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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ON/구준회] GOOD LIFE 01 | 인스티즈

 

 

GOOD LIFE

-GOOD LIE

모든 것은 꿈이었다.

01

 

 




 

모처럼 맞는 휴일이었다. 엄마아빠를 위해, 생활비를 위해, 여행 경비를 위해 이주일간을 쉴 틈 없이 일만 했다. 사장님도 이때까지 내가 뻘뻘 흘린 땀의 가치를 잘 아시는지 봉투도 두둑했다. 힐끔 확인해보니 원래 받는 돈보다 좀 더 많았다.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않고 헤죽 웃으니 사장님은 헛기침을 남기고 가게를 나가셨다. 자유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은행에서 방금 뽑았는지 지폐들은 빳빳했고, 왠지 뜨끈뜨끈한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앞치마를 저 멀리 집어 던지고 가게를 훌쩍 나섰다. 뜨뜻미지근한 날씨가 포근하니 나를 맞이했다. 이런 게 천국이지. 지금부터 일주일간은 완전히 프리했다. 어디 클럽 가서 부비부비를 하던, 친구들과 맛집 탐방에 나서던,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엄마가 깎아주는 사과를 먹던, 뭘 하던 자유라는 뜻이었다.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히죽, 히죽.

 

 

낡아빠진 4층짜리 아파트가 내 집이었다. 엄마아빠와 같이 사는 '우리' 집이 아니라, '내' 집. 옆집엔 사귄지 벌써 2년째인 남친이 살았다. 이사 온 첫날 떡 돌리다가 눈이 맞았는데, 능글맞게 추근덕거리는 작업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 일단 옷 좀 갈아입고 남친 집에 가야지. 고기 냄새에 찌든 옷에 코를 박고 킁킁대며 삐그덕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고 돌리며 슬쩍 옆을 확인하니 남친 집 문에 중국집 쿠폰이 붙어있었다. 우리끼리 정한 암호였다. 치킨집은 외출 중, 중국집은 집에 있다는 뜻, 족발집은 집에 누가 있다는 거. 일 땜에 바빠서 요즘 얼굴을 못 봤는데, 드디어 볼 생각에 다시 히죽 웃으며 열쇠를 빼내고 문고리를 돌렸다. 덜컹거릴 뿐 열리지가 않았다. 어라? 열쇠가 고장 났나? 다시 구멍에 열쇠를 쑤셔 넣고 한 번 더 돌리고서야 문이 열렸다. 신발에서 발을 빼내는데, 거실에 앉아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iKON/구준회] GOOD LIFE 01 | 인스티즈

 

 

"김여주?"

 

 

 

20년 동안 들어와 익숙한 내 이름이었다. 그와 반대로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낯선 얼굴이었다. 강도? 도둑? 내 이름은 어떻게 알지? 도망칠 생각에 다시 신발 안으로 발을 집어넣으려는데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도망가려고?​ 어디로?"

 

​"누구, 누구세요?"

 

"본론부터 말할게요. 충격 받겠지만, 뭐. 다른 방법이 없죠. 

다른 사람들도 많이 겪었던 일이니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이러고 질질 짜지 마요.  썩 좋은 꼴은 아니니까."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던 남자가 겁에 질린 내 얼굴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검은 셔츠에 검은 바지. 거기다가 귀에 달고있는 피어싱까지. 겁먹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앉아있어 나보다 눈높이가 낮은 상태면서 눈은 나를 내리깔아보고 있었다. 짐작컨데 꽤나 질 안 좋은 남자일 것이 분명했다. 크게 소리 지르면 남친이 오겠지? 뒷주머니에 무겁게 올라탄 휴대폰을 꺼내 112를 치는 시간이 빠를까, 저 남자가 내게 다가오는 시간이 빠를까? 난생 처음 겪어보는 경험에 머리가 팽팽 돌아가다 굳어버렸다. 이러다가 다리까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남자가 품을 뒤적거리더니 인상을 썼다. 그것 하나마저도 공포로 다가왔다. 누구야, 저 사람.

 

 

 

"여긴 꿈이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아직 오지 않은 끝까지. 당신의 주변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까지.

나랑 너만 빼고 모두가 거짓이에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사람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여기서 멀지 않은 거리에 허름한 병원 하나가 있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무슨 병원인지는 모른다만, 그 병원에 정신병자 하나 없을 리가 없었다. 그럼 112에 전화해야 하나, 119에 전화해야 하나? 아니, 내가 휴대폰을 꺼내 다이얼을 누르는 시간이 빠를까, 저 사람이 나를 죽이는 시간이 빠를까? 주방에 위협이 될 만한 식칼이 있던가? 대꾸 없이 서있으니 남자가 으쓱였다.

 

 

 

"돈은 많이 벌어서 좋은데, 이게 존나 힘든 부분이지. 여기가 꿈이라는 걸 어떻게 이해시키느냐.

꿈이라는 걸 뻔히 아는 나도 헷갈리는데, 당사자인 네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에요.

현실에서 너는 25세의 부잣집 따님입니다. 돈이 많으니까 나를 고용한 거겠죠, 당연히.

아무튼 너는 3살 때 어떤 미친놈이 납치하는바람에 큰 부상을 입었고, 덕분에 병원에서 22년째 환자 노릇 중이에요. 

네 부모는 돈이 남아도는지 아직도 너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죠.

점점 희망은 저 멀리 사라지는 와중, 짜잔, 내가 등장합니다. 꿈속에 들어가 정보를 빼오는 비열한 짓을 직업으로 하는 내가.

네 엄마는 무릎을 꿇고 나한테 빌었어요. 제발 딸을 깨워주라고.

근데 내가 어떻게 거절을 해.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가 눈물을 훔치며 비는데.

응, 그래서 내가 왔어.

너 살리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작년 겨울에 수능을 치룬 갓 이십대였고, 우리 집은 사업으로 크게 망해서 이제 겨우 먹고살만해졌다. 부잣집? 돈이 남아돌아? 다 헛소리였다.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나가라고 말하니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 확신할 수 있어요? 여기가 정말 꿈이 아니라고? 현실이라고?"

 

 

 

전문적인 사기꾼이 틀림없었다. 그럴 듯한 말로 꾀어내는. 아마도 결말은 살인이겠지. 슬쩍 홀리려던 정신을 부여잡고 계속 노려만보니 남자가 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더니 뭔갈 끄적였다.

 

 

 

"좋아, 500만 추가.

불효자네. 네가 안 믿어서 너네 엄마가 500을 더 내야해요. 나야 좋지만.

입 다물고 내가 하는 짓 똑똑히 봅시다. 알겠죠?"

 

 

 

그러더니 남자가 눈을 꼭 감았다. 이 상황은 뭐지?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데, 남자의 앞에 무언가 꼬물꼬물 생기기 시작했다. 눈에 겨우 보일만큼 쪼끄맸던 덩어리는 점점 쑥쑥 자라더니, 꼬물딱거리며 인간의 형태로 변해갔다. 순식간에 남자의 앞에 무뚝뚝한 표정의 낯익은 남자가 버티고 서있었다. 이현우의 매직쇼에서나 등장할 광경이었다. 입을 벌리고 바라만보는데, 한참이나 눈을 감고있던 남자가 슬쩍 눈을 떴다. 그러더니 피식 웃었다. 거만한 웃음이었다. 기분 나쁜 웃음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방금 만들어진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정신이 나간 게 아니라면, 만들어진 남자는 분명히 우리 아빠였다.

 

 

 

"누구? 남친? 늙었는데, 원조교제?"

 

"…아뇨. 아빠에요."

 

"가짜 아빠겠지.

네 진짜 아빠는 이렇게 안 생겼어요. 좀 딱딱하고 날카롭게 생겼지. 원래 돈 잘 버는 인간들이 다 그렇지만.

아무튼 여기, 네 꿈속에서 너한테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을 방금 내가 만든 겁니다.

인간 하나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죠. 나는 이 짓거리를 10년이나 해왔으니까, 전문가나 다름없어요. 그와 별개로 네 엄마는 돈을 너 내야하고.

이제 믿겠어요?"

 

 

 

정말? 정말 여기가 꿈이라고? 이때까지의 내 기억들은 모두 거짓된 거라고? 엄마, 아빠, 친구들, 남친까지. 전부 다? 그럼 내가 22년 동안 꿈속에 갇혀 있던 거라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털썩 주저앉으니 남자가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돈 받고 여기 온 거면서 꽤나 거만한 태도였다. 아니, 방금 나 인정한 건가? 여기 꿈이라고? 설마. 설마?

 

 

 

"좀 혼란스럽지?

그래도 다행이네. 저번에 어떤 미친년은 칼 들고 설치지 뭐야.

시발 내가 그년 꿈에서 빼주고 제일 먼저 한 게 뺨 때린 일이에요. 아무리 일이라지만 진상고객은 좀 그렇잖아요."

 

 

 

아까 칼을 떠올리는 것에서 끝난 게 다행이었다. 딱 봐도 성질머리 더러워 보이는 이 남자에게 허튼 짓 했으면 정말 다칠 뻔했다. 그 순간 뒷주머니에 진동이 울렸다. 떨리는 손으로 꺼내 확인해보니 남친의 카톡이었다.

 

 

[iKON/구준회] GOOD LIFE 01 | 인스티즈

 

어디야ㅠㅠㅠㅠㅠㅠㅠㅠ?

 

 

순간 소름이 확 돋았다. 그럼 남친도 가짜고, 이 카톡도 가짜라는 거잖아. 1이 사라졌음에도 답이 없자 걱정됐는지 카톡들이 뒤따라 몇 개가 더 도착했다.

 

 

왜 답장이 없어??????????????

일 안 끝났어???????????????

내일 나랑 놀러가기로 한거 안까먹었지????????????????????

자기야??????????여주야???? 점 하나라도 찍어줄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해

 

 

키보드로 향하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점점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나가면 모든 게 해결되나? 해결? 해결될 일이 있나? 나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남친이 있나보네. 알죠? 다 가짠거.

이건 너의 꿈일 뿐이고, 다시 말하지만 너랑 나 빼고는 모든 게 거짓이에요.

쉽게 사랑에 빠지지 마요. 존재하지 않는 것과 사랑에 빠지면 골치 아프니까. 벌써 사랑에 빠졌다고 해도 무시해요. 그게 네가 살 길이야."

 

 

 

언제 왔는지 어느 순간 바로 앞까지 다가온 남자가 휴대폰 액정을 슥 확인하고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단어 하나하나가 화살처럼 날아와 툭툭 꽂혔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해요? 고개를 들어 빤히 바라보니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뭘 어떡해. 꿈에서 깨야지- 대충 요런 의미를 담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남자가 손을 내밀더니 머리 위로 턱 얹었다. 왠지 따뜻한 손길이었다. 처음으로 닿은 진짜 손이었다. 이때까지 모든 손들은 거짓이었구나. 나를 쓰다듬어주던 엄마의 손도, 내 어깨를 토닥이던 아빠의 손도, 조심스레 내 손을 맞잡던 남친의 손도. 머리가 멍해졌다. 하루종일 만들었던 모래성이 파도로 인해 산산조각이 난 기분이었다. 남자는 나를 위로하듯 머리를 몇 번 톡톡 두들기더니 곧 손을 뗐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누굴 놀리냐고 버럭할 기운도 없었다. 사실 저 미소의 의미가 위로임을 알기에, 그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좋아. 이제 진짜들을 만나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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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20.11
재밌당 빨리 다음편 보고싶어요!♥
9년 전
독자1
엥 취향저격이에요ㅜㅠㅠ이리 재밌는데 왜 댓글이 없지ㅠㅠ 주네야ㅠㅠ다음편도 기대할게요
9년 전
독자2
헐 미쳤다... 주제 완전 신선해... 반존대에 발리고 갑니다♡ 자까님 암호닉 신청해도 되나여ㅠㅠㅠ 되면 [낰낰]부탁드려요
9년 전
암호닉 신청...! (왈칵) 낰낰님 감사합니다ㅠㅠ♥
9년 전
비회원205.204
헐....이런글 너무 좋아요ㅠㅠㅠ
완벽하게 취저ㅠㅠ
다음화도 기대하고 기다릴게요 작가님!
추천 꾹~ 누르고 갈게요
그리고 암호닉 신청이 된다면 [후니]로 부탁 드려요!!

9년 전
아이고 추천ㅠㅠㅠ 감사합니다! 암호닉 신청도 감사해요 후니님^ㅇ^♥
9년 전
독자3
헐 이 글 완전 대박인데요..약간 인셉션을 모티브로 한건가요??아무튼 재밋을거 같아요ㅠㅠㅠ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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