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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 다이어리
    시즌 봄.




    2화. 2010년 3월 5일


  기는 분명히 하루마다 써야하는데 어제는 너무 피곤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어제 친구 비스무리 한게 생기다 만 것 같았다. 물론 다른 이들과 비슷하게 마음의 영혼을 공유한다거나, 집안 비밀을 다 얘기할 수 있다거나, 위험할 때 도와준다거나.. 뭐 그런 친구는 아니고, 그냥 겉보기에 얼핏 얘네 둘은 말은 할줄 아는 사이구나. 정도. 가끔, 인사는 할 수 있을사이. 이런 정도였다. 남우현은 생각보다 착했고 단 한마디도 없는 내 앞에서 자기혼자 말을 열심히 해댔다. 이것 저것 여러가지 부분을 물어보기도 하고, 취향이 뭐냐, 잘하는게 뭐냐, 등 여러가지 호구조사를 하듯 캐물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입을 꿈쩍 안한 채 그저 고개로만 답했다. 이런 내 모습에 질려서 당장이라도 담임선생님 한테 달려가서 '나 얘랑 도저히 못 친해지겠다. 나는 얘 관할이 아니다..' 등 포기하는 어순을 취해주길 바랬지만 얼굴에 철판을 몇개나 깔았는지 열심히 묵묵부답인 내 앞에서 떠들었다. 남자들이 자주 한다던 여자 얘기도 가끔 하고, 외모로 보기에는 완전한 바른생활 어린이지만, 내 예상대로 남우현은 여자경험이 몇번 있어보였다. 가슴앞에 움푹한 손 모양을 만들며 빈 공간에 헛손질을 하며 가슴을 나타내어 좀 크면 좋잖아ㅡ 등의 헛소리를 내뱉거나,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고 예쁘다, 하고 가끔씩 감탄도 했다. 그게 내 어제의 사람 감상기였다.

  어제의 일을 회상하자면, 우선 맨 처음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뭐 먹을래? 하는 질문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지금 하고싶은건 조용히 서점에 들려 책을 사고 근처 토스트집에서 갓 구워진 토스트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건데.. 너가 다 망쳤어. 원망스런 눈길을 보내봐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일식집? 아니면 철판 볶음밥? 고민하던 도중 결국 남우현은 조금 비싸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순간 발이 멈칫, 했다. 여기서 만약 돈을 내고 밥을 먹게 된다면 이번달 생활비가 완전히 탕진될지도 모른다. 그럼 내 히가시노 게이고는? 내 빨간표지는? 안돼! 마치 석상처럼 굳은 발을 땅에 뿌리내리고,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러자 내 팔을 잡아 끌려던 남우현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여태껏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왜?' 라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가게 바로 앞에 놓여있는 책 형식의 메뉴판으로 돌렸다. 그리고 남우현 역시 같이 눈동자를 돌렸다. 그제서야 남우현은 다시 힘으로 내 팔을 잡아 끌며 얘기했다.

  ㅡ 야, 여기 별로 안 비싸, 그리고 만약 모자라면 내가 내면 되잖아.
  ㅡ .....

  그리고 난 다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남에게 빚지는건 더 더욱 싫어, 세차게 고개를 저어봐도 남우현은 두 팔로 내 한쪽 팔을 잡아 끌었다. 땅을 붙잡듯 뿌리를 내렸던 발이 순식간에 뽑혔다. 안 돼!. 검정색 캔버스화가 땅에서 소리를 내며 끌리고, 검정빛 조명이 아득하게만 보이는 식당으로 향했다. 가게 바로 앞에선 단정하게 검은 정장을 입은 웨이터 누나가 첫번째로 눈에 들어왔고, 남자 둘이 들어오기에는 조금 어색한 은밀한 조명만이 레스토랑을 밝히고 있었다. 성큼성큼 발을 움직여 끝자리에 가서 먼저 앉은 남우현이 멍하니 식당을 구경하는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한숨을 안으로 내쉬고, 조용히 맞은편에 자리했다. 남우현은 능숙하게 메뉴판을 펼쳐들었다. 스프링 고리로 연결된 코팅된 메뉴판이 두껍게 넘겨지는 소리가 들리고, 남우현은 순조롭게 아까마냥 입을 열었다.

  ㅡ 뭐 먹을래? 밥? 스파게티? 피자?
  ㅡ ....피자
  ㅡ 어, 야, 너 떠먹는 피자 먹어봤냐, 그거 내 전 여자친구가 엄청 좋아했는데, 나도 몇번 따라 먹었는데 맛있더라.

  또 다시 말에 대한 응답으로 고개를 저었고, 남우현은 여러 음식을 보더니 자기가 먹고싶었다던 로제 파스타를 골랐다. 곧 남우현이 바로 옆 벨 버튼을 누르자 아까의 예쁜 웨이터 누나가 구두 소리를 내며 상으로 다가왔다. 환한 미소와 함께.

  ㅡ 네, 주문하시겠어요?
  ㅡ 크림 고구마 떠먹는 피자랑, 해산물 로제 파스타 하나요.
  ㅡ 아, 손님, 죄송하지만 지금 크림 고구마 떠먹는 피자 주문이 불가능 하신데, 비슷한 철판 피자로 교환하여 보내드려도 될까요?

  안돼요? 아쉬운 표정으로 되묻는 모습이 마치 먹이를 바라던 어린 새 같았다. 여자 웨이터는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남우현은 고민하더니 곧 철판 피자로 바꿔 주문하고, 동그란 그릇 하나를 추가시켰다. 나는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만 보다가 이내 고개를 떨궜다. 항상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숨막히고 어색했기 때문에 이 어색함이 달리 느껴지는 부분은 절대로 없었다. 그래도 동급생과의, 그것도 남자애와의 식사에 막상 할말도 없으려니, 조용히 앉아 남우현을 쳐다보는 것 밖에는 할일이 없었다. 고등학생 치고는 날렵하고 시원시원하게 생겨서 인기가 많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주문이 끝나자마자 녀석도 어색했는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들어 마구 터치질을 해댔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달리 알 수는 없으나 입가에 미소를 띄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아마도 여자이려니,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나 참 여자에 늦되구나. 믿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서야 결혼은 할려나, 하늘나라에서 아빠가 보고있을텐데. 열 여덟살 먹고 믿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밖에 없다니. 조용하게 남우현을 쳐다보며 생각을 안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곧 남우현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ㅡ 할말 있어?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ㅡ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할말 있는 줄 알았네.. 내 앞에서 입은 안 열 생각이야? 물론 억지로 친해지는게 싫으면 이해는 할 수 있는데, 그래서야 내가 선생님한테 보고할게 없잖아, 너는 이런걸 좋아하고, 이런걸 싫어한다 등..
  ㅡ .....그걸,
  ㅡ 응?
  ㅡ 그걸 왜 니가 선생님한테 말해야 하는데?

  그거야 시켰으니까지, 당황스러움이 서서히 풀리는 웃음을 보여준 남우현이 몇 초 더 이어서 어색하게 웃었다. 남과의 화법에 다정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내 말이 아무래도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빠르게 사과를 하고 싶었는데, 곧 '그게 아니면 왜 여길 왔겠냐,' 하는 둥의 변명이 이어져 타이밍을 놓쳤다. 일부러 상처를 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까만해도 모터가 달려 빠르게 말하는 것 처럼 보이던 입이 굳게 다물렸다. 현재의 나는 예전에 엄마가 떠나고 나서의 내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처음 만나던 아이들을 떼어놓았을때 처럼. 사람은 상처를 받지 않으면 자기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 자각을 못한다는 생각에, 남겨두었던 퉁명스런 말투는 여전하게도 남아있었다. 남우현이 다시 큼지막한 스마트폰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타자를 치기 시작하고, 나는 아까 감상하던 남우현의 얼굴 마저도 못보게 되자 그저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또 어릴때의 생각을 반복해서 뇌에 각인시켰다. 오늘로 끝내야지, 이렇게 나가야지.
  곧 여자 웨이터가 검정 구두를 움직여 음식을 들고 우리 앞에 자리했고, 토핑이 가득한 철판 피자가 눈 앞에 보였다. 그나마 빵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곧장 하나 집으려니, 남우현이 내 팔을 저지시켰다. 왜? 하는 표정에 남우현은 그저 기다려봐, 라는 짤막한 대사를 끝으로 피자 위에 놓인 토핑들을 마구 긁어내어 받은 동그란 그릇에 담아냈다. 마지막 8조각 째 전부 토핑을 담아내니 동그란 그릇에 치즈와 토핑이 가득 쌓여있었다.

  ㅡ 이렇게 먹으면 떠먹는 피자 맞지?

  의외의 생각에 나는 조용히 옆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가득 담긴 치즈에 숟가락을 조금 밀어넣어 들어내니 치즈가 쭉 하고 올라왔다. 한 입 입으로 넣으니 고구마 피자 답게 단 맛이 올라왔다. 맛있다. 속으로 두어번 생각했다. 정말로 맛있었다. 한 입을 전부다 삼키기도 전에 나는 숟가락을 다시 넣고 치즈를 들어올렸다.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호의에 또 가슴 안쪽이 아리듯이 시큰해졌다. 나는 강해지려고 애를 썼지만 의외로 경험이 없어서 소소한 거에 잘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걸 알기 때문에 고맙다는 말 조차도 쉽사리 꺼내지 못했다. 엄마의 대사가 다시 떠올랐다. ㅡ "모르니? 사람은 언제나 '~척'을 할수 있는거야". 남우현의 정성인지, ~척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내 머리처럼 오묘한 맛이 나는 피자를 몇 번 퍼먹고, 나는 조용히 남은 그릇을 남우현에게 넘겼다.
  그 후는, 아까의 내 말 때문인지 남우현의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몇 안되는 말수에 고개로 응답하다가, 어딜갈까 고민하며 거리를 떠돌아다닌게 끝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갈데가 없다는 걸 깨달은 듯 싶었다.

  그렇게 곧, 떠돌아다니던 그 거리에서 우리는 사라졌다.


   **



  그리고 오늘, 학교에 등교했다. 새학기가 시작되어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씨에 여전히 동그란 안경을 고수한 채, 그리고 조금 쌀쌀한 날씨에 후드집업을 걸친 그대로, 봄바람을 맞으며 교단을 걸었다. 벚꽃이 이르게 필 상황은 아니지만, 곳곳에 꽃봉오리가 여물고 있었다. 주위 학생들의 모습은 주번이었는지, 몇몇은 교문을 통과하며 지각이라는 말을 외쳐댔고, 몇몇은 핸드폰 게임을 하며 등교하는 사람, 나 처럼 음악을 듣는 사람, 아이들과 시끄럽게 수다를 떨며 등교하는 사람, 똑같은 교복, 비슷한 키를 가진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불량 학생을 잡기 위해 서있던 남자 주임 선생님은 딱 봐도 타이트한 하의를 몇몇 골라내었으며, 튀는 머리색의 아이들은 이미 주임선생님 옆에 엎드려 있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교문을 지나쳤다. 7시 48분,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 신발을 빠르게 갈아신고, 하교할때 눈치챘던 여자학생들의 반을 지나, 뒷문으로 조용하게 등교했다. 벌써 등교한 아이들 반은 공부에 힘쓰고 있었고, 반은 시끄럽게 어제의 일을 수다로 풀어냈다. 나는 조용히 제자리에 앉아 창밖에 등교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귀에 꽂았던 MP3 이어폰을 빼고, 아침 조회를 위해 반으로 들어오는 선생님의 모습을 봤다.
  또, 눈이 마주쳤다. 결석 여부라도 체크하는건가, 곧 남우현이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네고, 우렁찬 목소리들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난 여전히 마임 수준이었다.

  ㅡ 오늘 졸업앨범 구매 여부 설문지 배부하는데, 기왕이면 좀 다 사라, 어? 아까운거 아니잖아, 나중에 이거 다 추억이야 추억, 살거면 유인물에 표시해서 반장한테 주고, 자 1분단 부터 돌려.. 알아서 잘 쓰고, 수업 잘 듣고, 그외 알림사항은 따로 없으니 조회 끝나고 반장 교무실로 와. 이상.

  성질 답게 급한 조회가 끝나고, 남우현은 교실을 나가고, 나는 또 생각했다. 졸업앨범이라, 딱히 필요는 없는데, 나중에 보면 괜찮지 않을까. 하나 살까, 어차피 내 돈도 아니니까.. 유인물이 각 분단에 배부되자마자 아이들은 급하게 설문지를 넘겼다. 세번째 자리인 나는 두번째 애가 뒤돌아보지도 않고 팔로 넘기는 설문지를 받으려 일어서야 했다. 내 손이 닿는걸 느꼈는지 두번째 아이는 손을 놨고, 타이밍에 맞게 잡지 못한 나로 인하여 몇 장 남은 유인물이 바닥에 흩어지듯 떨어졌다. 벌떡 일어나서 잡으려는데 책상 의자에 걸린 유인물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아, 이런. 두번째 아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멀뚱히 쳐다보더니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래도 좌악- 하는 소리와 함께 찢어진 유인물을 본 모양이다. 원래 이렇게 차분하지 못한 성격도 아닌데 새학기부터 하나도 안 풀리네, 별로 좋지 못한 표정으로 우선 쭈그려 앉아 유인물을 주웠다. 마지막 찢어진 한 장 까지, 벌떡 일어나니 두번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두번째 아이는 곧 눈짓으로 찢어진 유인물을 가리키더니 말했다.

  ㅡ 그거, 니가 담임한테 가서 하나 더 받아와.
  ㅡ ....

  나는 조용히 주운 유인물을 책상 위에 놓고, 찢어진 한 장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 첫 수업시간까지 아직 5분정도는 여유가 있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조용하다, 못생겼다, 느낌을 팍팍 주니 아이들이 조금 무시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차라리 아이들과의 친우관계보다는 나으니까, 검정색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반에서 나온 나는 바로 아래층에 위치한 2학년 중교무실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 중간 문을 바로 열면 있다고 했나, 마지막 계단에 발을 디디고 중교무실 문을 열자마자 남우현의 볼멘소리가 크게 귀를 울렸다. 아니 도대체 석상가지고 얘기를 하라는 거에요? 강한 불만이 예상되는 걸 보니, 어제 안좋게 끝난 만남이 문득 생각났다. 혼자만 열심히 웃어주던 모습, 억지로 떠먹는 피자를 만들려 노력했던 모습. 아무 반응 없었던 것의 대가인가?

  ㅡ 아니, 선생님 걔랑 말 해 봤어요? 걔는 그냥 석상이라니까요, 일주일에 한번씩도 고역이에요. 아무리 반장이어도 반 애들 각각 전부를 챙길 수는 없는거잖아요.
  ㅡ 그런애들이 원래 너같은 애들을 좋아하는거야, 겉으로는 말 안하지만 사실은 너랑 친해지고 싶을걸?
  ㅡ 무슨... 그건 진짜 말도 안돼요, 그랬으면 어제 조금 말이라도 했을거에요. 어쨌든 한 달에 한번으로 줄여주세요, 제 개인 사생활은 없어요? 그 애 한번 만나려고 하루를 투자하려면 여자친구한테 얼마나 혼나는데요.

  유인물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결론이 났다. 남우현은 어제 '척'을 했던 거다. 반장이라는 직위에 맞게 학우를 챙기기 위한, 착한 '척'. 어쩌면 정말로 나는 선생님이 말한 기대에 맞게 남우현이 착한 아이였다면 운 좋게 친구 하나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친구와 어색한 관계를 잇기 싫어 억지로 대화얘기를 생각한다던가, 그런 피곤한 짓도. 어쩌면 했을 수도 있었을거다. 미세한 기대는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나는 조용히 떨리는 손으로 찢어진 유인물을 붙들었다. 엿듣던 귀가 교무실에서 떠나지 않고, 여전히 불만소리가 터져나오는 남우현의 입을 붙잡고 있었다. 떨어져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야속하게도 귀는 단어들 전부를 잡아먹었다. 다 찢어진 유인물을 들고, 그만듣고 싶어 조용히 중교무실 문을 닫았다. 이렇게 실망스러운 느낌이 드는 걸 보면 난 아마 또 기대를 했던 모양이었다. 미세히 떨리는 손을 혼자 붙들고,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이 유인물은 교환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또 졸업앨범을 구입하지 않을 테니까, 이 찢어진 유인물은 다시 교실로 돌아와, 내 책상서랍에 그대로 남았다.



   **



  점심시간, 나는 여전히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혈기왕성한 신입생들은 축구공을 마구 괴롭히며 운동장을 횡단하듯 뛰어다녔고, 나는 조용히 펜을 꺼내들었다. 지나치게 아리는 이 감정이 뭔지 알고 싶었다. 종이를 꺼내 짜증, 분노, 배신감 등의 나쁜 단어들을 적었다. 그래, 아마 천편일률적으로 드는 생각들이겠지. 검정펜으로 썼던 단어들을 쳐다보다가 곧 손으로 마구 구겨냈다. 구겨진 종이가 덩그러니 황토빛 책상 위에 놓이고, 나는 다시 연습장 하나를 찢어냈다. 그리고 '남우현' 이라는 세 글자를 쓴 후에, 다시 종이를 마구 구겼다. 차라리 이렇게 해서 이 느낌이 사라질 수만 있다면 나는 연습장 전부를 남우현으로 채우고 태울 생각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편하게 지낼 상대가 필요한게 아닐까?, 속으로 생각하다가 곧 마음을 접었다. 그런 생각은 엄마가 집을 나설때부터 버리기로 했으면서, 한 차례 '사람'이라는 폭풍이 왔다가면 또 나는 흔들리고 만다. 문득 모두라는 집단이 그리워질때면, 또 이렇게 아린 느낌이 든다. 그리고 텅 빈 바로 앞자리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다시 얼굴을 사각으로 만든 양 팔 안에 가뒀다. 그렇게 잠이라도 자려는데, 누군가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톡톡 건드렸다. 나는 가만히 있으려다가, 곧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어제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ㅡ .....
  ㅡ 자게?

  어제완 다르게 안경을 벗은 모습의 책을 보던 아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는 어제마냥 다시 내 앞에 앉았다. 방금 아린 느낌에 종이를 구겼는데, 이 아이와는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방금의 결심을 굳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나는 다시 양 팔 사이에 얼굴을 가뒀다. '너랑 대화하지 않겠다.' 는 간접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아이는 포기도 없는지 몇 번 계속 내 머리를 찔러왔다. 조용히 찔러오는 느낌에 결국 짜증스러운 몸짓으로 고개를 들었다. 안경 안에 갇혀있는 작은 눈으로 노려보니 개구장이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ㅡ 어제 그 책, 샀어?
  ㅡ .....
  ㅡ ...너 자꾸 말 안하면, 아까 한 짓 나 다 봤는데, 반장한테 다 이른다?

  아까 내가 '남우현' 이라고 쓰고 구겨버린 장면을 본 모양이었다. 결국 유치한 협박으로 인해 나는 입을 열었다.

  ㅡ ... 안 샀어.
  ㅡ 봐봐, 비싸지? 내가 빌려준다고 할때 받지,
  ㅡ 오늘 살거야.

  오기에 못 이겨 대답하자 남자는 호탕한 웃음을 지어댔다. 달린 하얀색 명찰에는 '이호원' 이라고 적혀있었다. 딱 봐도 운동도 열심히 하고 사교성도 좋아보이는 아이가 왜 하필 여기로 와서 대화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웃음이 만개한 모습 앞에 나는 조용히 다시 양 팔에 나를 가두려고 했는데, 호원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책 다섯권이 내 책상 위에 올려졌다. 저자의 이름에는 전부 히가시노 게이고가 적혀있었다. 두 권 정도는 집에 있는 책이었다. 딱 비닐 포장지가 덮혀 있는걸 봐서는 새 책 같은데, 가격도 나가보이는 책들을 어디서 난 거지? 의문점이 들어 먼저 입을 열었다.

  ㅡ 다 산거야?
  ㅡ 아니, 너 주려고 갖고온거. 우리집 서점이라.

  비닐 포장지가 내리쬐는 햇빛을 반사시켜 빛나고 있었다. 하나하나 책을 내려놓으며 호원이가 말했다.

  ㅡ 너 히가시노 게이고 좋아하지? 나도 존나 팬.
  ㅡ ....
  ㅡ 취미 맞는 사람 이제야 찾았네.

  밝게 빛나는 웃음이 시야에 가득 차고, 나는 곧 무엇인지 모를 안도감에 눈물이 흘렀다. 어, 야 울어?! 하는 당황스러운 호원이의 외침이 들리고, 나는 무어라 변명도 하기 전에 이호원의 손길로 얼굴을 박박 닦여야 했다.
  책상 서랍안에 있는 찢겨진 유인물도, 나도, 단 한번의 실수로 오늘은 울었다.







@ 소설 연재주기는 매주 토/일로 생각하지만.. 일찍 끝나면 내키는대로 올릴수도 있어여

@ alone....을 합치면 무슨 주소가 나타나는데 거기로 가면 5분정도 빨리 읽을...수도? 댓글 달아주시면 펑할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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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제리님!!!!!!!!!!!!!!!!!!! 제뤼님!!!!!! 나 ㄷ또 잋능할거야!!!!!!!!!!!!!!!!!!!!!!!!!!!!!!!
9년 전
독자4
작까님 지눠여 지워 아.... 세상에 너무 좋다 아니 진짜 제리님 왜 픽마다 다 저를 너무 취향저격하지? 1편부터 브금도 딱 어울리고 너무 조아ㅏ여.. 날씨는 겨울이지만 이글 읽을 때는 봄 같아요.. 근데 우현이..ㅠㅠㅠㅠㅠ우현이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뭔기ㅏ 찡해.. 성규도 짠하고ㅠㅠㅠㅠㅠㅠㅠ모두라는 집단이 그리워질때면 여기가 너무 좋아요 8ㅅ8 근데 호원이 반전ㅋㅋㅋㅋㅋㅋ서점 아들.... 세상에.. 호원이 현실 친구 하고 싶다 저기 그 책 나도 일ㄱ을 수 있어 나도 책 좀 가져다줄래...? 성규가 아니라서 암되니....?ㅠㅠㅠㅠㅠㅜㅠ서점 아둘이라니 진짜 세상에다 성규랑 친해질 자격이 있네요 아니 근데 성규 우는거ㅠㅠㅠㅠㅠ엉엉 뭔가 동그란 안ㅕ경 쓰고 저러는거 상상돼서 씹덧ㄱ.. 윽....ㅠㅠㅠㅠㅠㅠㅠ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제리님 사모해요... 사룽해...♥♥♥ 아코 훕네다 더블ㄹㅎ유에이치오!
9년 전
제리
앜ㅋㅋㅋ계속 넣고 있었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좀 사격장에 다녀서요.. 저격을 잘....죄송해여 맞아여 그걸 노렸다! 봄이라고 생각하길 바랬다! 하하하 맞아요 사실 저 이상형이 서점아들ㅋㅋㅋㅋㅋㅋ맞아여 동그란 안경쓴거 씹덕 흑흑 자체가 씹덕이긴 한데 엘리트 모델할때로 다시 돌아가줫! 이런 존재자체가 씹덕스러운 사람같으니ㅠㅠㅠㅠ엉엉 항상 좋은 댓글 감사해여 후님도 제가 사룽사룽♡
9년 전
독자7
사격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심인줄 알았잖아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9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9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9년 전
제리
ㅋㅋㅋㅋ이제 별님으로 바뀐 다별님 안녕하세엿ㅋㅋㅋㅋㅋㅋㅋ이런... 저도 잠깐 그생각하긴 했는데 뭔가 동급생끼리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ㅋㅋㅋㅋㅋㅋㄷ다음에는 선생x학생도 괜찮을듯여! 아니면 역으로도 ㄱㅊㄱㅊ 금욕적인 선생님 성규한테 딱이네여 하악.. 앗 죄송합니다 저 변태 아닙니다... 아니에요 하하..... 댓글 감사해요!!!!
9년 전
독자5
헐헐 작가님!!! 저 오형인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와 찾았어요!!!! 우와 신기하다ㅋㅋㅋ맨날 못찾았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성규 우는거 슬퍼ㅠㅠㅠㅠ 우현이는 정말 그나이때 남자애 같네요ㅋㅋㅋㅋㅋㅋ호원이는..의외다.. 나는 동우일줄 알았는데ㅋㅋㅋㅋㅋㅋ 둘이 얼른 친해졌으면ㅠㅠㅠ 성규 혼자있는거 맘아프다ㅠㅠㅠ작가님이 쓰신글은 다 좋아요ㅠㅠㅠㅠㅠ 그래서 내가 아직도 작가님한테 붙어있나보다^^ㅋㅋㅋㅋㅋㅋ
9년 전
제리
오형님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입니당ㅜ.ㅜ 제가 너무 숨어다녔네요 앞으로는 공표하고 다니겠슴다 이름표도 떡하니 써붙이고 다닐게여..... 홈도 동맹에 걸게요.. 근데 동맹 사이트를 모른다는게 함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도 독자분들이 써주시는 댓글 넘넘 좋아여 주식인듯 냠냠!! 항상 붙어있어 주세여 답으로 뽀뽀 백번 해드릴게여 <333
9년 전
독자6
하...여신자까님 저는 한달전에 이미 자까님 홈 찾았지요옹 뭔가 알 수 없는 우월감이 느껴ㅈ....
우리 규 내색은 안 했었어도 많이 힘들었나봐요 흑... 앞자리 호워니 다정다정하고 좋네용ㅎㅎ 우혀니는 뭔가 학창시절 주위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남학생 같네용(여고 다녔어서 상상만...)

9년 전
제리
하... 여신독자님 안녕하세여...... 혹...혹시 구글링? 구글을 잘 이용하시는 그분? 고마워여... 나 무지 외로웠는데...
ㅋㅋㅋㅋㅋ여고라니!! 여고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저희는 남녀합반이긴 했는데 이 글 배경은 남녀공학이지만 각반! 이라 남고의 느낌이 드실겁니다 후후 대리만족 확실하게 시켜드리죠 헤헤 항상 댓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ㅜㅜ♡

9년 전
독자8
앗 구글링 기억하고 계셨구나 ♥.♥
외로우셨다니... 자주 놀러가야겠으여! 여신자까님을 위하여 //3//
그럼 전 이만 남고 느낌을 대리만족하러 슝슝 가보겠어요 후후훟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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