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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비인형이다. 

보기 좋고 가지고 놀기 좋지만 금방 싫증 나는. 

아무 말도 감정도 없는 바비인형. 

 

이 관계 속에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통보만이 있을 뿐. 

먹는 것, 가는 곳, 심지어 만나는 날까지도. 

그래도 주말은 쉬게 해주니 꿀 아니냐던데. 

그딴 게 꿀이면 평생 단 맛 모르고 살아도 될 거 같은데 난. 

 

 

 

 

 

 

성진에게 하루는 과시 용이다. 

거기까지는 영현도 눈치챘다. 

 

옆에 두고 자랑하고 예뻐해 주니 남들은 사랑꾼이니 뭐니 

모르는 소리들 하지만, 

영현은 하루의 표정만을 살필 뿐이었다. 

 

감정 없는 눈동자,  

아무 말도 없이 30분째 끄덕이기만 하는 고개. 

옆에서 지켜보기 답답했던 영현이 데리고 나갈까 했지만 

영현의 속내를 눈치챈 하루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왜 저럴까 쟤는. 

둘은 무슨 관계인 걸까. 

하루가 상처받는 관계인 것만은 확실히 알겠는데. 

대놓고 묻기도 그렇고, 속만 태우는 영현이었다. 

 

 

 

 

 

 

 

 

“잘 들어가.” 

“응. 너도. 도착하면 연락할게.” 

“무소식이 희소식. 알잖아.” 

“아, 그렇지. 그래. 안녕.” 

“응.” 

언제 만나자고 연락받는 것 아니고서야  

먼저 전화를 걸어본 일도, 받아본 일도 없다. 

 

어느 날은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와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받았더니 건너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번호 바꿨어. 이걸로 저장해.” 

“응. 놀랐어.” 

“응. 끊을게.” 

 

이렇듯 자기 말만 늘어놓을 줄 아는 성진이지만  

가끔 놀랄 만큼 표현할 때도 있다. 

 

“피곤해 보여.” 

“아무것도 아냐. 미안.” 

“스트레스받는 일 있어?” 

“요즘 좀 그래.” 

 

평소엔 궁금해하지도 않던 컨디션을 체크하길래 

이제 얘기 좀 들어주나 했더니  

갑자기 차를 세우는 성진이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익숙한 로고가 박힌 아이스크림 포장을 들고  

차에 탄 성진은 대뜸 하루에게 건넸다. 

 

“이거.” 

“나?” 

“응. 스트레스받는 다며.” 

“고마워. 잘 먹을게.” 

 

스트레스의 근본적 원인이 스트레스 해소하라고  

아이스크림 주는 아이러니. 

그리고 그 아이스크림 통을 꽉 채운 게  

내가 입도 안 대는 초콜릿 맛인 것에 대한 실망. 

 

나는 이래서 너를 알다가도 모르겠어. 성진아. 

그래서 그런가 봐.  

요즘 자꾸 ‘네가 떠났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냉장고 정리를 마친 영현은 하루의 눈치를 살폈다. 

이 아이스크림은 어쩌지. 

 

“영현아, 그거 버려줄 수 있어?” 

“어?” 

 

귀신같은 이하루 

 

“그거. 아이스크림. 네가 버려주라.” 

“그래도 되겠어?” 

“그럼 어쩌겠어. 먹을 사람도 없는데.” 

“그래. 버릴게.” 

 

상황이야 어찌 됐든 선물은 선물이니  

마음대로 어쩌자고 하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보고 있자니  

저걸 언제까지 둘 건가 답답해오던 찰나에 

하루의 부탁이 반가운 영현이었다. 

 

“저녁 먹고 갈래?” 

“주면 먹고.” 

“먹고 가. 청소도 고맙고.” 

“혹시 나 머슴이냐? 청소해줬으니까 밥 주는.” 

“뭐래.” 

 

 

 

-남들은 모르는 하루와 성진이의 관계와  

그걸 지켜보는 영현이. 

 

남들은 모르고 하루만 아는 성진이의 표현들. 

그리고 그로 인한 하루의 마음까지.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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