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병예또
잘생긴 병신과 예쁜 또라이
리비 씀
A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빗겨나간 적이 없었다.
“임재희. 너 나와.”
어딘지 익숙한 대사가 귓가를 쨍 하고 울린다.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큰 탓이 아니었다. 교실 안이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던 탓이었다. 좀 더 덫 붙이자면 지나치게. 초조한 낯 빛으로 문제집을 들여다보던 나는 서서히 고개를 든다. 교실 안의 모든 이목이 내게 집중 되어 있었다.
“귓구멍이 막혔나.”
“…….”
“이쯤 뒤집었으면 알아서 기어 나오는 게 예의 아닌가?”
끽, 나는 의자를 끌며 일어난다. 팔짱을 낀 채 문 밖에서 나를 노려보는 여자는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가까이, 더 가까이. 긴 생 머리를 늘어뜨린 그 모습이 흡사 처녀 귀신 같기도 하고, 상황으로 따져 보자면 저승사자 같기도 하고. 좌우지간 나는 그녀와 점점 더 가깝게 대면한다.
“나 알지?”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처럼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그 간극의 사이에 낯익은 상판 떼기가 뇌리를 스쳤다. 그래. 이 모든 사건을 만들게 한 장본인,
“뭐 때문에 찾아 온 건지도 알 거고.”
오세훈이. 머리채가 붙들려 수 백개의 시선을 받아내며 복도로 끌려가는 동안 생각했다. 이게 무슨 청소년 드라마 같은 상황이람. 나는 그네들 치정극에 발을 담글 생각은 추호도 없건만.
B
오세훈과 차여주. 차여주와 오세훈. 그들은 땔 래야 땔 수 없는 사이였다. 원 체 교내에선 유명 인사로 통했지만, 그들이 세트가 된다면 두 배로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가 생겨난다. 바로 지금처럼.
“전 결단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는데요. 그래, 뭐. 안 한 건 아니지만 정당방위 한 거죠.”
아침 댓바람부터 차여주에게 끌려 간 나는 복 날 개 맞듯이 신명 나게 매 타작을 당했다. 저 뼈 도드라진 주먹으로. 도중에 검찰 나온 선생님에 눈에 띄지만 않았다면 나는 그대로 죽은 목숨 인 거나 다름이 없었다.
“얘가 먼저 원인 제공을 했거든요. 그리고 또 그런 게 있어요. 학생들 간에 그런. 예? 그렇지?”
그러니까, 앞 에서 말했 듯 차여주는 교내에선 알아주는 유명 인사였다. 일명 또라이로 지칭 되는. 풀 네임은 예쁜 또라이. 잘생긴 병신 오세훈과는 세트다. 땔 래야 땔 수 없는 사이 인 만큼 학우들은 대게 그들을 ‘잘병예또’ 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렇게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둘은 둘 도 없는 견원지간 이면서 서로가 없으면 죽고 못 살았다. 첫 인상이 이름 만큼 차가워 보이는 차여주는 특히 더 했다. 잘난 꽃엔 벌들이 꼬이기 마련 이 건만, 누구라도 오세훈의 옆에 붙어 있는 꼴을 보지를 못 했다. 그 벌이 여자건, 남자건 상관 않고 무조건 달려드는 게 철칙이자 그녀의 신념 같았다. 그 게 그녀가 또라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재희도 그렇다니 선처 부탁 드려요.”
그리고 또라이 보다 더 또라이 같은 건 오세훈 인데, 괜히 병신이란 호가 붙은 게 아니었다. 명불허전 잘생긴 병신. 그는 그녀의 또라이 같은 집착과 구속을 즐겼다. 쉽게 말하자면, 여자를 하나 씩 골라 잡았다. 보란 듯이 일부러. 그 때 부터는 그 둘의 전쟁이었고, 둘 사이에 낑긴 죄 없는 여학우에겐 재앙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그 재앙이 나에게 닥쳐오다니! 왜죠?!
마음 속에 외쳐 봤자 돌아 오는 건 메아리 뿐이다. 나는 이미 덫에 걸려 들었다. 꼼짝 없이 오세훈의 장난감이자, 차여주의 구타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C
교무실에 나온 뒤 걸음을 빨리 하는 나를 차여주가 붙잡았다. 나는 힘 없이 붙잡혔다. 왜, 왜? 또라이를 대면하면 목소리가 하릴없이 떨려온다.
“자주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협박 성 짙은 멘트와 함께 차여주는 유유히 사라진다. 아, 현기증. 머리를 붙잡고 복도 귀퉁이에 기대었다.
“안녕.”
“우왁!”
“환영 인사가 뜨겁네.”
산 넘어 산이구나. 뒤에서 불쑥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오세훈 이었다. 얘는 내가 어떤 수모를 당한 지는 알고 저렇게 지껄이는 걸까? 멱살 짤짤 흔들며 할 말은 많았지만 병신에게 그런 짓을 했다 가는 어떻게 보복 당할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괜히 차여주가 사라 졌던 긴 복도의 끝을 흘끔 보고 오세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개한테 물린 소감이 어때.”
눈이 마주치자 병신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개는 분명 차여주을 지칭하는 말 일 게 뻔했다. 소문이 다 퍼졌나. 대답 할 틈도 없이 내 광대 위로 손이 올라온다. 어이구, 다 까지고 난리 났네. 그리곤 그 투박한 손이 부어 오른 내 왼쪽 광대뼈를 쓰다 듬었다. 교무실 앞에서, 것도 이렇게 애들이 많이 지나 다니는데?
“저기 이것 좀 놔 주면…”
택도 없는 소리. 차여주의 귀에 들어 가면 나는 정말 끝이다. 오세훈의 다음 ‘타겟’이 된 건 쉬쉬하며 퍼져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좀 어떻게 해 보면 빠져나갈 틈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왜?”
냉정한 병신은 다시금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노력은 해 볼게.”
노력만 하면 뭐하리. 이미 나는 또라이에게 줘 터질 게 분명한데. 표정 관리가 힘들어, 내 얼굴이 점점 썩어 들어 가면, 오세훈은 그제서야 내 얼굴에서 손을 뗀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정수리 위로 손이 풀썩 하고 내려앉았다. 동시에 나는 황급히 주위를 살핀다. 다행이다. 아무도 없었다.
“내가 사형 선고라도 때렸나. 왜 이렇게 떨지.”
정수리 위에 얹어진 손은 박자에 맞춰 톡, 톡, 톡 뒤통수를 타고 부드럽게 내 머리카락 위를 유영한다. 제발, 이러지 마. 애원하는 내 눈빛에도 불구하고 오세훈은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알 수 없는 노래를 허밍했다. 눈치를 보는 내 눈은 갈 길이 바빴다.
“표정이 아주 지랄이네.”
마지막으로 내 허리를 한번 꽉 껴 안은 오세훈은 말 없이 뒤를 돈다. 차여주가 사라졌던 그 방향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뒤를 돌기 전 주머니에서 꺼냈던 무언가가 내 손에 쥐어졌다. 나는 땀이 흥건한 손바닥을 펴 그 것을 확인한다. 뽀로로 얼굴이 붙어 있는 유아용 데일 밴드였다.
예쁜 또라이=차여주=여주
임재희는 걍 비중 좀 있는 조연1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