보기에는 도발에 가까웠다. 도발은 경지에 올랐다. 태민이는 최민호의 뺨을 때렸다. 실컷 태민이를 때리고 온 터라 모든 것에 멍해있던 나는 순간 정신이 확 깼다. 내 머리카락과 옷자락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태민이는 나와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눈가는 멍이 들기 전이라 부어있었다. 그리고 입가는 약간의 피와 함께 볼은 잔뜩 까져있었다. 누가 봐도 내가 나쁜 사람이 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따진다면 바람을 핀 저 둘인데.

 

 

 

 

 

"태민아."

 

 

 

 

 

목소리도 멋있는 내 최민호는 태민이를 애절하게 불렀다. 그러나 태민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신이 확 깨고 나니 이젠 화가 났다. 나는 내 애인의 불륜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싶다고 이 전에 말했다. 그런데 막상 내 앞에 펼쳐지는 불륜 장면에 나는 이 상황이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상상했던 불륜 장면은 이보다더도 더 끔찍했었는데도 말이다. 어쨌거나 드라마가 끝나고 배우들은 하던 연기를 그만둔다. 그러면 최민호는 그대로 김종현의 애인이고(어쩌면 최민호와 김종현이 애인 사이라는 것 마저도 드라마의 한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이태민은 있지도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 상상이었다. 상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저 둘 덕분에.

눈물이 흘렀다. 아까도 울기는 했지만 비 덕분에 내 눈물을 그대로 씻겨내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가 내리지 않는 실내, 정확히는 우리 집이었다. 내가 최민호와 떡을 치고, 달달한 말을 쏟아내기 바빴던 이 곳에 낯선 자가 침범했다. 하지만 그 낯선 자는 자신의 엄지 손가락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그 손길을 쳐낼 수 없었다. 대신에 그대로 최민호를 바라봤다. 최민호의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호에게는 표정이 정해져 있었는데 저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 너도 당황스럽지? 묻고 싶었지만 다시 삼키고 말았다.

 

 

 

 

 


"너 나한테 바라는 게 뭐야?"
"지금은 말 못 해."

 

 

 

 

 

 

 

 

 

 

 

 


이태민도 미쳤다. 나도, 최민호도 미쳤지만 이 새끼도 미쳤다. 지금 우리 집에는 미친 새끼 3명이 들어와있는 것 같았다. 미친 김에 확실히 미쳐야겠다. 그대로 알 수 없는 최민호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최민호의 손을 잡고(굉장히 따뜻했다) 태민이에게로 끌고 왔다. 사실 최민호는 여기서 내 손을 뿌리쳤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최민호의 손을 태민이에게로 넘겼다.

 

 

 

 

 

"나가. 오늘까지는 미행하지 않을게."

 

 

 

 

최민호는 내 말에 침묵했다. 말 없이 태민이를 쳐다본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본다. 마치 슈퍼에서 과자를 고르는 듯한 무심한 눈길로 계속해서 태민과 나를 번갈아본다.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하겠는가. 최민호의 입맛이 변해버렸는걸

 

 

 


"내가 왜?"

 

 

 

 


최민호는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더니 나에게 물었다. 왜냐니, 난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난 아무데도 안가, 갈꺼면 네가 가"

 

 

 

 

 


최민호는 그렇게 말하더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내가 좆같지? 말해줄까 김종현. 너 지금 존나 웃기다고."


 

 

 

 

 

 

 

무슨 영화 찍냐, 시발년이. 최민호는 태민의 멍든 얼굴을 메만지며 내게 욕을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을 훑었다. 울지 않기 위해서, 또 우리가 살던 이 집 구석구석을 기억하기 위해서. 시간이 멈춘 듯 자리에 서있었다. 태민이는 표정없이 한숨을 쉬고, 최민호는 방에 들어갔다. 곧 방에서 나온 최민호의 손에는 자동차 키가 들려있었다.


 

 

 

 

"이태민, 병원 가."

 

 

 

 


태민이는 태연하게 괜찮은데,라고 말했지만 최민호는 그렇지 못한가 보다. 예쁜 제 애인의 얼굴에 흉이 지는게 죽기보다 싫은가 보다. 최민호가 무섭다. 아무렇지 않게 나를 난도질한 최민호의 그 무심함이 무섭다.

 

 

 

 

 


"우리 돌아올 때까지 집 비워놔."

 

 

 

 

 

 


저런, 냉정함도.

 

 

 

 

-

 

 

사실 댓글 하나 없어도 올려버릴까.. 하는 중에 댓글이 무려 3개나.... ㅠㅠ 감사감사드려요 ... ... 저희 진심으로 감동 받아서 

완결을 내버리기로 했어요 이곳에섷ㅎㅎ 시놉도 다시 기획중이에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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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헉 쫑키가 되었다
으아 완결이라니 감사해여!!!ㅋㅋㅋㅋ진짜진짜 재밌으용 힘내세여!!

11년 전
지진
저 바본가봐요... 쫑키가 아니라...호현 그대로임당..ㅎㅎㅎㅎ감사드려요 진짜...
11년 전
독자2
아..ㅋㅋㅋㅋㅋㅋ
제가 감사해요 마른 하늘에 단비같은 투민호현ㅇㅣ라니 헠헠

11년 전
독자3
아 완결 내주신다니ㅠㅠㅠㅠㅠㅠㅠㅠ감사합니다 글잡 호현은 가뭄인데.....핳 이런 고퀄 글이 올라오다니ㅠㅠㅠ
11년 전
독자4
민호왜그랭...나빠ㅠㅠㅠㅜㅠㅠ근데재밌다ㅠㅠㅠㅠㅜㅟ
11년 전
독자5
완결ㅠㅠㅠㅠ완결내ㅐ주신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감덩이당드어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좋아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릉해여지진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6
겁나 뒷북이지만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우아유ㅠㅠㅠㅠ사랑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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