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大學病院] :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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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사진과 그 앞에 서 있는 호석이 힘겹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손에 쥔 새 하얀 꽃과 상반된 검은 양복은 평소의 호석과는 또 다른 모습을 자아 해 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 송이 한 송이 놓아 갈 때마다 차츰 표정은 굳어져만 갈 뿐이었다.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억 누른 채 마지막 한 송이까지 놓은 호석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 볼 뿐이었다. 속울음을 몇 번이고 뱉으며 끅끅대던 호석은 몸을 숙였다. 몸을 숙여 한번 절을 한 호석은 잠시 망설이다 다시 한 번 몸을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들지 못하는 텅 빈 방에 호석의 모습은 그리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뜨거운 울음소리가 사람대신 방 안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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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카드 고지서들로만 꽉 차있던 우편함에 커다란 우편종이가 눈에 띄었다. 며칠 전에 면접을 본 태형으로써는 당연히 신경이 쓰였을 터, 급하게 쥐고는 집안으로 들어가는 손길이 다급했다. 스쳐가듯 본 글자는 대학병원이라고 작게 적힌 글자 뿐 이었는데. 북 찢어 확인하자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태형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서 축 쳐질 뿐이었다. 아 이로써 대학병원 면접만 열두 번 떨어지신 김태형님 되시겠다! 웃으면서 넘기려고 해 보았지만 마냥 웃을 일 만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조기졸업 한 탓에 대학을 이년 일찍 들어갔다. 남들보다 이년을 빨리 졸업했는데 사년 째 서류를 넣을 때 마다 보란 듯이 떨어지는 것이 억울했다.
아니 왜 나만… 왜… 왜!
스물여섯, 그리 어리지만은 아닌 태형의 나이였지만 이제 와서 포기하기하고 개인 병원을 차리기에는 태형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켜고 다시 한 번 이력서를 적어내리는 태형의 손길이 성급했다. 빠르게 타자를 두드리던 태형이 잠시 손을 멈추곤 오른쪽 상단의 글씨를 곱씹었다. BS대학병원…. BS, BS….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빽빽하게 적힌 A4용지 두 장이 프린터기 밖으로 모습을 빛냈다. 그래 정말 마지막이야. 이력서를 정리하는 태형의 머릿속에는 어떤 옷을 입고가야 깔끔해 보일까 따위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우체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까의 일은 훌훌 다 털어버린 듯 아이마냥 가벼웠다.
어둑한 방 안에서 한 장 한 장 이력서를 넘기던 남자의 손이 멈추었다. 섬섬옥수마냥 고운 손이 멈추어 가리킨 곳은 예쁘장하게 생긴 한 남자의 사진 앞이었는데, 꼭 맞는 옷을 찾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 종이를 챙겨서는 비서로 보이는 자에게 종이를 건네고는 손에 남은 나머지 종이들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남자의 손에서 붉게 타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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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합격문자를 받은 태형이 각이 진 수트 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계속해서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 내가 합격이라니. 언뜻 보면 미친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과하게 신나 보이는 태형은 가져오라고 했었던 생활용품과 서류들이 담긴 캐리어를 어린 아이마냥 빠르게 끌었다 느리게 끌었다 세워서 멈추었다 세 가지 패턴을 반복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웬 갓 짓은 다 하며 온 탓에 시간을 딱 맞추어 출근 했다면 한 시간은 족히 늦었을 것이지만 설레는 마음에 밤잠을 설친 태형은 평소에 일어나기도 힘든 다섯 시라는 경이로운 시각에 집 밖을 나설 수 있었다. 밥보다 잠인 태형이기에 평소 같으면 욕이란 욕은 다 하면서 궁시렁 궁시렁 거렸을 터 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 아닌가!
아직 응급실이 아닌 진료실은 아홉 시부터 운행인 지라 늘 북적북적 하던 로비가 몇 명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비어있었다. 태형의 동네와 멀지 않은 병원이라 한 번도 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텅 빈 적은 처음 보았다. 막 일곱 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사람이 많이 없는 곳에 오래간 서 있어서 그런 건지 순간 태형의 등골이 서늘해 졌다. 뒤를 돌아보자 켜져 있던 계단의 센서가 꺼졌다.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쳐 가볍기만 하던 캐리어를 끌었다. 아까보다 세 배는 무거워 진 것 같은 캐리어를 온 힘을 다해 끌어당기며 구석에 있는 승강기로 향했다. 일단 자신이 배정받은 외과로 가는 것이 먼저였다. 들어오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데 사람이 늘어나는 것 마냥 시끄러운 소음이 귓전을 때리는 것 같았다. 얄궂게도 승강기는 4층에 멈춘 상태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평소 같다면 숨 막힌다며 내리기를 바랄 터이지만 짧은 시간의 공포로 인해 사람이 타기를 바라였다. 발을 동동 구르며 내려오기를 기다렸지만 체감으로 십 분이 지난 것 같은데도 승강기는 내려올 생각을 않았다. 고장 난 건가 싶어서 무의식 적으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7시 5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태형의 눈빛이 흔들렸다. 말도 안 돼…. 다시 한 번 떨리는 손으로 승강기를 꾹 누르자 거짓말처럼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있었다. 어, 방금 전 까지 4 층 이었는데...? 승강기 숫자판을 쳐다보자 당당히 1 층이라고 쓰여 있었다. 사람 좋게 웃으며 자기가 짐을 옮기느라 잠시 잡아 두었었다고 오래 기다렸냐며 환히 웃는 남자에 덩달아 웃으며 승강기에 탑승했다. 몇 층 인지 고민하며 일 층부터 손가락을 차례대로 놀리는 데 4 층 대신 F로 표기 된 것에 잠시 멈칫했다.
"왜 그러세요?"
라는 말에 빠르게 잊고는 5 층을 눌렀지만. 아무래도 시력 검사를 한 번 해봐야 하나... 오 층에 도착하자 고민을 잊고는 외과로 향하는 태형을 보다 안도의 한 숨을 내 쉰 남자는 맨 꼭대기 층인 X를 눌렀다. 아니 층수가 아니었다. 자신과 사장이 아니면 출입도 불가능 한 곳이었으니, 층수라고 칠 수도 없겠지. 안내 음 하나 없이 열리는 승강기에 둘러 볼 것도 없이 한 문으로 향하는 남자의 사원 증 속 이름 석 자가 빛났다, ‘김석진’. 석진이 지나간 자리에는 정체모를 향이 온기를 대신했다. 아까보다 한참 작아진 석진이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승강기 문이 닫히며 하강했다. 푹 내쉰 한숨이 그리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작지만 강압적인 목소리로 석진을 부르는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섞여 들렸다. 닫혀가는 문 틈새로 두 명의 인영이 비추었다. 완전히 닫혀버린 문 앞에는 작고 하얀 깃털 하나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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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안녕하세여 보시다시피 소재는 대학병원의 기묘한 일들을 팬픽으로 풀어나갈 예정이고 아마 비루한 필력으로 여러분들의 목을 옥죄어 갈 예정입니다... 자유 연재지만 일주일에 한 번! 한글문서로 다섯 내지 여섯 페이지...? 아니면 열 페이지 정도...? 한 편으로 잡아서 매주 일요일이나 월요일 새벽에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안 올라오면 한 주 미뤄지는 구나 생각 해 주세요...(비루) 댓글은 저에게 큰 원동력이 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