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대학 선배라도 나는 사수다. 내가 상사다. 라며 다시금 마인드 컨트롤하며 도도한 척 기품 있는 척 폼을 잡고 엑셀과 교감하고 있는데 차학연은 내가 말한 것을 듣기는 한 건지 오히려 나를 비웃고 싶은지 웃음 참는 표정으로 그자리에 가만히 서 날 보며 웃을랑 말랑하고 있었다. 군대에 말뚝 박기 싫어서 그 자리에 말뚝을 박았나 보다. 그에 다시금 의지가 불타올라 차학연을 보고 쏘아대려는 틈을 비집고 차학연이 먼저 말하였다.
"제 사수님이 대학 때랑은 다르게 점심시간인데 배가 안 고프신가 봐요."
그제야 나는 옆자리를 보았고 스팸을 먹었는지 내 곁에서 사라진 영희 씨와 지갑을 챙기며 하나둘 옹기종기 모여 나갈 준비를 하는 동료들이 보였다. 옘병. 뭐 하나 도움이 안 돼. 영희 씨가 날 두고 간 건 분명 차학연과 밥을 먹으란 뜻인데 나는 BB크림이랑 밥을 먹을 순 없다며 이상한 오기가 생겨 무슨 자신감인지 아직 불이 켜져 있는 팀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그에 팀장님이 놀란 듯 나를 쳐다봤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고 다시 요조숙녀로 돌아와 내게 말했다.
"뭡니까, 노크도 없이."
막상 패기 있게 문을 열고나니 입이 떨어지질 않아서 한참을 어버버하게 서있었는데 뒤에 서있던 차학연의 웃음 참는 소리에 토르가 다시 와 내 머리를 때려주어 정신이 들었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싶어서 모 아니면 도다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선 그냥 냅다 질러버렸다.
"팀장님, 오늘 점심 같이 드실래요?"
내 말에 팀장님은 놀랐는지 시선 잃은 고양이처럼 눈을 요리조리 굴리다가 이내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별빛씨, 밥 같이 먹으실 분 없습니까?"
"네, 보다시피 그래서 팀장님 한ㅌ.."
"갑시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팀장님은 겉옷을 집더니 일어섰다. 그 말에 나는 또 한 번 벙 쪄있다가 안 오냐는 팀장님의 말에 이내 정신을 되찾곤 쭈구리처럼 팀장님의 뒤를 따라가는데 내 BB크림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충성심이 투철한 건지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난 뒤에도 따라오는 차학연에 내가 의아함에 눈빛을 보내자 눈코입이 달린 내 BB크림도 나에게 의아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차학연 씨, 밥 먹으러 안 가세요?"
"예? 가는 중인데요."
"근데 왜 절 따라오세요."
"제가 아는 사람이 어딨다고 절 두고 가세요, 사수님!"
그 말 한마디에 나도 어이없어 쳐다봄은 물론 나와 같이 밥을 먹어는 주지만 따라오는 건 네 맘이라는 듯 앞서가던 관심 없어 보이던 정 팀장님도 발걸음을 멈추곤 뒤를 돌아 우릴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차갑게도 쏘아대는 것만 같은 팀장님의 눈빛에 급히 차학연에게 알아서 먹으러 가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차학연도 물러설 생각은 없는지 나에게 아무것도 모르는척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쭈뼛쭈뼛 팀장님에게 가 눈치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저..들으셨다시피 차학연 씨도 같이 먹으면 안될ㄲ.."
"안 돼."
역시나 커터기라도 되는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끊고 대답을 한 팀장님에 나는 곤란함과 동시에 반말을 쓴 팀장님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팀장님을 바라봤고 우릴 지켜보던 차학연도 어느새 내 옆에 와 흥미진진하게 우릴 구경하고 있었다. 뭐가 재밌어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이런 뱁새끼.
"팀장님, 지금 말 놓으셨.."
"어쨌든 안됩니다, 돈 없어요, 저."
지나가던 개가 웃다 못해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나 같은 말단 코딱지도 후임 밥 사 줄 돈은 있는데 팀장님이 고작 후임 두 명 밥 사 줄 돈이 없으시다니 어이는 이미 우리 집에 먼저 가있는듯하였지만 이내 나는 어떤 상황이 되든 내가 곤란해진다는 생각에 그럼 제가 밥을 사겠다며 피해보려 했지만 점점 석고상이 되어가는 팀장님 표정에 차학연을 보며 간절한 텔레파시를 보내보았다. 꺼져 제발. 그치만 내 간절한 눈빛에도 차학연은 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고 그에 나는 점점 몰려오는 딥빡에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렇게 드시고 싶으면 두 분이서 드시고 오시면 되겠네요. 돈도 되고 딱이네요."
내 말에 차학연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했고 팀장님은 석고상에서 벗어나 얼빵하게 서있다가 이내 가려는 나를 다급하게 붙잡으며 눈을 질끈 감고선 말하였다.
"후.. 갑시다 같이. 대신 다음엔 둘이서 먹죠."
마치 나와 다음에도 점심 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이라도 하는지 말을 하고 다시 앞서가는 팀장님의 귀가 약간 붉어져 보였지만 화가 나셨나 하고 멍하니 서있다가 이내 다급하게 차학연의 손목을 잡아 이끌고 뒤따라가 겨우겨우 식당 앞에 두 사람과 서있을 수 있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것도 잠시 팀장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 곳을 응시하다 고개를 돌리곤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 버렸다. 이내 나는 뭐지 하고 시선을 따라가 보았더니 내가 잡고 있던 차학연의 손목이었음을 알 수 있었고 안았을 때도 주위를 신경 쓰던 팀장님이 생각나 무의식적으로 잡았구나 하고 손목을 놓으려는데 차학연이 반대로 그런 내 손을 잡았고 이내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가죠, 사수님!하며 내 손목을 꼭 잡은 채로 식당에 들어섰다.
"서서 뭐 합니까? 앉으세요."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 내부 풍경에 잠시 넋이 나가있던 나는 팀장의 말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 앉았고 차학연은 왜인지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와 앉았다. 그렇게 팀장님이 미리 주문한 건지 고급스러운 코스 요리가 나왔지만 나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구겨진 채 식사를 하는 팀장님의 표정이 도저히 원상복귀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팀장님도 뱁새끼가 아주 싫으신가 보군요. 그렇게 생각하며 조만간 동맹 제의를 해볼까 하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눈치도 없는 뱁새끼는 입으로 들어가는지 아주 잘 쳐먹고 있었고 말이다. 내가 점심에 칼질을 하게 될 줄이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
.
.
그렇게 불편했던 식사를 끝마치고 돌아온 회사에서는 식곤증만이 내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엑셀과의 교감에도 지쳐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갑자기 볼에 닿은 차가운 촉감에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했다. 그런 나를 보며 누군가가 또 웃음을 참으며 배를 부여잡길래 보았더니 역시나 뱁새끼였다. 그에 나는 살인 동기가 충분하거나 사회에 불만 있어 보이는 표정으로 차학연을 바라보았다.
"사수 놀리니까 재밌습니까? 차학연 씨."
"아니..ㅋㅋ 우리 사수님 귀여우셔서요."
아놔, 뱁새끼가 갑자기 와서 그런 말한다고 내 화가 풀릴 거라 생각했다면 아주 오예야. 뱁새끼라고 까도 사실 얼굴 잘생겼지 몸도 잘 빠졌던 차학연이었기에 그런 미남계는 내게 아주 잘 통했다. 군대에 다녀와서인지 몸이 더 다부져졌어. 껄껄껄. 짜식, 상남자구먼. 그러다 이내 내 앞에 들이밀어지는 아메리카노에 의아하게 차학연을 보자
"졸리신 것 같아서 마시고 일하시라고요. 그럼 이만."
남들보다 유독 치아가 새하얗게 빛나는 차학연은 나에게 그 치아를 뽐내고선 자리로 돌아갔고 그제야 나는 내 앞에 놓인 커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 쓴 거 못 먹는데 뱁새끼가 감히 날 엿 먹이려고. 대학 시절에도 분명 카페에 차학연과 자주 갔었기에 내가 쓴 걸 입에 못 대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저 망할 놈이 배려인 척 나에게 똥을 주었다. 분노를 삼키며 엑셀과 교감을 하려는데 누군가 내 앞에 놓여있던 아메리카노를 들고 가곤 다른 커피를 놓아주었다.
"라떼 마셔요. 쓴 거 못 마시지 않습니까? 나는 아메리카노 좋아하니까 걱정 말고요."
-
누구보고 눈치가 없다는 건지 답답하네요. 몽총해.
암호닉은 계속 받고 있습니다. 덧글 달고 구독료 반환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