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대체 왜 그러는데."
"말했잖아. 난 그냥 이제 니가 싫고, 다시 너랑 잘해보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다고."
제발 가라. 네가 또 이렇게 나를 찾아오면 내게는 더 이상 너를 밀어낼 자신이 없다. 너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일만 하면서 그렇게 살아줘. 나는 정말 그거면 돼. 너는 나란 놈이랑은 절대 어울릴 수가 없는 그림이니까. 너랑 비슷한 가치의 사람 만나서 울지말고 행복하게 살아. 제발.
"나, 네 진단서 봤어. 그거 때문인거면 나 진짜 괜찮아. 나 다 감당할 수 있어. 그러니까, "
"내가 감당이 안된다고. 짜증나고 역겨워. 내가 죽는 마지막 순간에 니가 같이 하는게 나는 싫다고. 나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너 위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야. 그냥 니가 싫어. 부탁이니까, 제발 좀 꺼져."
부탁이야 제발, 나는 내 마지막 순간을 두 눈 뜨고 지켜보면서 끝내 무너질 너를 넘어가줄 수가 없어. 무너지지마, 나 하나때문에 네 인생을 무너뜨리지마. 우리가 나눈 추억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했던 애정표현들, 내가 다 짊어지고 갈게. 너는 내 등에 실어주기만 해. 그리고 훨훨 털어보내면서 내 등 뒤에다 대고 후련하단 듯이 웃어줘. 내가 바라는 건 그거 하나니까.
"정말, 나는 안돼? 나는 끝까지 너한테 아무것도 될 수 없어?"
"응. 미안하지만, 넌 내게 그 무엇도 아니야."
"그럼 왜 그랬는데. 왜 날 안아주고 왜 나랑 키스를 나누고, 왜... 왜... 왜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어? 왜 그랬어, 대체 왜?"
"나는 그런 사랑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처음엔 고마움으로 나중엔 그나마의 정으로 끝에는 동정으로 네 옆에 있어준거야. 그치만 이제는 그것조차 힘들어졌어."
너는 이 세상에서 내가 본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어. 처음엔 가벼운 설렘으로 나중엔 미칠정도의 두근거림으로 끝엔 너에 대한 내 모든 사랑을 바쳐, 그렇게 널 보낼게. 네 아름다움이 내 옆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네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할 수 있도록 너를 놓아줄게. 너는 그래야 하는 사람이야. 이 하얀 백지같은 세상을 꽃으로 가득 그려넣어줄 나의 천사, 모두의 천사.
끝내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마는 너를 안아주지 못하고 지나쳐 몇번이고 목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울음과 함께 삼키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네가 완전히 사라질 때 까지 창문 앞에서 발걸음 조차 뗄 수 없었어. 너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을 떼고 무심코 눈을 돌렸을 때 시선 끝에 닿은 액자 하나에 나도 무너지고 또 무너졌어. 내가 무너지더라도 지켜줘야 했던 너라서. 나는 끝까지 너밖에 몰라서.
액자를 품에 안았다가 다시 눈에 담았다가, 가슴에 묻었다가.
그거 알아?
우리, 참 예뻤다.