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슈] 애정결핍
"세훈아, 내가 좋아?"
"아, 김민석. 그만해."
"왜, 너도 내가 좋잖아. 나도 네가 좋아."
"지랄하지 말고 좀"
"좋으면서, 부끄러우니까 그런거지 세훈아?"
"아, 씨발. 진짜 그만해."
"알았어, 부끄럼쟁이 오세훈"
***
아니, 저 새끼가 미쳤나. 나를 안지 한 달 되었다. 아니지. 정확히 저 새끼가 전학온 지 한 달.
나는 키가 크단 이유로 맨 뒤에 혼자 앉았다. 애들 시야 가려진다고. 그런데 김민석이 전학을 와서는 내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처음 김민석이 교실에 들어와서 인사를 할 땐, 무슨 저렇게 생긴 게 다 있을까,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내 옆에 앉으라고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니가 내 짝꿍이 된 일이.
그런데, 지금은 사랑을 구걸하듯 나에게 끊임없는 애정공세와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데 부끄러워서 표현을 못하는 것이라고 박박 우겨
댄다. 씨발-이라는 말이 나와야 말을 끝낸다. 꼭 저 말로. 아. 이 만두 새끼를 어찌하지. 이젠 질린다. 질려. 떼버리고 싶다.
이 사건의 발달은 김민석이 전학 온 그 날 시작되었다.
말했듯이 난 김민석을 넋 놓고 바라보았고, 김민석은 그런 나를 향해 활짝 웃어주었다.
웃는 것도 예뻤다. 정말 이때까지만 해도 니가 이럴 줄은 몰랐지.
내 옆에 앉으라는 담임 말을 듣고서 저 멀리서 걸어오는데, 아가가 걸음마를 떼듯 한 발씩 조심스레 걷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놓칠세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느새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김민석을 발견했다. 나를 보더니 싱긋 웃는다.
정말 이때는 얘가 남자인 게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김민석이랑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눈을 마주치면 김민석은, 싱긋-하고 웃었다. 2일을 그렇게 지냈다.
전학온 지 3일 째 되던 날, 니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감격스러웠었다. 그랬었지.
"세훈아"
"응"
"세훈아, 너 내가 좋지?"
귀여웠다. 그래서 좋다고 대답했다. 그 때는 단순히 얘가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이렇게 뱉은건가-싶었다.
하지만, 이게 크게 잘못된 대답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
진짜 짜증난다, 재수없다, 그만해라, 입에 담기도 험한 욕을 김민석한테 뱉는다.
하지만 전혀 끄덕 없는 것 같다. 매일, 수 백번을 물어온다.
"세훈아, 내가 좋지?"
"진짜. 질린다. 김민석 그만해"
"내가 좋으면서, 오늘도 부끄러워?"
"아, 재수없어. 좀 꺼져"
"내가 좋잖아. 난 네가 좋아 세훈아."
"어떻게 해야 그만할래?"
"세훈이 니가 나 좋다고 해주면, 히히"
"절대 그럴 일 없어."
"왜에- 처음엔 해줬잖아. 나 예쁘다고, 내가 좋다고."
"씨발, 그때는 내가 돌았었고, 좀 가라. 제발"
"알았어, 부끄럼쟁이 오세훈"
이때까지는 눈에 콩깍지가 씌여있었는지, 김민석이 점점 더 예뻐보였다.
이 날도 김민석은 나에게 자기가 좋냐고 물어왔고, 난 당연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러더니 김민석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도, 좋아 세훈아. 그런데 말야."
"응, 말해봐"
"우리 서로 좋아하니까, 사귀어야 되는 거 아니야?"
"어?"
"서로 좋아하면 사귀는 거잖아. 우리는 서로 좋아하니까 커플이 되어야지. 그치?"
"응"
"세훈아, ..우리이..우리 사귀자."
"어..어..그래!"
"히히, 좋다. "
"세훈이 내꺼네."
"하하, 그래 나도 김민석꺼네."
얼떨결에 고백을 받고, 사귀게 되었다. 처음 말 꺼낸게 내가 좋냐며 물었을 때는 소심하게 말을 하길래 순수하구나 싶었다.
이렇게 당돌하게 나를 가지고 놀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어서 김민석이 더 좋아졌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남들처럼 예쁘게 만날 일만 남았겠다 싶어 정말 좋았다.
김민석과 사귀게 된 이후로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고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하기 바빴다.
***
김민석이랑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기분이 들떠있었다. 같이 있는 시간이 정말 좋았었으니까.
헤어짐이 아쉬웠었다. 그 당시엔, 그 아이에게 미쳤었을땐.
이 귀여운 아가를 누가 데려갈까 항상 끝나면 민석이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매일, 그가 그의 집에 들어감을 확인하고나서야 뒤를 돌아 집으로 향했다.
내 하루 일과 중의 끝은 이랬다.
***
어느 순간부턴가 나를 미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랑 단순히 집 방향이 같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김민석을 데려다 주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사는 방향엔 사람이 얼마 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치를 챈 뒤로는 다른 방향으로도 가본 적이 많았다. 하지만 나를 좇는 발걸음은 여전했다.
어떤 날은 정말 무서운 생각이 들길래 그에게 전화를 했었다.
"민석아"
"우응, 왜 세후나. 내가 보고 싶어서 금세 전화했어? 헤헤"
"그것도 그렇고, 요즘 누가 자꾸 내 뒤를 따라와. 너 데려다 주고 나면 사람이 꼭 붙어."
"후웅.. 우리 세훈이 인기 많다. 무서워?"
"..그치, 무서워서 너한테 전화했어. 너랑 통화하면 안 무서울 것 같아서"
"잘했어, 우리 세훈이. 집에 들어갈 때까지 전화 끊지말자. 훈아"
"응 그래, 민석아"
그렇게, 민석이와 통화를 하며 무서움을 잊게 되었다.
매일을 그를 집 안으로 보내고나면 전화를 걸어 전화를 했다.
그렇게 또 한 주가 흘렀다.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니 두려움도 없어졌고, 사람도 붙지 않는 것 같았다.
참 다행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설마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잡혀가 인신매매를 당하는 상상도 했었으니까.
그 다음 주 월요일 아침, 민석이가 나를 보고 환히 웃었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와서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예뻐서 꼭 안아주었다. 그러더니 살며시 고개를 들고는 말을 했었다.
"후나, 아침 맛있게 먹었어?"
"당연하지"
"초코첵스 먹었구나?"
"응? 어떻게 알았어?"
"여기 묻어있어서, 헤헤"
.."아, 그래"
아침에 분명 거울을 보고 확인을 한다고 했었는데, 남아 있었나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도 아침을 맛있게 먹었냐며 물었었다. 민석이만의 특유의 인사인 것 같아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매번 내가 얼굴에 묻히고 오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을 먹었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한 4일이 지나니까 김민석이 수상했다. 우리집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내가 먹은 과일까지 맞출리 없었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금요일 아침엔 안 먹었다고 대답하자, 잠깐 눈빛이 달라졌었다. 하지만 곧 얼굴을 펴고는 말을 꺼냈다.
"왜에, 아침 먹어놓고 안 먹었다고 거짓말 해. 오늘은 초코첵스 안 먹었잖아.
세후나, 너 돈가스 잘라서 하얀 밥에 올려서 먹고 왔잖아.
혹시 내가 싫어져서 거짓말 한거야? 그런거야아?..
난 네가 좋은데. 나 안 좋아해? 웅? 그런거야?"
소름이 돋았다. 일부러 매일 먹던 초코첵스를 안 먹고 돈가스를 먹었는데, 그걸 알고 이야기하는 김민석이 무서워졌다.
말도 안돼. 설마 우리집에 카메라 달렸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그 날은 그 두려움으로 인해 김민석이 자기 싫어하냐며,
자기가 좋지 않냐며 대답을 구걸하고 해도 대답하지 않은 채 학교 일과를 보냈다.
그리고는 학교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집으로 뛰어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이리 저리 집을 뒤졌다.
충격이었다. cctv가 부엌 한 켠에 있는 경보등 옆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설마했는데.
cctv를 떼버리고 든 생각은, 미행.
그것도 그였을까 라는 것이다.
집에서 조금 나오면 큰 골목이 있는 곳에 cctv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여차저차해서 cctv를 확인했는데. 그 자리에서 주저앉게 되었다.
그였다. 김민석.
얼굴은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특유의 걸음걸이가 있었다.
미칠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너무 무서워서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젠 어떻게 해야할까 겁이 났다. 집도 알고, 학교에서도 매일 볼테고.
이사를 당장 해야 할 것 같았다. 전화번호도 바꾸고. 학교에서는 아는 척을 안하면 되리라 싶었다.
***
학교에서 만난 그는, 나를 보며 여전히 웃었다.
그리고는 눈빛이 변했다.
"다 알았네, 우리 세훈이. 그래도 난 니가 좋아. 너도 내가 좋지?"
"왜 그랬어. 왜!!!!!!!!!"
"니가 좋아서 그랬지 히히"
"미쳤어, 김민석. 그만해"
"난 네가 좋아, 세훈아, 너도 내가 좋지?"
"아, 씨발. 김민석. 제발 그만"
"내가 좋잖아. 얼른 대답해줘. 처음처럼, 내가 좋다고"
"얼른, 부끄럼쟁이 세훈아. 응?"
***
그만 듣고 싶다. 지겹다. 이사를 갔는데도 알고 찾아온다.
내가 죽어야 끝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