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그 날은 정말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오전 이었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맞춘 듯한 발걸음으로 일사 분란하게 대중교통을 옮겨 탔고,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꽤 먼 편에 속하는 나는 대중교통에 사람이 몰리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서 집에서 조금 더 일찍 나왔던 것 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 다 지나기 전에 이사를 갔고, 전학 뒤에 고생을 했던 엄마의 말에 따라 계속 다니게 된 중학교는 이사 간 곳에서 꽤나 먼 거리였다. 그 먼 길을 아침마다 나가는 것이 조금은 곤욕이라고 생각 할 정도로, 중학교 3학년 중간 정도 이후로 빠르게 앞당긴 등교시간은, 4지망까지 넣었던 고등학교가 모두 떨어지고 무작위로 선택 된 고등학교에 갈 때에도 유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은, 고등학교 1학년의 중반이었다. 귀에는 항상 꼽고 다니던 이어폰을 꼽은 채였고, 기나긴 지하철 여정을 마치고 마지막 버스를 기다릴 때에는 제법 학교와 가까운 거리였다. 전학 가기 전에 살던 집 쪽에 다다랐을 때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 적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한 회상을 하기도 했다.
사람이 적었지만 앉을 자리는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손잡이를 끼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쥔 채로 버스에 타 있었다. 그 순간 친구에게 온 메시지에 손잡이에 놓았던 손을 떼었고, 그 순간 버스가 급히 출발한 것이 필연이라면 필연이었다.
갑자기 출발한 버스에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로 크게 휘청였다. 자칫 하면 넘어질 수 있을 정도로 흔들림에 정신을 차리고 중심을 잡으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뒤는 넘어질 것이 분명한 듯 한 상황에 거의 체념을 한 상태였고.
그리고 그 순간 정신을 자칫하면 놓을 듯 한 그 상황에 누군가 허리를 손으로 감아 제자리에 고정 시켰다. 놀라움에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버스가 안정을 찾고 있었다. 그날따라 이것저것 많이 들고 온 가방 때문에 제대로 뒤를 돌아 볼 수 없어 억지로 뒤를 돌면서 마주 한 것은 작은 키 탓에 잡지 못하는 천장에 달린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는 하얗고 마른 팔이었다. 허리를 잡고 있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려 낑낑대는 내 머리 위로 살핏 웃었고,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잡이를 내려 내 손을 겹쳐 잡고 버스 기둥을 잡고 정수리에 턱을 콕. 박았다.
“ 어째 변한게 없냐. ”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에 다시 뒤를 돌아보려고 했을 때는 남자가 고개를 쭉 빼 나를 보고 있는 상태 였다.
“ 오랜만이다, 여주연. ”
102
죽마고우, 그러니까 속칭 불알친구라고 할 수 있는 민윤기와는 사실 그렇게 친근한 호칭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의 친구는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말에 학교에서 먼 곳으로 이사를 가고,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부터는 다른반이 되어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지냈을 뿐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1학년때는 남녀 분반이었기 떄문에 남자는 2층, 여자는 1층에 지냈기 때문에, 중학교 때와 다르게 복도에서 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동아리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별다른 상설동아리를 들지 않고 적당히 CA를 했지만, 민윤기는 학생회에 들어갔기 때문에, 아침선도 때나 중식선도 때 바쁘게 일 하는 민윤기를 보았던 것이 전부였다. 그 마저도 민윤기는 일이 바뻐서 나를 제대로 보기나 했을런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사를 가기 전 까지 민윤기와 나는 불알친구라는 호칭이 썩 잘 어울릴 정도로 친한 친구였다.
내가 태어나던 날, 대기실에서 조마조마하며 곧 태어날 나를 기다리던 아빠는 급하게 산부인과로 들어오는 민윤기네 아저씨를 보았고, 둘은 마주 친 순간 매우 놀랐다고 했다. 왜냐하면 둘은 고등학교 시절에 매우 친하던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마주친 아빠와 아버지는 전화번호를 주고 받은 얼마 뒤, 산후조리를 끝낸 민윤기네 아주머니와 우리 엄마를 소개 시켰고, 둘의 집이 가깝다는 것을 알아 챈 후로는 나와 민윤기를 소개시켰다.
집도 가까웠을 뿐만아니라, 그 이후로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같은 학교가 되고, 반도 같은 반이 되는 날이 잦았으며, 학원도 같은 곳에 다니던 민윤기와 나는, 떼어놓을 래야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때에는 둘이 떨어질 수 없는 사이로 인식하고, 알거 다 알게 된 중학교 때에는 떨어지면 서운한 사이였을 정도였다. 그것도 내가 이사를 간 후에는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또, 민윤기는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상당히 많은 쪽 이었다. 마르고 하얀 몸과 순딩순딩한 얼굴, 무심한 듯이 챙겨주는 성격도 있었지만, 중학교 부터 쭉 음악을 해 온 민윤기가 여자 아이들에게는 퍽이나 설레게 다가왔던 모양인지 뭔지. 그때문에 중학교 2학년 까지는 주변 친구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았고, 질투도 많이 받을 정도였다.
사이가 서운 해 진 뒤에는 합반이 되거나 정말 가끔 복도나 계단에 마주치게 될 때 인사를 해 줄까 기대도 하였지만, 민윤기는 따로 나에게 아는 척을 하거나 인사를 하지 않았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편에 속하는 내 성격에는 그런 민윤기의 행동에 인사 한번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나는 민윤기가 버스에서 마주친 그 일 뒤에도 나를 무시할 것 이라고 당연하게 생각 했을지도 몰랐다. 항상 민윤기가 그래 왔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버스에서의 일 이후에 민윤기는 평소 행동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적응이 안되는 쪽은 이쪽이다. 처음 만나는 친구가 갑작스럽게 친한척 하는 것 보다도 당황스러웠다. 불편하기도 했고.
" 여주연. 밥 먹고 왔냐? "
민윤기와 친하게 지내던 무렵의 나는 아침을 자주 거르고 학교에 갔고, 1교시면 배가 고프다며 찡찡 거리던 나를 위해 민윤기는 간식을 사다주곤 했었다. 물론,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오는 버릇은 고쳐질 생각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었고, 민윤기는 1학년의 중반 무렵, 나에게 아는 척을 시작 한 그 이후부터 중학교의 그 때처럼 내게 아침을 사다 주고 있었다.
" 안먹고 왔는데, 또 뭐 사왔어? "
" 당연하지. 안 먹으면 배고프다고 찡찡 댈거잖아. "
반년이 지난 후에는 어색하던 감정도 모두 사라지고 중학교 때의 감정과는 다른미묘한 감정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어림잡아서 반년째. 나는 2년만에 만난 불알친구인 민윤기를 짝사랑하고 있다.
__
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