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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 아래 나라의 안 저주를 풀기 위해 계집 아이들이 또 한 차례 선발되었다. 게중에는 양반가의 여식女息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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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꽃 제 2장
焉 敢 生 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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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을 묻힌 붓이 곧 하얀 도화지를 검게 수놓았다. 춤을 추듯 붓이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하며 슥슥 무언가를 그려나갔다. 내 옆에서 연신 아가씨 하며 나를 불안한 목소리로 부르던 연이는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 어머니 또는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할까 내심 노심초사 한 듯 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불안해 하는 연이에게 괜찮다며 안심을 시켜주었지만ㅡ 그마저도 매번 하기는 불가능 했다. 처음 그림을 그렸을때는 어릴 적 11살때 , 한창 바느질에 대해 흥미가 떨어질 무렵 내게는 하나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이름 모를 화원의 그림이랴 , 그 화원의 그림을 보고 어찌나 감명을 받았는지. 마을을 쥐잡듯이 찾아 그 화원의 이름을 알고 싶었지만 아는 이는 없었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그 화원이 청국으로 유배가 되었다는 말도 있던데 그것은 설일뿐이니 만날 기회는 더더욱이 사라져갔다. 그래서 나 역시 그 화원을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부터였다. 나는 한낱 계집아이였다. 사내도 아닌 계집아이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도에 어긋나는 일이거니와 그림을 그리는 것은 계집이 정계에 발을 들인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림도 안된다, 무예도 안된다, 하물며 모든 것이 안되는 지금 이 나라의 법.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었다.
"아가씨, 무슨 일 있습니까?"
내가 멈추자 바라보고 있던 연이가 내게 걱정된다는 듯 물었고, 나는 고개를 들어 웃음기 가득 머금은 말투로 연이에게 말했다.
"아니다 ㅡ 그냥 오늘은 그림 그릴 기분이 아니라서 말이야."
언젠가는 그 이름 모를 화원의 그림처럼 ㅡ 흰색에 형형색색 꽃들을 수 놓을 수나 있을는지. 그리고 그 화원을 만날 수 있을까.
저잣거리 안의 작은 책방에는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와 함께 호쾌한 웃음소리가 책방안을 떠날 듯 하다. 하지만 정작 책방 주인 김씨는 호탕한 웃음 소리를 내는 자가 영 탐탁치않다라는 듯 혀를 쯧쯧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보게나 ㅡ 서쾌書儈, 또 다른 재미난 서적은 없는가? 허허 말세다, 말세야. 저 어린놈이 책방을 아예 다 거덜 낼 속셈인가. 김씨는 홱 하고 돌아서서는 불만가득한 표정으로 고갯짓을 하며 먼지가 그득하게 쌓여있는 서적을 하나 가리킨다. 흐으음 ㅡ 김씨의 행동에 수염도 없는 턱을 쓰다듬으며 제법 양반 행세를 하는 사내. 김씨는 그런 사내의 모습이 영 아니꼬울 뿐이다. 아니, 과거에도 응시 하지 않은 선비가 여기서 이렇게 히히닥닥 거려도 되오? 김씨가 물었다.
"…어허. 히히닥닥이라니. 지금 스승님의 말씀ㅇ…."
고놈의 스승스승! 그 사기꾼 같이 생긴 기생오라비에게 도대체 뭘 배울게 있단 말이야? 김씨는 불만가득 한 표정으로 소리친다.
"그 스승인지 뭐시기인지 하는 기생놈 때문에 벌써 이 마을에 계집이 반이나 팔려갔다우, 그건 아시오?"
"… …."
"내 그간의 선비님과의 정이 있어 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어디가서 제자라고 허덜덜마시오. 그러다 돌맞을지도 모르니까!"
김씨의 말은 역정을 내긴 했지만 전부다 사실이었다. 스승 김형도의 말로 인해 이 마을의 계집아이는 물론, 다른 마을의 계집들 까지 전부다 궁궐로 팔려가다 시피 했으니, 김형도라는 자는 이미 이 마을에서 '사기꾼'으로 통하고 있었다. 찬열은 김씨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듯 깨갱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학문의 측면이나 흥미로움의 측면으로 보았을때 김형도는 누구보다 뛰어난 스승이었다. 자신을 아껴주는 스승의 밑에서 그 역시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부글부글 화가 끓어오르지만, 그는 미소를 지었다.
"에이ㅡ 내가 어떤 사람인데 돌을 허투로 맞을것 같소?"
특유의 말투와 함께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김씨에게 말하는 찬열, 김씨는 그저 입이 쩍 벌어질뿐이다.
"…우리 스승님은 말을 결코 가벼이 하는 사람이 아니오."
"… …."
"나는 나의 스승을 믿고 있소. 분명 스승님의 말대로 운명은 틀림없이 있을것이오."
"… …."
"그러니 너무 노여워마시게. 곧 이 나라가 그 운명으로 인해 살아날테니."
그럼 다음에는 조금 재미난 서적을 구해오고. 그 말을 끝으로 찬열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책방을 벗어났고 뒤에서 자신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는 서쾌의 말에 무시하는 듯 웃음을 흘렸다. 분명히 나의 스승의 말이 틀림없을 것이다, 분명… 그 운명이 이 나라를 살릴 것이야. 찬열은 조금은 굳은 표정을 하며 이내 나누어진 두 갈래길 앞에 멈추어 섰다. 한쪽은 자신의 스승 김형도가 있는 쪽이었으며 또 하나의 길은 자신의 둘도 없는 정인情人이 사는 집이 있는 쪽이었다. 곧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던 찬열은 이내 활짝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었다. 어느샌가 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갈래 당연한 길이 되어있었다. 보고싶은데 그럼 어찌하나. 보러가야지.
"아가씨, 조금 천천히 걸으십시오! 그러다 또 넘어집니다!"
오늘도 여전히 분주한 걸음은 나를 따라 뒤따라오는 연이의 노곤함을 두 배로 더 들게 만든다. 지금 천천히 걸어갈 시간이 있겠냐 하며 저잣거리 장터 안으로 들어가자 북적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음이라도 비우고 타는 머리라도 식힐겸 저잣거리로 향해 오라버니가 예전에 사주었던 다과가 파는 곳을 찾고 있는데 오늘 무슨 날인가.
"참, 오늘은 5일장을 하는 날입니다, 아가씨."
"5일장? 벌써 그 날이 됐단말야?"
시간 참 빠르다 빨라 …. 그래서 이리도 북적이는 거겠지. 목을 더 빼 혹시라도 다과가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이목이 전부다 그 소리가 난 쪽으로 집중되었다. 무슨 소리지? 어디서 뭘 하는 모양이다. 가지말라며 가면 안된다며 나를 붙잡고 말리는 연이를 뿌리치고 소리가 난쪽으로 가니 백정들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 모여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안을 비집고 앞으로 향하니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기이한 현상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자! 그럼 또 한번 도전하시겠오?"
우락부락한 팔의 근육을 가진 덩치가 큰 사내가 큰 소리로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고, 나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뒤를 흘깃 돌아보니 나를 따라온 연이 역시 놀란듯 내 뒤에 숨어버린다. 사내를 필두로 중간에는 나무탁자 큰 것이 놓여 있었고, 탁자의 앞에는 연신 팔을 흔들며 고통스러운 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흐음 …. 무슨 놀이라도 하는 건가? 싶어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보니 그때 또 한명의 큰 목소리가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속에서 들려온다.
"내가 도전하겠소."
그리고 그 도전을 하겠다는 사내가 사람들을 비집고 우락부락한 사내의 앞에 서자마자 사람들은 수군수군 거리며 웅성거렸다. 그도 그럴것이, 팔에 근육이 붙은 우락부락한 덩치 있는 험상궂게 생긴 사내와는 달리, 그 사내는 전체적으로 왜소하다 라는 말이 와닿을 정도로 여린 몸을 가진 사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도전을 하겠다는 사내의 말에 덩치는 픽 웃음을 터트렸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 듯 하다. 덩치가 사내에게 말했다. 자, 그럼 당신이 이긴다면 무얼 가지겠소?
"… …."
무얼가지겠냐는 덩치의 말에 사내는 이내 고민하는 듯 싶더니 주위를 둘러본다 ㅡ 그러다 문득 저를 바라보고 있던 나와 눈이마주치고는 스르륵 입꼬리가 올라가는 사내.
"… …."
뭐야, 굉장히 기분나쁘다. 내 얼굴을 아는 듯 한 느낌에 나는 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쓰게치마로 더욱이 내 얼굴을 가렸고, 사내는 손을 뻗어 누군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내가 이긴다면,"
물건도 아니고 그렇다고 금도 아닌 사내의 조건에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나 역시 굳은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저 여인을 가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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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물론 나 역시도. 연이는 지금 이게 무슨 말이냐며 역정을 내었지만, 사내는 그런 연이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그저 유유히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다. 이게 뭐냐, 갑자기 일어난 일에 나는 이 자리를 벗어날까도 생각했지만 ㅡ 생각해보자. 어차피 저 사내가 저 덩치 큰 사내를 이길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저 비리비리해보이는 사내가, 덩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나 있을까, 팔 다리 하나쯤은 어디 부러지지 않을까. 그 말을 끝으로 싸움은 시작되었다. 싸움의 주 종목은 다름아닌 '팔씨름'. 오로지 팔의 힘으로만 승부를 펼치는 팔씨름에 승부는 이미 보나마나였다.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표정으로 덩치는 팔을 놓았고, 비실비실한 사내 역시 팔을 놓고 두 사람은 손을 쥐었다. 시 ㅡ 작! 이라는 말과 함께 승부는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승부는 1초도 안되어 끝이 날 줄 알았는데 ㅡ
"…이기고 있어."
이기고 있었다, 저 비실한 사내가. 뜻밖에도 사내가 이기고 있자 덩치쪽에 건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이 기세를 몰아 사내는 이를 악물고 힘을 주었고, 그때였다. 또 다시 쾅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덩치큰 사내는 그때를 빌려 다른 한쪽 팔로 사내에게 휘둘렀고, 사내는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주먹을 재빨리 몸을 틀어 피했고, 다른 한쪽 손으로 덩치의 주먹을 잡더니 이내 팔을 꺽어버린다. 으아악 하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덩치는 팔을 부여잡으며 쓰러졌고 덩치와 같이 있던 무리들은 속속들이 때를 맞추어 모여들었다. 싸움판은 어느새 진짜로 싸움판이 되어있었다. 백정 무리들은 분개한듯 사내를 잡기위해 다가왔고 사내는 탁자에 올라타 그들을 가벼이 피하더니 이내 내 손을 잡아왔다.
"… …."
잡아와? 아니, 왜? …이,이보ㅅ…! 내가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내 손을 잡은 채 어디론가로 도망치는 사내. 아가씨! 아가씨! 연이의 애탄 부름은 어느새 아득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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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말이오. …없다니, 아니 그럼 어딜 …."
"그야 저는 모르지요…. 연이라면 알고 있을 건디…."
통탄할 일이로다. 정인을 빨리 만나고 싶어 달음박질을 하여 이렇게 이 곳에 왔건만, 나의 정인은 이곳에 없다니. 찬열은 남종의 말을 듣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쉽사리 이 곳에서 벗어나는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어젯밤 했던 말이 혹여나 누를 범한건 아닐는지, 찬열은 어젯밤부터 한시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물론, 서적으로 간신히 마음을 달래었지만. 찬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매화나무를 바라다 본다. 분명 어제만 해도 매화가 꽃을 피웠었는데…. 어제의 바람으로 인해 다 떨어진 모양이다. 그렇게 매화나무를 멍하니 바라보기를 몇번, 하늘을 보기를 몇번 , 정인을 보고픈 마음에 한숨을 쉬기를 몇 번. 이렇게 기다리다가는 해가 진 야심한 밤에 만날 것이 두려워 찬열은 느릿느릿 발걸음을 재촉했고, 그때였다. 누구십니까? … 조금 부드러운 미성을 가진 목소리의 주인공이 찬열의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는 뒤를 돌았다.
"…누구신데, 집 앞에 있는 것입니까?"
"… 아, 저는…."
"이 곳은 제 동생이 있는 곳입니다. 헌데 …."
"… …."
찬열은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동생이라는 말이 사내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찬열은 놀란 두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역시 그 동생에 그 오라버니라더니. 이 집안사람들은 모두 다 외모가 출중하구나. 생김새는 다른 듯 닮았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달랐다. 그 아이는 봄과도 같은 설렘을 주는 아이었다면, 오라버니라는 자는.
"…보아하니 제 동생에게 용건이 있나봅니다."
용맹한 호랑이를 닮아있는 듯 했다. 무언가를 지키겠다는 그 강인한 태도가 아무말을 하지 않아도 분위기로 느껴지고 있었다. 유해보이지만 강단있는. 찬열의 의도를 찬열이 말하기도 전에 눈치챈 준면은 여전히 유유자적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하며 찬열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시간이 있으시다면, 저와 먼저 이야기 하는 것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그런 준면의 말을 들은 찬열은 고개를 들어 준면을 마주보았다. 찬열이라는 자를 대충 눈대중으로 알아본 결과였다. 계속해서 자신의 동생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능구렁이와도 같은 자, 저 자인가보구나. 준면은 옅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흘렸다. 준면은 찬열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계속해서 자신의 동생에게 오는저의가 무엇인지에 대한것도 궁금했기때문이었다. 준면의 의도를 몰라 곰곰이 생각만 하던 찬열이 하하하 음절을 끊어가며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 그러지요.
찬열은 준면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동생을 죽어라고 쫒아다니는 사내에 대한 시험. 당연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미를 모를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고, 준면의 사랑채 안으로 두 사람이 발걸음을 옮길때쯤, 아주 멀리 아주 저 멀리 ㅡ 저잣거리 너머 울먹이며 달려오는 연聯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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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뚜벅이]님
[햄스터]님
[백석]님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