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미로
;[부사]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
'너를 향한 내 마음이, 내 가슴에 차고도 넘치도록 많아서. 나는 그만큼 너를 사랑하고 있어.'
[김태형 빙의글]안다미로 12
결국 만나기로 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카톡을 했는지조차 기억도 나지 않았다. 세자와 닮은 사람을 본 것에서 온 설렘인지, 그냥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12시부터 3시까지 공강이라고 하자 선배가 자신이랑 시간표가 같냐며 신기해했다. 시간도 널널하니 천천히 맛있는 걸 먹고 오자기에 알겠다고 답했다.
선배랑 카톡은 꽤 일찍 끊겼는데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잠을 설쳤다. 눈을 떴을때는 이미 여덟시였다. 망할, 오늘 아홉시 수업인데. 그것도 전공. 헐레벌떡 일어나 챙기기 시작했다. 일찍 일어나서 좀 꾸며보려고 했더니! 분주히 돌아다니며 챙기다가 멈춰섰다. 뭘 꾸며...? 나도 모르게 든 생각에 미친 소리라며 발을 동동 굴리다가 다시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각하면 안되는데!
학교 주위에서 자취해서 다행이다. 대학에 붙자마자 엄마는 자취방을 알아봐주었다. 기숙사에 들어갔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해서 엄마는 걱정반, 서운함반으로 나와 함께 자취방을 구하러 다녔다. 다행히 치안도 괜찮고, 시설도, 가격도 괜찮은 곳이 있었고 주인 아주머니도 좋아서 올해도 여기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이럴 때는 자취를 해서 정말 행복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서둘러 챙겨 나오니 다행히 지각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좋았어, 혼자 웃으며 이어폰을 꺼내들었다. 최근에 나온 노래로 골라서 재생시키고는 걷기 시작했다.
톡, 갑자기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놀라서 뒤돌자 웃고 있는 태형선배가 보였다. 그래도 겨우 두 번째 보는 거라 어정쩡하게 안녕하세요, 하며 고개를 숙였다. 뭐라 말하는데 입만 벙긋거린다. 누구 놀리나. 내가 빤히 쳐다보자 다시 활짝 웃고는 자신의 귀를 톡톡 두드린다. 그제서야 이어폰의 존재를 느껴 서둘러 귀에서 빼내었다. 내가 이어폰을 대충 가방에 집어넣는 것을 보며 선배가 안녕, 하고는 인사를 한다.
뭐 들으러 가? 어쩌다보니 같이 걷게 되었다. 어쩔 수 없잖아. 선배랑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먼저 갈게요, 하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만 불편한 건지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물어온다. 아, 전공이요. 내 말에 선배가 김교수님? 하고는 다시 물어온다. 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같이 듣겠네, 하며 웃는다. 그렇게 수업 얘기부터 시간표 얘기까지 하는데 선배랑 겹치는 수업이 생각보다 많다. 아무래도 학년도 같고, 같은 전공이니 그런가보다. 같은 분반이었으면 한 번 쯤은 마주쳤을텐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선배를 바라보자 거짓말 같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자신은 쭈구리라서 조용히 복학하고 혼자 조용히 수업을 들었댄다.
물론 선배의 말은 몇 분 지나서 거짓말로 밝혀졌지만. 선배는 존나 구라쟁인가보다. 선배랑 가는데 만나는 우리 과 사람들마다 반갑게 인사를 해온다. 쭈구리는 무슨 쭈구리. 이렇게 유명한 선배였다면 알았어야하는데, 다시 생각하다 그냥 내가 관심이 없었겠거니 하며 선배를 따라 인사를 했다. 그렇게 강의실 앞에 다다라서야 선배가 날 어제 데려다준 것이 기억났다. 참, 선배 어제 감사했습니다. 내가 갑자기 말하자 선배는 그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거야? 선배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집은 조금 멀구요, 자취해요. 내 말에 선배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무섭지는 않고? 다시 물어오는 선배의 말에 괜찮다며 작게 웃었다.
강의실에 들어가자 내 자리를 맡아놓고는 엎드려있는 친구가 보인다. 선배에게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친구에게 가려는데 나중에 잊지말라며 선배가 말한다. 나중이요? 했다가 곧 점심약속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 보자. 선배가 내 팔을 톡, 치고는 자신의 친구에게로 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친구의 옆자리로 가 앉았다. 인기척을 느낀 친구가 곧 고개를 들더니 앓는 소리를 낸다. 오늘 9시인 줄도 모르고 어제 존나 달렸어, 죽을 것 같아. 어윽거리며 친구가 다시 엎드렸다. 해장하고 싶다, 국밥 먹으러 갈까? 친구의 말에 나 오늘 약속있어, 하고 말하자 누구랑? 하며 벌떡 일어난다. 순간 내 쪽을 돌아본 선배와 눈이 마주치고 친구에게 머뭇거리다 답했다. 어, 있어.
지옥같던 9시 수업도 끝나고, 그 다음 수업도 몸져 누우려는 친구를 데리고 겨우 들었다. 우리랑 다른 분반인 친구들도 로비에서 만났다. 나 죽겠어, 또 친구가 앓는 소리를 내며 칭얼거린다. 나 약속 있어서, 맛있게 먹구 와! 내 말에 친구들이 남자 만나러가냐며 아우성이다. 그런 거 아님. 내가 부정을 해도 이미 남자를 만난다고 기정사실화한 친구들이 화이팅! 하며 내 등을 떠민다. 아니, 남자는 맞는데, 아니, 무슨 화이팅이야! 야! 내가 떠밀려가며 변명을 늘어놓아도 듣지도 않는다. 기집애들, 힘만 더럽게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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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
"친구들 떼어놓는다고...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니야, 가자. 선배가 앞장서다 뒤로 돌았다. 가자, 재차 말하는 선배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따라 붙었다. 선배랑 걸으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데 마치 세자랑 있는 기분이었다. 웃는 얼굴도, 옆모습도, 말하는 것 하나하나 세자랑 똑같았다. 세자랑 동일인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행히 성격도 잘 맞는 것 같고 이야기도 잘 통하는 것 같아 어색함도 많이 사라졌다. 선배가 맛있다고 추천한 집에 들어가 마주 앉았다. 먹고 싶은거 다 시키라며 너스레를 떠는 선배에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는 하나씩 시켰다. 곧 밑반찬과 함께 우리가 시킨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잘 먹겠습니다! 내가 숟가락을 들고 선배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선배는 많이 먹으라며 웃어준다. 한참 밥을 먹는데 선배가 내 밥 위로 반찬을 하나 올려준다. 많이 먹어. 다정하게 말하는 선배의 말이 멀리서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버섯 무침. 왠지 선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세자가 생각났다. 첫 날에 내가 버섯을 못 먹는다고 하자 당황하며 허둥지둥대던 모습이 생각나고, 그 뒤로는 나에게 버섯의 버, 자도 꺼내지 않았던 세자가. 그렇게 사소한 것으로 나를 배려해주던 세자가. 맞다, 선배는 세자가 아닌데. 어쩌면 나는 이 때까지 선배를 세자와 동일시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선배는 그냥 선배일 뿐인데. 얼굴이, 그저 세자와 아주 똑같이 생긴.
왜? 다시 다정스레 물어오는 선배에게 겨우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냥.. 버섯을 못 먹어서요, 제가. 죄송해요.. 내 말에 선배는 미안하다며 들고간다. 선배가 버섯 무침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나는 자꾸만 울고 싶어졌다.
그렇게 서먹하게 밥을 먹고는 선배와 가게를 나왔다. 여전히 서먹한 상태에서 내가 감사합니다, 잘 먹었어요, 하고 말하자 선배가 아니라며 종종 먹자고 답한다. 학교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기에 다시 설렁설렁 걸어가는데 서먹한 분위기는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뭐라 한 마디 말이라도 붙여보고 싶은데 자꾸 무엇을 생각하는 표정의 선배라 어떻게 하지도 못하겠다. 나는 나대로, 선배는 선배대로 생각에 잠겨 다시 학교에 도착했다. 여전히 골똘히 생각하던 선배는 대뜸 강의 몇시에 끝나냐고 묻는다. 두 개 더 들어야되서.. 여섯시요. 내가 답하자 그럼 그 때 보자며 곧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두 번, 아니 세 번 밖에 보지 못한 선배였지만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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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번 시간에는 같이 노는 친구들이랑 다 붙어있는 시간이었다. 평소였으면 대충 수업도 듣고 애들이랑 딴짓도 하고 했을텐데 오늘은 내내 시달리기만 했다. 그래서 누구랑 먹었냐고 계속 물어오기에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 친구라고 했지만 영 믿지 못하는 눈치여서 결국 태형선배랑 먹었다고 실토했다. 이름을 말하자 한참 꺄르륵거리던 친구들이 곧 흥미가 떨어졌다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나도 수업 들을거라며 펜을 잡았지만 영 집중은 되지 않았다.
겨우 여섯시까지 모든 강의를 듣고 나왔다. 내가 무슨 수업을 듣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강의실 밖에는 태형 선배가 서있었다. 가자, 다시 활짝 웃으며 선배가 앞장섰다. 한참 선배를 따라가다 드는 의문에 멈춰섰다. 왜? 하며 물어오는 선배에게 우리 어디가요? 하고 묻자 선배가 데려다줄게, 하고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한다. 낮보다는 조금 풀렸지만 여전히 서먹한 분위기로 선배를 따라갔다.
집 앞에 서고, 내가 감사합니다, 하고 뒤도는데 갑자기 선배가 팔목을 잡아온다. 다시 뒤도니 한참을 내려다보던 선배가 팔찌 이쁘다, 하며 중얼거린다. 내가 선배의 손에서 팔을 빼내고는 팔찌를 만지작거리자 선배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러면 들어가볼게요, 내가 다시 뒤돌았다. 선배가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선배의 말에 조심스레 뭐가요? 하고 물었다.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무슨 약속..."
"지켜주겠다고 했는데, 미안해."
그 추운 곳에 혼자 둬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이삐야. 선배의 마지막 말에 다시 뒤를 돌자 가만히 서있는 선배가 보인다. 이삐야, 다시 작게 속삭인 선배가 한걸음 내게 다가온다. 세자...? 내가 작게 묻자 선배가 살짝 웃는다. 보고 싶었어, 이삐야. 세자의 말에 뭐라 답하지도 못하고 품에 안겼다. 나도요, 내 말에 내 등을 쓰다듬으며 세자가 말한다. 무서웠지. 아팠지. 혼자서... 힘들었지. 세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왜, 알면서 모르는 척 했어요. 내가 투정부리듯 묻자 미안해, 하며 또 웃는다. 미안하는 말 좀 그만해요. 내 말에 품에서 나를 떼어내곤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너를 보내고, 나는.. 나는, 힘들었어. 그리고 나는, 선택을 하게 되었고. 네가 있는, 한국이라는 곳에 오게 되었어. 처음에는 적응도 안되고 신기하기도 했는데, 네가 내가 있던 곳에 금방 적응했듯이, 나도 그렇게 되더라. 나도 눈을 떴더니, 그냥 모든 것이 설정되어 있었어. 내 신분도, 내 모든 것이.
부모님의 얼굴은 똑같더라. 돌아가셨던 내 어머니도. 너도 그랬어? 농담처럼 말하고는 웃어오는 세자의 품에 다시 안겼다. 어떡해, 힘들었죠... 힘들었죠, 많이. 내 말에 세자는 다시 내 등을 작게 두드린다. 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하나도 겁 안났어. 3월 몇 주였지만 너를 피해다니는 것도 힘들었고... 숨겨서 미안. 세자의 말에 결국 울음이 터졌다. 보고싶었잖아요, 내가 얼마나.. 얼마나, 힘들었는데. 3년동안. 투정을 부리며 아이처럼 엉엉 우는 나를 세자는 말 없이 달래주었다. 보고싶었어요, 진짜로.
이삐는 울보. 겨우 울음을 그치고 집 앞에 같이 앉아있는데 대뜸 세자가 작게 말한다. 곧 이삐는 울보~ 하며 또 요상한 음을 붙여 부른다. 그 모습이 그리웠기도 하고 마냥 좋아서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만났으니까 이제 진짜 행복하자. 조용히 말한 세자가 자신의 소매를 걷어 내가 선물한 팔찌를 보여준다. 혹여나 끊어질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활짝 웃으며 세자가 말한다.
이제 들어가서 쉬어. 세자가 읏차, 하며 일어나더니 내 팔도 끌어당겨 일으킨다. 집에 가면 전부 꿈일 것 같아요. 내가 작게 말하자 세자가 또 웃는다. 나는 진짜야, 내가 여기 있잖아. 세자의 말에 겨우 용기내어 세자를 쳐다보았다. 얼른 들어가서 쉬고, 내일 또 보자. 내일도 보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오래오래 보자. 세자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활짝 웃는다. 내 꿈 꿔.
***
네, 결국 다시 만났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 잘 있었어여? 저는 피고내서 쥬글 것 같아여ㅠㅠㅠ 살려줘ㅠㅠㅠ
일주일을 너무 바쁘게 보냈나봐요 몸살 걸릴 것 가타... 어흑..
여튼 세자랑 이삐랑 다시 만나써여ㅠㅠㅠㅠㅠㅠ 이제 둘이 알콩달콩 데이트 한 두 번 하고! 걍 다음편에 끝낼까여?!
어짜피 쓸 것도 없고... 껄껄.. 번외에서는 할 얘기가 참 많져. 별이 이야기도 하고, 둘이 융기도 보러가야되고.. 뭐.. 등등.. 깔깔
일단 다음편 써보고 결정합시당. 다음편에 모든 걸 쏟아붓고 괜찮겠다 싶으면 완결하구, 번외 쓰구, 차기작 갑시당 꺄륵
늘 댓글이랑 고마워요♡ 내가 이래서 독자바보 되잖아ㅠㅠㅠㅠㅠ 진쨔 사랑해여. 이씨.
암호닉
메리/라현/카누/또치/밀랑/브이태/비비빅/찹쌀떡/여기봐전정꾸/랩지니어스/침침맘/지니/인사이드아웃
없으면 말해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