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인어공주였다.
처음 그 애와 만나게 된 날이었다.
모든 시작의 원인은 흔히 말하는 엄마 친구의 딸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엄마 친구를 만나면서 좋아던 적은 없었기에 이번에도 대충 둘러대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심술이라도 부리듯 대문을 열자마자 너의 모습이 보였다.
강아지 같은 모습으로 나를 올려다 본 그날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뒤에 아줌마가 반갑게 인사하시는 걸 보아 엄마 친구의 딸이 분명했다.
"아.. 벌써 왔네? 들어와"
뒤에 아주머니가 태형이는 언제 저렇게 컸냐면서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신다.
기분이 영 좋지는 않았지만 웃어 보이며 형식적인 인사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모두 거실로 이동했지만 너는 웬일인지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넌 왜 안 들어와?"
"....."
물음에 대답이 없다.
뭐지 왜 저러는 거지 어디 불편한가? 온갖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다.
생긴 것도 여리하게 생겨서 정말 아파 보이기까지 해 걱정스러웠다.
"아파?"
돌아온 건 또다시 침묵.
이건 무슨 허공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이야기하고 대답하는 기분이었다.
괜스레 짜증 났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이렇게 오지랖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야 말 못해?"
슬슬 짜증을 넘어서 화가 날려고 했다.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안 그래도 겨울이라서 현관에 있는 거 추운데.
일단 집으로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손목을 잡고 거실로 대리고왔다.
거실에서는 아줌마가 깜짝 놀라며 여자아이를 안아주었다.
허, 참 누가 보면 내가 무슨 짓 한 줄 알겠네
"아줌마 쟤가 안 들어 올려고 했.."
"어휴 태형아 고맙다"
"네?"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다.
당황스러웠다. 아줌마 품에 안겨있는 너를 보자 더 할 말이 없어졌다.
아니, 뭐가 고마운지는 이야기를 해줘야 알지.
아니다. 그만하자. 애정결핍도 아니고..
"....."
발걸음을 옮기는데 너는 뭐가 할 말이 있는지 눈빛으로 나를 멈추게 한다.
저런 타입 정말 싫어한다. 말을 하려면 하고 말 거면 말 것이지 왜 미련을 주는지..
내 성격상 그냥 못 가는 걸 내가 알기에 먼저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다.
"왜, 무슨 할 말이 있는데?"
"..."
"거봐. 말도 못하면서 왜 부르는데"
"..."
"야 너 말을 못하냐?"
"..."
내가 너무 밀고 들어갔나.
눈동자가 잔뜩 겁먹어있었다.
불안한지 괜히 주머니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겁먹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괜히 미안해졌다.
"뭐 말 못해도 난 상관없어. 네가 상관있지"
"...?"
"나랑 대화도 못해보고 어쩌냐 목소리 아깝게"
내 말이 웃긴지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미소가 참 예뻤다.
근데 의문이 생겼다. 정말 말을 못하나? 나랑 말을 하기 싫나?
말을 못하는 쪽이면 별 상관은 없지만 말을 하기 싫은 쪽이면 상황이 달랐다.
"너 말을 못하는 거야? 고개라도 끄덕여주라."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한 번만 끄덕여도 될 것을 두세 번 끄덕이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반사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너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글씨를 적어 내린다.
아, 그래서 주머니를 만지작 거렸구나. 진작에 꺼내지..
한 글자 한 글자 고민해서 적어내리는 듯했다.
[미안해. 많이 답답했지?]
솔직히 말하면 속으로 몇 천 번은 끄덕였다.
하지만 미안해하는 눈빛을 보니 이건 뭐.. 강압적으로 괜찮다고 말하라는 수준이었다.
나도 손으로 적을까 하다가 그건 너무 귀찮았다.
"아니. 안 답답해 그러니깐 글이라도 써서 대답 좀 해라"
또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수첩에 글을 쓴다.
말로 하면 금방 전달할 것을 글로 고민해가면서 적어내린다.
배려하는 모습이 보여 괜히 마음이 설렜다.
[사실 나 너희 학교로 전학 간다? 오늘도 너랑 친해지려고 놀러 온 거야]
"전학? 어느 동네에서 이사 왔는데?"
[00아파트]
멀지 않은 곳이었다.
운동 삼아서 자주 놀러가던 아파트였다.
나도 모르게 표정관리가 안 되고 있었나보다.
너는 또 당황해하며 수첩의 다음 장을 넘긴다.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몇 번 들리자 수줍게 수첩을 내게 넘긴다.
[내가 낯을 가려서 친구를 잘 못 사귀어.. 다시 사귀려고]
글이라 더 거짓말이 잘 들통 나는 걸까
넌 분명 아무 소리도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았는데 글 속에 거짓말이라고 적혀있었다.
자연스럽게 뻔히 보이는 너의 거짓말에 나는 속아주었다.
"아? 그래? 언제부터?"
[내일]
침묵이 흘렀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무서운 속도로 침묵이 찾아왔다.
너와 내가 어색한 정적을 맞이하고 있을 때쯤 소란스러운 소리가 귀에 들렸다.
아, 이제 아줌마 집에 돌아가시려나 보다.
잠시 동안이라도 너의 소리가 멈추기를 바란다면 내 욕심일까.
아줌마의 집으로 가자는 소리가 안 들리기를 원했다.
다시 수첩에 내일 보자는 말만 남기고 밖으로 나가는 너를 보면서 마음을 품었다.
나는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
내용이 잘 전달됐나요?
태형이 회상이 스토리에 중요한 역할을 해서 이렇게 중간에 넣을 수밖에 없었어요ㅠㅠ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