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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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박사박
새하얀 눈에 발도장을 찍으며 산기슭을 헤치고 있었다.
날카로운 칼바람이 겹겹이 입은 옷가지들을 뚫고 맨살을 적셨다.
거센 추위에 턱이 뻐근해지고 관자가 눌려왔다.
빨갛게 부르튼 어린 손에 호호 입김을 넣어가며 추위를 작게나마 견디고 있었다.
얼른 나물을 캐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 잔인한 강추위에 날까지 어두워져 온다면
그대로 얼어 딱딱한 얼음시체가 되어 먼저가신 아버지,어머니를 뵈어야 할수도 있는 노릇이렸다.
다급한 발걸음으로 축축한 나뭇가지로 이리저리 들쑤시며 눈을 키고 산나물을 찾았다.
모든게 멈춰버린 겨울에 산나물이 있을리가 없었지만
뿌리나 말라 비틀어진 줄기를 찾는다면 더덕이나 도라지 잔대등은 있을법한 일이였다.
턱-
"어?"
이리저리 들쑤시던 나뭇가지가 뭉툭한 무언가에 걸려 멈춰졌다.
흰 눈과 넝쿨에 쌓여 정체를 알수없는 물체를 긴 나뭇가지로 쿡쿡 찔러 보았다.
물컹물컹한게 동물의 사체일까? 아니다. 모든 생물들이 동면을 취할 겨울이였다.
사박-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 손을 뻗어 눈을 치워냈다.
두려운 마음은 이것은 무엇인가 하는 호기심에 눌려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
눈이 덮고 있던것은 뻣뻣한 멧돼지가죽도, 거친 곰가죽도 아니였다.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마치 눈과 같은 남자아이였다.
뽀얗고 어여쁜 남자아이였지만 눈에 띄게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관에 들어간다 해도 이상할게 없을 정도로 창백하다 못해 파르슴한 얼굴이였다.
얼른 두 손을 작은 뺨에 대어 체온을 느끼고 코에 손을 대어 생사를 느꼈다.
살아있다!
미약하지만 숨이 머물러있었다.
하얗게 부르터 미세한 떨림을 보이는 입술이 미지근한 숨을 뱉어왔다.
이것 저것 생각할 틈도 없이 빠르게 어깨넘어로 둘러맸던 망태를 앞으로 고쳐매고 마치 눈과 같은 작은 아이를 들쳐업었다.
아무리 작다작다 하였지만 체감 크기는 저와 비슷했더랬다.
하지만 어린 여자아이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을 허겁지겁 들쳐업고선 거센 바람을 정면으로 맞받으며 산을 빠르게 내려나갔다.
돌부리에 채이고 가시에 찔려도 상관없었다 그저 이 하얀 눈같은 아이가 녹아 없어지지만 않았으면 하고 되새겼을뿐,
어린 소녀는 바짝 날이오른 나무가지에 고운살이 찢겨 검붉은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산을 뛰어 내려 나갔다.
그렇게 살 애는 춥고 잔인한 겨울, 소녀는 또 다른 거친 바람에 휩슬렸다.
그녀는 눈에 피어오른 깊은 불꽃이였고 그는 사뿐히 내려앉은 하얀 눈이였다.
온 세상 만물이 색동저고리를 걸친듯 다채롭게 오방색을 띄고 있었다.
산과 들에 형형색색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하늘은 달콤한 봄빛을 가득 안고 눈부시게 빛났다.
달디단 꽃냄새를 풍기는 진달래 수풀사이로 싱그럽고 향긋한 봄 소녀가 산중턱을 오르는 중이였다.
ㅇㅇㅇ, 노랑 치마에 꽃 다홍 저고리, 붉은 댕기 맨 그녀의 용모와 자태는 참 으로 빼어났다.
화려한 외모로 은나라는 물론 천하를 내둘렀던 달기년을 옆에 세워도 태양 빛 옆의 촛불이라 할것이니, 그 미모가 빛을 바랠 정도였다.
다만 오른쪽 눈 아래 얇게 패어져 붉게 물든 상처가 흠 이였지만 누구나 혀를 내두를 경국지색이라, 곱고 요염하였다.
나비도 천하의 아름다운 꽃내를 맡았는지 소녀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 펄럭이고
향긋한 꽃 내음에 듬뿍 젖은 따뜻한 미풍이 불어와 매화꽃 같은 처녀의 두 뺨에 간질간질 와 닿았다.
ㅇㅇ는 아버지 어머니 묘소에 가는 길이였다.
가파른 산언덕이라 얕게 숨이 차 올랐지만 자식 된 도리로써 비가오나 눈이오나 매일 아침 문안인사는 게을리 할수없더랬다.
"예쁘게도 피었구나."
ㅇㅇ이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 꽃을 돌본 덕분이라,
도착한 경진산에 투박한 작은 묘소도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개해 화사히 빛을 바라자 그녀 역시 흐뭇해 지는 참이였다.
ㅇㅇ은 뒷뜰에서 꺾어온 찔레꽃을 산소에 예쁘게 꽂아넣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이 눈송이 같은 찔레꽃은 저의 머리장식으로 예쁘게 빛났을 터였다.
그때 작은 미풍이 머리위로 스쳐지나가자 마치 어머니가 살아생전 만져주시던 손길이 생각나
두 볼에 작은 우물과 함께 눈이 휘어지게 미소를 띄곤 묘소 앞에 주저앉았다.
"아버지 어머니, 밤새 평안하셨나요?
저는 설레임에 밤새 눈도 붙이지 못하였답니다.
오늘 전 이 주운땅을 떠나 청월국에서 혼인을 준비할 것이에요.
10년만에 돌아가는 청월국은 얼마나 바뀌어있을까요.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제가 뛰어놀았던 갈대밭과 정호산 만큼은 옛날모습 그대로 절 반겼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 추억속에서 제 서방님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이에요."
ㅇㅇ은 행복한 나날을 상상하는 듯 파아랗고 높디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두 볼을 붉게 물든채 입을 열었다.
"저는 가장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것이에요."
따듯한 봄바람이 그녀의 몸을 감아 올라 코를 간질였다.
ㅇㅇ은 청월국행 배에 설레임과 함께 몸을 실었다.
그리곤 보따리를 꼭 준채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았다.
가슴에 나비가 내려 앉아 날개를 펄럭이듯 간질간질한 기분좋은 긴장감에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은빛 부스러기가 출렁이는 초록빛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 바다 끝에는 보고싶은 내 지아비가 있을 것이다.
저 수평선 끝자락에는 찬란하고 행복한 나날들만이 펼쳐져 있을것이다.
포근한 햇살이 깊게 스며든 두 눈을 사르르 감으며 ㅇㅇ은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른 행복에 젖어버린 ㅇㅇ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때 청월국 배를 타지 않았더라면,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백번이고 천번이고 후회할 줄은.
지아비를 생각하며 행복에 찬 그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청월국에서 자신을 반기는 사람은 그토록 보고싶어 했던 따듯한 지아비가 아니라
자신을 찾기에 혈안이된 미쳐 날뛰는 청월국(淸月)의 황제 세훈 일 줄은.
그렇게 하늘은 야속하게도 모든 사람에게 운명의 장부를 감췄다.
-첫 글이네요. 프롤이구요. 하루종일 썼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ㅠㅠ 감상평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