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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이 터벅터벅 빠르게 나를 향해 걸어온다. 그리고는 남자에게 안겨있는 나를 잡아당겨 자신 쪽으로 당긴다.
"아 그러니까..."
어버버... 이게 무슨 상황이지. 침을 꼴깍 삼켰다. 나는 눈을 굴리며 둘을 번갈아 봤다.
전정국 한 번, 나를 안은 남자분 한 번.
"전우유. 뭐하냐고 여기서."
분명 나를 잡은 채 나를 향해 하는 말인데 전정국의 눈은 계속 그 남자를 향해 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려 가는 것 같아 그 남자 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아...오해를 하신 것 같... 어!!! 잠깐, 야! 전정국!"
말을 다 하지도 못 했는데 전정국이 내 손목을 잡고 휙 뒤돌아 끌고 간다.
잠깐, 말은 해야 할 거 아냐!
어느 새 나는 정국이네 학교 안에 들어와 있다. 그나저나 정국이가 잡고 있는 내 손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정국아.. 나 아파."
그때서야 정국이는 멈춰 서서 내 손목을 보더니 손을 놓는다. 그리고는 운동장 뒷편 벤치에 앉는다. 나도 그 옆에 슬머시 앉았다.
정국이는 그런 나를 힐끔 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뭐지, 얘 지금 화난건가? 평소에 자주 나에게 화를 내는 정국이였지만 지금은 장난이 가해진 화가 아니라 정말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체육선생님한테 또 혼난건가. 아니면 아까 내가 뭘 잘못한걸까.
고개를 돌려 정국이의 눈치를 보며 체육복을 건냈다.
"이거..체육복."
아무 반응이 없다. 무안해진 나는 운동장을 한바퀴 뱅 둘러보면서 오버스럽게 말을 했다.
"우와... 학교,학교,학교다~. 나 기억만 안 잃었으면 이 학교 다니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음... 농구도 하고...이 키로는 무리려나? 음..또 급식도 먹어보고 싶고...또.."
"그 남자 누구야."
내 말을 끊고 전정국이 물었다.
"아~ 아무도 아니야. 나랑 다른 사람이랑 착각했나봐."
아까 그 일 때문에 그런건가...? 나는 정말 아무도 아니라고 두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전정국이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한다.
"아오! 너 뭐냐 진짜. 밖에 잘 나오지도 않는 얘가 모르는 남자랑 그렇게 안고 있으면... 뭐야... 너 우냐? "
어느 새 내가 울고 있었나 보다. 나한테 화내는 정국이가 무서웠던 건지 서운했던 건지 아니면 아까 그 상황에 놀랐던 건지, 학교에 들어와서 감정에 복받쳐쳤던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정국이가 우냐고 물으니까 눈물이 더 났다.
"흑ㅎ그흡흡으아ㅓ엉어 정국아 내가 흑흡어엉 잘,,잘못흡흑했어. 흡흑미안해.끅흡흐ㅓ. 화내지마. 나..나도! 아까 놀랐단 흡흑흡, 말,마야.흑흑어어어엉헝엉허엏어ㅠㅠ"
이런 내 모습에 정국이가 손으로 계속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눈물을 닦아주는 손이 다소 서툴어서 눈이 아프다.
"아 왜 또 네가 미안한데! 아 울지마! 너한테 화낸거 아냐. 울지말라고!.."
"여~전정꾸기!"
정국이는 안절부절하며 계속 내 눈물을 닦아주고 나는 울음을 그쳐가는데 누군가 우린 불렀다. 앞을 봤을 때는 귀여운 눈웃음을 가진 남자가 보였다. 정국이 친구인가? 정국이를 슬쩍 보니 귀찮은 듯 인상을 찌푸린다.
"하도 안들어오길래 뭐하나 했더니 이렇게 이쁜 여자를 울리고 있고말야~
저... 괜찮으세요? 정국이 같은 놈 말고 저는 어떠신지..."
정국이에게 말을 거는가 싶더니 나에게 이름을 묻는다. 그 아이의 특유의 능글거림때문인지 한순간에 공기가 밝아진 기분이였다.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었다.
"와, 웃으니까 더 이쁘다. 이름이 뭐에요?"
"박지민, 꺼져."
정국이가 픽 웃으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아, 정국이 친구인가 보다. 나는 작게 인사했다.
"아, 안녕. 나는 정국이 누나 전우유야..."
그러자 지민이 뭘 생각하는가 싶더니 엄청 놀래서 나를 잡고는 흔들며 묻는다. 그리고는 엄청 웃는다.
"헐, 대박. 진짜 이름이 우유에요? 전우유? 정국이 누나라고요? 헐 대박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정국 누나라니ㅋㅋㅋㅋ"
여전히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을 거는 지민이다.
"누나, 그거 알아요? 우리 반 애들 아무도 전정국 누나 있는지 몰라요. 저도 방금 알았네요.ㅋㅋㅋㅋ 그런데 맨날 우리집 우유, 우유, 그러길래 우린 무슨 강아지 키우는 줄 알았어요.ㅋㅋㅋㅋ 아 배야. 근데 누나였다니."
나는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전정국을 노려봤다. 학교에서도 누나라고 안 하니까 이런 오해가 생기지!
갑자기 지민이가 얼굴을 내 앞으로 쑥 들이댔다.
힉, 깜짝이야
"그나저나 누나 피부 진짜 하얗네요. 진짜 우유같아요.ㅋㅋㅋㅋ 우유같은 우유누나. 얼굴도 진짜 강아지 같다. 음... 백구같아 백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하하 정말 웃기다 지민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개그를 하는 지민이다. 거의 밖을 안 나와서 그런지 정말 내 피부는 내가 봐도 하얗긴 하다. 그나저나 지민이가 계속 내 얼굴을 보면 생글생글 웃으니 나는 눈을 어디다 둬야 겠는지 몰라 계속 눈을 굴렸다. 그런 내가 재밌는지 계속 놀리는 지민이다. 이 상황은 정국이가 지민이 귀를 잡아 당겨 나에게서 떨어뜨려 놓고야 끝났다.
"그나저나 전정꾸이~ 이런 귀여운 누나를 두고 강아지인 척 하다니!! 강아지 같이 생기기는 했지만..."
내가 귀엽다니ㅎㅎ 나도 여자인지라 남자애가 칭찬해주니 기분이 좋아 헤헤 웃었다.
"개같이 생겼다는데 좋냐? 에휴..."
전정국이 내 이마를 밀어내며 한심하단 듯이 날 봤다. 그리곤 정말 진지한 목소리로 박지민에게 말했다.
"누나 아냐."
전정국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평소에도 누나 대하듯 하지 않는 정국이지만 이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17살 때, 내가 기억을 잃고 완전 정국이를 남같이 인식했을 때 같았다. 그러나 이내 전정국의 비웃음에 얼굴만 빨개졌다.
"강아지는 무슨 우리 집 돼지야."
"야!!! 우씨 진짜!"
나는 전정국을 때리려고 주먹을 휘둘렀지만 전정국이 내 머리를 잡는 바람에 팔만 공중에서 빙빙 돌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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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정국이에게 무사히 체육복을 주고 학교를 나오는 길이다.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박지민]을 뚫어져라 봤다.
'누나, 제 이름은 박지민이에요. 이제 저 알죠? 친하게 지내요'
내 폰을 가져가 자기 번호를 누른 뒤, 눈웃음을 지으며 말하던 박지민의 모습이 생각났다. 사실 굉장히 기쁘다. 할아버지와 전정국밖에 없던 전화번호부에 낯선 이름이 생겼다. 친구가 생긴 기분이였다.
학교 앞 카페를 지나다 무의식적으로 붙어져 있는 공지를 봤다.
'-알바구함-'
알바? 생각해보니까 나도 이제 성인이고 기억을 잃고나서 나름 적응기간도 거쳤는데 집 말고 밖에서 생활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꾹꾹 간판에 걸린 전화번호를 누르며 집으로 향했다.
전화를 하기 전엔 많이 떨렸는데 전화를 하고 나니 생각보다 너무 쉽게 알바를 구한 것 같았다. 이름을 묻고 나이를 묻는다. 바로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알바경험이 없어서 걱정했지만 처음에 다 가르쳐 주신다는 말에 내일부터 가겠다고 했다.
저녁이 되자 전정국이 집으로 돌아왔다. 티비를 보고 있는 내게 무언가를 휙 던진다. 어떨결에 받고 보니 바나나 우유다. 그런데 처음 보는 거다. 어? 내가 안 먹어 본 우유가 있을리가! 재빨리 빨대를 꽂아 마셔봤다.
"전정국..이거..이거.."
바나나우유맛이 원래 이런거였나?
"맛있냐? 우리 학교 매점에서만 파는거래. 이 오빠한테 잘해라."
방탄고 매점에서만 파는 거란다. 어쩐지 처음보는 거였다. 정말 맛있었다. 나는 빨대를 물고 있는 상태로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며 2층으로 올라가는 전정국이다.
암 이런 우유를 사주신다면 잘하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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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에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전정국이 먼저 학교에 가고 조금 뒤 내가 나갈 준비를 한 뒤 카페로 향했다. 정국이에게는 혼날까봐 알바는 당분간 비밀로 하기로 했다.
'띠링'
문열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알바로 온..."
말문이 막혔다. 그 남자다. 어제 나를 김탄소라고 불렀던...
그 남자도 놀란 듯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한다.
"형이 알바 새로 온다 했는데... 너구나. 전우유라고... 21살이라던데 맞지?
나도 21살이니까 편하게 대해. 이름은 김태형. 그리고..."
목소리가 좋다. 다정하다. 어디서 좋은 향기가 나는 듯 했다.
"어제는 미안했어."
[안녕하세요^^ 도토리탄입니다. 능글맞은 지민이 어떻게 잘 보셨나요? ㅎㅎㅎ 재밌게 봐주세요~ 저는 비지엠 고르는게 왜이리 힘들까요ㅠㅠ 감정이입 잘 안되시면 끄고 봐주세요. 궁금한건 언제든지 물어봐 주세요.
+아무래도 비지엠이 글 읽는데 방해될 듯 해서 바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