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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입어~"
말꼬리를 주욱 늘리며 짜증스럽게 진환이 말했다. 지원은 입고있던 민소매를 훌러덩 벗어던지고는 진환의 목소리를 못들은 채 했다.
조용할 때엔 마우스 클릭소리도 거슬릴 정도로 소리가 잘 울리는 좁은 연습실에서 고작 제 목소리 하나가 안들렸을리가 없다는걸 아는 진환은 여전히 지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 옷 입어!"
"싫어!!"
뭘 잘했다고 지원은 되려 큰소리르 치며 또 진환을 무시한다.
저 새끼 저대로 뒀다간 정말 저 상태로 연습을 할 작정이구나.
진환은 연습실 바닥에 애처럼 드러누운 채 연습도 그만두고는 짜증을 냈다.
아 얘 옷 안입으면 나 안해. 진짜로.
지금까지 같이 연습한 시간만 다 합해도 3년은 족히 넘는데도 지원의 상의탈의는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덕분에 매번 그런 진환에게 그까짓 상체 좀 깐게 뭐가 대수냐, 하는 잔소리는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리고 진환은 그 얘기를 들을때마다 한결같은 대답을 했다.
"..바비가...벗으면 몸이...그...짜증나 그냥."
이 허무한 대답에 대부분은 대답한 사람이 되려 황당해서 웃고 넘어가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질문에 진환도 점차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진환은 본인도 자신이 이상하리만치 그의 탈의에 예민하다는걸 알고있었다.
그냥 지원이 옷을 벗을 때마다 자꾸 눈이 가면서도 그 사실이 불편한게 짜증이 났다.
사춘기 남자애들이 볼일을 보며 서로 가리고 민망해하는 것과는 달랐다.
지원이 옷을 벗을때마다 진환은 그의 몸에 시선을 박고는 어느새 은근히 찬찬히 훑기도 하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아닌 척 고개를 돌리거나 옷을 입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정확히는 진환은 그럴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매번 고민하고 있었다.
"이열~ 바비형 복근 있는데?"
"오오오오 벽돌인줄 알았어! 대애박."
지원은 아직까지도 옷을 입지않고 뻐기고 있다. 윤형이 다가와 그의 배를 콕콕찌르며 농담을 하자 어느새 동참한 동혁도 칭찬인듯 아닌듯 뿌듯하게 웃는 지원을 놀렸다.
참다못한 진환이 한마디 더 하기도 전에 한빈의 지휘로 연습은 다시 시작되었고 진환은 껄끄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시선만 바닥에 꽂은 채 몸을 움직였다.
다행이도 평소같았으면 그의 눈빛 하나도 지적했을 한빈은 진형의 춤을 손봐주느라 진환을 크게 지적하지 않았다. 진환은 연습에 집중하다 보니 점점 지원에게서 신경이 꺼진 채 연습에 몰두할 수 있었다. 진환이 동작 하나하나 세심하게 점검할 동안 지원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진환은 누가 나갔는지도 못 본채 물을 마시러 방음처리된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땀에 젖은 머리칼을 한 지원이 고개를 돌리고 서 있었다.
"어 진환이 형. 화장실 가게요?"
"어? 아니 나는 물 마시러..."
"그렇구나."
옷을 입지 않은 지원이 몸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진환은 순간 그의 모습이 흡사 조금 부적적한 잡지의 남자모델같다고 생각해다. 많이 까맣지는 않지만 적당히 구릿빛인 몸, 맨들거리는 상처하나 없는 피부, 그리고 선명한 복근이 그의 남자다움을 더 강조했다. 꿀꺽. 진환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거렸다. 수건을 목에 걸친 게 얼핏 사우나에 있는 듯한 지원은 수건으로 금방 화장실에서 가볍게 세수를 하러 간다고 했다. 지원이 화장실에서 나올 때 마주치면 어색할 게 뻔하다고 생각한 진환은 재빨리 정수기에서 컵을 뽑아 물을 넘치기 일보직전까지 따른 후 곧바로 연습실로 향했다. 가서 마셔야지.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환은 화장실 바로 앞에서 지원을 다시 마주쳤다. 넘치기 직전까지 물을 따르느라 걸리는 시간은 계산못한 것이 문제였다. 누가봐도 어색한 표정으로 지원을 마주한 진환은 고개를 돌려 물컵만 빤히 바라보며 연습실을 향해 걸었다. 그러고보니 나 어색해하는거 너무 티나는 것 같다. 아까 동혁이처럼 칭찬이라도 해주는게 낫겠다 싶어 용기를 낸 진환이 지원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응?"
진환은 말을 골랐다. 어떤말을 해야 안어색할까. 어떤말이 자연스러운 칭찬일까. 의식하는걸 티내면 안돼.
"너 몸이..되게 좋구나..?"
아 망할. 이 순간 김진환은 망했다. 본인이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뉘앙스로 말을 뱉어버린 진환은 자신의 어리석은 조동아리를 탓했다. 문장 자체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정말 문제였던건 진환의 말투였다. 방금까지 추던 격한 춤 탓에 약간은 거칠어진 호흡에다 민망함에 붉어진 얼굴은 진환을 미친게이로 전략하게 만들기 딱 좋을만큼 조화로웠다. 때마침 진환은 지원의 수건을 들어주려 손을 그의 탄탄한 팔 쪽으로 향한 상태였다.
"어...."
"......."
"장난이야?"
"그게..."
"별걸 다 야하게 말하는 재주가 있네."
"...뭐?"
잠깐이 정적이 흘렀다. 정말정말 짧은 한순간의 정적은 지원의 웃음소리로 깨졌지만 진환에겐 그 멍한 순간이 영원인 듯 길었다.
"으하하!! 형 이렇게 야해! 깜짝이야!"
"하하..하..."
"형 먼저 들어가. 나 뭐 살꺼 생각났다."
"응..."
"한빈이한테 말좀 해줘."
기가 빨린 듯 힘이 풀린 진환은 연습실 문을 닫자마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미쳤지 내가....."
진환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쪽팔림에 몸부림칠 동안 슈퍼에 간다던 지원은 자신이 들어갔다 나왔던 화장실로 다시 들어가 칸막이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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