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열 본부장님 02 (부제: 재수 없는 하루) "김사원은 패션 감각이 정말 꽝인 것 같습니다. 꽝." "그 옷집 구멍가게라 옷도 제대로 못 만드나. 어떻게 입는 옷마다 다 주워 입은 천 같은 겁니까?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앞으로 평생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들을 일이 없어졌다며 좋아했었는데. 현재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된 나는하루도 빠짐없이 비슷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본부장님 판 '훈화 말씀' 이 훨씬 직설적이고 기분 나쁘지만. 회사에 들어서자 내게 하는 말이 업무와 관련된 얘기가 아닌 내 옷 얘기였다. "정과장님도 저랑 비슷하게 입으셨고, 김대리님도 저처럼 입으셨는데요...." "과장, 대리랑 김사원이 같습니까?" 나름 반박이랍시고 자신 있게 대답했는데 박찬열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여도 과장이랑 대리랑 다른 건 맞으니까. 툴툴거리는 나에게 다음부터는 차라리 이불을 꽁꽁 둘러매고 오라며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가버린다. 박본부장이 나가고 대체 이불을 둘러매고 오라는 건무슨 소리인가 한참 고민하다가 쓸데 없는 짓임을 자각하고 자리에 앉아 회의에 필요한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일에 있어서 깐깐한 박찬열한테보고서 때문에 잔소리 듣기 싫어서 이것저것 고민하고 있던 찰나 오세훈이 다가왔다. 넌 죽었어ㅎㅎ^^ "어제 뭐래?""뭐래?""뭐래?" 업무할 때도 그러더니 점심시간 때까지 똑같은 질문만 열 번째다. 자기랑 얘기하기 싫어서 그러는 건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이대로 두면 퇴근이고 뭐고 집에 가서도 물어볼 기세라 어쩔 수 없이 대답해줬다. 니가 번호 알려준 덕분에 모닝콜 서비스 받았다고. 미안해하는 기색 없이 깔깔깔 넘어가는 오세훈에 머리통을 한대 쳤다. 매를 벌어요. 오늘 아침에 그 남자한테 들은 잔소리를 불평하듯 말하니까 숨이 넘어가게 웃더니 이내 분위기를 살피고 다시 웃음기를 갈아앉힌다. 계속되는 내 불평이 지겨웠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내 말을 끊더니, "야." "있잖아. 때리지 마." 대체 무슨 기막힌 얘기를 하려고 때리지 말라고 하는 건가 싶어서 가만히 들었다. 안 때리겠다고는 했지만 왠지 내가 오세훈을 안 때릴 것 같다는 보장은 없었다. " 둘이 존나 부부같애" 오세훈은 말을 꺼냄과 동시에 팔을 올렸고 맞을 준비를 했다. 어젯밤에도 빅엿을 선사해주더니 오늘도 어김없이. 오세훈에게 그 남자랑 내가 왜 부부 같은지 논리적인 이유를 대지 못하면 반 죽여놓을 거라는 엄포를 놓자 박찬열이 대놓고 그러지 않아서 모르는 거겠지만 날 은근 걱정해주고 챙겨주는거 같이 보인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늘어놓다가 발로 한대 차고 휴게실을 나왔다. 오늘은 누가 이상한 소리 하는 바람에 생각만 많아져 왠지 밥 생각도 안 났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회의에 들어가서 오세훈과 나는 회의실 맨 구석에 찌그러져 앉아있었다. 자꾸 옆에서 툭툭 치는 오세훈에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치고 회의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 진짜 둘이 잘 어울려 " 오세훈이 내게 박찬열이랑 잘 어울린다고 한 것에서부터 박찬열은 어떤 여자를 좋아할까, 그의 연애 스타일은 어떨까로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박본부장님 생각만 떠다녔다. 회의에 집중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박찬열의 얼굴을 보면서 멍 때리고 있었다. 저 잘생긴 얼굴에 말만 안 하면 딱 좋을 텐데...... "김사원. 집중하고 있는 겁니까?" 결국 박찬열한테 걸려버렸다. 나 혼자 본부장님 얼굴 보고 이상한 생각을 하다가 들킨 것 같아 감출 수 없는 당황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한 박찬열이 내가 집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트집 잡아서 냉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만데 그러고 있냐며, 이럴 거면 그 자리에 앉아있지 말라고. 이번 회의만큼은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나의 당찬 포부가 모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상사들이 보는 앞에서 무시하는 박찬열이 밉기보다, 그냥 내 자신이 미웠다. 쪽팔리고 창피한 마음에 개미구멍에라도 들어가서 숨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숨을 곳은 없었다. 허무하게 회의가 끝나버렸고 오세훈과 박찬열 빼고 모두가 나가버렸다. 별거 아닌 일인 것 같았지만 괜히 복잡해진 마음에 본부장님의 시선을 피하고 오세훈을 따라나갔다. 축 처진 내 어깨와 십 년은 늙은 것 같은 얼굴을 보더니 어깨동무를 하고 장난스럽게 술 사주겠다고 하는 세훈이에 억지로 웃었다. 내 기분 풀어주려고 눈치 보면서 장난치는 게 훤히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우울한 하루를 겨우겨우 견뎌냈다. 박본부장이랑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피해 다녔고, 설령 마주친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기 위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원래 회사생활이 이런 거라고 하는 오세훈의 위로는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첫 회의인 만큼 준비도 열심히 했는데 기대에 못 미친 내 자신이 너무 실망스럽고, 그럴 거면 여기 있지 말라던 본부장님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는 마음에 의욕을 잃어버렸다.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만.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해서 술 말고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이라도 하려고 세훈이랑 같이 퇴근할 생각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서류 결재를 받아야 한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하던 세훈이가 인상을 쓰면서 나오더니, 너 야근이래.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니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는 모습에 괜찮다고 했지만 계속 기다리겠다는 말에 제발 가달라고 부탁하니까 그때야 회사를 나섰다. 생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본부장님이랑 둘이 야근이라니. 망연자실하며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김사원. 나 할 말 있는데요." 정말 나 잘리는 건가. 진짜면 울고불고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무실에 들어갔다. 의외로 박찬열의 말투는 아까 회의 때처럼 공격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정한 편에 가까웠달까. " 내가 잔소리하는 거 괜히 그러는 거 아니에요. 나중에 아무 생각 없이 회사 다니다 상사들한테 한 소리 들을까 봐 그러는 건데." 참나, 별걱정을. 이미 너한테 크게 한소리 들었는데. 짜증 나는 마음에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대고 있다가 문득 아까 오세훈이 한말이 계속 떠올랐다. 챙겨주려는 게 존나 부부 같다고 했나. 부부.......챙겨줘.........? "부부.........""네?""..... 우리 부부 같아요?""뭐라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내가 뭐라 했는지 모르고 있다가 박찬열의 웃음소리에 깨달았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엄마, 미안. 오늘은 정말 한강 가야 될 것 같다. 몰려오는 쪽팔림에 얼굴이 뜨거워져서 타버리는 줄 알았다. 아주 지글지글. " 평소에 날 어떻게 생각하길래 그런 질문을 하는 거에요?" 신나서 확인사살까지 해주는 박찬열에 회의 때 있었던 일이랑 모든 게 뒤죽박죽 섞이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그냥 존나게 쪽팔려서. 한번 우니까 감정 조절이 안돼서 그대로 사무실 소파에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이거는 정말 제대로된 해고감이다. 눈물이 눈앞을 가려서 박찬열이 지금 뭘 하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고 보나 마나 날 비웃을게 뻔하기 때문에 보고 싶지도 않았다. 한참 울고 있을 때 어쩔 줄 몰라 하던 박찬열이 갑자기 내 팔을 잡았다. "왜 이래요. 울지 마요, 응? 그냥 놀려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울어버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 "아까 회의 때 있었던 일 때문에 그래요? 사과하려고 부른 건데."" 미안해요, 내가 말이 심했다. 그러니까 나 피하지 말아요." 어설프게 팔을 토닥토닥하며 달래주는 본부장님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울고 나니 상황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도대체 왜 울었지...........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인사하고 나올 수도 없고, 정적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참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가 꼬르륵거렸다. "배 고프죠? 뭐 먹으러 갑시다. 제가 살게요" 오늘은 진짜 재수 없게 쪽팔리는 일만 있는 하루다. 본부장님 앞에서 배고픔을 감추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일부터.... 뭐, 이렇게 밥 얻어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아까는 자기가 산다면서 말 바꾸며 나보고 사라는 본부장님의 말에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자, 안 사주면 울 거 같으니까 내가 사줄게요,라며 웃는다.평소 같았으면 얄미워서 혼자 속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마냥 좋았다. 전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 걸거야.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박본부장님이랑 둘이 뭘 먹을지 정하면서 회사를 나섰다. 물론, 회사 앞에 있는 오세훈의 차는 보지 못한 채. 첫암호닉이라감춰둘것도없지만ㅎㅎㅎㅎㅎㅎㅎㅎ기화♥ (사랑해요)(수줍)
박찬열 본부장님 02 (부제: 재수 없는 하루)
"김사원은 패션 감각이 정말 꽝인 것 같습니다. 꽝."
"그 옷집 구멍가게라 옷도 제대로 못 만드나. 어떻게 입는 옷마다 다 주워 입은 천 같은 겁니까?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앞으로 평생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들을 일이 없어졌다며 좋아했었는데. 현재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비슷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본부장님 판 '훈화 말씀' 이 훨씬 직설적이고 기분 나쁘지만. 회사에 들어서자
내게 하는 말이 업무와 관련된 얘기가 아닌 내 옷 얘기였다.
"정과장님도 저랑 비슷하게 입으셨고, 김대리님도 저처럼 입으셨는데요...."
"과장, 대리랑 김사원이 같습니까?"
나름 반박이랍시고 자신 있게 대답했는데 박찬열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여도 과장이랑 대리랑 다른 건 맞으니까. 툴툴거리는 나에게 다음부터는 차라리 이불을 꽁꽁 둘러매고 오라며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가버린다. 박본부장이 나가고 대체 이불을 둘러매고 오라는 건무슨 소리인가 한참 고민하다가 쓸데 없는 짓임을 자각하고 자리에 앉아 회의에 필요한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일에 있어서 깐깐한 박찬열한테보고서 때문에 잔소리 듣기 싫어서 이것저것 고민하고 있던 찰나 오세훈이 다가왔다.
넌 죽었어ㅎㅎ^^
"어제 뭐래?"
"뭐래?"
업무할 때도 그러더니 점심시간 때까지 똑같은 질문만 열 번째다. 자기랑 얘기하기 싫어서 그러는 건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이대로 두면 퇴근이고 뭐고 집에 가서도 물어볼 기세라 어쩔 수 없이 대답해줬다. 니가 번호 알려준 덕분에 모닝콜 서비스 받았다고.
미안해하는 기색 없이 깔깔깔 넘어가는 오세훈에 머리통을 한대 쳤다. 매를 벌어요. 오늘 아침에 그 남자한테 들은 잔소리를 불평하듯 말하니까 숨이 넘어가게 웃더니 이내 분위기를 살피고 다시 웃음기를 갈아앉힌다.
계속되는 내 불평이 지겨웠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내 말을 끊더니,
"야."
"있잖아. 때리지 마."
대체 무슨 기막힌 얘기를 하려고 때리지 말라고 하는 건가 싶어서 가만히 들었다. 안 때리겠다고는 했지만 왠지 내가 오세훈을 안 때릴 것 같다는 보장은 없었다.
" 둘이 존나 부부같애"
오세훈은 말을 꺼냄과 동시에 팔을 올렸고 맞을 준비를 했다. 어젯밤에도 빅엿을 선사해주더니 오늘도 어김없이. 오세훈에게 그 남자랑 내가
왜 부부 같은지 논리적인 이유를 대지 못하면 반 죽여놓을 거라는 엄포를 놓자 박찬열이 대놓고 그러지 않아서 모르는 거겠지만 날 은근 걱정해주고 챙겨주는거 같이 보인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늘어놓다가 발로 한대 차고 휴게실을 나왔다. 오늘은 누가 이상한 소리 하는 바람에 생각만 많아져 왠지 밥 생각도 안 났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회의에 들어가서 오세훈과 나는 회의실 맨 구석에 찌그러져 앉아있었다.
자꾸 옆에서 툭툭 치는 오세훈에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치고 회의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 진짜 둘이 잘 어울려 "
오세훈이 내게 박찬열이랑 잘 어울린다고 한 것에서부터 박찬열은 어떤 여자를 좋아할까, 그의 연애 스타일은 어떨까로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박본부장님 생각만 떠다녔다. 회의에 집중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박찬열의 얼굴을 보면서 멍 때리고 있었다. 저 잘생긴 얼굴에 말만 안 하면 딱 좋을 텐데......
"김사원. 집중하고 있는 겁니까?"
결국 박찬열한테 걸려버렸다. 나 혼자 본부장님 얼굴 보고 이상한 생각을 하다가 들킨 것 같아 감출 수 없는 당황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한 박찬열이 내가 집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트집 잡아서 냉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만데 그러고 있냐며, 이럴 거면 그 자리에 앉아있지 말라고. 이번 회의만큼은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나의 당찬 포부가 모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상사들이 보는 앞에서 무시하는 박찬열이 밉기보다, 그냥 내 자신이 미웠다.
쪽팔리고 창피한 마음에 개미구멍에라도 들어가서 숨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숨을 곳은 없었다.
허무하게 회의가 끝나버렸고 오세훈과 박찬열 빼고 모두가 나가버렸다. 별거 아닌 일인 것 같았지만 괜히 복잡해진 마음에 본부장님의 시선을 피하고 오세훈을 따라나갔다.
축 처진 내 어깨와 십 년은 늙은 것 같은 얼굴을 보더니 어깨동무를 하고 장난스럽게 술 사주겠다고 하는 세훈이에 억지로 웃었다.
내 기분 풀어주려고 눈치 보면서 장난치는 게 훤히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우울한 하루를 겨우겨우 견뎌냈다.
박본부장이랑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피해 다녔고,
설령 마주친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기 위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원래 회사생활이 이런 거라고 하는 오세훈의 위로는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첫 회의인 만큼 준비도 열심히 했는데 기대에 못 미친 내 자신이 너무 실망스럽고,
그럴 거면 여기 있지 말라던 본부장님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는 마음에 의욕을 잃어버렸다.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만.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해서 술 말고 간단하게 맥주 한 잔이라도 하려고 세훈이랑 같이 퇴근할 생각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서류 결재를 받아야 한다며 잠깐 기다리라고 하던 세훈이가 인상을 쓰면서 나오더니, 너 야근이래.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니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는 모습에 괜찮다고 했지만 계속 기다리겠다는 말에 제발 가달라고 부탁하니까
그때야 회사를 나섰다.
생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본부장님이랑 둘이 야근이라니.
망연자실하며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김사원. 나 할 말 있는데요."
정말 나 잘리는 건가. 진짜면 울고불고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버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무실에 들어갔다.
의외로 박찬열의 말투는 아까 회의 때처럼 공격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정한 편에 가까웠달까.
" 내가 잔소리하는 거 괜히 그러는 거 아니에요. 나중에 아무 생각 없이 회사 다니다 상사들한테 한 소리 들을까 봐 그러는 건데."
참나, 별걱정을. 이미 너한테 크게 한소리 들었는데. 짜증 나는 마음에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대고 있다가 문득 아까 오세훈이 한말이 계속 떠올랐다.
챙겨주려는 게 존나 부부 같다고 했나. 부부.......챙겨줘.........?
"부부........."
"네?"
"..... 우리 부부 같아요?"
"뭐라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내가 뭐라 했는지 모르고 있다가 박찬열의 웃음소리에 깨달았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엄마, 미안. 오늘은 정말 한강 가야 될 것 같다.
몰려오는 쪽팔림에 얼굴이 뜨거워져서 타버리는 줄 알았다. 아주 지글지글.
" 평소에 날 어떻게 생각하길래 그런 질문을 하는 거에요?"
신나서 확인사살까지 해주는 박찬열에 회의 때 있었던 일이랑 모든 게 뒤죽박죽 섞이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그냥 존나게 쪽팔려서. 한번 우니까 감정 조절이 안돼서 그대로 사무실 소파에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이거는 정말 제대로된 해고감이다.
눈물이 눈앞을 가려서 박찬열이 지금 뭘 하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고 보나 마나 날 비웃을게 뻔하기 때문에 보고 싶지도 않았다.
한참 울고 있을 때 어쩔 줄 몰라 하던 박찬열이 갑자기 내 팔을 잡았다.
"왜 이래요. 울지 마요, 응? 그냥 놀려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울어버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 ........"
"아까 회의 때 있었던 일 때문에 그래요? 사과하려고 부른 건데."
" 미안해요, 내가 말이 심했다. 그러니까 나 피하지 말아요."
어설프게 팔을 토닥토닥하며 달래주는 본부장님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울고 나니 상황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도대체 왜 울었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인사하고 나올 수도 없고, 정적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참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가 꼬르륵거렸다.
"배 고프죠? 뭐 먹으러 갑시다. 제가 살게요"
오늘은 진짜 재수 없게 쪽팔리는 일만 있는 하루다. 본부장님 앞에서 배고픔을 감추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일부터.... 뭐, 이렇게 밥 얻어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아까는 자기가 산다면서 말 바꾸며 나보고 사라는 본부장님의 말에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자, 안 사주면 울 거 같으니까 내가 사줄게요,라며 웃는다.평소 같았으면 얄미워서 혼자 속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마냥 좋았다. 전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 걸거야.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박본부장님이랑 둘이 뭘 먹을지 정하면서 회사를 나섰다.
물론, 회사 앞에 있는 오세훈의 차는 보지 못한 채.
첫암호닉이라감춰둘것도없지만ㅎㅎㅎㅎㅎㅎㅎㅎ
기화♥ (사랑해요)(수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