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바람처럼 스쳐갔다, 우리의 인연이.
슬하 1남3녀로 오씨 가문을 이어갈 유일한 아들이다. 거의 독남같이 애지중지 하며 키웠던 자식이니 만큼 훗날 그의 집안을 이루며 높은 벼슬이 될 것임을 기대했지만 어느날 대뜸 호위무사가 되겠다며 부모의 곁을 떠나 어디선가 홀로 방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혼례를 치를 나이는 훨씬 지났고 어느 여인 한 명 만난다는 소문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뜻을 펼쳐가며 살아가는 아들의 모습이 부모는 영 마땅치가 않았다. 저러다 아들이 자신의 대를 잇지 못할까봐 아버지는 한 없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의 위에 있는 3명의 누나들 중 2명은 첩의 딸로 세훈과 배다른 남매였고 이들은 이유도 없이 세훈을 극도로 증오했다.
첫째 누나의 남편이 하루는 처남 세훈의 뒤를 몰래 밟았던 적이 있었다.
생전 여자와는 거리를 두었던 세훈이 발을 옮긴 곳이 기생촌이였다니, 매형의 눈이 얕게나마 반짝였다.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지겠군.
세훈이 기생촌의 집 안으로 완전히 들어간 것을 보고서야 그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이 이야기를 부인이자 세훈의 배다른 첫째 누나에게 전해줄 심산이였다.
"내 오늘 낮에 아주 재미있는 광경을 하나 보고왔는데, 부인은 궁금하지 않습니까?"
어찌저찌해서 찬열의 집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화난것 같던데 갑자기 집에 들어오라니..설마 때리려고 부른건 아니겠지?
'ㅅ' ;; (불안)
"앉아. 뭐 마실래?"
"어?그냥 물 한잔만.."
거실 소파에서 어색하게 앉아 그저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발만 동동 구르며.
그때 부엌에서 나온 찬열이 한 손에는 물이 담긴 컵을 들고 내가 있는 옆으로 와서 자신도 소파에 앉았다.
"마셔."
"고마워."
홀짝홀짝, 물 마시는 소리만이 집안의 정적을 채우고..우리 둘은 말 한마디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어색해 미치도록.
"그간..뭘 하고 지냈길래 연락 한 통이 없었어?"
"어?"
"꼬박꼬박 전화하고 문자해주던 애가 갑자기 잠수를 타버리니까 무슨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
아,그랬었나. 한 공간에서만 시간을 보낸 채 이곳에는 무지하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 그럴만도 하다.
"ㅂ,바쁜일이 좀 많았어! 하도 정신이 없어서 연락할 시간도 없었..네!"
"그래?"
"..응"
"근데 그 날은...왜 먼저 갔던거야?"
"어?"
"..되도록이면 말 안하려고 했는데, 괜히 속좁은 애 같이 보일까봐.."
그 공연날? 뭐라고 둘러댈까. 갑자기 몸이 아파서? 급한 사정이 생겨서? 일이 너무 복잡하게만 굴러가는데..아 망했다.
"너 기억나지? 우리 처음 만나게 된 날"
"..콘서트장?"
"맞아, 그때가 언제야..벌써 10년이 지났네"
드디어 내가 아는 이야기가 나온다. 2014년 내 빠순이 인생 처음으로 엑소 콘서트를 갔던날. 신기하다. 찬열이도 그 때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 사람 많은데서 내가 보이긴 했어? 그때 나 완전.."
새우젓이였는데.
"당연하지, 그 때 네가 제일 눈에 띄었는데"
미안하지만 이건 칭찬이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사실 그 날 내가 독보적으로 수니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던 건 맞지. 애들이랑 어떻게든 아이컨택을 해보겠다고 위아래를 형광색 옷으로 장착하고 갔는데 눈에 안 띌리가 없지. 그 날 어떤 학생들이 내 사진을 몰래 찍어가지고 인터넷에 일파만파 퍼진것만 생각해도..어휴..아직도 그 게시글 제목이 생생하게 생각나는 구나.
[흔한_엑소_빠순이가_콘서트에서_입는_옷.jpg]
ㅅㅂ. 움짤로 안돌아 다닌게 어디야.
"하하. 그 이야기는 별로 좋은 추억같진 않은데..접어두자?^^"
"그리고 나서 방송국에서 두번째로 너 만났을 때, 그때가 언제더라..내가 스물다섯 이였을때니까."
"2016년?"
"맞아, 그때였어"
2016년이면 현재 내가 살고있는 2015년보다 1년 더 앞선 이야기였다. 이건 사실 나도 모르고 있는거다. 내가 내년에 방송국을 가서 찬열이를 만나게 되는구나.
"어땠는데?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안돼? 내가 기억이 잘 안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찬열이에게 그 날의 이야기를 물었다.
"유일하게 나 응원하러 와줬던 사람."
"어?"
"그때 너밖에 없었어,내 팬."
어딜간건지 오늘은 그가 보이질 않았다.
또 일하기 싫어서 농땡이라도 피우러 갔겠죠, 하며 그의 기둥서방은 전해왔다. 아무리 돈 때문에 혼을 맺은 사이라 해도 당최 넌 여자를 신경쓰질 않는구나.
세훈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기생촌을 나왔다. 어딜 그리 싸돌아 다니는지 그 얼굴을 보려해도, 아니 보고싶은데도 볼 수 없게 만든다. 참 사람을 애타게 하는 재주가 있어.
저 멀리서 세훈을 향해 걸어오는 익숙한 자태가 보였다. 그의 매형, 백현이였다. 혹여나 자신이 기생촌에서 나온것을 보기라도 한 건 아닌지 세훈은 내심 불안했다.
"처남이 여긴 무슨일로?"
그의 직감은 맞았다. 마치 세훈이 이 기생촌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백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것이 누나의 귀에 흘러 들어가면 자신의 부모님이 아는 것 쯤이야 시간문제였다. 항상 행실을 바르게 하고 이런곳에는 발도 디디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얹도록 충고하셨던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고 순간 그 후를 감당해야 할 생각에 아찔했다.
"..잠시 사람을 찾기위해 들른 것 뿐입니다"
"사람?"
백현은 꽤나 흥미롭다는 얼굴로 세훈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는 오른쪽으로 살짝 올라갔고 세훈은 고개를 숙인탓에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니.."
"사람을 찾는다는데 어찌 가볍게 넘어갈 수가 있겠나, 나한테 말해봐. 도와줄테니."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이 생겨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세훈은 뒤를돌아 재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고있는데 저 뒤에서 백현이 세훈을 향해 외쳤다.
"여자인가?"
"..."
"이 기생촌에서 여자라도 찾고있는거야?"
"..."
"안타깝지만 이건 내 혼자 힘으로 도와줄수가 없겠는걸."
백현은 승자의 웃음을 지었다. 그 뒤에 이어진 '기다려, 내가 그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도록 할게.' 라는 말은 철저히 생략한 채.
★ 암호닉 ★
날씨맑음 / 열릭 / 항상너를응원해
(현실에서 본 백현이와 세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