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더니 부승관이 흠칫한다. 그러더니 이내 씩 웃으며 한다는 말이,
"내 친구는 니 친구지!"
아니 우리가 언제 봤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한솔이 착해. 좀 애가 거칠긴 한데, 만약 너한테 욕하면 바로 얘기해! 조잘조잘 떠드는 부승관을 무시하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여주야 어디가!"
"집."
"너 어디 사는데?"
".....미래아파트."
"헐, 너 거기 살아?! 우리집 바로 옆인데?"
뭐야, 설마 얘.....? 뭔가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고개까지 끄덕이는 부승관.
"나 청솔아파트 살아!"
.....역시나.
"우리 맨날 같이 가면 되겠다 그치."
".......싫어."
"왜?!"
"애들이 오해하잖아."
부승관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다시 웃었다. 아 여주야, 나 오늘 한솔이랑 같이 가기로 한 거 깜박했다. 먼저 가! 그러더니 어디론가 달려갔다. 누가 봐도 내가 무안하게 했다는 생각에 좀 미안해졌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뒷모습을 멍하게 보다가 겨우 신발을 챙겼다. 그래도, 인기 많은 애랑 같이 다닐 마음은 없었다.
진짜 선거날이 됐다. 나는 이 귀찮은 임시반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부승관은 나에게 더 말을 걸었고 나는 대충 대답해줬다. 결국 부승관은 최한솔을 나에게 데려와 친해지라는 말 한마디를 던진 채 도망을 갔다. 그나마 최한솔은 말이 통하는 애였다. 입이 좀 험하긴 했어도. 번호를 서로 교환했고 말을 하다 보니 처음 봤던 때처럼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외국인, 이라는 수식어가 더이상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부승관은 자기보다 먼저 내 번호를 땄다며 최한솔을 구박했고 나는 결국 부승관에게 내 번호를 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여주가 지금까지 너무 잘한 것 같은데 그냥 쭉- 반장 하면 안돼요?"
그리고 나는 엄청나게 후회하고 있다. 우리반 애들은 참 반장 따위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하고싶은 사람은 손 들어. 담임의 말에 정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때마침 부승관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쳤다. 미친. 나는 잘 쓰지도 않는 욕을 속으로 뱉었다.
"그럼 여주가 계속 하는 걸로 할까?"
"네-"
애들이 일제히 대답한다. 부승관이 돌아서서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정말 욕을 하고 싶다. 그냥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갑자기 부승관의 목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선생님 저 부반장 하고 싶어요.
"그래? 다른 후보자 없어?"
"네-"
쟤 왜저래.....? 황당한 표정으로 부승관을 쳐다봤다. 애들은 환호를 하고 난리가 아니었다. 선생님 공약 들어요 공약! 부승관이 날 보며 눈을 찡긋 하더니 교탁으로 나간다. 저게 진짜 미친 거 아냐?
"음, 일단 저를 부반장을 뽑아주셔서 감사하구요. 제 공약은, 행복한 반을 만드는 것입니다!"
흔하고 짧은 공약이었지만 애들은 뭐가 그리 웃긴지 책상을 치며 웃어댔다. 그래. 말 한마디로 모두를 웃기는 애였지. 웃지 못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부승관이 자리에 앉아 나를 다시 돌아본다. 뭐라고 하는데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확실히 입모양이 보였다. 나 잘했어?
* * *
"야 부승관이 부반장 한다고 했다며?"
"....응."
최한솔이 먹고 있던 막대사탕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지더니 갑자기 미친듯이 웃기 시작한다. 내가 왜 그러냔 표정으로 쳐다보자, 사레가 걸린 것처럼 기침까지 막 해댔다. 아니 그새낀 그런거 절대 안 하거든. 귀찮다고.
"그럼 왜 그런 짓을 한거냐고. 나까지 귀찮게 만들고."
"확실히 걔가 너한테 관심이 좀 있는 것 같지?"
"아니."
"아니기는."
"그냥 내가 불쌍해보여서 그랬을 수도. 나 거의 왕따잖아."
최한솔이 다시 막 웃어댔다. 잘 아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하게 최한솔은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정말 소문날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 말이다. 부승관과도 나름 친해지긴 했다. 첫 만남때의 충격을 잊을 수는 없지만. 사실 무안하게 만든 적이 몇 번 있어서 그게 미안하기도 했다. 성격 자체는 정말 좋았다. 하교길에 내 가방을 잡아당기며 장난을 치는 것을 빼곤 딱히 뭐 짜증나게 하는 것도 없다. 어쩌다 보니 셋이 점점 친해지고 있었다. 부승관의 말처럼.
"아 저기 부반장님 오신다."
".........."
야 니네끼리 무슨 얘기 하는데?! 축구를 하다 왔는지 체육복 차림이다. 아 땀냄새. 오지마. 최한솔이 부승관을 발로 밀어낸다. 둘이 투닥거리는 건 하루에 한 오백 번 정도다. 그냥 둘을 한심하게 보고 있다가 점심시간이 끝나가길래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먼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