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滿月 : real moon 5

탄소발자국











[방탄소년단/탄소] 만월 : real moon 5 | 인스티즈











월국(月國)의 혼인법에는 이러한 조항도 있었다. 강제로 혼례를 치르지 말 것. 남녀 간에 정이 통하는 관계에서만 혼례를 치를 것. 사랑이 결여된 혼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중매쟁이를 통해 혼처를 정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대부분 서로 조건이 맞는 혼처를 정한 뒤 혼담이 오가기 전, 아들 가진 집에서는 그 댁에 안부를 여쭙는다는 명분으로 아들을 보내곤 했다. 그럼 딸 가진 집에서는 사전에 미리 연락을 받아 제 딸을 정성스레 단장시키는 것이었다. 집의 어른과 사내가 인사를 나눌 때, 계집은 옆에 앉아 차를 다리거나 다과를 직접 내어 오기도 했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면 뒷마당으로 나가 담소를 나누고, 마음이 맞았을 경우에는 서찰을 통해 일종의 '연애'를 시작했다. 이것은 월국에 퍼진 혼인관습이었다.



관습은 태형도 피할 수 없었다. 동 트기 전 떠왔다는 새벽의 시린 샘물로 세수를 하고, 나물 위주의 조식을 해치운 뒤엔 양치도 깨끗이 했다. 여종이 가져다 준, 번잡하지 않게 촘촘히 수가 놓아진 도포는 밀밭을 연상케 하는 색이었다. 도포가 까무잡잡한 태형의 피부 위를 차분하게 덮으며 잘 어우러졌다. 망건에는 평소 쓰던 것 보다 몇 곱절은 화려하게 조각된 관자를 달았다. 단장을 마친 태형은 턱을 당겨 제 모습을 내려다봤다. 손 끝이 비단 도포 위를 매끄럽게 타고 내렸다. 단장이라는 걸 하고 있는 제 꼴이 우스웠다. 종놈이 제 주인 옷을 훔쳐 입은 모습 같았다. 갓을 머리 위에 올리고 턱에 맞게 갓 끈을 조여 묶는 손놀림은 물 흐르는 모양과 닮아있었다. 딱히 잘 보이려 꾸미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냥….






" 예의 같은거지, 뭐. "






태형은 중얼거렸다.






뒤가 훤히 비치는 발 너머로 연한 복숭아색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앉아 있다. 찻주전자를 가지고 몇 번 작은 움직임을 보이더니, 발 아래로 조그마한 찻잔을 하나씩 밀어 낸다. 쌉싸래한 차 향기가 가볍게 방 안 공기를 적셨다. 차를 건네받으며 태형의 시선이 비스듬히 그녀의 인영을 향했다. 짙게 푸른 치마 위로 하얀 손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위로 화려한 무늬의 저고리가 눈에 들어올 때, 앞에서 저를 부르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에 태형은 자연스레 눈을 한 번 깜박이며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입가엔 살짝 미소를 띄었다. 태형의 찻잔이 비자, 여인이 찻주전자를 쥔 손을 내어 전보다 조금 더 우러나 색이 진한 차를 따랐다. 태형은 한 번 더 웃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다대었다.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가. 입술을 훑고 혀를 간지럽히듯 들어오는 찻물이 약간 식어있었다.



약간의 담소를 나누고 태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늙은 남자는 태형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 나가는 태형의 뒷모습을 보며 마른 입을 쩝쩝 다셨다. 아무래도 그의 말재간이 마음에 들어, 사윗감보다 제 말벗으로 더 곁에 두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마당으로 내려온 태형은 마루 옆 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몸종을 향해 눈짓했다. 우람한 체격의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태형에게 다가와 속닥거렸다. 이 댁 아씨는 뵙지 않고 가십니까? 태형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 굳이 만나볼 이유를 모르겠구… "

" 도련님. "






귀찮은 표정으로 턱을 들고 걷는 태형의 앞에 어른이라 치기엔 조그마한 체구의 여인네가 불쑥 튀어나왔다. 예의를 차린답시고 숙인 고개 아래로 수수한 얼굴 윤곽이 드러났다. 야무지게 앙 다문 입술이 얄쌍했다. 눈을 깜박일 때 마다 적당한 길이의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태형은 그 속눈썹을 보며 발 너머로 비치던 여인을 떠올렸다.






" 아씨께서 뵙기를 청하옵니다. "

" 무슨 이유로 뵙자고 하시더냐. "

" 도련님께서 그냥 이리 가버리신다면, 가문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전하라 하셨… "

" 내가 오직 가문만을 위해 그대를 만나야 한다는 뜻이라면, 그 뜻이야말로 내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라 전하게. "






여종의 얼굴이 당황에 물들어 벌겋게 물들었다. 동그래진 눈에, 속눈썹은 전보다 몇 번은 더 많이 움직였다. 당당하게 다물었던 입술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무어라 대답해야 할 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태형은 빙긋 웃고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다, 아! 하고 멈춰 돌아섰다. 고개를 들던 여종의 머리가 재빠르게 다시 숙여졌다. 태형은 별당채로 향하는 사잇문 쪽으로 흘긋 시선을 던졌다. 쓰개치마 끝단의 연한 하늘색이 문간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 서찰을 보내면 내 한 번 읽어볼 뜻은 있다는 말도. 잊지 말고 전해주게. "






머리 끝부터 닫혀있던 장옷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을 하며 벌어졌다. 태형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진한 고양이 눈매가 이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아까 사랑에서 보았던 저고리 위로 빨간 입술이 웃고 있었다. 까만 머리칼과 한 쪽 귀 위로 나비모양 뒤꽂이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그 뒤를 붉은 천으로 엮은 꽃이 감쌌다. 햇빛을 받아 멀리까지 번쩍이는 빛이 눈을 찔렀다. 화려함. 태형은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문을 밟았다. 저 여인은 화려하구나, 사치스럽고. 모란꽃을 떠올렸다.

그대여, 그대는 모란꽃을 닮았구려! 하지만 난 모란이 썩 내키지가 않아서 말이오. 마음 속으로 외치던 태형은 비실 웃었다.






태형은 성큼성큼 정재가 있을 사랑으로 향했다. 멀리서 비질을 하던 종놈이 달려와 인사를 꾸벅 한다.






" 지금 사랑에는 손님이 와 계십니다. "

" 손님? "






곁눈질로 하인을 보니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깨끗치 못한 모양으로 짧게 짤려나간 수염 아래로 입술이 방정맞게 움직인다. 김석진 나리께서…. 태형은 심기가 뒤틀린 얼굴을 하고 섬돌로 올라 신을 벗었다. 대감마님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뭐 어쩌라는거야. 망설임 없이 방 문을 열었다. 호선을 그리고 있던 정재의 입꼬리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귀한 분이 와 계시니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거늘….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사선으로 돌렸다.






" 손님이 와 계신 줄 몰랐습니다. 소자는 물러가겠습니다, 아버님. "

" 괜찮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있어 이만 인사올리려던 참입니다. "






석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재가 다시 웃음을 보이며 덧붙였다. 오늘도 탄소를 못 만나 아쉬워서 어쩌나. 태형은 제 앞에 등을 보이고 앉은 석진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내려보았다. 넓은 어깨 위로 갸름한 턱을 잇는 목선이 보기 좋게 쭉 뻗어있었다. 광대 부근 살점이 위로 솟아있는 걸 보니 웃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나 저기나 오늘따라 왜 이리 웃는 사람들이 많은지. 태형은 입술 안 쪽 살을 잘근 씹었다.






" 열을 앓아 얼굴을 뵙지 못한다는 말에도 찾아온 건 저입니다. 앞으로 볼 날이 더 많지 않습니까. "






본래 귀한 분을 만나려면 기다림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지요. 덧붙인 말을 따라오는 정재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 뒤로 석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 선 태형을 향해 몸을 돌렸다. 둘 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입꼬리를 당겨 벌어진 도톰한 입술 사이 하얀 이가 태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가는 석진을 따라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곤 자리에 앉았다. 열을 앓는다는 말이 속에 얹힌 듯 명치를 조였다. 불편한 표정을 한 태형을 보며 정재가 입을 열었다.






" 그 댁에는 잘 다녀왔느냐. "

" 예. "

" 어떻더냐. "

" 꽃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

" 무슨 꽃을 말하는 게지? "

" … 모란입니다. "






여전히 저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는 태형의 눈을 보며 정재가 몸을 뒤로 젖혔다. 왼팔을 팔걸이에 기댄 채 눈을 지긋이 감는 얼굴은 표정이 없었다. 정재는 모란꽃의 모양을 떠올렸다. 꽃 잎의 색과 질감, 그리고 그 향기. 입을 다물고 앉은 태형에게 그 향내를 입혔다. 선이 진한 눈매가 원래 제 향인 듯 모란향을 한아름 머금었다. 자연스레 젖어든다. 태형이 품을 수 있는 것은 모란인데 자꾸만 그 이상을 욕심내고 있다고, 정재는 생각했다.






" 어떤 것 같으냐, 저 영랑은. "






먹물을 머금은 것 마냥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가 태형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탄소의 혼인 상대로 석진을 두고 태형에게 묻는 말이었다. 태형은 자꾸만 자신에게 묻는 이유를 알 것 같아 쉽사리 답을 내놓지 못했다. 정재는 반 쯤 남은 차를 입에 머금었다. 상 위에 소리 없이 도자기 찻잔을 내려놓는 정재의 손에 보이지 않는 핏자국이 낭자했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피를 보고 묻히며 여기까지 걸어온 겁니까. 태형의 시선이 그의 손톱을 쓰다듬으며 떨어졌다. 당신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위해서. 당신의 하나 뿐인 딸을 위해서.






" 더할 나위 없습니다. "






당신의 딸은 생각지도, 바라지도 않는 것들을 위해서.











[방탄소년단/탄소] 만월 : real moon 5 | 인스티즈











" 아씨, 기침하셨습니까? "






아침 햇살과 함께 쏟아지는 사월이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게슴츠레 눈을 뜨자 하얀 빛이 틈새를 찌르고 들어왔다. 손등으로 눈 위를 덮었다. 얼굴에서 뜨끈한 열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얕게 한숨을 내쉬곤 문 너머에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을 사월이에게 들어오라 말했다. 내 목소리가 채 끊어지기도 전에 방으로 들어온 사월은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옆에 꿇어앉아 이마를 짚었다. 이내 얼굴이 울상이 된다. 이미 혼인까지 한 다섯 살 위의 사월이는 나보다도 더 어린아이 같았다. 괜찮아. 작게 목소리를 내어 말하니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진다. 괜찮대두. 한 마디만 더 하면 아주 울 것 처럼 말이다.






" 아씨는 참 좋으시겠어요. "

" 응? "

" 그리 다정한 오라버니를 두셨으니 말이에요. "






머리를 빗겨주는 사월의 손길에 잠이 깬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노곤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한껏 부러움을 담은 목소리가 가볍게 공기를 흔들었다. 사월이는 입술을 뾰족하게 만들어 머리를 땋고 있을 것이었다. 살짝 굳은 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 어제는 요 앞까지 오셨다가 차마 들어오지는 못하시고 이년한테 물으시더라구요. 아씨 몸은 좀 괜찮냐고. "

" …. "

"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앞에서 서성거리셨어요. 저와 눈이 딱 마주치니 또 아씨는 어떤지 물으시구요. "

" … 그래? "

" 그렇다니까요. 아유, 걱정에 가득 찬 얼굴이란. 아씨께서 그 얼굴을 보셨어야 했어요. "

" …. "

" 모르는 사람이 보면 흠모하는 여인네 얼굴 못 봐 안달난 사람이라 생각했을 거라니까. "








손톱을 잘근거리던 입에서 손을 내려놓고 말했다. 동생이니까 그리 아껴주시는 것이겠지. 동생이니까, 속으로 한 번 더 되뇌었다. 걱정하는 얼굴로 사월을 붙잡은 태형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쉬웠다. 약간 크게 뜬 눈 과 올라간 눈썹, 아랫니가 보이게 벌어진 입 까지. 그런데 흠모하는 여인을 기다리는 얼굴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어떤 표정일지 가늠도 못 할 것 같았다. 내가 본 적이 없기에. 그는 내게 연정을 품고 있지 않기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기 전 나를 깨운 것은 사월이가 들이민 서찰이었다.






" 어제 김석진 나리께서 대감마님을 뵈러 오셨다가 아씨께 전해드리라며 주고 가셨어요. "






생일 선물에 대해 감사하는 편지를 썼었는데, 그 답 서찰인 듯 했다. 봉투에서 고이 접혀진 서찰을 꺼내어 폈다. 글씨체에서 그 사람이 보이는 법이다. 흐트러짐 없이 줄을 맞춰 가지런히 쓴 글씨는 그의 성격을 짐작케 했다. 선물을 마음에 들어하니 저도 기쁘다는 이야기, 아프다 들었는데 빨리 낫길 바란다는 이야기, 언제 한 번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 다시 서찰을 접어 봉투에 넣으니 옆에서 기웃거리던 사월이가 기대하는 빛으로 빤한 시선을 던졌다. 그냥, 언제 한 번 볼 수 있냐고. 싱거운 답에 사월이가 장난스러운 얼굴을 했다. 아씨, 남정네는 박력이 최고에요. 삐죽거리며 웃는다. 그래서 향이랑 혼인한거야? 금세 얼굴이 발갛게 물든 사월이가 무슨 소리를 하냐며 큰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아씨 열이 다 내린 것 같다고 조식을 내 오겠다며 허겁지겁 나간다. 꼬리같이 짧은 댕기머리가 귀여워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 아씨, 몸은 좀 괜찮으세요? "






사월이가 열어놓고 나간 문 틈으로 얼굴을 보인 것은 지민이었다. 들어오라고 손짓하자 문을 닫고 와 자리에 앉는다. 이제 괜찮다고 답하니 울상이 된다. 그래도 아파보이시는 걸요. 사월이와 같은 표정을 짓는다.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부터 함께 한 정국이와 지민이. 지민이는 유난히 마음이 여렸다. 넘어져 내 손바닥에 난 조그마한 생채기에도 온 세상의 걱정을 다 끌어와 안은 듯한 얼굴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도 활짝 웃는 얼굴은, 해바라기를 닮았다는 표현이 적절할까. 긴 눈은 활짝 웃을 때 둥글게 접혔다. 웃는 게 예쁜 지민이. 선물 잘 받았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자 그 예쁜 미소를 보였다.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인다.






" 오랜만에 만났으니 우리 바깥에나 좀 다녀오자. "

" 예?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신데 어딜 나가요! "

" 간만에 어렸을 때 처럼 다녀오자. 지민아. "

" 안돼요. 찬 바람 쐬었다가 더 병 나요. "






고개를 가로젓다가 아예 옆으로 휙 돌려버리는 지민이다.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입도 앙 다물었다. 강경해 보이는 것 같지만 이런 경우는 쉽게 푸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너랑 알고 지낸지가 몇 년인데 내가 그런 것 하나 모를까. 슬쩍 웃으며 손을 뻗어 팔짱을 낀 그의 팔을 풀고 손을 잡았다. 바깥 사람들이 보고싶어서 그래.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잡힌 손은 풀지 않은 채 지민이가 도톰한 입술을 우물거렸다. 아씨 식사도 하지 않으셨는데…. 얼른 낚아채 장터에 파는 국밥을 먹고 싶다 했다. 지민이가 눈을 가늘게 떠 나를 흘겨보다가 못 이기는 척 일어선다. 난 정말 데리고 나가고 싶지 않은데, 아씨가 그렇게 간곡히 부탁하시니 나가는 거에요. 변명하는 것 마냥 자꾸 내 쪽을 돌아보며 문고리를 잡는다. 안감에 털이 푹신하게 붙은 쓰개치마를 덮어쓰는데, 아이 손처럼 작은 지민이의 손이 그 위를 다시 한 번 여미었다.






" 아씨 더 아파지면 전 대감마님께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구요. "

" 걱정 마. "






걱정 말라는 대답에 살풋 웃는다.


거리에 나오니 집 안에서 느끼던 것과 사뭇 다른 느낌의 햇볕이 땅 위를 적셨다. 조금 더 가볍고 깨끗한 느낌. 겨울의 아릿한 향기가 코를 타고 가슴을 적셨다. 마른 잎 몇 개 붙어있는 나무와 그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 장옷 사이로 얼굴만 빼고 사람을 구경하다가 지민이에게 물음을 던졌다.






" 오라버니는 어제 잘 다녀온 것 같아? "

" 어떻게 아셨어요? "

" 어제 사월이한테 들었어. "

" 아…. 사랑채에서 대감마님하고 한참 얘기나눈 걸 보면 괜찮았나봐요. "

" …. "

" 도련님께서도 곧 혼례를 올리시겠죠? "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화 끝에 온점을 찍는 담담한 질문이었다. 조그마한 돌과 그보다 더 작은 흙 입자가 깔린 땅을 쳐다보았다. 발에 채인 돌 조각들이 이리 저리 툭툭 굴러갔다. 너희들도 마음이 있을까, 발에 차이면 아파할까. 아깐 상쾌하다고 느꼈었는데, 겨울 바람이 그리 다정하진 않다. 옆에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걷는 지민이가 쭈뼛거리는 모양을 했다. 한참을 뜸만 들이다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 … 아씨도 혼인을 하시게 될 거구요. "






예상 외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를 보이며 웃는 입이 어색하게 움직인다. 무슨 말이냐 물으니 혀로 입술을 한 번 적시고 덧붙였다. 요즘 대감마님께 찾아오는 나리 말이에요. 석진을 말하는 것이었다. 가지런한 글씨체와 석진을 입에 올리던 아버지를 생각했다. 글쎄, 그렇지 않을까, 하고 답하니 지민이가 다시 한 번 입을 벌려 웃었다. 역시 어색했다. 나는 그 모습에 되려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 그렇겠죠? 아씨는 그 나리 얼굴을 보셨어요? "

" 아니.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 봤네. "

" 저는 어제 그 분 얼굴을 뵈었어요. 어쩌다가, 지나가다가요. "

" 그래? "

" 키도 크고. 훤칠한 미남자시더라구요. 인상도 좋으셨어요. "

" …. "

" 아씨는 선녀같고 말이에요. "






지민이가 중얼거리던 입을 이내 꾹 다물었다. 뭔가를 가만히 생각하는 듯 앞만 보고 걷다가 다시 입을 연다.






" 두 분이 혼인하시면 선남선녀가 따로 없을 거에요. "






말을 하면서도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석진과 나란히 선 내 모습을 그려보는 중일지도 몰랐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는지 지민이가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입은 희미하게 웃고 있는데 눈은 끝이 눅눅한 모양으로 축 처진 게, 그렇지 않아 보였다. 넌 벌써 내 혼인을 생각하고 떠나보내는 걸 느끼는 걸까. 항상 챙겨주던 지민이답다고 생각하니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 왜 그리 섭섭한 얼굴을 해. "

" 예? 아니, 아니에요! "






놀란 듯 기다란 눈이 동그래진다. 그 안으로 보이는 눈동자가 투명히 빛났다. 지민이는 아님을 온 몸으로 증명하고 싶었는지 고개도 흔들고, 손 사래도 치고. 우스꽝스럽다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키득거리니, 찬 바람을 맞아 발개진 귀가 더 빨갛게 물들어간다. 제 손으로 귀를 한 번 감쌌다가 다시 손을 내린 지민이가 입을 열었다.






" 아씨가 행복해지는 일이라면 저도 기뻐요. "






아까완 다르게 눈을 접어보이며 활짝 웃는다. 겨울에 핀 해바라기 같다고 생각했다.








* * *








아버지의 부름에 사랑에 들었다가 낯선 사내를 보고 놀란 것도 잠시, 지금은 그와 별당 뒤 정원을 걷고 있다. 그간 서찰로만 대화를 주고 받다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둘 다 아무 말도 없이 느리게 걷다가 얕은 연못에 다다르자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걸음을 멈췄다. 물 위로 번지는 사람 그림자에 유유히 헤엄치던 금붕어들이 사방으로 도망친다. 꼬리에 닿은 수면이 일렁이는 파동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 몸은 괜찮으십니까. "

" 네, 덕분에요. "

" 다행입니다. "






눈은 맞추지 못했다. 석진의 쪽으로 선 얼굴로 내려다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표정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말에 섞인 숨결로 그가 희미하게 웃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뒷짐을 지고 연못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던 석진이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 지난번에 형님을 뵈었습니다. "






태형을 마주하던 날을 애써 떠올리려는 듯 석진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눈까지 게슴츠레 떴던 그가 이내 인상을 펴며 내게로 시선을 내렸다. 뭔가 뿌듯해 보이는 입꼬리가 봄 내음을 풍겼다.






" 미남자시더군요. 그 분의 동생 되시는 분은 어찌나 아름다울까, 생각했습니다. "

" …. "

" 그런데 직접 보니 의외로 닮지 않아서… 좀 놀랐습니다. "






무슨 말이냐는 뜻을 담아 그를 올려봤다. 석진은 태형이 양자인 걸 모르는 눈치였다. 내 얼굴에서 뭐라도 찾아내려는 것처럼 찬찬히 뜯어보는 그의 눈이 낯설어 고개를 돌리니, 기분이 상해 그런다고 생각했는지 석진이 급하게 말을 붙여왔다.






" 아니요, 그런 게 아닙니다. "

" 예? "

" 공녀의 얼굴이 너무 고운 것 같다고 생각하여, 아니, 곱습니다. "

" … 과찬이시어요. "

" 정말입니다. "






어른들께 인사드리는 각시마냥 석진이 수줍게 웃었다. 흰 비단에 연분홍 색 비단을 덧댄 도포가 바람을 타고 펄럭였다. 나란히 선 발 끝이 내 쪽으로 돌고, 석진의 눈이 조용히 내게 닿았다.






" 정말로, 항아님이 내려오신 줄 알았습니다. "








* * *








탄소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어둠을 따라 기어온 외로움과 온갖 감정들이 그녀의 발톱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들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떠올리기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썼던 탄소는 도저히 안되겠는 듯 두터운 솜이불을 걷어내고 마당으로 나왔다. 낮에 보았던 금붕어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어깨 위로 걸친 곤색의 장옷에 놓인 수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입을 열어 숨을 뱉으니 몽글몽글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돌담을 따라 연못 근처까지 온 탄소는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뒷마당으로 조그맣게 난 뒷문엔 태형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아도 그는 귀찮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안에 속곳을 받쳐 입은 도포는 대충 아무렇게나 걸친 차림이었다.


저기에서 뭘 하는 거지.

걸음을 뒤로 해서 옮기니 문간 너머에 선 또 다른 인영이 보였다. 쨍한 빛의 노란 장옷이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장옷을 내리는 아래로 화려한 머리장식을 한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땅 속 저 깊은 곳에서 그녀의 심장을 뚝 떼어 달아난 것 같았다. 분명히 혼처가 오간다는 그 댁의 영애일 것이다. 태형의 정인이 틀림없다. 탄소는 고개부터 천천히 뒤로 돌았다. 그리 춥지도 않은 날씨였는데 그 새 발이 얼었는지 땅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천천히, 천천히. 한 발씩 걸음을 옮겼다. 점점 빨라지는 걸음은 담 뒤로 그녀의 모습을 숨겼다. 달 아래 흩어지는 그림자마저 사라졌다.






"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예까지 오신겁니까. "






태형이 하품을 찍 뱉으며 물었다. 끝이 앙칼지게 마무리 된 눈매가 태형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턱에 잔뜩 힘이 들어가며 울먹이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억울해서 찾아온 듯 했다. 태형이 비실 웃으며 그녀에게 한 번 더 물음을 던졌다.






" 무엇이 공녀의 마음을 그리 토라지게 한 겝니까. "

" 너무하십니다. "

" 응? 너무하다니요. "

" 어찌 며칠 째 답 서찰이 없으실 수가 있습니까. 소녀는 줄곧 공자님의 소식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






애처럼 징징거리는 소리를 내며 두 손에 얼굴까지 묻는다. 태형은 어이가 없었다. 서찰 한 번 늦었다고 이 시간에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참으로 무례한 행동이 아닌가. 자는 사람을 깨워 불러내는 것은. 표정을 지우고 물끄럼 쳐다보던 태형은 그녀가 얼굴에서 손을 떼자 다시 히죽 웃었다. 눈가가 약간 어둡게 번져있다. 이 새벽에 머리 장식만으로도 대단한 치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곱게 화장까지 한 것이다. 정성도 대단하다고, 태형은 생각했다.






" 미안하오. 사실은 그대에게 전할 말을 생각하느라 늦었소. "

" 제게 할 말이 그리도 없으신 겝니까? "

" 할 말이 너무나도 차고 넘쳐 그 중에서도 공녀에게 걸맞는 아름다운 말을 찾느라 늦어진 것이오. "






살쾡이처럼 성이 나 있던 눈이 순한 고양이마냥 동그랗게 떠 졌다. 뽀얗게 분이 발린 볼 위로 수줍게 홍조가 떴다. 정말이십니까? 나긋하게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교태가 흘렀다. 태형은 정말로 피곤했다. 마음에도 없는 여인과 혼인하자고 이 짓을 하고 있는 것도 내키지 않거니와, 기생이 아닌 여인네의 교태는 마음은 커녕 눈길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 모란꽃과 같이 아름다운 그대가 아니겠습니까. "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 쓰다. 모란보다는 백합이 더 아름답다 생각하는 마음을 눌렀다. 화려함은 금방 싫증이 나는 법이다.

백합. 백합과도 같은 여인. 태형은 쓰게 웃음지었다.











지림 님, 버들 님, 다이 님, 슙루룩 님 감사합니다 :)


사담


말씀드린대로 천천히 걸어갈 생각입니다. 어쩌면 연재 텀은 이보다 더 길어질수도 있을 것 같아여 8ㅅ8


그리고 지난번에 갑자기 암호닉 폭탄을 맞았어요ㅜㅜ

암호닉 처음 받아봤는데 기분이 되게 신기하네여 ㅎㅅㅎ

+) 슙루룩 님 일이 있어서 따로 답댓을 못 달아드렸는데 재밌게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늘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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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다이 입니다. 태형이가 말을 정말 잘하는것 같네요. 지민이ㅠㅠㅠㅠ 지민이는 그럼 여주랑 못이어지나요? 불쌍해ㅠㅠㅠ 그리고 태형이랑 여주랑 참.... 불쌍하네요
9년 전
탄소발자국
다이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여 태형이랑 여주..8ㅅ8
9년 전
독자2
[지림]이에요. 고전이라고해야하나요? 뭐 어찌됐던 이런류의 글은 말투하나하나에 어색해질수도있고 이질감이 들수도있는데 작가님은 그런게 하나도 없으세요! 진짜 어색하지않고 쭉 읽어나갈수있었고 집중할수있었어요! 태형이가 이대로 모란과같은여자와 결혼할지도 궁금하고 안타깝기도하고 ㅠㅠㅠㅠㅠ 다음편기대할게요!
9년 전
탄소발자국
지림님 감사합니다! 아휴 칭찬이ㅜㅜ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집중해서 잘 읽어주셨다니 기분이 좋네요 ㅜㅅㅜ 다시한번 감사해요 :)
9년 전
독자3
진짜 너무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다음편 빨리 보고싶어요ㅠㅠㅠ♥♥
9년 전
탄소발자국
감사합니다! 열심히 쓸게요 휴3휴
9년 전
독자4
bgm이 이누야샤 브금이네 되게 반가워요ㅋㅋㅋㅋㅋ 저번에 이누야샤 다시 봤었는데 아 여하튼 이번화도 재밌었습니다 태형이와 혼담이 오가는 저 여자도 꽃과 같다고 했으니 예쁠 것 같은데, 모란이면 되게 예쁘잖아요. 화려하게 생겼다고 했으니 예쁘겠죠...네... 태형이 마음이 이해되긴 하는데 저 여자도 약간 불쌍하네요 그렇지만 엑스트라는 기억도 안 해주는 세상!ㅠㅠㅠㅠㅠㅠ슬프다ㅠㅠㅠㅠㅠㅠㅠ 전 다음화나 보러 갈게요
9년 전
독자5
아ㅜㅠㅜ얘네 뭔가 안쓰러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6
ㅠ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맴찢ㅠㅠㅠㅠㅠㅠㅠㅠㅠ으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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