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새장 속에 있니? -02
박찬열이 억지로 끌고 나온 세상은 어느새 따뜻해져 있었다.
“봄이네.”
“응 따뜻하지.”
찬열이 차문을 열자 바람이 부드럽게 얼굴을 감싸왔다. 눈을 살며시 감고 그 바람을 느꼈다.
혼자만 멈춘 시간이었을까 어느새 따스해진 햇살과 바람은 나의 옷을 얇게 만들었다.
민석이가 죽은 이후로 난 바깥세상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민석이를 단숨에 집어 삼킨 세상이 원망 스럽고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와 봤자 매번 밤에 나와 옆집인 박찬열 집에 간 것을 제외하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페인처럼 그저 울고 술 마시고를 반복하며 집에만 박혀 살았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나를 억지로 끌고 나온 박찬열에 못 이겨 나온 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여주야”
“응”
“눈 떠봐”
“응? 왜…우와”
벚꽃이 찻길을 중심으로 한없이 펼쳐진 길이었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꽃잎들이 마치 따뜻한 눈이 잔뜩 내리는 것 같았다.
“예쁘지”
“엄청!”
넋 놓고 길에 시선을 뺏긴 나를 본 찬열이 낮게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미소가 반가웠다.
그리고 그 또한 나의 미소를 오랜만에 봤기에 우리의 입 꼬리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주야 우리 내려서 걸을까?”
-
길에 여러 가게들이 여러 아이스크림과 과자, 솜사탕을 팔고 있었기에
어느새 찬열이의 손엔 흰색 솜사탕과 아이스크림이 내 손엔 분홍색 솜사탕과 카라멜 팝콘이 들려있었다.
우리는 벚꽃이 휘날리는 곳을 걸으며 오랜만에 서로 대화하고 또 웃어보았다.
“이런 예쁜 곳에 나 진짜 와보고 싶었는데.”
서로의 귀엔 벚꽃 한 송이가 꽂혀있었다.
서로를 마주보고 웃으며 여느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는 벚꽃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래? 진작 데리고 올 걸”
“됐네요. 너 아까 너 나 끌고 나올 때 팔 엄청 아팠어.”
“뭐래? 나보다 팔 굵은 게”
“뭐?”
“너 끌고 나올 때 제일 잘나가는 돼지를 도살장에 끌고 가는 느낌이었어.”
'너 끌고 나올 때 제일 잘나가는 돼지를 도살장에 끌고 가는 느낌이었어.'
“?”
“…?”
“?”
“ㅇㅇ”
“이 새끼”
박찬열이 그 말을 끝으로 발에 연기가 날 것같이 뛰었다.
아이스크림은 또 언제 다 먹었는지 한 손에 솜사탕만 들고 뛰는 게 누구보다 가볍게 뛰었다.
마치 고등학교 때 나와 민석이를 놀리며 도망 다닌 그 때의 개구지 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내 팔이 굵다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열 받는다.
이 새끼 육상 부였던 나를 만만하게 보고 오랜만에 운동 시켜보겠다 이거지. 돼지가 얼마나 잘 달리는지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일단 귀중한 내 솜사탕을 입에 물고 팝콘 통 뚜껑 닫고 그리고 달…
“….”
소매를 걷고 달리는데 순간 거짓말처럼 발걸음이 멈췄다.
속도의 여운에 한 번에 멈추지 못한 발걸음을 뒤로 다시 옮겨 나의 발걸음을 붙잡은 가게를 바라보았다.
‘화사 조류원’
흰색 빛 간판에 적힌 글자.
그 곳은 조류원이었다.
다른 조류원 과는 다르게 새들이 밖에서 마치 장사하듯 나와 있지도 않았고
그저 흰 문으로 다 막혀 나를 직접 들어와 보라는 것처럼 서있었다.
마치 이 가게는 나를 유혹 하는 것 같았다.
“뭐해? 김여주 나…”
멀리서 달려온 박찬열이 거친 숨을 뱉으며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가 자신을 따라 달리지 않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며 말을 꺼내려다
이내 가게에서 시선을 못 때고 멍 때리고 있는 내 모습에 자신도 말을 잇지 못했다.
“찬열아.”
“왜”
“나 새 키울까?”
“뭐??”
가게를 보며 홀린 듯 말하는 나에게 박찬열은 어이없다는 듯이 다시 되물었다.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난 절대 헛되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단번에 홀려 그런 진 몰라도 지금의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아니 왜 우울한 사람한텐,”
“됐어.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게… 그리고 이 가게 분위기 좀 이상해.”
그가 나를 다시 끌고 가려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는 억지로 라도 나를 끌고 갔다.
아까 나오기 싫어했던 나처럼 온 몸이 무거워 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찬열아.”
“왜 또”
어느새 그의 손에 이끌려 차에 도착한 나는 끝끝내 차 문을 열지 못했다.
찬열이가 그런 내 모습에 대신 내 자리의 문을 열어주려는데 나는 손잡이에 닿은 그의 손을 붙잡았다.
“너 차에서 잠깐만 기다려. 나 잠시만 어디 갔다 올 게.”
“김여주 너 또 그 조류원에…”
“잠깐만 바로 다녀 올게!”
“김여주!!”
"미안!”
"….”
그의 말을 뒤로하고 아까 그 곳으로 홀리듯 뛰어갔다.
새를 분양하지 못하더라도 꼭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