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가씨, 이제 그만 가실 시간입니다. "
벌써?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시간을 보니 나온지 겨우 3시간 밖에 되지 않았다. 며칠만에 이렇게 나왔는데 벌써 들어간다니. 안 돼! 지금 들어가면 또 언제 나올줄 안다고. 나 아직 할 거 많이 남았어! 아직 옷 구경도 덜 했고, 화장품 구경도 더 해야하고 또, 또..
" 회장님이 곧 돌아오실 시간입니다 "
씨.. 그놈의 회장님. 회장님이 그렇게 무섭냐! ...라고 하면 그렇다고 하겠지. 나한테나 회장님이 아빠지, 전정국한텐 아니니까. 당연히 어렵겠지. 아아, 그래도 싫어! 들어가기 싫다고! 뭐 이렇게 콧바람만 쐬고 들어가!
" 조금..만 늦게 들어가면 안 되지? "
" 이미 지금도 충분히 늦으셨습니다. "
" 그래도.. 엄청 오랜만에 나왔는데.. 또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
" 아가씨. "
낮게 중저음으로 깔리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쫄아버렸다. 야.. 너 니가 그렇게 정색하고 목소리 깔면 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명색이 내가 아가씬데, 어? 경호원한테 이렇게 막 쫄면 안 되는데. 근데 난 엄청난 쫄보라 그러면 막 쫄아버린다고..
" 그.. 그럼! 마지막으로 한군데만 더 들리고 가자. 응? 어때? "
" 이제 들를만한 데는 다 들르지 않으셨습니까. "
" 아, 아닌데! 아직 못 간데가 얼마나 많은데..! "
" ..어딜 말씀하시는 겁니까. "
어.. 그게.. 어디냐면... 어... 생각을 안 해봤는데.. 어....
" 저.. 저기! "
" ....저길 가시겠다는 겁니까? "
아 그래. 내가 생각해도 존나 어이가 없다. 하하..
내가 가르킨 곳은, 교복을 입은 여자애들이 여럿 몰려있는 스티커 사진 방이였다. 아 왜 아무거나 가르킨 데가 하필 저런 곳일까. 전정국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있다. 그래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너가 이해가 가겠니. 어떡하지, 그냥 다른데로 바꿀까 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또 여기가 술집이 몰려있는 유흥가인듯, 주변이 다 술집뿐이였다. 나 참 운도 없지. 휴..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나, 나 사진찍는 거 좋아하거든! 가끔 이렇게 나와서 스티커 사진도 찍고 막 그래! "
당연히 거짓말. 스티커 사진은 초등학교때 친구들이랑 딱 한번 찍은 게 다다. 사진찍는걸 좋아하긴 뭘 좋아해. 셀카찍는 것도 귀찮아하면서. 내가 말하면서 속으로 코웃음이 쳐졌다.
" ..꼭 가시고 싶으십니까? "
" 응. 꼭!! "
전정국은 잠시 고민하는 가 싶더니 내 고집에 답도 없다는 걸 느꼈는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이걸 좋아해야 하는건가.
" 그대신 이번이 정말 마지막입니다. 이걸 끝으로 정말 집에 가시는 겁니다. "
" 알겠어. 알겠다고.. "
그래, 나는 이왕 이렇게 된거 겁나 제대로 찍고 나오자 하는 심산으로 힘차게 스티커 사진 방 문을 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천국인 이 곳에 사복인 나와 수트를 입은 전정국의 모습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이 우리 둘을 쳐다보는게 느껴졌지만, 살포시 무시하고 나는 옛날에 찍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스티커 사진기계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너무 옛날이라 가물가물하긴 한데, 그래도 얼핏 기억은 난다. 들어가서 사진 찍고 다 되면 꾸미고 막 했었던 거 같은데.
" ..안 들어와? "
" 네? "
" 왜 거기 서있어? 들어와 "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고, 이어서 들어오라고 문을 닫지 않고 있었는데 전정국은 밖에서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 저는 사진 찍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
" 누구는.. 아, 아니, 그래도 이왕 이렇게 같이 온 거 같이 찍자. "
" 저는 밖에 서있겠습니다. 아가씨 찍으세요. "
아니, 스티커 사진 혼자 찍는 그런 청승이 어딨어. 나는 밖에 서있는 전정국의 팔을 방 안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나가려고 하기 전에 문을 닫아버렸다.
" 아가씨! "
" 그냥 한번만 같이 찍자. 혼자 찍으면 그게 뭔 재미야. 너 그냥 거기 가만히 서있기만 해. 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 할게 "
" 그래도, "
" 빨리빨리 찍어야 집에 얼른 가죠. 네? "
전정국이 더 뭐라고 하기 전에 난 얼른 기계를 만져 사진 찍을 준비를 마쳤다. 하나 둘 셋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리고, 나는 혹시나 전정국이 문을 열고 나가버리지 않을까 옆에 바짝 붙어 포즈를 취했다. 다행히 나가지는 않았는데, 얘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지 정말 가만히 정자세로 서있기만 했다. 8장을 내리 똑같은 그 자세로 찍었다. 나는 중간에 웃음이 튀어나올 뻔한 걸 참았다. 아 얘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까 진짜 가만히만 있어. 무슨 석고상인 줄.
어찌어찌 사진을 다 찍고, 완성된 사진을 꾸미는 단계였다. 포즈가 비교적 다양한 나에 비해 정말 한결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전정국이 보였다. 나는 펜을 들어 사진분위기를 밝게하기 위해 전정국 머리 위에 머리띠 스티커를 붙여보았다.
" 와 대박 "
" 아, 아가씨! "
옆에서 내 모습을 보고있던 전정국이 기겁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근데 진심 대박ㅋㅋㅋㅋ 머리띠 하나로 정적인 포즈가 한순간에 귀엽게 변했다. 난 나 혼자 빵터져서 혼자 끅끅대며 웃는데, 전정국은 얼른 지우라며 옆에서 난리다. 싫어! 이 진귀한 모습은 평생 간직해야지! 난 후다닥 꾸미기를 마치고 출력버튼을 눌렀다. 전정국이 뭘 할 틈도 없이 사진은 출력이 됐다.
" 제발 혼자 간직해주세요. 아무한테도 보여주시지 마시고.. "
" 그래 알았어. 뭐 내가 어디 보여줄 사람이 있다고! "
출력되는 사진을 보고 전정국은 포기한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좀 미안하긴 한데, 근데 웃겨. 너무.
" 아저씨, 사진 좀 4장씩 잘라주세요 "
난 출력된 사진을 갖고 나와 아저씨께 반으로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왜냐고?
" 자 여기 "
사진엔 나 말고 한명 더 있으니까. 나만 나온거면 나 혼자 갖겠는데, 같이 찍은건데 나 혼자 갖는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난 잘린 반 장을 전정국에게 내밀었다.
" 저 주시는 겁니까? "
" 응. 같이 찍은 거니까 "
전정국이 사진을 받아들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뭐, 넌 그 사진이 흑역사겠지만. 갖던지 버리던지 마음대로 해라.
" ..감사합니다 "
" 뭘 감사까지야 "
아, 우연찮게 재밌는 추억 하나 쌓은 거 같아서 기분 좋다. 나 이사진 계속 간직했다가 슬플때 한번씩 봐야지. 볼때마다 빵빵 터질듯.
[ 지이이잉 ]
갑자기 울리는 진동소리에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뭐야 누구...
" 헐... 아빠다. "
나 지금 떨고있니. 응, 아마 그런 것 같아. 아빠의 당장 들어오라는 호출에 전정국과 나는 잽싸게 집으로 컴백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빠가 나를 찾는다는 말에 아, 또 혼나겠구나.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하시려고 그러는 걸까. 또 경호원 한명 추가하겠다는 걸까. 근데 이번은 몰래 나간 거 아닌데.. 경호원도 대동하고 나간건데! 그래, 허락 안 맡고 나간건 큰 잘못이긴 한데.. 음.. 그래 다 내 잘못이라 해야겠다. 전정국한테 불똥튀면 안 되니까. 전정국은 내 옆에서 나보다 더 안절부절하며 서있었다.
" 아가씨, 저도 같이 들어갈까요? "
" 아냐 됐어. 나만 호출하신 거잖아. 걱정하지 말고 있어. 별 말 안 하실거야 "
과연 그럴까. 나도 잘 모르겠다만.. 나는 한숨을 한번 푹 쉬고 갔다올게, 라고 말한 뒤 회장실 문을 열었다.
" 아빠.. "
조심스럽게 아빠를 부르니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있던 아빠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왜 불렀어..? 하고 물었는데, 아빠는 분명 나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내 물음을 들은체 만체 했다. 화.. 화났나. 아... 백퍼네.. 표정 엄청 무서워 지금.. 또 혼나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겠다, 하고 생각하는 순간,
" 새로 온 경호원은 어떠니? "
정적을 깬 것은 아빠의 목소리였다. 응? 전정국 말하는 건가? 걔, 걔는 왜.. 걔까지 같이 혼내게? 아니 뭘 그렇게 까지. 혼나는 건 나 혼자만으로도 족한데. 나는 뭐라고 말해야 되나 고민하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 응, 좋아. 나이도 같아서 말도 잘 통하고.. 친구 같달까. "
" 그래? 그렇담 다행이네. "
" 응? "
" 너 맨날 친구 없다고 쓸쓸해 했잖아. 일부로 나이 비슷한 또래 경호원 수소문해서 찾은거야. 맘에 든다니 다행이라고 "
아.. 그렇구나. 내가 매일 집에만 처박혀 있으니까 친구따윈 절대 사귈 수 없어서 저번에 한번 아빠한테 나 너무 쓸쓸하다고, 옆에는 다 깍두기머리 아저씨들 밖에 없다고 투정아닌 투정을 부렸는데, 아빠가 그걸 잊지 않아준 것 같다. 워.. 감동인데? 우리 아빠가 이렇게 다정했었나?
" 그 친구 그 나이에 안 맞게 능력이 좋아. 그래서 데려온 것도 있어. 경호원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고. "
" 그..래? "
" 특히 믿음이 가, 아빠는. 어린 나이에 그렇게 노력한 것도 쉽지 않았을테니까 말이야. "
오.. 전정국이 아빠한테 칭찬을 받고있다. 아빠는 생색을 그렇게 막 내시는 분이 아니라 왠만한 거엔 칭찬같은 거 잘 하지 않는데.. 웬일이야.
" 오늘 같이 나갔다 왔다고? "
" 어? 어.. "
" 가끔 아빠 허락 받지 않고도 그렇게 나가도 괜찮으니까 그 경호원이랑 같이 다니도록 해. "
" 어? 진짜..? "
헐? 이게 무슨 말이야? 아니, 내가 알던 아빠 맞아? 회장님 맞아? 그렇게 외출에 엄청난 통제를 가했으면서 정녕 저 말이 아빠 입에서 나온건지 의심이 됐다. 전정국이 그렇게 믿을만한 애야? 그렇게 보수적이였던 아빠가 저런 말을 할 정도로? 헐..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그래. 어디 아빠가 거짓말 하는 거 봤니. "
" 아.. 아니 없지. "
" 그래. 알았으면 그만 나가보도록 해라. 아빠 다시 일하러 나가봐야 해. "
" 어.. 응.. "
뭔가 얼떨떨한 기분으로 회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나와서도 한동안 멍, 한채로 서있었었다. 뭐지. 좋..은 건가? 그래, 뭐 허락 안 맡고 나가도 되는 건 좋은 거긴 한데.. 갑자기 안 저러시던 분이 저러니까 익숙치가 않아가지고.. 문 앞에 서있던 전정국은 또 금세 무슨 일이 있는지 어딜 가고 없었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을 가진 채로 방으로 향했다.
며칠 뒤, 전정국이 내 전담 경호원이 된지도 2주 가량이 흘렀다. 아빠의 외출 자유 허락 뭐 그 비슷한게 떨어졌긴 했지만 그렇다고 매일매일 외출하고 그러진 않았다. 그리고, 아빠한테 허락 맞으면 뭐해? 전정국이 허락을 안 해주는데. 전정국은 이제 자기 허락만 있으면 내가 외출 가능하다는 걸 알고, 오히려 아빠한테 허락맡고 다녔을 때가 더 편했을 정도로 절대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아빠는 어떻게든 조르면 허락해줬는데, 얘는 아니다. 아니 내가 외출하면 뭐 살인이라도 당하는 줄 아나봐. 아빠보다 속박이 더 심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저번에 전정국이랑 같이 나갔던 뒤로 한번도 나가질 못해 몸이 근질근질거려서 오늘 살포시 외출이란 단어를 꺼내봤는데, 참.. 정색도 그런 정색이 없지. 무서워서 어디 말 하겠냐고.. 내가 지 정색하는거 무서워 하는거 아는게 틀림없다. 거기에 또 쫄아버려서 그냥 쏙 들어가버렸다. 아나.. 나 이렇게 경호원한테 쫄면서 살아야 하는거야? 어? 그래야 되는 거냐고!
" 아 심심해!!!!!!!!! "
아 다 됐고! 심심해 죽을 것 같다. 방에서 박혀있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어휴. 집순이도 이런 집순이가 없을거야. 난 좀이 쑤시는 기분에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밖에 나갈 수 없다면 정원이라도 걸어야겠어. 이대로 계속 있으면 집먼지랑 합체될 기세야. 갑자기 내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문 앞에 서있던 전정국이 화들짝 놀라 뭘 숨긴다. 음?
" 뭐야? "
" 네? "
" 왜 내가 나오니까 뭘 그렇게 숨겨? "
" 아무것도 아닙니다 "
" 뭔데? 보여줘! 뭐야? "
"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
그러더니 주머니 안으로 넣어버린다. 뭐야. 겁나 궁금하네. 계속 보여달라고 추긍했지만 단호박을 한 박스 먹었는지 '안 됩니다' 하고 계속 딱 잘라 말한다. 어휴.. 포기다 포기.
" 왜 나오셨습니까? "
" 그냥 너무 답답해서. 정원이나 걸을까 하고. "
전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 정원으로 향했다. 뒤에 전정국이 따라오는 걸 느꼈다. 어차피 집 안에 있는건데 안 따라와도 되는데. 뭐, 내가 어디 튈까봐 그러나. 그래 뭐.. 그럴수도.
" 같이 걸을래? "
" 네? "
" 아니, 계속 졸졸 따라 오길래. 그러지 말고 옆에서 같이 걷자고. "
나는 옆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전정국이 약간 고민하는 가 싶더니 이내 내 옆으로 걸어왔다.
" 넌 계속 집에만 있으면 안 심심해? 난 엄청 심심한데.. "
" 전 이게 직업인데요 뭘. "
" 어쩌다 이런 재미없는 직업을 선택했어. 다른 직업도 많은데 "
예전에도 말했지만 넌 내가 연예인 소속사 사장이였으면 바로 캐스팅했다. 진심. 이런 노잼인 직업 말고 다른 직업은 어때? 20대 청춘을 이런 재미없는 일에 쏟아야 한다니. 나 같으면 절대 안 했을거야.
" ..제 꿈이였으니까요. "
" 경호원이? "
" 네. "
" 그래? 처음 본다. 경호원이 꿈이였다는 애는. "
그래 뭐 니 꿈였다니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네. 오히려 어린 나이에 꿈을 이뤘으니 축하한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어쩌다 경호원이 꿈이됐대? 다른 애들처럼 공무원, 교사 이런 것도 아니고.
" 어쩌다 경호원을 꿈꾸게 된건데? "
" .... "
" 응? "
" 부모님 때문에요. "
" 부모님? 부모님이 경호원 되기를 원하셨나보네? "
" ..... "
" 아니야? "
" 네. 뭐.. "
말 끝을 흐리는 전정국. 조금 표정이 안 좋아진 건 내 기분탓일까.
" 꿈을 이뤘으니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셨겠다 "
" ..네 "
" 멋있다. 벌써부터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다니. "
" 아가씨는 꿈이 뭔데요? "
" 나? 내 꿈? "
처음 받아본다 저런 질문. 내 꿈? 나한테 꿈이 있었나? 그냥 여느 다른 대기업 2세들 처럼 아빠의 기업을 물려받는게 내 정해진 미래였다. 꿈 같은건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얼른 대학교 졸업을 마치고 아빠의 사업을 도와주는게 지금 현재의 목표였다. 하지만 이게 꿈인가? 목표이긴 한데, 이걸 꿈이라고 간주해도 되는건가? 꿈이라면, 정말 내가 원하고 성취하고 싶은 그런 거 아닌가? 내가 저걸 그렇게 원하고 성취하고 싶고 그러진 않는데. 그렇다면 나한텐 꿈이 없는 건가. 꿈이 없다니. 나 가만보니 엄청 한심한 애였네.
" 난 딱히.. 생각해 본 적 없는데 "
" 아가씨는 회장님이 돌아가시면 회사를 물려받으시는 건가요? "
" 뭐.. 그렇겠지? 아들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아들이 물려받았을 텐데 말이야. "
" 왜요. 아가씨가 뭐 어때서요. "
" 원래 보통 아들들이 물려받잖아. 근데 난 외동딸이라.. "
" 아가씨도 충분히 자격있어요. 그런 생각 하지마세요. "
아니 뭐 그렇다고. 다들 그렇잖아. 아들이 물려받는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건데.
" 아가씨는 훌륭한 경영인이 될 거예요. "
" ..그래, 고마워. 근데 아직 멀었는데 뭐. 우리아빠 아직 쌩쌩해 "
" 네. 오랫동안 정정하셔야죠. 아가씨 오래 보려면 "
그래. 그래야지. 나 불안해서라도 아빠는 오래 살아계실거야. 아 근데 좀 춥다. 아직 완연한 여름은 아닌지 밤에는 날씨가 좀 쌀쌀했다. 티 한장 달랑 입고 나왔더니 좀 추워서 팔을 손으로 비볐다. 전정국이 그런 나를 보더니 조금 놀란 표정을 짓는다.
" 추우십니까? "
" 어 좀 그러네. 밤에는 좀 춥다. 그치? "
전정국이 옆에서 부스럭거리더니 내 어깨에 털석하고 뭘 얹어줬다. 뭔가 하고 보니 전정국의 수트 마이였다.
" 넌 안 추워? "
" 네. 괜찮습니다. "
" ..고마워. 추우면 말해. 다시 돌려줄게 "
방금 전까지 입고있어서 그런지 온기가 남아있었다. 허헝 따뜻하다. 그 후로 얼마동안 우리는 정원을 함께 걸었다. 이렇게 정원 걷는 것도 괜찮네. 다음에 또 밖에 못나가는 일이 있으면 정원 걷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 나 사실, 친구가 별로 없어. 고등학교까진 그래도 몇 명 있었는데, 대학교 가면서 다 찢어져 버려가지고 지금은 진짜 나 혼자거든 "
"..네 "
" 그래서 말인데, 지금 니가 경호원이라지만, 그래도 우리 나이도 같고. 같은 또래니까.. "
우리 있잖아.
" 친구 할래? "
그냥, 너랑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 아가씨, "
" 뭐 친구라고 해봤자 거창한 거 아니고! 그냥 평소랑 똑같이 대해. 바뀌는 건 없어. "
" ... "
" 그냥, 내가 친구 한명 사귀어 보고 싶어서 그래. 별 거 아냐. "
혹시 부담스러울까봐 이런 저런 말을 붙였다. 싫다고 하진 않겠지..? 괜히 걸쳐있는 마이를 한번 고치는 척 하면서 전정국을 바라보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표정이 없었다. 아무래도, 부담스러운가. 하긴, 자기가 모셔야 되는 사람인데 갑자기 친구하자고 하면 나 같아도 당황스러울거야. 그래 내가 잘못했네! 다시 물러야 되나하고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데..
" ..그래요. "
" 어? "
" 친구 해요. 우리. "
그날, 처음 웃는 모습을 본 것 같다. 환하게 웃는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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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려여ㅠㅠㅠㅠ으어ㅠㅠㅠㅠㅠ
하나하나 다 읽어봤어여ㅠㅠㅠㅠㅠ 정말로 감사드립니다ㅠㅠㅠㅠㅠㅠ
저번편은 경황이 없어가지고 대댓 못달아드렸는데 이번편은 한분한분 다 달아드릴 예정입니다!
정말 감사해요 모두모두ㅠㅠㅠ 사랑합니다 독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