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다시 꿨다. 또 미래라는 아이가 나왔다. 배경도 놀이터였다. 그런데 아이는 저번처럼 해맑게 웃고 있지 않았다. 아주아주 슬픈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아이에게 손을 건네면 고개를 흔들면서 뒷걸음질친다. 미래야. 내가 이름을 부를수록,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울지 마, 미래야. 울지 마.
"김여주 잔다."
뭐? 아니야! 누가 내 어깨를 툭툭 치길래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세현이가 웃긴다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침이나 닦고 얘기해.
"뭐야, 이세현 웬일이야."
"요즘 내가 깜짝 놀란 소식을 들어서 말이야."
"뭔데?"
"너 요즘 최한솔 부승관이랑 같이 다닌다며?!"
.....아 뭐야 그 얘기였어? 세현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무룩해진다. 넌 어떻게 그런얘기를 나한테 안 해주냐. 나는 당황해 손을 휘휘 저었다. 이걸 또 어떻게 설명해야 되지.
"그게 아니라, 부승관이 나한테 장난친 것 때문에 어쩌다 그렇게 된거야. 그리고 딱히 친하지도 않아."
"요즘 부승관이랑 같이 하교한단 소문도 들었거든요. 너네 사귀냐?"
"미쳤냐?! 그것도 걔가 집 방향 같다고 가끔 붙어서 그런거니까 쓸데없는 오해하지마. 최한솔도 그냥 걔 친구라서 그래. 나 친구 별로 없는거 알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흠. 최한솔 철벽치기로 유명한데. 걔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너 엄청 주시하고 있다."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라고 해."
세현이의 말을 듣고 나니 뭔가 불안했다. 나는 그냥 부승관이 생각보다 나쁜 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것 뿐이다. 조용히 학교생활을 하는게 내 목표였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잠이 확 달아나는 것 같았다. 야 너 틴트 있냐? 이세현이 충분히 빨간 제 입술을 만지작대며 묻는다. ......아니 없는데. 야 기지배야, 하나 좀 사라. 내가 사줘? 아 집에 있어!
꿈, 부승관. 여자애들, 최한솔, 학교. 머리가 복잡했다.
화장실에 가려고 복도를 걷는데 담임을 만났다. 담임은 나를 보더니 어! 하면서 걸어왔다. 나는 슬금슬금 피하고 싶었지만 눈이 마주쳤다. 이런.
"여주야. 오늘 이 유인물 복사해서 반 애들 나눠줘."
"네?......네."
"근데 이거 혼자 하려면 힘들겠지? 몇 장 복사해야 되냐."
"아.....그냥 알아서 해볼게요."
"부반장이랑 같이 해. 그리고 나중에 학습지 받으러 교무실 내려오고."
"........네."
이래서 반장이 싫다는 거다. 공개수업 동의서 따위를 일일히 복사해서 나눠주라고? 그것도 부승관이랑 같이? 나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종이를 내려다봤다. 원래 이런 건 학교에서 복사해 주는 거 아닌가.
털레털레 걸어가는데 부승관이 매점쪽에 서 있는게 보였다. 또 무슨 말을 하는지 주위 애들이 박장대소하고 있다. 나는 이방인처럼 그 무리에 끼어들어 부승관에게 종이를 건넸다. 어 여주야 이거 뭐야?
"이거 담임이 복사해서 반 애들 나눠주래."
"나한테 하라고 하셨어?"
".....아니 같이."
부승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야 이 형 담임 심부름 해야 돼서 먼저 간다. 무리의 남자애들이 짓궃은 말을 하며 부승관의 등을 팡팡 쳤다. 야 부승관 연애하신답니다~ 승관이 데이트하러 가냐? 나는 괜히 얼굴이 확 붉어져 먼저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자 부승관이 달려와서 갑자기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여주 나랑 데이트하러 갈까? 뒤에서 환호성이 커진다. 나는 반사적으로 부승관의 팔을 휙 쳐냈다.
"아, 하지마."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혼자 교무실쪽으로 달려갔다. 사람 놀리는 재미에 맛 들린 건가. 짜증나.
"여주야 화났어?"
쫄레쫄레 따라오는 놈의 말을 모조리 무시하고 혼자 교무실로 들어갔다. 아, 종이 쟤한테 있지. 결국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자 부승관이 종이를 흔들면서 서 있다. 내놔, 나 혼자 하게.
"싫은데? 김여주 화 풀릴 때까지 안 줄건데?"
"그럼 너 혼자 복사해서 다 가져와."
"아, 알았어. 장난이야."
교무실을 나가려고 하자 웃으면서 나에게 종이를 냉큼 건넨다. 나는 결국 종이를 들고 복사기 앞에 섰다. 근데 이거.....어떻게 하는 거야.
"여주야."
".........."
"너 설마 복사하는 방법 몰라?"
내가 가만히 서 있으니 푸하하!!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쪽팔려서 괜히 종이만 만지작거렸다. 옆에 앉아있는 선생님들이 부승관에게 눈초리를 줬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부승관은 웃음을 지우지도 않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하.....복사기를 다뤄 봤어야 알지. 짜증이 나서 부승관을 휙 째려보니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웃는다. 야 그만 웃어라. 조용히 쏘아붙이자 킥킥 웃으면서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김여주 귀여워 죽겠네?"
그러면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복사기 아래를 휙 연다. 용지는 많이 있네.
"이게 잘 적재돼야 예쁘게 복사되거든? 이렇게."
".........."
"됐다. 여주야 종이 줘봐."
나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부승관에게 종이를 건넸다. 얜 이런 거 어떻게 아는 거지. 혼자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괜히 입이 다물어졌다.
"이걸 여기다 이렇게 놓고."
".........."
봐봐. 이거 누르면 양면인쇄가 되거든? 눌러봐."
내 손목을 끌어다가 화면에 갖다댄다. 나는 약간 흠칫했지만 부승관의 말대로 버튼을 눌렀다. 양면 인쇄. 알겠지?
"그리고 우리반 40명이니까 매수 40으로."
".........."
"마지막으로 이거 누르면."
위잉위잉. 기계에서 소리가 난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있던 종이와 똑같은 내용의 종이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럼 이렇게 나와. 부승관이 한 장을 빼서 내 얼굴에 갖다댔다. 뭐, 뭐야 하지마. 갓 뽑아서 따끈따끈합니다~ 종이가 구겨질까봐 나는 아까처럼 부승관의 팔을 밀치지 못했다.
"이거 내가 다 들테니까 반에 먼저 올라가 있어."
"어?.....너 혼자 다 들게?"
"이거 뭐 얼마나 한다고. 빨리가 종 친다."
부승관이 내 등을 교무실 밖으로 떠밀었다. 아니 담임이 같이 하라고 했는데....조용히 중얼중얼거리자 부승관이 씩 웃었다. 방금 같이 했잖아.
* * *
복사하는 남자 승관이^3^♡
+ 여러분!!! 항상 이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심지어 초록글까지 올라갔더라구요ㅠㅠㅠㅠ! 진짜 깜짝 놀랐어요ㅠㅠㅠㅠ 글이 산으로 흘러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힘드네요ㅠㅠ 신알신 해주신 분들, 댓글 항상 달아주시는 분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모두 제 사랑 드세요...! 거부는 거부한다....!
여주랑 승관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