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꽃이야?"
답지 않게 손에 들린 안개꽃으로 가득한 다발을 보며 물었다.
아-. 하고 작게 탄식한 그는 제 손에 들린 꽃다발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눈을 예쁘게 반으로 접으며 환하게 웃고는,
오다가 만난 팬이 줬어, 예쁘지?
민망한지 괜히 꽃다발 아래 쪽에 자리한 리본을 정리하는 그를 보니
은은하던 꽃향기가 지독한 악취가 되어 다가왔다.
보기 좋게 올라간 그의 입꼬리는 사진 처럼 장면 장면 선명하게 눈에 담겼다.
그에게서 저 웃음을 빼앗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 웃음이 지워지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이기적인 지라 나는 욕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응, 예쁘네. 꼭 눈을 담아 놓은 느낌이다."
응. 예쁘다. 사랑을 받는 너는 빛이 나.
"그거, 나 줄 수 있어?"
그 빛을, 포기 할 수 있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그의 모습에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
내가 나중에 더 이쁜 거 사줄게. 미안, 이건 못 주겠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미안함을 담은 웃음을 지은 그가 꽃다발을 슬쩍 제 뒤로 밀었다.
나를 위한 배려인지 견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너는 나와의 웃음보다 팬들과의 웃음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근데 어쩐일이야, 니가 먼저 보자고 연락을 다하고."
평소에는 맨날 싫다고 하더만
투덜거리는 그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나.."
임신했어.
변백현
앞에 놓인 에이드의 얼음을 무심하게 저으며 바깥을 구경하던 그가
눈에 띄게 굳었다.
그 모습을 봄과 동시에 빠른 갈증이 찾아왔지만
손바닥을 축축히 적신 땀에 혹여나 컵을 놓칠까 목을 축일 수도 없었다.
"..뭐라고?"
무슨 소리야, 임신이라니.
말을 끝내고 내뱉는 숨에서 조차 떨림이 느껴졌다.
많이 무섭구나. 얼른 달래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백현아, 걱정할 필요 없-."
"무슨 소리냐고 묻잖아!"
쿵 하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자리잡던 음료들이 크게 움직였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두 팔을 교차해 배를 감싸안았다.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몸을 웅크리는 나에게 향했던 시선이 거둬가는게 느껴졌다.
..미안.
짧은 사과와 함께.
아니야.
무의미한 단어만이 오갔다.
매일을 매번을 서로에게 의미가 가득한 말만을 전했었다.
서로에게 기쁨과 위로와 응원이 되어줄 말만을 골라 하던 우리였는데
"..병원은."
".. 혼자 다녀왔어."
"... 그걸 왜 또 혼자 다녀와! 너는 나를 어디까지 추락 시킬래!"
"...'
무덤덤하게 상담을 하던 나에게 선생님 또한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냥 염증, 혹 이런거 제거하는 수술이라고 생각하래."
그냥 염증이나 혹 이런거 제거하는 수술이라 생각하세요.
"아직 4주째라서 어차피 조금 큰 세포에 불과하대."
아직 4주니까, 뭐. 그건 사람이라기 보단 큰 세포에요.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 백현아."
하지만 괜찮지는 않겠죠.
그의 빛은 지우고 싶지 않은 빛이였다.
대충 바지에 손바닥을 슥슥 문질러 땀을 닦아 내고는 앞에 놓인 물을 들었다.
조금씩 넘어가며 몸을 식혀주는 물이 너무나 달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더움을 넘어 뜨거운 가슴 한켠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아는 사람은."
갈라진 목소리로 물어본 그가 나와 시선을 맞췄다.
"아, 아무도 없어. 너 곧 컴백하는데 괜히 찌라시라도 생기면 안 좋잖아."
내 말이 끝나자 그는 마른 세수를 이어갔다.
"그게 아니야."
어?
"그걸 걱정하는게 아니라."
지금 당장 너를 옆에서 도와주고 돌봐줄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는거야.
너 홀몸 아니잖아. 왜 또 이렇게 춥게 입고 나왔어.
옆자리로 다가와 앉은 그가 제 윗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주었다.
"..왜 울어."
뚝뚝 떨어지던 눈물이 옷 메무새를 다듬어 주던 그의 손에 닿았다.
그리고 곧 그 손은 그대로 올라와 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따듯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뜨거웠던 가슴한켠이 잔잔하게 식어갔다.
"내가 미안해."
"백현아."
"너무 좋은 일인데."
"백현아."
"화를 내서, 걱정부터 하게 해서 미안해."
"..."
믿음을 주지 못해 미안해.
끅끅 소리를 내며 어깨를 들썩이는 나를 바라보던 그는 시선을 내려
아직 밋밋한 나의 배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가야."
아빠야. 아빠가 우리 아가한테 참 못된 아빠가 될 뻔했어.
하지만 아직 어리고 미숙한 아빠의 작은 실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줘.
우리 아가가 아빠를 예쁜 두 눈에 담기 전까지 아빠가 더 잘할테니까, 응?
"울지마."
"..."
" 니가 그랬잖아."
"..."
"평번한 결혼식은 싫다고."
"..."
"소원 이뤘네."
신부가 두명이거나, 신랑이 두명인 결혼식을 할지, 누가 알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