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서적들을 찾으러 오랜만에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보이는 제 평생지기 학연을 보고 인사를 건내자 항상 보던 재환이는 왜 보이지 않느냐 물었다. 그렇게 우리가 붙어있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이 피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뱉기 어려웠다. 바빠서. 그래 바빠서라는 대답으로 모든 걸 덮어버리려 했지만 마음 속 한 켠엔 찝찝함만 남을 뿐이었다. 제가 찾아야 하는 책의 청구기호를 살피며 책장에 서니 끝 숫자 하나 차이임에도 하나는 제일 높은 곳에, 다른 하나는 맨 밑 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너와 나는 이런 사이가 아닐까 싶어 그 자리에서 바라만 보았다.
야, 정택운.
들려오는 니 목소리가 환청일까 싶었지만 옆을 돌아보면 네가 서 있을까 애써 안 들린 척 책을 꺼내어 도망치 듯 대여하고 문으로 나섰다. 뛰어가는 제 숨이 가파오르고 벅차 올랐지만 그건 괜찮았다. 오히려 제가 아무런 음악도 흘러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란 생각만 머리 속에 체워졌을 뿐.
그 날 새벽 너의 문자 메세지가 잊혀지지 않아 잠을 뒤척였다. 창을 조금 여니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 아래에 보이는 시선엔 아직 집 앞에 서성거리는 니가 보였다. 저 보다 시려웠을까, 겉옷도 챙기지 않은 채 잠옷 바람으로 뛰어 나가 너에게 안겼다. 오랜 시간 자리잡은 너는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추운데 겉옷 입고나와야지.
문은 또 열고 나왔지?
정택운은
항상 그래.
바보야.
다정한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이 찔리고 너와 나는 서로의 체온으로 서로를 감싸 안았다.
*
한 침대 안에서 몸을 움직이다 깨어난 놀랜 건 잠깐이었다. 잠든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오랜만이다, 다시 와줘서 고마워.라는 속마음을 안았다. 단 둘이 있는 방안의 소리는 제 심장 소리와 시계초침 소리만 들리는 듯 했다. 그래서 괜히 시계 한 번, 너를 보다 또 한 번. 못 본척 하고 있었다. 너는 다 알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피식 웃으면서 장난을 치 듯 말하는 니 말투와 서로 조금씩 삐쳐 올라간 머리를 바라보며 웃기 바빴다. 이렇게 웃은 게 얼마만인건지.
너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니 네가 해주기를 바랬다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작가가 되었다고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