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의미 없이 전교 2등을 지키며 살아온 고등학교 3년,
뻔하고 무료하게도 사범대학교에 진학을 했다
신입생 환영회,
처음으로 3년 노력에 대가를 얻은 듯, 그를 보았다
새하얀 얼굴, 곡선으로 휘어지는 눈꼬리, 날이 선 듯 높은 코, 핑크빛이 도는 입술..
딱 봐도 호감형인 복숭아 같은 얼굴
'자꾸 눈이 가네- 하얀 그 얼굴에-'
"안녕?"
"아, 안녕..!"
여중, 여고를 나왔기도 했지만, 공부 외에 한눈팔 새가 없었기에 남자랑 말을 할 기회다 없었다, 무엇보다 이런 잘생긴 남자와..
멍청하게 말까지 더듬으며 어색하게 손을 올려 좌우로 흔들댔고
어색한 웃음까지 지어 입끝이 파르르 떨렸다
나를 찬찬히 바라만 보던 그가 갑자기 자지러지듯이 웃었고, 웃음을 멈춘 그가 내 머리에 손을 올린 채 살살 쓰다듬었다
"후배가 당돌하네, 푸흐-"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동기일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 선배들이 환영회를 열어준다는 걸 잠시 망각했던 것 같다
당황해서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으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화장을 곱게 한 예쁘게 생긴 여자 무리들이 소음을 내며 들어왔다
문 앞에서 어린 티가 나는 애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는 걸 보니 한눈에 선배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 예쁘장한 여자 무리는 곧바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복숭아 닮은 선배 앞으로 다가왔다
"나니야~"
"우리 진환이, 어린애들 보려고 여기 온 거야?"
"어제 모임에는 오지도 않더니.."
"헐, 김진환 코트 입었어!"
예쁘장한 선배 무리는 복숭아 닮은 선배를 '김진환'이라고 칭했다, 이름도 몽글몽글하니 귀엽다..
예쁘장한 선배 무리는 김진환 선배 앞에서 조잘조잘 얘기하며 친근함을 표했고, 팔을 살짝씩 터치하며 농담도 했다
그러다가 선배들의 시선이 내게 닿았고
난 분명 보았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을..
"안녕하세요, 신입생 ○○○입니다!!"
"어 그래"
다들 김진환 선배에게 살갑게 굴던 모습은 감춘 채 날 위아래로 훑으며 아니 고운 시선으로 말을 건넸다
김진환 선배는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내 머리끝을 만지작댔다
"얘네도 내 동기니까, 안녕이라고 해야지!"
"ㅇ, 예?"
"큭- 장난이야, 장난 "
어깨를 나에게 비비며 장난을 거는 그에 얼굴이 붉어졌고, 예쁜 무리의 선배들 중 가장 아이라인이 긴 선배님께서 김진환 선배의 팔에 자신의 팔을 걸더니 내 곁에서 멀리 떼어놓았다
"진환아, 오늘은 달려야지!"
"내일 강의 있잖아"
"그래도.."
아이라인이 긴 선배님께선 눈꼬리를 불쌍하게 추욱 내려뜨렸고, 김진환 선배는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예쁜 무리 선배들은 이때가 기회라 노렸는지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야, 신입생"
".. 네?"
"여기 들어올 정도면 똑똑한 거 알아.
말 안 해도 알지?"
딱 봐도 김진환과 멀리 지내라는 무언의 압박 같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생이 선배들에게 미움을 샀다가는.. 앞길이 훤했기 때문이었다
****
선배들의 압박에 겁을 먹어서 일까, 아니면 더 이상 김진환 선배의 얼굴을 보면.. 전자라고 믿고 싶다.
문을 열고 밖에 나오니 많이 어둑해진 데다가 얇은 코트만 걸친지라 쌀쌀하게 느껴졌다
코트를 여미느라 입구에서 지체를 한 건지 어떤 보드라운 손이 내 손을 감쌌다
"어디가요?"
딱 봐도 '예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키도 조그맣고 분홍색 코트를 입은 모습이 여간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그 여자를 넋 놓고 바라보자, 그 여자가 날 바라보며 눈을 휘어접었다
"신입생이죠? 왜 벌써 가요-"
나에게 조곤조곤 말을 건네며 조심스레 손을 감싸 쥐는 그녀에 망설이기도 잠시, 아까 아이라인이 긴 선배님께서 밖으로 나왔다
"어? 지은아!"
그에 내 손을 잠시 놓으며 그 아이라인 긴 선배께 손인사를 했고, 내 앞에 그 여자가 선배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 선배님들이 잠시 대화를 나눴고, '지은이'라고 칭해진 복숭아 같은 선배님이 인상을 잠시 찡그렸다
인상을 금세 푼 그 여자는 내 손에 자기 손을 끼워 넣더니 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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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
김진환 선배가 내 앞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까 왜 나갔어? 찾았잖아-"
"아, 그게.."
"아!! 진환아 우리 내일 강의 끝나고 영화 보기로 한거 기억하지?"
내 말을 끊은 건 날 여기로 이끈 지은 선배였다
자연스럽게 김진환 선배의 눈길은 지은 선배에게 향했고, 미소를 지으며 긍정의 화답을 나누었다
자연스레 표정이 굳어졌다, 지은 선배가 김진환 선배를 좋아한다는 것을 꽤나 깊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둘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둘 다 뽀얗고 동글동글한 복숭아 같은 게 내가 감히 다가갈 수 없을 정도였다
알 수 없는 우울함과 나는 왜 이럴까라는 자괴감이 내 속에서 버무려져 목이 메어 왔고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무리가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응~ 잘 가!"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넨 건 지은 선배였고, 아까 날 안으로 이끌던 모습이 아닌 빨리 가라는듯한 눈빛에 그녀가 미워 보였다
내가 일어서자 김진환 선배가 당황한 듯 눈을 굴렸고 나를 따라 엉덩이를 떼었다
"데려ㄷ.."
"나니! 오랜만인데 나랑 안 놀아주고 가는 거야아 -?"
그의 애칭인 듯 이름을 바꿔 부르며 말꼬리를 늘린 지은 선배가 애교를 부리며 김진환 선배를 올려다봤다
그에 곤란한 듯 망설인 그가 자리에 다시 앉았고 지은 선배는 날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되게 빨리 가네, 신입생 내일 보자-"
나를 약 올리는 듯이 말을 흘린 그녀가 김진환 선배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어 올렸고 그에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김진환 선배가 어버버 대며 당황할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여우 같은 년, 복숭아라고 했던 거 취소다
****
오늘은 날씨가 쨍쨍하니 맑다
어제 있었던 일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부여잡고 캠퍼스 길을 걷고 있으면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어 번 톡톡 건드렸다
"저기.."
애띄어 보이는 남자였고, 누가 봐도 입학한지 얼마 안 된 내 동기 같았다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남자친구 있으세요?"
나를 눈에 담아내며 말을 또박또박 건네는 그에 되려 내가 당황스러워졌다
"ㅇ, 없는데.."
내 말에 얼굴이 꽃 피듯 활짝 피어졌고 나의 손목을 살짝 쥐었다
"신입생이지? 나 번호 좀 알려줘"
"... ㅇ.. 어.. 그래"
갑자기 말을 놓아버리는 그에 말을 더듬으며 핸드폰을 건네받으려 손을 뻗자 어깨에 손이 감겨온다
"어허- 신입생이 어디서"
목소리와 다르게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나를 내려다보는 그에 어제와 같이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내 앞의 남자애는 김진환 선배를 보자 고개를 꾸벅 숙이곤 나에게 다음에 보자며 등을 보였다
"오- 인기 많은데?"
"아니에요, 이런 적 처음인데.."
"진짜? 처음에 나한테도 안녕이라고 친근하게, 푸흐-"
"어으.. 그땐 진짜.. 죄송합니다-"
김진환 선배가 첫 만남을 자꾸 장난삼아 나를 놀려댔고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워 보였다, 미쳤나 봐..
선배는 여전히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함께 강의실로 향했고
걷는 동안 많은 시선과, 눈초리를 받아냈다
강의실에 거의 도착했을 때 지은 선배를 만났고 지은 선배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김진환.."
지은 선배는 내 어깨를 감싸고 있던 그의 손을 떼어낸 뒤 입술을 삐죽였다
지은 선배의 표정을 본 그는 걱정된다는 듯 그녀의 볼을 살살 쓰다듬으며
"오늘은 왜 이렇게 입이 뿔뚝 나오셨을까-"
그가 지은 선배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고
이미 나는 지은 선배와 김진환 선배의 틀 밖으로 쫓겨났다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전혀 떨어질 줄 몰랐다
처음으로 김진환 선배가 미웠다
지은 선배의 볼을 쓰다듬어서? 아니다
모든 여자들에게 잘해줬던 것일 뿐이었는데 괜히 착각하고 설렜던 내가 멍청해 보여서.. 그게 무척이나 힘들었고 온몸이 무거웠다
지은 선배는 김진환 선배에게 할 말이 있다며 어딘가로 데려갔고
나는 그 자리에 어떠한 표정도 짓지 못하고 한참이나 서있었다
****
강의를 듣고 조별 과제를 같이 하게 된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나왔다
정말 괜찮은 친구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중에서도 마음 맞는 친구가 있었다
수수하게 생긴 친구였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았다
재수를 했다고 하지만 친구로 지내자며 처음부터 편하게 대해줘 나도 마음을 쉽게 열었던 것 같다
그 친구와 재잘재잘 떠들며 나오고 있었을까 어떤 여자와 부딪혔고
"아- 씨발"
험하게 욕설을 내뱉음에 눈을 크게 떠 그 여자 얼굴을 보니 지은 선배였다
지은 선배가 나인걸 확인하곤 밝게 미소를 지었다, 나에겐 조소로 느껴졌다
"어머! 신입생-"
"......"
대구 하지 않은 채 시선만 마주하자 지은 선배가 내 두 손을 쥐고 위아래로 흔들어대며 신이 난 듯 말을 꺼냈다
"좋은 소식 있어! 나 진환이랑 CC 됐어"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거짓으로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내 속은 이상하게도 분노로 들끓었고
너무 얄미운 지은 선배였기에 자칫하면 욕을 내뱉을뻔했다
내 표정을 본 지은 선배의 표정이 싹 굳었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귀에다가 속삭였다
"그니까 이제 행동 똑바로 해"
점점 주먹이 파르르 떨렸고, 지은 선배가 너무나도 미웠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만 하느라 이런 상황에 대처법을 안 배워서 그런 걸까.. 머릿속만 새하얘졌다
내가 부들부들 떨자
"푸하 하하하하하-"
내 옆의 친구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얘가 왜 이러지 싶다가도 이어지는 말에 모든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너 아직도 이러고 사니?"
"뭐?"
친구 먹은 동기의 말에 지은 선배가 눈을 부릅뜨며 달려들었다
나는 이 상황을 지켜볼 뿐 어떠한 일도 하지 못했다
"아직도 존나 여우 같아, 못된 년"
"재수하더니 미쳤니?"
"돈 꼬라박아서 들어온 게 어디서 당당한 척이야"
"너도 그러지 그랬니? 난 돈이 많아서-"
"돈 많으면 뭐 해, 인성이 거지 같은데"
"예쁘면 다 될걸-"
점점 상황이 악화되어 가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냉랭해졌고 공기에 칼이 숨 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대충 들어보니 지은 선배는 돈으로 대학에 들어온 것 같았고, 과거에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았다
내 동기와 같은 학교 출신이었던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 둘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왜 그 무슨 일이 짐작 가는 것일까, 나랑 같은 상황이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지은 싸가지 없는 년이..!!"
동기는 손을 올렸고 지은 선배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뺨을 부여잡고 주저앉은 지은 선배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이상하게도 지은 선배는 연기를 하는 것 같아 보였고 뒤가 싸해 돌아봤을 땐
".. 뭐 하는 짓이야"
김진환 선배가 우리를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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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살랑 바람이 불때 입학했던 것 같은데 벌써 찬바람이 온몸을 얼렸다
그 일이 있은 후 김진환 선배와 한마디도 나눌 수 없었다
두 번 밖에 마주치지 않았다, 한 번은 차가운 눈빛의 김진환 선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내가 먼저 그를 무시한 채 지나쳐갔다
또 한 번은 지은 선배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에.. 바로 등을 돌려 학교 밖으로 몸을 피했다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아무렇지 않다
그 당시에는 억울함이 컸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백번 맞는 것 같다
강의가 끝나고 빨간 목도리로 목을 꽁꽁 감싼 채 찬바람을 뚫고 걷고 있는데
저 멀리 벤치에 누군가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에 가까이 다가가자 김진환 선배가 있었고,
얇은 카디건 하나만 걸친 채 몸을 살짝씩 떨고 있었다
두 볼을 건드리면 깨질 듯 얼어있었고 두 눈은 공허해 보였다
지금은 간질간질한 감정보다 안쓰러운 감정이 들었다
선배 옆에 앉자 그의 눈이 내게 닿았고 첫 만남처럼 밝게 웃었다, 하지만 눈은 울고 있었다
"선배님, 왜 여기 이러고 계세요"
"... 춥다"
내가 묻는 말을 피하려는 듯 두 손을 비벼대며 청자켓을 조금 더 여민다
분명 무슨 일이 있어 보였고, 위태로워 보였다
"무슨 일인데요.."
말없이 허공을 바라본 채 쓴웃음을 짓던 그가 한참 뒤 입 뗐다
"헤어졌어"
"......"
아무렇지 않다,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사실 잘 모르겠다 …
"대놓고 바람을 피우더라"
"......"
"근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
아무렇지도 않다는 저 말을 나는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선배에게 느끼는 감정이니까
사실 선배도 잘 모를테니까
"불쌍했어, 여려 보이고 그냥 그랬는데.. 다 연기였다는 게 무섭더라"
"......"
"이제 아무 상관 없어졌어"
".. 네?"
"군대 가 "
"아..."
김진환 선배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몰라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자 그기 웃음을 터뜨렸다
"큭- 어차피 가야 됐던 거야, 불쌍하게 보지 마"
"흐, 그러네요"
장난기 있는 모습이 보여 선배와 내벽의 긴장이 풀려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첫 만남의 감정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2년 후에 내가 후배로 들어가겠다.."
"......."
"그땐 안녕이아닌 다른 말할 거야"
"......."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들에 고개를 까딱이자 그가 내 머리를 찬 손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을 느끼고 있으면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꾹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은 채 내게 등을 보였다
복숭아로 꽁꽁 싸여 있는 그와 같은 속살같이 같이 단 말을 내게 남긴 채,
"기다려, 이제 후회할 짓 안 할 거야"
마음이 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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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환아 생일 축하해 ♡
이번 편은 굉장한 반전이 있을 예정입니다..*^^*
번외로 곧 찾아뵐게요~
한빈이 편에서 동동이 추천해주셨는데 곧 올리겠습니다!!
※ 저번편 두개 불맠 이멜링합니다! 비회원 독자분들이나 독자분들 원하시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