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s 02 - 성규와 감기 | ||
Episodes 02 - 성규와 감기
-
"치!" "응?" "에...에...에치!"
어어...얘가 왜이러지.
"성규야 왜 그래?" "아빠, 에치! 성규, 에에치!"
아까부터 계속 제채기를 하는 성규를 가만 쳐다보니, 얼굴이 전보다 붉은 것도 같고. 혹시나 싶어,
"성규야, 열 나?" "응?" "머리 막 아야해?"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던 장난감을 내려놓은 성규가 제 이마에 손을 갖다댔다. 톡 튀어나온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이더니 아아니, 한다. 기침감기인 것 같은데, 일단 병원에는 데려가 봐야 할 듯 싶었다.
"성규, 옷 입자." "어디 가?" "병원."
내 말에 얼굴이 사색이 된다. 겁먹은 표정을 마주하고 있자니 성규가 물었다.
"아야해?" "어?" "병원, 아야해?"
탁, 하고 웃음이 터졌다. 아직도 병원이 무서운 애들이 있구나.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 안 아파. 하니까 활짝 웃는다. 누굴 닮았는지 정말 귀여워 미치겠다.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어 일으켜서는 옷장 앞으로 데려가 옷을 갈아입혔다. 오늘은, 노란색 점퍼. 추우니까 선물받은 빨간 목도리도 둘러줬다. 이게 아마, 작년 이맘때쯤 이성종이 자기가 직접 떴다고 성규 갖다준 거였지. 사내놈 치고는 여자같은 면이 있어서 이것도 그려려니하고 받았던 기억이 있다.
"성규야, 갈까?" "응!"
-
밖은 예상대로 추웠다. 안기지 않고 걷겠다는 고집을 피워서 결국 손 꼭 붙잡고 가는 길이다. 마르고 건조한 찬 공기가 닿아왔다. 다행히 바람은 많이 불지 않았다. 추위로 코끝이 빨개진 성규를 보다가, 제법 잘 걷는 짤막한 두 다리, 내 손을 꼭 붙잡은 자그마한 손가락들을 보니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둬야겠다, 해서 핸드폰을 꺼냈다. 평소에도 충동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긴 했지만, 내가봐도 좀 그런 것 같아 씁쓸한 웃음이 배어나왔다.
"성규야, 잠시만." "왜애?" "사진찍고 가자."
사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성규가 내쪽을 쳐다보았다. 핸드폰을 카메라모드로 바꿔 한 장을 딱 찍으니 화면 가득 잡힌다. 아기는 아기라고 생각하며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바꾸고 다시 손을 잡았다.
"이제 가자."
군말없이 따른다. 그러고보니 여느 애들처럼 보채고 칭얼거리고 하는것도 별로 없다. 참 편하게 애 키운다고, 새삼 성규에게 고마워하는 중이었다.
-
병원 문을 밀고 들어가자 안에서 나오는 훈훈하게 데워진 공기가 기분좋게 덮쳐왔다. 아장아장 걷고있던 성규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한손으로 안은 다음에 접수대로 향하니 깔끔하게 머리를 말아올린 예쁘장한 간호사가 우리를 맞이했다.
"얘가 감기인 것 같아서요." "여기는 처음 오신거에요?" "네." "그러면 진료카드 작성해 주세요."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서비스업 직종에는 딱 맞는다는 생각이 스쳤다. 간호사가 내미는 하얀 에이포용지를 받아들고 소파에 와서 앉아, 펜을 놀렸다.
"이름은...김성규...생년월일은..." "아빠, 아빠아." "왜애." "코끼리, 코끼리."
한참을 집중해서 작성중에 있는데 성규가 내 팔을 붙잡아 당겨왔다. 왜, 하고 물으니 코끼리란다. 난데없이 웬 코끼리? 하고 성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아프리카 동물 다큐멘터리였다. 넋을 놓고 쳐다보는 성규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다음에 진료카드를 접수대에 두고 돌아왔다. 멍하게 텔레비전을 쳐다보는 얼굴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좋은가, 코끼리가. 우리 앞에 두세 명은 더 있었으므로 성규를 좀 더 내버려두기로 했다.
"재미있어?" "응."
그래...다큐멘터리보다 아빠가 못났다 이거지. 나 삐짐. 흥. 동그란 뒷통수를 쳐다보고 있다가 슬핏 새는 웃음을 웃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이성열에게 문자를 날리자,
[요즘 누가 문자를 함? 남우현 병신. 카톡이나 해.]
란다. 이런 시팔...쓰리지 요금 다 써서 없다고는 차마 못 하고 어디냐 묻자, 왜냔다. 친구가 묻는데 왜는 무슨 왜, 하며 성규 데리고 놀러가게. 했더니 자기 집에 있다고 거기로 오라는 답장이 날아오길래 친절하게 씹어줬다.
"김성규 환자 들어오세요."
아까 그 간호사였다. 성규야 가자. 하며 뒤에서 안자 하마, 하마아아...하며 딸려온다. 진료실에 들어가는 내내 불퉁하게 부어있는 볼을 꾹꾹 찌르며 괴롭히자 하지마! 하며 손을 탁 쳐내는데, 너 이 자식 은근 손이 맵구나?
"자자, 꼬마어린이.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에치!"
제채기를 입으로 표현한 성규가 방긋방긋 웃었다. 아직 세 살이구나. 뒤에서 지켜보며 다시 한 번 웃었더랬다.
"기침감기인 것 같아서요."
내 말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청진기를 집어들었다. 소독약냄새가 가득하다. 간지럽다고 버둥거리는 성규를 붙잡고 있느라 고생 좀 했지만, 약 처방전 받고 나오니 묵혀둔 과제 하나 해결한 듯한 기분에 훨씬 속이 편해졌다. 아프지마라, 성규야. 응?
"아빠." "왜?" "나 저거, 저거..."
고 쬐끄만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붕어빵이었다. 이따 이성열네 집에 갈때 사갖고갈까.
"그러면 성규야, 아빠랑 약 받고나서 사먹자." "정말?" "응."
와아, 하며 웃는 애를 데리고 약국까지 누가먼저가나 시합할까? 했더니 자기가 이길거라며 도도도 뛰어간다. 뒤에서 천천히 걸으며 뒤따랐다.
-
"붕어빵 삼천원 어치만 주세요." "주세요!"
내 말꼬리를 따라하던 성규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봉지 가득 아홉마리를 담아주던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또 한 마리 성규에게 쥐어주었다.
"이거는 아가가 이뻐서 주는거야." "어어, 감사합니다!" "뭘, 그런 걸 갖고. 잘가요."
인자하게 웃으며 손까지 흔드는 아주머니께 같이 손을 흔든 성규가 찬 공기에 미지근해진 붕어빵을 물었다. 천천히 먹어. 내 말에 웅, 한다. 이제 이성열네 집에 갈 차례인가.
"성규야. 성열이 형 보러 갈꺼야." "정말?" "다른 형들도 있을거야. 누구누구게?" "음...음 몰라."
애들이 들으면 상당히 섭섭해 할거라 생각하며 성규를 좀 더 편하게 고쳐 안았다. 한손에 들린 붕어빵과 약이 담긴 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난 얼마 안가서 걸음을 멈춰야 했다.
"...너..." "..."
김지혜였다. 처음에는 그저 고개만 까딱이고 지나가려다가, 내 품에 안긴 작은 몸, 그러니까 성규를 보고는 같이 걸음을 멈췄다. 용건 없으니 먼저 가겠다며 내가 걸음을 옮기자, 팔을 붙잡으며 잠깐만요, 한다.
"볼 일 남았냐?"
거칠게 나간 내 말에 붕어빵을 먹다말고 성규가 고개를 들어 날 보았다. 아빠. 하고 말하는 작은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성규..."
제 이름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성규가 고개를 들었다. 딱히 제지하지 못했다. 성규를 보는 여자의 눈동자가, 울 것 마냥 젖어있었기 때문에.
"누구세요?"
성규의 목소리에 손을 뻗는다. 움찔거리다가 성규의 머리를 서툴게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 손은 곧 거두어졌다. 여자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무언가에 쫓기듯 빠르게 걸어갔다. 성규가 내게 묻는 질문이 아프게 들렸다.
"누구야?"
네, 엄마야. 성규야... 차마 말해주지 못할 단어를 목구멍 속으로 밀어넣으며 애써 웃었다. 그냥 아빠 친구야. 가자. 성규는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내 속만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
|
안녕하세요, 애교입니다 ㅋㅋㅋㅋ
오늘은 에피소드 속의 에피소드도 있어요
분량조절 실패로 좀 짧아진 것 같아 안타깝네요..ㅠㅠ
다음화는 성열이네 집에서 벌어지는 일이랍니다.
불쌍한 성종이의 모습이 펼쳐질 거에요.
헤헿.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