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인지 벌써 눈이 내렸다. 모르는 새 많이 내린 눈은 벌써 쌓여있어 사람들 모두 분주히 갈 길을 가는듯 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물론 찬열도 포함이었다. 저녁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 찬열이 한껏 툴툴대며 구두굽으로 길바닥을 차자 지나가는 여자들이 그에게 추파를 던졌다. 한숨을 폭- 쉰 찬열은 다음부터는 차를 타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길 건너 레스토랑을 한번 올려다보고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시린 손을 호- 불던 와중에 그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봐요!"
찬열은 크게 호통쳤고 위태롭게 걷던 작은체구의 남자를 이미 끌어당겨 제품에 가둔 뒤였다. 가만히 안겨 있는 남자를 떼고 내려다보자 남자가 잔뜩 굳어선 찬열을 올려다봤다.
"지금 뭐하는 거에요! 빨간 불인 거 안보여요?"
남자는 입을 꾹 다물고 찬열의 입술만 쳐다봤다. 너무 가까운 탓인지 씩씩대는 숨소리가 찬열의 귀로 전해져왔다. 살짝 더 몸을 떨어뜨리곤 다시 남자를 위협적으로 쳐다보자, 그 남자는 결국에 입술을 열었다.
"저..저는 마으 자ㄹ 못해요."
찬열의 큰눈이 더욱 커졌다. 어눌한 말투가 그의 청각을 자극했다. 말을 잘 못한다는 건가?. 하고 생각한 찬열이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찬열의 표정이 보기좋게 구겨지자 남자가 더욱더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그의 눈을 쳐다본 남자가 파란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바삐 건넜다. 깜짝 놀라며 그남자를 따라 횡단보도를 건넌 찬열이 팔뚝을 잡았다.
"말 못하는 건 알겠는데, 당신 위험했다고."
남자는 잡히자마자 뒤돌아서 당황한 듯 그를 쳐다봤고 다시 입술만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짓던 저 표정은 뭐야?. 남자는 또 대답이 없었다. 아, 말 못한댔지. 그렇게 생각한 찬열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당신 위험했어요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에요? 그러다 치이고 싶어요? 일부러 그런 거에요?"
정신없이 찬열이 쏘아대자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그 표정을 본 찬열도 눈을 크게 떴다. 핸드폰을 받으라는 듯 흔들자 남자가 찬열의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그리곤 그 조그만 손으로 무언가를 툭,투둑 쳐선 찬열의 얼굴앞에 갖다댔다.
[그러니까 나는 말을 잘못해요. 그리고 나는 청각장애인이에요.]
그 글자를 보자마자 찬열이 아.. 하고 탄식했다. 그래서 말도 어눌한 거고 입술만 본거였구나. 귀가 안들린다니 어떻게 해야할지 우왕좌왕 하던 찬열이 핸드폰을 뺏어들곤 빠르게 무언갈 쳤다.
[그러니까 당신.]
까지 친 찬열이 다시 글자를 지웠다. 이게 웬 오지랖이야.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곤 남자를 보자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됐어요. 그만 가봐요."
고개를 돌리고 말한탓에 하나도 알아듣진 못했지만 자신의 어깨를 잡는 느낌에 고개를 돌린 남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백현아."
백현의 어깨를 잡은 남자는 검은 수트에 시원스레 넘긴 올빽머리가 아주 잘어울리는 남자였다. 경계하는 눈빛을 마구 쏘아대던 남자는 백현을 저 쪽으로 이끌었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백현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찬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까..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큰일날 뻔 했거든요."
"아아-"
알겠다는 듯 아- 하고 내뱉은 남자가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단호한 말투로 선을 그어버린 남자는 백현의 어깨를 감싸쥐고 그자리를 떠버렸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둘을 쳐다보던 찬열의 입술이 호를 그리며 올라갔다. 떨어진 지갑을 들고 찬열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으ㅡㅇ으으으ㅡ으으으ㅡ 저 남자는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