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랑 안 어울림 주의
백현 빙의글,
02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변백현의 여자 갈아치우기 신공은 더이상 내게 별다른 악영향을 주지 않았다. 단조로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접어보았다. 이제 사십 하고도 세번 째 여자친구다. 전화인지 선화인지 하던 여자한테 쌍싸대기 맞고 헤어진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에 또 몇 명이나 바뀌어 버린 변백현은 이번엔 딱히 예쁜 것 같지도 않은 여자를 끼고 시시덕대고 있었다. 소문에는 여자가 초코우유를 갖다 바쳐 사귄 거라던데. 변백현한테 사랑의 기준은 초코우유인 건가.
"백현이는 시요니 피부 색도 초코우유 같아서 됴아영! 그러니까 까맣다고 우울해 하지 마~"
오메…. 내가 지금 뭔 헛소리를 들은 거지. 비위가 상해 욱함과 함께 순간 입술 틈새로 쌍시옷 발음이 새나가려는 것을 애써 참아내곤 참고서에 코를 박았다. 한심함과 황당함이 교차했지만 변백현이 나중에 거지가 되든 카사노바 기질을 살려서 어떻게든 먹고 살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지 알아서 밥벌어 먹고 혹은 정신 차려서 잘 살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던 지금은 내 공부가 더 급하고 중요했다. 음. 애교 따위 이어폰만 꼽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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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번 문제 풀어볼 사람?"
"저요."
"어려운 건데? 풀 수 있겠니?"
"괜찮습니다."
딱히 나서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발표 점수는 필요했다. 좋은 인상은 덤. 방긋 웃으며 대답하곤 칠판으로 나섰다. 이 정도 쯤의 난이도는 미리 선행을 해놨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풀 수 있다. 막힘없이 가뿐하게 문제를 풀어내곤 선생님께 간단한 목례 후 자리로 돌아왔다. 좀 잘 보였을라나. 티나지 않게 눈치를 살펴보니 다행히 웃고 있는 표정이었다. 일 년 동안 이대로만 가면 되겠지.
"너 안 그렇게 생겨서 공부 잘하나보다!"
자리에 앉자마자 팔꿈치로 툭 치며 말을 건네는 변백현이 생소했다. 안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자연스러운 대화인가. 게다가 지금까지 말해본 거라곤 처음 짝이 되었을 때의 첫인사 뿐이었는데.
"너가 여자 끼고 있을 때 난 계속 공부했어."
"나 또 깨졌다. 짱이지?"
무심한 어조로 대답해도 커다란 표정 변화는 없다. 그저 커다란 눈을 살짝 굴리며 뻔뻔하고 자랑스레 대답하곤 다시 엎드려 눕는다. 딱히 이런 애한테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고등학교 생활에서 친구관계보다 중요한 건 선생님들과의 관계였으니. 게다가 굳이 친구가 된다 해도 변백현만큼은 사절하고 싶었다. 한 트럭 준대도 거절이었다. 다시 눈앞의 문제들과 수업으로 신경을 집중했다. 넌 자라. 난 수업을 들을 테니. 한심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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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이 눈을 뜬 건 삼교시, 사교시가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점심 먹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교시가 끝날 무렵이면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의자를 뒤로 밀고 다리를 쭉 빼놓곤 시계만 쳐다본다. 그러곤 종이 침과 동시에 모든 학생들은 사라진다. 마치 고체가 기체로 승화하는 것마냥. 느긋하게 간다고 밥을 못 먹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저러지.
참고서를 정리하여 가방 속에 넣곤 뒷자리에서 숙면에 취한 정수정을 깨웠다. 정수정. 당장 안 일어나면 놓고 가버린다? 안돼! 나도 데려가! 귓가에 대고 말하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선 다급하게 외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같은 여잔데도 불구하고 언제 봐도 귀엽다. 한두 번도 아닌데 저 모습이 보고싶어서 굳이 저런 멘트를 내뱉는다.
솔직히 정수정은 예뻤다. 우리반 얼굴 남자 대표가 변백현이라면 여자 대표는 정수정. 청순함이 가득한 겉모습에 비해 성격는 너무나도 털털해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기가 많은 타입이었다. 저런 애가 내 친구라니. 나도 친구복은 꽤 괜찮은 것 같네. 자다 깬 모습마저 예쁘다. 괜히 심통이 나 입을 뾰루퉁하게 내밀며 정수정의 볼에 난 자국들을 꾹꾹 눌렀다.
"변백현. 당장 안 일어나면 개패듯이 패준다."
앞멘트는 나와 같으나 뒷부분은 확연히 다른 살벌한 말투에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저 얼굴에서 빛이 나는 자식은 음.. 박.. 음.. 뭐더라. 하여튼 별명은 도비인, 변백현의 친구로 짐작되는, 학교의 얼굴 마담인 애다. 으아아, 오분만! 잠에서 제대로 깨지도 못한 채 칭얼대는 변백현의 뒷통수를 망설임 없이 쳐버린 도비는 맑은 눈망울과 고운 얼굴선으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험한 말을 입에 담으며 억지로 변백현을 흔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아, 하지 마아아아! 엎드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소리만이 변백현이 깨있음을 증명했다.
"쟤 귀엽지 않아?"
나..난데스까? 보면 볼수록 이상한 애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귓속말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인상을 찡그렸다. 미쳤어 정수정. 아니 왜. 솔직히 귀엽지 않아? 너가 일주일만 짝해봐. 아니다, 이틀만 해도 그런 소리 안 나올걸. 음..귀여운데. 대놓고 힐긋힐긋 제 쪽을 쳐다보면서 귓속말하는 우리가 거슬렸는지 박도비는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우리를 쳐다봤다. 아니 꼬라봤다. 야렸다. 아 재수없다.
"뭘 봐."
"너 보는 거 아닌데."
"그럼 뭐 보는데."
"얘."
난 너네한테 관심이 있어서 쳐다본 게 아니야. 를 증명이라도 하는 것마냥 변백현을 내리깔 듯 쳐다보며 검지손가락을 굽혀 그를 가리켰다. 지나치게 무성의한 대답에 당황이라도 했는지 박도비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변백현을 깨우는데 열중했다. 그 한심한 꼬라지들을 더는 볼 생각이 들지 않아 정수정의 손목을 훽 부여잡곤 급식실로 향했다. 정수정의 근데 쟤 진짜 안 귀여워? 따위의 영양가 없는 말이나 들으며 급식실을 향하는 길은 그리 재밌지 못했다. 정수정은 콩깍지가 씌여도 단단히 씌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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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기대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에 맞는 좋은 글로 보답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
힝힝 제목 잘못 썼는데 조회수 늘었어요 너무해 수정했어요 죄송함당..
와 오늘도 여주 이름이 안 나왔어요 대체 글을 어떤 식으로 쓰길래... ))저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