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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몬스타엑스 김남길 이준혁 강동원 엑소 성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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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폐하께서… "






희끗한 수염이 덥수룩한 늙은 어의가 땀으로 젖어 축축해진 얼굴을 한 채 황제의 침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찬 겨울 바람에 맞아 땀이 식으며 그는 온 몸에 한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계단 아래에 수많은 관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고, 제 바로 앞에는 월국(月國) 황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금박 문양이 수 놓인 털 망토를 두른, 하얀 얼굴의 황태자가 서 있었다. 끝이 깔끔하게 마무리 된 눈은 이미 받아들일 준비가 된 듯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황제폐하께서, 어의는 재차 말하며 입을 다물고 혀뿌리로 목구멍을 눌렀다. 그것은 지난 오랜 세월에 대한 진한 그리움과 서글픔 때문이리라. 숨을 크게 들이마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단전으로부터 소리를 끌어올렸다.






" … 승하하셨습니다.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래에 선 관료들이 대전(大殿)을 향해 넙죽 엎드렸다. 황태자는 아랫입술을 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황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던 내시는 황제가 사용하던, 월국의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상아색 깃발을 들고 대전의 동쪽 지붕 위로 올랐다. 불 붙인 깃발을 들고 북쪽을 향해 서서 상위복(上位復)을 세 번 외친다. 깃발은 재도, 흔적도 없이 연기로 흩어졌다. 황태자는 뽀얗게 입김을 불었다. 아버지의 혼과 함께 날아간 연기는 제 입김보다 더 가볍고 산뜻할 것이다. 수증기와 같은 입김이 그의 입술을 촉촉하게 적셨다. 황태자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방탄소년단/탄소] 만월 : real moon 6 | 인스티즈




滿月 : real moon 6
탄소발자국










5일 간의 상(喪)은 황제라는 칭호와 어울리지 않게 조촐하고 소박하게 끝났다. 나라가 시작될 때 부터 그랬다. 서민들이 많이 모이는 장에서는 사람들이 가무를 즐겼고, 궁 내에서도 슬픔의 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달의 축복을 받아 순수 혈통을 타고 태어난 황제는 삶의 끝에서 숨이 끊어지는 날, 다시 달로 돌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죽는다는 것 보다도, 그들의 지엄하고 현명한 황제가 생명의 뿌리에 양분처럼 흩어지는 것은 실로 축하할 일이었다. 한 생명이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건 오직 그들이 걸친 상복 뿐인 듯 했다. 월국의 모든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는 5일 동안만 상복을 입었다. 염쟁이의 정성스런 손길을 받아 때묻지 않은 깨끗한 수의로 갈아입은 시신을 화장해, 선대 황제들을 모신 제단에 나란히 올리며 장례가 끝나는 순간, 그들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월국의 장례는 그리 복잡하지 않고 간단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들의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며칠 전만 해도 황태자 신분이었던 윤기는 황좌에 앉아 대신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황후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대 황후였던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미뤄졌던 황태자비 간택은 아버지가 병을 얻으며 한 번 더 미뤄졌고, 결국 윤기는 황후 없이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동양의 다른 나라와 달리 월국의 지엄한 법 체계는 황제의 위에 있어서, 남녀 간에 정이 없다면 혼인 또한 이뤄질 수 없다는 혼인법을 황제인 윤기도 피할 수 없었다. 황태자비 간택을 할 때나 황후의 요절로 새 황후를 모시기 위한 간택을 할 때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정인의 유무 여부였다. 황족이 궐 밖의 여인과 정을 통하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보통 국혼준비령과 금혼령을 내려 사대부 집안으로부터 혼인단자를 받아 초간택을 진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윤기는 간혹 있는 미모가 빼어난 궁녀를 곁눈질로 훔쳐본 일도 없었다. 그에게 정인이 있을리는 만무했다. 자리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늙은 신하가 눈을 돌려 용안을 흘긋 훔쳐보았다. 선이 유한 입매와 다르게 황제의 눈매는 날카로웠다. 어린 티가 나는 하얀 얼굴에는 황족의 순수 혈통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위엄이 서려있었다. 굳게 닫힌 채 언제나 열릴까 관료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 국혼준비령과 금혼령을 내리고, "
" …. "
" 내일부터 5일 간 혼인단자를 받도록 하라. "







왈가왈부하던 대신들의 대화를 한 순간에 어린아이 다툼으로 만들어버리는 간단명료한 말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는 발음에는 불필요한 숨결 하나 섞이지 않았다. 황좌에 올라 처음으로 내리는 명이었다. 정전 내부는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어리석음과 현명함에 대해 나이가 관여하는 바는 크지 않았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폐하. 관료들은 하나같이 허리를 굽혔다.







윤기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아버지의 죽음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던 환관이나 상궁들도 보였던 눈물인데, 윤기는 그 축축한 것을 제 눈에서 떨구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색했다. 가장 가슴이 아렸고 슬퍼한 것은 분명 윤기였으나, 단지 눈물이 적은 천성을 타고났을 뿐이었다.

윤기는 아버지가 쓰시던 대전으로 침소를 옮겼다. 전 황제가 사용하던 이부자리며 물건들은 다 같이 태워버리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 방엔 윤기가 써 오던 침구와 가구들이 자리를 잡았고, 한 쪽 벽면에는 새로이 지은, 황제를 상징하는 상아색 깃발이 걸려있었다. 대전 뒤 뜰로 나온 윤기는 달을 보며 입김을 불었다. 보름달이라기엔 약간 모자란 달 위를 입김의 무거운 입자가 희미하게 덮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 투명하게 사라지는 연기를 보며 윤기는 생각했다. 부질없다고. 시야를 잠깐 덮었다가 사라지는 연기처럼 인간의 삶도 한 순간일 뿐이다. 황제로 나라를 돌보고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던 아버지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달로 돌아가든 하늘로 돌아가든, 산다는 것이 다 즐거움이고 미련인데 삶보다 무게있는 것은 없지 않겠는가. 윤기는 발갛게 언 손을 소매 속으로 숨겼다. 멀찍이 떨어진 신하들과 달리 제 등 뒤에 선 호위무사에게 말을 건네었다.







" 만월제가 이틀 남았다지. "
" 예, 폐하. "
" 잠행을 나가야겠구나. "
" 허나, "
" 백성들을 알아야 그들을 돌볼 것이 아니냐. "
" … 예. "







미심쩍은 듯 대답하는 그를 뒤로 하고 윤기는 걸음을 돌렸다. 이번 만월제는, 유난히 달이 밝을 성 싶은데. 윤기의 의미 없는 중얼거림이 고요한 공기 속에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 * *










돌아가신 황제 폐하의 상이 끝났다.

아버지는 홍색 단령을 걸치고 집을 나섰고 나는 하늘색 치마를 둘렀으며, 사월이는 연보라색 천 치마를 둘렀다. 장례 기간 동안 시린 몸을 덮어 주었던 하얀 상복은 장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언젠가 다시 찾아올 누군가의 죽음에 대비해 동면기에 들었고, 사람들은 전과 다르지 않은 생활로 돌아와 저마다의 의복을 걸쳤다.







/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겠지요.







석진에게서 온 서찰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릴 찾아 돌아간다. 그렇겠지요. 가슴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그에게 답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그 누구보다 친근했고 늘 떠올릴 수 있었지만 절대로 가까울 수 없었던 사람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은 백성들을 잠식시켰다. 그러나 점차 그러한 감정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그 빈 자리를 비집고 채운 것은 그들의 일상 생활이었다. 토끼같은 자식들의 주린 배와 입을 걱정해야 했고, 앞으로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할 삶에 대한 걱정은 그들을 잠시라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해봤자 수중에 돈 한 푼 떨어지지 않는 상념은 사치겠지. 돌연, 나는 그러한 상념의 틀에 갇히지 못한 그들이 부러워졌다. 부지런히 일해야만 마른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기에 어떤 생각도 할 여유가 없을 그들이 부러워졌다. 물론 그들은 나를 보고 배부른 소릴 한다며 걸걸한 말들을 쏟아낼 테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간다.

그러나 내 마음만은 본래 있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주위만 뱅뱅 맴도는 듯 하다. 한 쪽 날개를 잃어 추락하는 새처럼, 둥지를 찾지 못하고 외딴 곳에 떨어져 굶어 죽을 것 같다. 마음이 허하다, 외롭다, 라는 식의 상투적인 표현을 입히기엔 그보다 더 허하고 복잡했으며 무거웠다. 나를 갉아먹는 그 감정이 나는 너무나 버겁다.







" 아씨! 아씨! "







바깥에서 큰 소리로 나를 찾던 사월이는 내가 들어오라 대답하기도 전에 문을 왈칵 열고 달려와 앉았다. 손을 바닥에 짚고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니 멀리서부터 뛰어온 모양이다. 입을 꾹 다물었다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신 사월이가 활짝 웃는 낯으로 말한다.







" 곧 즉위식을 시작할 거래요! "







먼저 궁 안에서 의식을 치른 뒤, 황제가 백마를 타고 궐 담을 따라 한 바퀴 돌며 백성들에게 새 황제가 즉위했음을 공표함으로써 즉위식을 마친다. 사월이가 말하는 그 즉위식은 아무래도 황제께서 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연신 방긋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다섯 살 아이의 얼굴이다. 이내 눈을 반짝이며 은근히 나를 쳐다본다. 말 하려는 것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







" 아씨, 아씨도 이제 열여섯 살이 되셨으니 올해부터는 만월제에 가시겠네요. "
" …. "
" 와. 벌써 만월제가 모레에요! "
" 벌써 그렇게 되었나? "
" 그렇다니까요. 아씨, 그럼 만월제 준비도 할 겸 해서 말인데요. "







표정이며 손짓까지 과장된 행동을 벌이던 사월이 갑자기 가슴께로 손을 모으곤 눈치를 본다. 자꾸만 이 쪽을 흘긋거리는 눈이 사심을 잔뜩 품고 있다.







" 황제 폐하 즉위식 구경 나가면 안 될까요? "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뜩 흥분해 올라간 어깨와 발갛게 상기된 볼, 벌어진 입술. 저 모습을 보고 어느 누가 혼례까지 치른 스물한 살 새댁으로 보겠는가. 나보다 다섯 살 위가 아니라, 열 살은 아래 같다.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다녀오라 하자 이번엔 갑자기 성을 낸다. 아씨는요! 저 혼자 어찌 가란 말씀이세요? 앙탈을 부리는 건지, 투정을 부리는 건지. 사월이는 제 맘에 들지 않거나 창피해지거나 하면 입술부터 쭉 내밀었다. 참새 부리처럼 뾰족하게 마중나온 입술이 다시 중얼거린다. 저 혼자 좋은 거 보아서 뭐 한다고, 아씨가 좋은 걸 보셔야지. 결국 내 이야기로 끝마친다.







" 향이랑 다녀와. "
" 노닥거린다고 향이가 혼난단 말이어요. "
" 노닥거리는 게 아냐. 내가 심부름 시키는 거야. 구경갔다가 와서 나한테 얘기해주면 되잖아. "
" 아씨는 정말 안 나가셔도 되겠어요? "
" 조금 피곤해. 누워있고 싶어. "







봄 눈 녹듯 사르르 풀리던 표정이 피곤하다는 말에 흐물해졌다. 미간은 밀려 올라가고 그 밑으로 걱정스러운 눈이 내 얼굴을 찬찬히 살핀다. 안 아파, 그냥 피곤한 것 뿐이야. 웃으며 손사레를 쳐도 울상이 된 얼굴은 그대로였다. 곁으로 다가와 이불을 다시 정리해주는 손 마저 걱정이 서려있다. 왜 이리도 날 걱정하는건지 모르겠다. 난 괜찮은데.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그냥 피곤할 뿐이다.







" … 괜찮으신거죠, 아씨? "
" 괜찮아. "







집요하게 따라오는 사월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괜찮대두. 잠시 머뭇거리던 사월이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문을 닫고 나갔다. 조금 피곤할 뿐이다. 다른 일 없이, 그냥 몸이 무겁고 눅눅한 날이 있지 않은가. 그냥 그런 날일 뿐이다.







" … 괜찮아질 거야. "







괜찮아야 한다. 책상 위에 아까 읽다 내려둔 모양 그대로 놓여 있는 석진의 서찰로 눈이 갔다.







/ 곧 열릴 만월제에서 공녀를 만나볼 수 있겠지요.







강이 깊으면 깊을수록 짝 없이 헤엄치는 오리는, 하늘이 높으면 높을수록 혼자 날갯짓하는 나비는.

많은 사람들로 붐빌 그곳에서조차 나는 외로울 것 같다.












[방탄소년단/탄소] 만월 : real moon 6 | 인스티즈













월국의 달이 가장 크고 밝게 뜨는 날, 만월제(滿月祭)가 열린다. 젋은 사람들을 중심축으로 하여 진행되는 만월제 행사는 각 지방마다 중앙에 세워진 전각에서 술과 노래, 춤을 즐기는 일종의 사교 행사였다. 그 곳에서 서로 마음이 맞은 청춘 남녀는 은밀한 암호를 적어 만든 쪽지를 교환하여 만남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만월제는, 말 그대로 자유 연애에 있어서는 관대한 월국의 연애 장려 행사가 아니냐, 하는 설이 항간에 떠돌기도 했다. 그러한 행사에 규칙이 있다면 남녀 모두 가면이나 얼굴 가리개 등으로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게 가려야 했고, 억지로 서로의 얼굴을 보거나 보려고 해서는 안 되며, 과도한 신체적 접촉은 금하고 있었다. 또 혼례를 올릴 수 있는 나이인 16살이 되어야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고, 스무 살인 이들에게 만월제는 성년의 날을 의미하기도 했다.


내일, 며칠 전 열여섯 생일을 지난 나는 올해 첫 만월제를 보낸다.

함께 장에 나온 사월은 가면과 얼굴 가리개를 내놓은 가게마다 걸음을 멈추곤 아씨! 하며 나를 이끌었다. 신난 얼굴로 고개를 쏙 내밀곤 연신 감탄을 한다. 누가 보면 사월이가 만월제에 가는 것이라 생각할 것 같다. 아씨! 이건 꼭 사야 돼요! 아니, 이거요!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계속 가면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사월이에게 가게 주인이 눈치를 주었다. 하지만 평생 함께 살 남편감을 고르듯 저 혼자 고민에 빠진 사월이는 그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결국 그녀를 잡아 이끈 건 나였다.







" 아씨, 어쩌죠? 예쁜 게 너무 많아요. "
" …. "
" 다 사고 싶다…. "







검지손가락을 깨물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월이의 얼굴을 쳐다보다, 결국 참았던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윗배가 진동을 하며 깊은 곳에서 나오는 웃음에 사월이 얼굴을 붉혔다. 왜 웃으시냐 묻는 얼굴이 점점 발갛게 달아오른다. 참으려 입술을 물었지만, 역시나 역부족이다.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려 턱 선에 맞춰 잡은 장옷을 올려 콧대까지 덮어버렸다. 앞서가는 나를 따라오는 사월이가 터벅터벅 걸었다. 씨이…. 발걸음 소리마저 심통이 난 듯 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던 그녀는 제 앞에 가던 내가 멈춘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 사월아. "







이름을 부르니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내게 뛰어온다. 옆으로 다가온 사월이 나를 쳐다보다가 내 시선이 닿은 곳에 자신도 눈을 두곤 와, 하고 작은 탄성을 지른다. 장옷 사이로 손을 뻗어 하얀 얼굴 가리개를 들어올렸다. 연노란색 띠 아래로 붉은 꽃이 수 놓여져 있고, 걸이 부분에는 손톱만한 보석 나비가 박혀 있었다. 조용히 사월이에게 눈짓했다. 주머니에서 엽전을 꺼내 계산을 하던 사월이가 갑자기 손뼉을 짝 마주쳤다. 도련님께서도 심부름 시키셨는데! 동그란 눈으로 바쁘게 좌판을 살핀다. 여성용 얼굴 가리개만 파는 것인지, 온통 울긋불긋한 꽃밭이다. 사월은 다른 가게를 찾아보아야겠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먼저 돌아서는 사월이를 따라 몸을 돌리는 찰나, 구석에 놓여 있는 곤색 천이 보였다. 사월의 옷 소매를 잡아 끌어 멈추게 하고 가까이 보니, 검정에 가까운 짙은 단색 얼굴 가리개였다. 그것을 집어 가게 주인에게 건네었다. 사월이가 계산을 했다.







" 도련님이 좋아하실까요? "
" …. "
" 아씨가 골랐다고 말씀드리면 분명 좋아하실거에요. "







사월이는 옆에서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도련님이, 도련님께서, 도련님은. 자꾸만 귀에 박히는 그 호칭을 따라 머릿속에 그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태형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얼굴 또한 보고싶지 않았다. 요동치는 마음을 억지로 잡아 누르는 것은 곤욕이었다. 혼자 있으면 그를 생각할 것이 분명했기에 사월이와 함께 나왔는데, 어째 함께 있으니 더 힘든 것 같다. 결국 사월이에게 강정 같은 주전부리를 좀 사오라 시켰다.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피곤하다고, 바로 집 앞이니 먼저 들어가 있겠다고 그녀를 타일렀다. 얼른 다녀오겠다며 총총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다 걸음을 돌렸다.

멀리 보이는 나무 하나가 실바람에도 몸을 떨었다. 목숨이 질긴 나뭇잎 서너 개만 마른 몸에 악착같이 붙어있었다. 서있는 모양이 위태로워 손으로 톡 치면 파스스 가루로 변해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입이 괜히 텁텁해졌다. 마음이 흔들리니 보이는 것 마저 흔들리나. 괜히 내 모습이 가련해져 한숨을 푹 내쉬는데 발 앞으로 무언가가 날아와 툭 떨어진다. 몸을 숙여 주워보니, 웬 유리구슬이다. 알록달록한 것이 투명하게 반짝였다. 구슬 너머로 웬 사내의 신발코가 볼록하게 비쳤다.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남자가 활짝 웃으며 구슬을 쥔 손을 덥썩 잡았다.







" 고맙소.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 했네. "












* * *












호석은 남준의 성화에 못 이겨 방 밖으로 나왔다. 내가 저 새끼를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콧망울 옆으로 삐죽거리는 주름이 잡혔다. 남준이 일국(日國)에 두고 왔을 무사 아저씨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신을 신은 호석은 도포를 탁탁 털어 정리한 뒤 뒷짐을 지고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월국에 올 때 마다 느끼는 건, 일국에 비하면 햇살이 미지근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호석은 그것이 좋았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찬 것도 아니고. 얼마만에 월국에 온 것인지를 가늠해보았다. 일국의 역관인 아버지를 따라 마지막으로 온 것은 2년 전, 아버지 몰래 찔끔찔끔 다닌 것은 일곱 달 전이 마지막이었다. 얼마 되진 않았네. 이번엔 월국에서 만월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탔다. 덕분에 귀찮은 남준도 달고 오게 되었지만. 남준은 만월제에 가면을 쓰고 가야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호석에게 사오라는 명을 내렸다. 호석은 일국에서 미리 사 두었기에 굳이 살 필요가 없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거부하니 남준은 어명을 거역하는 것이냐고 소리를 지르며 누운 채로 호석을 향해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어쩌다 그 헛발질에 한 대 얻어맞은 걸 떠올린 호석은 다시금 열이 뻗쳤다. 18년 짧은 인생의 가장 어리석은 행동은 남준을 벗으로 둔 것이라고, 호석은 생각했다. 

어찌되었건 남준을 벗으로 둔 죄로 호석은 가면을 사러 가야 했다. 따사로운 햇살에 콧노래를 부르며 휘적휘적 걸었다. 일찍 들어가봤자 남준은 방이 좁네 어쩌네 불평을 늘어놓을 것이 분명했다. 방 문제는, 호석이야말로 기가 찬 일이었다. 몰래 온 월국, 그것도 처음부터 혼자 올 것으로 계획해 딱 그만큼의 경비만 준비했는데, 남준은 출발 당일 갑자기 나타나 저도 데려가라 하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그는 무일푼이었다. 호석은 일국에 돌아가자마자 남준으로부터 돈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아니면 절교를 하던가. 손에 조그마한 유리구슬을 굴리며 모퉁이를 도는데 쓰개치마를 덮어 쓴 여인에게로 눈이 갔다. 그녀는 멀리에 있는 나무를 보고 서 있었다.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는데, 그녀가 보는 앙상하게 마른 나무만큼이나 처연한 눈빛 때문인 듯 했다. 이내 한숨을 폭 내쉰다. 호석은 저도 모르게 그 앞으로 구슬을 던졌다. 구슬이 손을 떠나고 나서야 아차, 했다. 장옷 사이로 나와 구슬을 줍는 손에 시선을 두었다. 하얀 손이 참 곱다, 중얼거렸다.







" 고맙소.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 했네. "







호석은 웃으며 그녀에게로 달려가 손을 덥썩 잡았다.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보드라웠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호석에 탄소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닙니다, 하며 구슬을 내어주고 손을 거두려는데, 호석이 힘을 줘서 잡힌 손을 뺄 수가 없었다. 호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탄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까 느꼈던 것 처럼, 확실히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다. 그런데….







" 손을 놓아 주시지요. "
" …. "
" 놓아 주세… "
" 지금 무슨 짓입니까! "







한 팔로 종이 봉투를 들고 오던 사월이 그 광경을 보고 부리나케 달려와 호석의 손을 내쳤다. 얼굴이 빨개진 사월은 씩씩거리며 호석에게 고함을 쳤다.







" 대낮에 길거리에서 모르는 처녀의 손을 붙잡고, 어찌 그런 눈으로 보시고 계시는 겁니까? "
" …. "
" 댁이 뉘신지는 모르겠소만, 우리 아씨는… "
" 사월아. 그만. "
" …. "
" 미안하오. 내가 아는 사람이랑 착각을 했소. 정말 미안합니다. "







호석은 눈썹을 늘어뜨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는 사람과 착각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사월은 여전히 화가 난 듯 했고, 옆에 선 탄소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 괜찮습니다. "







사월이 눈을 찢어 호석을 한 번 노려보곤 걸음을 돌리는 탄소를 따라갔다. 호석은 손에 쥔 유리구슬을 꼭 쥐었다. 탄소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 했다.

자꾸만 눈이 갔다.
















지림 님, 버들 님, 다이 님, 슙루룹 님 감사합니다 :)

사담


분량 조절 실패 8ㅅ8

윤기와 호석이까지 나왔습니다. 또 누가 남았더라 ㅎㅅㅎ

덧글과 추천 감사합니다!


늘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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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지림]이에요!! 으아 분위기가 왜이렇게 훈훈하고좋은가요ㅠㅠㅠ 내용자체는 사실 어떻게보면 씁쓸하고 안타까운내용인데 마지막에 호석이 때문에 들떠버렸나봐요 브금도 좋고 ㅎㅎ 뭔가 이번편은 저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봤던것같아요 ㅎㅎ 윤기가 나오니까 윤기가 여주를 좋아하게될것같기도하고 ㅎㅎ 호석이는 여주를 좋아할것같고 ㅎㅎ 만월이 이때까지는 약간 무거운 분위기 (저만 그렇게 느꼈나요? 하하) 였다면 이번은 좀 가볍고 훈훈해서 좋은것같아요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
9년 전
탄소발자국
지림님! 매번 덧글에서 정성이 묻어나요ㅜㅜ 너무 감사드립니다. 밝은 캐릭터를 만들려고 해봤는데 조금은 전달이 된 것 같아 기뻐요 8ㅅ8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9년 전
독자2
드디어 윤기와 호석이등장이네요~~~ 이번글도 잘읽고 가요~~
9년 전
탄소발자국
네 윤기와 호석이가 드디어 등장했어여ㅜㅜ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
9년 전
독자3
다이
뭔가 만월제에서 윤기랑 여주랑 만날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하지만 저는 항상 이런거를 잘틀려서....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9년 전
탄소발자국
다이님 추측이 맞을까요 틀릴까요..ㅇㅅㅇ 감사합니다 다이님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
9년 전
독자4
진짜 너무 재미있어요ㅠㅠㅠㅠㅠ윤기도 나오규 호석이도 나오고ㅠㅠㅠ캐릭터가 다 살아있는 느낌??? 캐릭터마다 다 매력있구ㅠㅠㅠ다음편도 기대할게요!!!!!
9년 전
탄소발자국
칭찬 너무 감사드려요ㅜㅜ 아이고 앞으로도 열심히 잘 써야겠어여 다음편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9년 전
독자5
아이고ㅠㅜㅜㅜㅠㅠㅠㅜㅜㅜㅠㅠㅠㅜㅜㅜ윤기가 황제라니 너무 잘어울려요ㅠㅠㅜ호석이가 남준이 벗이면 남준이는 무슨 역할일까요? 중간에 어명이라는 단어면 혹시 일국의 황제라던가 그런다던ㄱ.. 전 뭐 맞춰본적이 없으니 그나저나 작가님 역할배정 너무 잘하시는것같아요ㅠㅜㅜㅜㅠ브금도 너무 좋고 오늘도 잘 읽다 가요ㅎㅎ!
9년 전
탄소발자국
역할배정을 잘 한다니..(심쿵) 잘 읽으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아요 ㅎㅅㅎ 칭찬과 덧글 감사합니다!
9년 전
독자6
으아~~~ 작가님 슙루룩이에용~~~~ 다음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계속 생각하면서 봤어용 ㅠㅠㅠㅠ
윤기도 나오고 호석이도 나오고 남준이의 등장까지!!!!!!
빨리 다음이야기도 보러 가야겠어용~~~

9년 전
독자7
윤기 사진 보고 억 윤기 나오는구나!!!했었는데 이게 뭐야 호석이도 나왔네요 그리고 냄쥰이도 조만간 나올 거고요 근데 윤기가 황제라니 윤기가! 윤기가 황제라뇨? 작가님이런 말하기 쑥스러운데... 사랑해요 그 어명이라는 건 남준이는 뭐, 일국에서 황제인가요? 이렇게 보니까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ㅅ' 그런데 이제 금혼령을 내릴 텐데 석진이랑 여주는 어떡하고 태형이랑 그 화려한 여인은 어떡하고... 만약 윤기가 시현이를 좋아하게 된다면 이건 뭐 엄청 꼬이는 거네요 근데 전 그런 스토리 좋아합니다 역하렘 좋아해요, 역하렘에 나오는 남주들이 불쌍하지만 제가 여자라서 그런 스토리나 빙의글 좋은 건 어쩔 수 없네요
9년 전
독자8
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ㅠㅠㅠㅠㅠㅠㅠㅠ재밌어요♥ㅠ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왜제가지금밧나싶네요ㅠㅠㅠ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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