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한 넌 내 인생 최고의 못된 여우
#나도 빠져드는 넌데
김여주는 여자애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다. 심지어는 다른 잘생긴 남자애들 두고도 김여주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애도 있었다. 물론 남자애들한테도 인기는 많았지만. 김여주는 우리아니면 다섯 명의 여자애들과 함께 다녔다. 조용하게, 도도하게 다니다가도 애들 사이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그런 활발한 애. 그래서 더 인기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여주와 나는 알고보니 같은 동네였고 어쩌다보니 하교를 같이하게 됬다. 사실 넷이서 하교하는 날이 더 많았지만. 이렇게 11시 야자까지 하고 가는 날에는 둘이서 하교할 수 있었다. 김여주는 걷는 걸 좋아했다. 아니, 걷는 것보다 걸으면서 하늘 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이 예쁜 걸 못보는 건 멍청한 거라고, 김여주는 항상 얘기했다. 어차피 이 시간엔 버스가 없기에 김여주와 나는 25분 거리를 걸어간다. 덕분에 말 없이 함께 있어도 편해진, 그런 관계가 좋았다.
"경수야, 놀이터에서 놀다 가자."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놀이터를 가리키는 김여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싸. 신이 난 듯 먼저 폴짝 뛰어간 김여주가 그네에 앉더니 옆을 가리켰다. 얼른 와, 경수야. 나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했다. 김여주는 조금씩 움직이다 이내 치마입은 것도 잊은 듯 높게 올라갔다. 고개는 하늘을 향해, 별을 향해, 시선을 박은 채. 겨우야 잠잠해진 김여주를 툭 쳤다.
"치마입고, 위험하게."
내 말에 김여주는 살짝 웃었다. 왜, 훔쳐보려고 경수야? 김여주는 참, 못하는 말도 없다.
"무슨, 걱정해주는 거지."
"걱정마. 치마 잘 잡고 타니까."
김여주는 앞뒤로 살랑살랑 움직였다. 경수야, 예쁘다. 하늘을 바라보는 김여주의 말에 나도 하늘을 바라봤다. 어두운 하늘 군데군데 작은 별들이 박혀있었다.
"경수야, 내가 오글거리는 말 하나 해줄까."
"뭔데."
"도경수, 니가 내 별이다!"
김여주는 말을 하자마자 킥킥 웃었다. 나는 순간 찬 공기가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느낌에 켁켁 댔다. 어, 경수야, 장난이었는데, 괜찮아? 웃다가 내가 걱정됐는지 내 등을 툭툭 쳐오는 김여주가 괜히 얄미웠다. 여전히 웃음끼가 남아 있는 얼굴이 예뻐서 참았다고 하면, 그게 더 오글거린다며 인상을 찌푸리겠지.
"춥다, 가자."
놀이터를 벗어나 인도로 나온 김여주는 무의식적으로 잡은 거였는지 아, 미안 하고 잡힌 내 손목을 놓고 걸어갔다. 나는 왠지 귀에 열이 오르는 느낌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아무렇지 않은 듯 걸었다. 김여주가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였기도 하고.
"잘가, 경수야."
"잘자."
김여주는 두어번 손을 흔들고는 뒤를 돌아 들어갔다. 김여주의 집은 개인 주택이었는데, 작지만 새로 지은 예쁜 집이었다. 2층 김여주의 거실에 불이 켜지고서야 뒤를 돌았다. 내일이면 또 꿈 같을 김여주와의 기억을 나는 이렇게 혼자 돌아가는 길에 되새김질 하곤 했다. 도경수, 니가 내 별이다라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대.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마 이런 나를, 김여주는 알고 있겠지.
#들었다 놓고
"아아아아."
"이잉."
"아아아!!!"
"귀찮아."
박찬열이 김여주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르는 중이었다. 아, 됐어 내가 사옴. 듣다 못한 김종인이 몸을 일으키자 박찬열이 눈을 빛냈다. 왠일이야. 뒤이어 김여주가 외쳤다. 내 것두! 나도 얼른 따라 말했다. 나도.
"아, 이 진드기들."
"히. 같이 매점 갔다와 줄가?"
"그럴 거면 너가 갔다와."
"다녀오세요 왕자님~"
애교스럽게 허리까지 숙여가며 배꼽인사하던 김여주가 고개를 들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싱긋 웃은 김여주는 이내 몸을 돌려 박찬열을 툭 쳤다. 뭐, 게임을 하던 박찬열이 더 게임에 집중했다. 슈스엠 최고기록 나올 것 같다고.
"난 이제 종인이가 좋아졌어. 넌 끝이야. 헤어져 우리."
"씁, 말 곱게 해라."
"너야 말로, 짠돌아."
"아, 진짜 어디가?"
여전히 시선은 폰 화면으로 향한 박찬열을 내버려두고 김여주가 내게 다가왔다. 자리 바꿔줘, 경수야. 나 쟤 싫어.
"나도 쟤 싫어."
"헐?"
뒤에서 들려오는 박찬열의 어이없다는 헛웃음과 김여주의 빵터진 웃음소리가 어우러졌다. 김여주는 그럼 어디 앉지? 하더니 내 허벅지를 탕탕 쳤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올려다 봤지만 김여주는 아무렇지 않게 내 위에 앉았다. 야, 너... 당황함이 잔뜩 묻은 목소리에 김여주는 킥킥 웃으며 내 목에 팔을 두를 뿐이었다.
"이야~ 김여주 도경수 지금 뭐하나요~"
핸드폰을 덮은 박찬열이 더 오버하는 행동을 하며 놀렸다. 꺄르르 웃는 김여주의 웃음이 그대로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김여주와 대화하던 박찬열이 내 붉어진 목을 발견했는지 놀리기 시작했다. 도경수 목 빨개졌대요~ 빨개졌대요~ 초딩같이 구는 박찬열의 입을 콱 막아버리고 싶었다. 사실 김여주 앞에서 그러는 게 쪽팔려서 였지만.
"아이스크림 사옴."
비닐 봉지를 책상에 툭 던진 김종인이 옆 자리에 앉았다. 우와, 니니짱! 그 놈의 니니라는 애칭. 김여주는 방실방실 웃으며 비닐봉지에서 콘아이스크림을 꺼내들었다. 아, 역시 우리 종인이 내 취향도 잘 알아. 우쭈쭈 하며 김종인의 머리칼을 흐트러트리는 김여주였다.
"근데 왜 거기 앉아있어?"
"아? 아-"
김종인의 물음에 김여주가 폴짝 일어났다. 내가 다 부끄러운 기분에 아이스크림 봉지에 고개를 박고 아이스크림을 뒤적거렸다. 어차피 빠삐코 두 개 뿐인데. 내 위에서 일어난 김여주는 그대로 김종인의 무릎 위에 앉았다.
"너 옆에 오려고 자리바꿔달랬는데, 경수가 안 바꿔 준다고 해서."
김종인의 귀에 대고 말하는 김여주와 눈이 마주쳤다. 입꼬리를 올려 살짝 웃는 모습에 몸이 굳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 그래."
김종인은 딱히 감흥없다는 목소리로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김종인의 위에서 다리를 달랑거리며 김종인의 어깨에 기대있던 김여주는 김종인과 함께 김종인의 폰을 바라보고있었다. 너무 익숙하고 편해보이는 모습에, 고개를 돌려 앞만 바라봤다. 김종인이나, 나나 김여주와 만나게 된 날은 같은데. 아니. 초등학교 때까지 따지고 보면 내가 더 오래 됐는데. 겉으로 표현 못하는 의미없는 질투를 하고 있었다.
"아, 나만 왕따잖아."
수업 종이 울리고 혼자 앉아있던 박찬열이 김여주를 부를 때서야 김여주는 김종인에게서 일어나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시간 내내 나도 모르게 김종인의 눈치가 보였다. 그러다가도 홀로 어이없음에 웃음을 흘렸다. 나 정말, 한심하다.
날라갔던 2편까지 결국 짧아도 써서 올려요 헷. 못난 글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준 지난 편 2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