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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슙뷔 카페인 A 

 

 

 

 

 

0. 

 

 

민윤기는 선천적으로 술과 카페인에 약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말이었다. 초등학교 이학년 때 엄마 커피를 한 모금 훔쳐 마시고 밤새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었던 걸 보면 확실히 체질이 그런 것도 같았다. 딱히 커피에서 무언가 와닿는 맛을 느낀 적도 없었고, 애초에 제 체질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찾아 마신 적도 없었다. 

 

술에 약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던 날, 윤기는 후배에게 뒤를 내 주었다. 아주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던 날 민윤기는 후배에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 후배가 재미 좀 보자며 윤기를 잡아먹은 것이었다. 물론 윤기가 그 전까지 그 후배를 좋아했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뒤로 민윤기는 단 한 번도 카페인과 술을 찾은 적이 없었다. 가끔 그 후배에게 연락이 오곤 했지만 그날 마음을 접어버린 윤기로서는 일말의 미련도 생기지 않았다. 이후 아주 워커홀릭이 돼 버린 윤기를 그 후배가 찾아온 것이 화근이었다. 

 

그 후배는 이름부터 김태형이라고 뻔뻔하기 짝이 없다, 라고 윤기는 생각하곤 했다. 얼굴도 새까만 게 뭐가 좋다고 항상 배실배실 웃는 지는 몰랐지만, 얼굴만큼 속도 새까맣다는 것만큼은 윤기도 잘 알고 있었다. 민윤기는 그 즈음 훤칠하고 잘생긴 후배와 꽤 잘 돼 가고 있었기에 김태형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태형과 연애 아닌 연애를 할 때부터 태형의 고집이 장난 아니라는 것을 안 민윤기는 눈 딱 감고 태형을 한 번만 만나 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민윤기의 새로운 잘생긴 후배는 그 사실을 알고 눈에 불을 켜고 윤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1. 

 

 

"그러니까, 나랑 다시 사귀고 싶다는 거야?" 

 

 

평소엔 찾지도 않는 카페에 앉은 민윤기는 풍겨오는 커피 향에 머리를 짚었다. 가뜩이나 김태형 덕에 머리 아픈데 커피 향 때문에 어지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게다가 태형은 윤기와 만나자마자, 형을 못 잊겠어요 따위의 멘트와 함께 윤기의 손을 덥썩 잡아챘다. 까만 손에 붙잡힌 민윤기는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셈이죠. 저랑 진짜 한 번만 다시 만나주면 안 돼요?" 

"태형아. 내가 헤어질 때 그랬지. 넌 너무 어려, 자식아." 

"형이 지금 만나는 애 저보다 두 살 어리던데요?" 

"닥쳐,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그럼 어떤 의민데요?" 

"모르면 두 번 닥쳐." 

 

 

민윤기는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앞에서 턱까지 괴고 저를 쳐다보는 느끼한 까만 놈부터 니글니글한 커피 향까지, 아주 풀리는 일이 없었다. 가뜩이나 속도 울렁거려 죽겠는데 앞에서 김태형이 자꾸만 말을 걸어대니, 윤기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생각 좀 해 봐요. 커피 얼음 녹으면 맛 없으니까 좀 마시면서." 

 

 

지가 뭔데 생각해 주는 척이야. 민윤기는 속으로 궁시렁대며 커피를 쪽 빨아 마셨다. 오늘은 카페인과 친해지는 날인가보다. 윤기는 생각하며 뭘 시켜야 할 지 몰라 시킨 아메리카노를 마구 흔들었다. 쓰긴 더럽게 쓰고 맛은 또 더럽게 없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더니 딱히 몸에 좋지도 않으면서 쓰긴 징그럽게 쓰네. 윤기의 찌푸린 얼굴을 보던 태형이 윤기의 눈앞에 손바닥을 펼쳐 흔들어 보였다. 

 

 

"형, 오늘 우리 집 갈래요?" 

"너희 집에 부모님 다 계시잖아." 

"그럼 안 돼요? 그리고 저 지금 자취해요." 

 

 

민윤기는 김태형의 자취 여부보다도 본인의 안위가 더 중요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이상 카페에 앉아있다가는 정말 취해버릴 것만 같아서 어서 일어나자는 의미로 윤기는 태형을 빤히 쳐다봤다. 

 

 

"형 시선이 그윽하시네요. 전보다도 더." 

"닥쳐 진짜." 

"예전엔 화도 잘 내더니 이제 늙어서 반박할 힘도 없는 건가?" 

"고작해 봐야 너랑 두 살 차이거든." 

"날짜로는 거의 세 살인데." 

"두 번 닥쳐." 

 

 

윤기의 가방까지 친절하게 품에 안은 태형이 윤기의 어깨를 감쌌다. 우리 집 저쪽이에요.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 윤기가 걸음을 옮겼다. 

 

 

 

2. 

 

 

윤기는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카페인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점을 태형이 노린 게 분명했다. 아침부터 뻐근한 허리를 붙잡은 윤기가 태형에게 고통을 호소해 봤지만 태형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더 좋아한 건 형이었는데요. 아주 내 사타구니에 뼈를 묻을 것처럼 굴던데." 

"너 이 새끼……." 

"아, 물론 코를 묻긴 했어요. 비벼대기도 했지." 

"두 마디만 더 해 봐. 널 두 마디 내 버리겠어." 

"그런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는데요. 형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 빼곤 똑같은데." 

 

 

태형의 쏘아붙이는 말에 윤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술 마시면 여러 의미에서 개가 된다는 것도 어제 처음 안 사실이고, 하여튼 실수 한 번 거하게 한 셈 치고 윤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김태형의 말대로 부정한다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형, 근데 그 애기랑은 잘 돼 가고 있어요?" 

"그 애기? 너 설마 아직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냐?" 

"당연하죠. 전 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형한테 관심이 많은데요." 

"흠……. 너랑 사귀던 때보단 훨씬 좋은데." 

"뭔 말입니까?" 

 

 

태형의 물음에 윤기는 어깨를 으쓱였다. 대답 대신이었다. 김태형은 의문스런 얼굴을 했지만 되묻진 않았다. 윤기와 사귀던 중엔 많이 어렸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남의 연애 사업 방해하지 말고." 

"예, 예." 

"보고 싶으면 가끔 만나서 같이 고기 먹어 줄게. 술이나 커피는 사절이다." 

"귀엽네요." 

"하나도 안 귀여워. 연락하던가." 

 

 

민윤기는 구 남친의 집에 그렇게 오래 머무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상 윤기는 더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기에 소지품을 챙긴 후 급히 인사를 했다. 정말 후회할 일은 아니었지.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몇 번 안 되는 술 경험이었잖아? 이상한 것을 위안삼으며 터덜터덜 현관으로 걸음을 옮기던 민윤기는 뜬금없이 화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술 못 마시는 놈한테 술 먹여서 어떻게 해 보려는 놈들이 제일 못됐다. 난 그렇게 생각해." 

"형 지금 가기 직전까지 저격하는 거예요? 너무하네." 

"잘한 거 없는 김태형 새끼는 닥치길 바란다." 

"너무해." 

 

 

태형이 우는 소리 내는 것을 구경하던 윤기가 집 안쪽으로 고개를 디밀고 인사했다. 이번엔 진짜 간다고 말한 윤기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잘 가요. 태형이 집안에서 그렇게 말했고 윤기는 현관문을 닫았다. 이번이 정말 태형과의 마지막 만남이었음, 하고 민윤기는 생각했다. 

 

 

 

3. 

 

 

하여간 그런 만남이 있음에, 윤기는 억지로 술과 카페인을 디미는 남자만 아니라면 누구든 좋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각해 보면 태형과 연애하며 배운 점도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 김태형은 쓰레기라는 것과 둘째론 쓰레기를 만나면 안 된다는 것, 또 쓰레기는 태워도 순환해 다시 쓰레기가 된다는 것 등의 사실들 말이었다. 

 

그에 반해 정국은, 그러니까 민윤기가 새로 만나는 잘생긴 후배 말이다. 젠틀하지만 남자다운 성격에 심지어 윤기보다 네 살이나 어렸다!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더니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물론 정국이 아직 완전 애기여서 가르칠 것도 배울 것도 많았지만 어린데도 저 정도면 낫 배드 뿐만 아니라 쏘 굿까지도 쳐 줄 수 있다고 민윤기는 생각했다. 

 

민윤기의 새 남자는 똥차였던 전 남자에 비하면 벤츠 쯤 되는 좋은 차였다. 윤기는 정국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고백이라도 하면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 줄 생각이었다. 성격도 좋은 데다가 잘생기기까지 한 정국은 윤기 본인이 생각해도 본인보다 정국이 아까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민윤기가 꼬시는 스킬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이미 그 애가 허리를 얼마나 잘 놀리는지까지 알 수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윤기는 아직 생생하고 파릇파릇한 편이어서 남자를 꼬시긴 개뿔 학업 생활에 정진하기에도 바빴다. 아예 휴학계를 다시 내고 싶을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민윤기의 구이자 퍼스트 남친이었던 김태형은 허리놀림만큼은 꽤 좋은 편이었던 것 같다. 윤기는 그렇게 생각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좀 잘 활용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윤기는 전에 난 적 없던 태형에 대한 스캔들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물론 윤기에 대한 스캔들도 난 적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러자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질투도 아닌 것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민윤기는 혹여 제가 구 남친에게 미묘한 정이라던가 미련 같은 게 남은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동시에 회의감도 함께 들었다. 내가 저 따위 똥차에게 미련이 남다니. 똥차도 돈이 영 안 되진 않는다는 것을 윤기는 잘 알고 있었다. 

 

 

 

4. 

 

 

민윤기와 전정국이 썸 아닌 썸 같은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관계를 맺던 중에, 그러니까 김태형과 민윤기가 섹스를 한 후 며칠 내내 정국은 윤기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태형과 잔 것을 들킨 것일 지도 모르겠다고 윤기는 생각했다. 아직 어리고 또 남자는 처음인 것 같으니 배신감에 휩싸여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락조차 하지 않다니, 몇 달째 진전 없는 관계에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이번도 글러먹었다는 말과도 같았다. 결국 민윤기는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정국을 불러내 술을 사 주고, 윤기 본인 또한 퍼마시는 것이었다. 

 

일단 취하면 맨정신은 아니니 어떻게든 끝까지 갈 수 있을 테고, 윤기는 임신하지 않는 몸이며 이미 태형과 먼젓번에 관계를 했던 터라 잃을 게 없었다. 물론 정국이 거부한다면 크게 민망한 사태가 벌어질 게 분명했지만 윤기는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정국 또한 윤기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앞서 떠 본 바로는 정국이 양성애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윤기는 정국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뭐해? 저녁에 안 만날래? 이모티콘이라도 붙여야 하나 고민하던 윤기는 그냥 냅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혹시 가벼워 보일 지도 몰라서였다. 정국의 답은 전보다도 빨랐다. 

 

저녁이요? 몇 시요? 전 아마 여덟 시쯤 될 것 같아요. 어디서 만날래요? 

 

적극적인 정국의 문자에 윤기는 속으로 오예를 외쳤다. 윤기는 그날 저녁 정국과 술 약속을 성공적으로 잡았다. 

 

 

 

5. 

 

 

훼방꾼. 민윤기는 술자리에서 만난 김태형을 그렇게 생각했다. 정국과 윤기가 술에 취해, 정국이 윤기의 뺨을 잡았을 때 태형은 윤기를 발견하고 인사했다. 형! 순간 전정국의 눈동자가 노랗게 빛났다. 윤기는 불안한 얼굴을 하고서 연신 입술을 물어뜯었다. 

 

태형은 이내 그 자리에 합석했다. 잠시 휴대폰을 만지는 걸 보면 혼자 술을 마시러 온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약속을 취소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윤기는 생각했다. 민윤기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어쩐지 김태형이 미친 듯이 퍼마시는 것 같아 더 그랬다. 

 

물론 김태형에 대한 걱정보단 김태형이 술에 취해 무슨 말을 할 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미 술을 세 잔이나 들이부은 윤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건 막 미성년자를 벗어난 정국도, 열심히 달린 태형도 마찬가지였다. 

 

윤기는 거의 술에 취해 몸을 갸눌 수 없을 정도였고, 정국은 이미 눈에 뵈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심각한 건 김태형의 쪽이었다. 태형은 한참 술을 섞어 마시다가, 갑자기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고선 연단에 선 늙은 남자처럼 목을 쭉 뺐다가 입을 열어 말을 시작했다. 

 

 

"엣……, 저는 이미 임자가 있는 윤기 형과 배덕감 넘치는 죄스러운 관계를 맺은 것에 대해 사과하러 여기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윤기 형 억지로 술 맥이고 따 먹어서 좌송합니다. 윤기 형의 새 애인아 미안해. 하지만 우리의 물리적 결합에 의한 화학적 반응은 진짜였다고 믿고 싶습니다. 윤기 형 우리 뜨거웠잖아 그치? 기억해, 우리의 끓는점……?" 

 

 

지루한 얼굴로 사과를 낭독하던 태형이 슬픈 눈을 하고서 윤기를 쳐다봤다. 윤기는 당황스러워 앞에 있던 티슈 통으로 태형의 머리를 내리쳤다. 개소리 그만해! 윤기의 말에 태형이 배실배실 웃으며 윤기의 쪽으로 엎어지려 했다. 정국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누운 지 이미 오래였다. 

 

아직 사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어나 있었다면 신경 쓰여 했겠지? 윤기는 속으로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에 얹힌 태형의 머리통이 유난히 무겁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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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국슙뷔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김태형 이 나쁜싸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전정국 민윤기 행쇼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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