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를 생각해 잡은 약속 장소는 시내의 룸카페였다.
방 입구의 커튼을 치며 들어온 그가 나를 보자 환하게 웃었다.
어우, 답답해 죽는줄 알았네.
투덜거리며 마스크와 모자를 벗는 모습이 이제는 완벽한 연예인이구나 싶다.
"잘 마무리 하고 왔어?"
거의 한달 만에 보네.
며칠 전 일본과 대만으로 콘서트를 다녀오느냐 3개월 조금 안되게 한국 땅을 밟지 못했던 그다.
우연히 회사에서 잡힌 연수일정이 겹치게 되어
그가 초대해줘 갔던 일본의 콘서트에서 그는
평소 내가 알던 사람보다 더 빛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피곤할테니 쉬라는 나의 당부에도
고집을 부려 찾아온 그와
나는 밤은 지새웠다.
그 이후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을 담아 물어본 나에게 그는
"응, 잘 놀다 왔어."
라며 다시금 환하게 웃었다.
언젠가 그가 데뷔이후 정신없이 바쁜 스케줄을 마치고 새벽에 불쑥 찾아왔었다.
지쳤다고 했다. 너무 힘이 든다고. 어두운 길을 맨 앞에서 걷자니 너무 무섭다고.
혹여나 나만 따라 어두운 길을 걷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길을 걷게 할까 그게 가장 무섭다고 하던 그다.
나는 말했다. 그럼 그만 두라고. 무서움에 다가서지 말라고. 구태여 그것을 쫒지 말라고.
그냥 편하게 남들 같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렇게 말하는 나를 빤히 보던 그는 웃으며 내게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는 졸음과 피곤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에게 듣고 싶은건, 그런 말이 아니라."
조금 더 힘내라고. 잘 할 수 있다고. 누구나 그렇다고. 그런 말이었는데.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잠이 들었고 나는 그날 하루종일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했다.
그리고는 다시는 그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팬들이, 너무 좋았어."
무대가, 너무 좋았어.
그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빛나, 어둠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서.
"뭐야, 왜 그렇게 빤히 봐, 할 말 있어?"
그런 그를 나라는 존재가 감추기에는 벅찬 빛이라는 것을 알아서.
나는 그를 위해주기로 한다.
"..나.."
임신했어.
김준면
"..뭐."
"말 그대로야."
나 임신했어. 병원도 다녀왔고. 4주째래.
평소 내가 그의 외모 중 가장 좋아라 하던 반듯한 이마가 보기 싫게 구겨졌다.
"오징어, 너 장난이 너무 심하-."
원채 겁이 많은 나였다. 불이 무서워 요리조차 하지 못했고,
어둠이 무서워 잠드는 것을 어려워했다.
항상 나는 그럴 때면 그에게 말했다.
"나 어떡해 오빠."
나 너무 무서워.
그럼 그는 바람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애가 따로 없다고 놀리곤 했다.
그리곤 조곤 조곤 이야기를 했다.
배는 안고파? 뭐하고 있었어. 티비? 무슨 프로그램하는데?
그럼 나는 거기에 대답을 했고 그것은 마치 주문처럼 내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바란 것은 아니였다. 사근거리는 위로를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꾹 감고있는 눈 반대편에 비치는 그가 너무 날이 서서 그것이 무섭다 라고 생각했다.
"..임신..이라고."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 꾹 눌러왔던 두려움이 폭발하듯 흘러 넘쳤다.
감당이 되지 못할 정도로.
차마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냐 내뱉어 지지 못한 울음이 꾸역 꾸역 삼켜져
가슴을 먹먹하게 막아 숨을 쉬는 것조차 쉬이 되지 않았다.
어떡해, 어떡해.
분명 그에게 연락을 하기 전, 조목 조목 정리를 해두었던 말은
누군가 질 나쁜 장난을 쳐 놓은 것처럼 꼬인 실타레가 되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말도 안돼."
맞은 편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던 그이 입이 천천히 열리며 내뱉은 말은
허탈함을 감싸안은 웃음과 짧은 부정.
그것이 끝이였다.
그를 이해했다. 나와 이 아이를 책임 질 수 없는 그를, 나는 이해했고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려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비수가 되어 다가왔고 그에게 조금씩 원망이라는 감정이 싹 트고 있다.
"부모님은, 아셔?"
도저히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에 또 작은 한숨이 흘러 나왔다.
지우라고 하겠지, 지우라고 할거야.
나와 그의 첫 아이는 하늘을 보지 못한 채 제 빛을 보이지 못하고 꺼져버리겠지.
반복적으로 드는 생각에 역함이 올라와 헛구역질을 했고 내 손은 괜히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뭐야, 왜그래. 어디 안좋아? 병원갈래?"
허리를 깊게 숙이고 괴로워하는 나에게 그는 놀라 빠르게 다가오며 내 등을 어루만졌다.
"미안해, 미안해."
원망어린 말을 내뱉으려 입을 열었것만, 나오는 말은 괜한 사과였다.
나의 등을 쓸어내리던 그의 손이 멈췄다.
미안해, 앞길을 막아 미안해. 오점이 되어서 미안해.
스스로를 탓하는 말은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나쁜 말을 하지 말라는 신호인지
배에 조금씩 통증이 찾아왔다.
등을 쓸어내리던 그의 손이 유하게 등의 선을 타고 뚝 떨어졌다.
사라진 온기가 너무나 또렸해서 눈을 감으면 느껴지지 않을까, 눈을 꼭 감았다.
이게 맞는거야, 오빠가 나쁜게 아니야.
순간 내 등의 선을 타고 내려온 그의 손은 다시금 내 배로 옮겨져왔다.
".. 잘하는 짓이다. 태교는 못할 망정. 나쁜 말이나 하고."
배를 살살 어루만지는 그의 손에 놀라, 흐릿한 눈으로 그를 담아 내었다.
"..우리 애기 태명도 지어야 하는데, 뭐라고 할까."
멤버들한테 물어볼까. 아, 변백현은 빼고. 걘 이상하게 지어줄거 같아.
"..오빠."
끝이 심하게 떨리는 내 말에 그는 덤덤하게 이어나가던 그의 말을 멈춘뒤 숨을 몰아 쉬었다.
"..무리하지마. 나 괜찮아. 나 정말 괜찮으니까."
"내가 안괜찮아."
나와 오늘 처음으로 시선을 맞춘 그의 눈은 예상 외로 붉게 올라와있었다.
"단순한 사명감이 아니야."
"..."
"어차피 결혼은 너랑 하려고 했고,"
"..."
"그게 조금 당겨진 것 뿐이야."
"..."
"그냥 이대로 너와 나는 어느 평범한 연인들처럼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되는거야."
축복받으면 되는거야, 너랑 나, 그리고 아기 모두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